2024년 12월 30일 월요일

어려움일까, 어지러움일까

   누가 뽑았는지 모르지만 대통령이 의회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총으로 의회를 쳐들어간 것으로 내란죄에 처한 지금 말 깨나 한다는, 혹은 자신의 똑똑함을 삶의 기본으로 삼는 그런 사람들이 모두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즐겨 듣는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서 진행자가 이 두 개의 단어를 모두 사용하며 정리를 하지 않고 지나가네요. 그 사람도 공부가 더 필요 합니다. 

  어려움은 어려울 난難입니다. 아주 곤란한 지경인 것입니다. 癸酉靖難. 코흘리개가 정권을 이어받아 나라 사정이 힘드니 자신이 나서서 靖(편한하게)하였는데 계유년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조가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일을 일컫는 말입니다.

  어지러움은 어지러울 란亂입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두 가지 섞어 써도 되겠습니까? 잠시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하는 상태인가요 난리가 나서 난리의 원흉을 두들겨 잡고 적군을 물리쳐야 하는 건가요?

유교의 민낯

   도학과 도교는 차이가 있습니다. 노장에 따른 학문, 그리고 그 학문을 삶의 목표로 하는 것을 도학, 도학자라고 하고 점을 치고 도술을 부리는 쪽으로 간 사람들은 '도사'라고 하여 '도교' 쪽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유학과 유교는 분리할 수 없습니다. 전에 이야기 한대로 공자가 어렸을 때 다른 또래들이 밖에서 뛰어 놀 때 자신은 제삿상을 차리고 놀았다고. 그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기독교처럼 자신들의 본질을 버리고 백성을 안중에 없고 권력만 지키고 빼앗으려고 했기 때문에 유교도 기독교도 믿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그들을 아주 추하게 봅니다.

  유학의 창시자가 공자라면 주희는 유학의 신으로 모십니다. 오죽하면 주자학일까요. 유학을 집대성하고 오경의 참뜻을 밝히고 유학을 완성시켰다고 칭송 받는 인물입니다. 중국에서도 그렇고 조선에서도 그가 말한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다 '사문난적'으로 몰려 함께 공부한 무리들이 아주 참혹하게 죽은 일들이 있습니다. 사문난적斯文亂賊의 벌은 왕위 찬탈의 벌과 같은 무게였습니다.그런 주희가 한 말 하나 보겠습니다.

朱子曰

(婦人)餓死極小, 失節事極大.

주자 이르시기를

(부녀자가) 굶어 죽는 일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정조를 잃는 일은 매우 큰 일이다.


  명심보감의 婦行편에 있으니 괄호 안의 '부인'이 원본에는 없는데 이렇게 일부를 떼어 오면 주어로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이어서 추가한 것입니다. 명심보감에 있는 줄은 몰랐고 소설 옹정황제에 나와서 글로 쓰려고 찾아 보니 명심보감 마지막 편인 부행편에 나오는 것이네요. 어떻습니까. 유교니 유학이니 요 나부랑이들 무시하고 기피해야 맞는 것이지요?

2024년 12월 25일 수요일

이월하의 강희대제를 읽고

   이런 대단한 이야기꾼을 모르고 있었어요. 위대한 중국을 이야기한 김용이 정권의 보살핌으로 지나치게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이 이 소설가와의 만남입니다. 이월하는 필명이고 본명은 릉해방(凌解放)입니다. 이름이 '해방' 그대로 입니다. 황하를 사랑하여 2월의 황하라는 뜻으로 필명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의 주류세력인 한족들은 자신들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중화를 둘러싼 자신들이 오랑캐라고 하였던 그 세력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할 수 없었습니다. 동북공정이든 무엇이든 서북방 오랑캐였던 몽골에게 송나라가 넘어가서 중국 전체를 원나라가 지배했던 그 시절에 대한 평가, 마지막 왕조였던 동북방의 여진족(나중에 만주족으로 개명한)이 후금을 세우고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며 지배했던 그 시기를 어떻게 중원을 중심으로 한 한족의 중화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어물쩡 덮어가고 백성은 완전히 나 몰라라 하고 유학 아니 유교놀음으로 나라를 구렁텅이에 빠뜨렸던 송나라와 명나라를, 송나라는 힘센 원나라와 거란과 치열하게 싸운 것으로 명나라는 야만스런 여진족과 싸운 것으로 주류들은 역사를 서술합니다. 어진 황제의 눈을 간사하고 악독한 신하들이 가려 나라 꼴을 엉망으로 만든 것으로. 딱 그게 수호지와 김용 소설의 기본을 구성합니다. 재미있게 그의 소설들을 읽고 욕하게 된 건 그 소설들을 읽을 때 이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또 거론하지만 내게 '백양중국사'는 '해전사' 못지 않은 '개안'을 가져다 준 책입니다.

  강희대제는 중국 황제 통틀어 '大'자가 들어간 유일한 황제입니다. 한족이 아니기 때문에 원나라의 황제의 성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청나라의 황제의 성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짐작한 건데 누르하치와 그 자손들의 성은 한자로 애신각라愛新覺羅로 생각합니다. 태조, 태종, 순치제에 이어 청나라 4대 황제입니다. 그의 생각과 말, 모든 정치행위들이 황제 그 자신에 의해 기록으로 방대하게 남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후금이던 시절 명나라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한 지역을 완전히 몰살시켜 버린 것이 명나라(한족) 사람들에게 잔인한 부족으로 각인이 되어서 청나라는 강희 시대에 두 가지 홍보정책(프로파간다)을 대대적으로 펼칩니다. 하나는 여진 땅을 만주라는 이름으로 바꿉니다. 한족의 증오심을 무마하는 방법으로. 그래서 만주라는 지명이 갑자기 대두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들이 명나라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고 명나라를 무너뜨린 '이자성'을 무너뜨리고 죽인 것이 자신들이라고 널리 정책홍보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까지 한 것은 한족이 1억, 만주족이 1백만 정도이고 한족들이 만주족을 오랑캐로 보고 원수로 생각을 하면서 정책에 따르지 않고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족들은 신기한 놈들이고 유교도 징그러운데, 조선 인조의 위기 때 결사항전을 외쳤던 주전파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정의라고 배워왔으니 역사학자들이나 그걸 가르친 역사 선생들은 무지할 뿐 아니라 나는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몰라서 한 일이라고 빠져 나가기에는 역할이 선생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유학, 유교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길게 이야기할 필요 없이 앞에도 조금씩 했으니 한 가지 예로 가름합니다. 유교쟁이들은 도살장에서 죽어가며 소리지르고 몸부림치며 도축되는 짐승들이 안타깝고 불쌍하여 멀리 피하여 돌아가고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을 천하게 여겼는데, 막상 상에 올라온 고기가 반듯하게 썰어져 있지 않으면 먹지 않고 버렸다는 겁니다. 물고기 잡아 살려 주거나, 기르거나 도축할 때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죽을 때 고통없이 죽어가게 하자는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완전 채식을 하는 사람들의 행위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식물도 생명이라는 건 모르시나 봅니다.

  황제는 비밀경찰을 직속으로 운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디에도 그런 조직을 언급하지 않지만 황제가 많은 정보를 사적인 대화까지도 거의 실시간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서술합니다. 그렇지만 그걸 근거로 칼을 휘두르는 것은 많이 절제합니다. 자신들이 무력으로 제압하고 있지만 소수파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부릴 때 쓰면 여지없이 뱉는 것도 자주 보입니다. 같은 사람의 젖을 먹고 자랐고 충성심을 눈꼽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던 시위(호신)인 위동정이 황제의 남순때 안전을 고려하여 위동정의 집에서 오랫동안 머물 때 호부에서 꾸어다 쓴 돈이 엄청났는데 호부의 채권 정리를 할 때 위동정의 채무가 자신 때문인 줄 알면서도 끝내 대신 갚아주지 않아 가난 속에서 죽게 되었고 그 채무는 그의 아들에게 이어지고 기껏 내린 조치는 조금씩, 천천히, 다 갚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황제의 청렴을 이야기하려 한 것일 수 있지만 쓰고 나면 버린 행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대표적인 사례는 진황입니다. 중국은 황하를 다스리는 것이 청나라 때도 골치였습니다. 비가 내릴 때 많이 오는 것도 그랬지만 구불구불한 강이 항상 넘쳤기 때문입니다. 요순 임금 다음의 우임금도 황하의 물을 다스린 공로로 순임금의 뒤를 이어 하나라의 최초의 왕이 되었는데 문제의 해결은 청나라까지 이어졌고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낸 귀재가 진황입니다. 물난리와 끊어지는 운하의 문제까지 다 해결한 인물인데 그가 몽골의 한 부족의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데 서로의 사정으로 떨어져 있을 때 미행을 나선 황제의 눈에 공주가 들어와 후궁으로 들여집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 물을 다스린 공로로 궁에 불려 온 진황은 황제의 뒤에 있는 그 여자를 보게 되었고 눈치 빠른 황제가 그것을 알게 되어 진황은 감옥에 갇히고 오랜 시간 뒤에 감옥에서 죽습니다. 죽고 나서 한 신하의 간언으로 석방하라고 하지만 이미 죽은 뒤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예들이 있지만 황제, 그것도 그 너른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가 나 같은 인간과 같을 수 없고 일을 처리하는 판단도 사람을 대하는 기준도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강희61년이 나옵니다. 8세에 황제가 되었으니 오래 살기도 했습니다. 기름진 음식 많이 먹은 건 아닌가 봅니다. 황자들을 많이 두었고 그들이 자신이 50 안팎일 때부터 차기 권력에 대한 암투를 벌입니다. 그의 선택은 소설의 입장에서 보면 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황자가 되었더라면 이라는 가정은 의미 없으니까요. 태어나면서 태자였던 2황자는 한 번 폐위 뒤에 복권을 시켜 주지만 결국 폐위됩니다. 폐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의 실정을 많이 늘어 놓지만 자신의 후궁과 놀아난 것을 결국 용서하지 못한 것으로 나는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새로 알게 해 준 책입니다. 한자 공부도 많이 했구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여순사건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며 역사서 소개해 달라던 사람에게 '해전사'를 초기에 나온 것으로 3권까지 읽고 시간이 부족하면 2권은 반드시 읽으라고 한 다음 권한 책이 백양중국사였는데 이 책을 읽기 며칠 전이어서 지금 이야기 한다면 이것도 권하겠습니다. 역사는 단편만 알아서는 안 되고 역사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관 말입니다.

2024년 12월 19일 목요일

법法

 접착제 사용,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애인 떨구는 , 블랜더 날 오래 쓰는 , ㄱ러는 거 아니야 그러는 어디 있어? 헌. 여기의 모든 법은 다 다릅니다. 사람들은 '법'이라는 말을 많이도 씁니다.

   , 이놈의 정체를 말해 보겠습니다. 갑골문에서는 인데 금문에서 으로 문자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水+廌(해태 치)+去 인데 해태는 올바르지 않은 것을 만나면 뿔로 받아 죽여버린다는 전설상의 동물입니다. 금문은 갑골문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고 현재 쓰는 것은 廌가 고스란히 사라진 것입니다. 대부분의 해석은 '법이란 물 흐르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공정하고 일정해야 한다고 재차 해석을 하지요.

하지만 역사를 살펴 보면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관점의 가장 오래된 고조선의 8조금법을 보면 남아 있는 3개는 살인과 상해 그리고 절도에 대한 처벌 조항입니다. 내가 보려는 것은 먼저 법이 '무엇을 하라'는 게 아니고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행위 중 가장 낮은 단계의 것임을 뜻합니다. 함무라비법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하나는 대부분이 가진 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자가 있어 가진 자의 것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법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법이 만들어질 때 사회구조의 모순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손에잡히는경제에서 '통상임금'을 계산할 때 과거에 '고정적'인 개념이 통상임금의 요건에 들어가던 것을 대법원이 그건 빼기로 했다는 걸 전하는데 그 뺀질이 기자 진행자가 소급적용 하냐고 묻길래 '그것도 질문이야'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맨 마지막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게, 인간의 행위를 금지하고 어기면 벌을 주는 것이라는 것이 말하자고 하는 것인 즉슨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법이라는 것은 과거의 질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을 현재에 적용을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 기준을 바꾸어야 하는 불안정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급 적용을 하지 않는 것이 '누구에게나', 그리고 '항상'이라는 조건과 더불어 법의 세 번째의 정신인 것입니다.

  그럴진대 요 모자란 이 땅의 정치인들은 인간의 행위 중 제일 높은 단계의 행위인 '정치'라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면서도 툭하면 '법으로 해결하자'고 법에 기댑니다. 정치라는 것은 원리원칙에만 따르는 게 아니고 타협도 하지만 협잡도 하고 배신도 하는 곳이 아닙니까. 우리는 베신이니 협잡이니 하지만 정치인들은 정치적인 득실에 따라 속한 집단을 바꾸기도 하고 정치적인 신념을 바꾸기도 하니 얼마나 높은 단계의 행위입니까. 정치인이 한번 가진 소신이라며 그걸 바꾸지 않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자신과 뜻이 다르다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정치인은 기본 자질이 없습니다. 소급적용 되지 않느냐고 묻는 기자는 무식하구요.

  사족을 답니다. 소급적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 그 땐 그게 옳았고(혹은 범법이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게 '법'이라는 것. 법은 멀리하는 게 좋은 더러운 '똥'이라는 것.

2024년 12월 17일 화요일

그렇게까지 머리가 빈 줄은...

   대통령 탄핵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되어버렸습니다. 이건 변명이 아니라 설명이라고 강변합니다.

하나. 투표 직전에 원조 친윤이라고 하는 권성동이 원내대표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탄핵 반대' 당론을 재차 확인 했습니다. 구김당의 분위기가 확실하게 보입니다. 찬성을 한다는 것은 탈당과 물려 잇고 새 당을 만드는 것이 따라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찬성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몰락 뿐이었습니다.

둘째. 앞에 이야기 한 것처럼 '돌격'을 외치며 뛰쳐 가갈 때 나머지 개들은 짓다가 만다고 했는데 탄핵 후 열린 자신들의 의총에서 살벌한 질타, 아니 그 정도가 아니고 각자가 어떤 표를 행사했는지 한 사람씩 말하자는 상황까지 이어지니까 최고위원들이 사퇴했는데 친한계 두 사람도 함께 사퇴해 버렸습니다. 당규에 4명 이상 사퇴하면 '비상체제'로 간다고 했는데도 말입니다. 완전히 꽁지를 내린 건데 한대표와 어떤 사전 협의도 없었다는 것. 그러니까 혼자가 된 한동훈은 버티지 못하고 대표직을 내려 놓게 된 것이고.

셋째. 한동훈은 국회의원도 아니고 정치에 입문한 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아무리 좋게 봐도 몇 년 내에 정치판에 얼굴을 내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돈이 있다면 해외 유학을 거는 게 그의 다음 예정 행보입니다.

넷째. 구김당이 정신을 차리고 헌재의 탄핵절차를 따를 리 없습니다. 이 개판인 상황에서도 11%의 지지가 있으니까요. 지금은 창피하니까 잠시 고개 숙이고 있지만 윤상현 말대로 1년 뒤면 다시 뭉쳐 33%~35를 채울 자신들의 편이 있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반대가 95표라고 하지만 기권과 무효 11표는 반대와 같습니다.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라 찬성이 분의 2 이상이 나와야 하는 투표였습니다. 찬성이 아니면 당연히 반대인 것입니다. 85표는 뻔뻔한 나쁜 짓인데 11표는 뻔뻔하고 나쁘고 의연하지도 못한 창피한 표입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니 어제 저녁에사 신장식의원이 말하더라구요. 

  나름의 판단이 없으면 정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시사채널들 김현정, 김종배 등 누구도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말을 아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돌아가는 걸 보니 수준이 다들 그 모양인 것 같습니다. 여권 소식통이라고 보수쪽 패널로 항상 어디나 불려다니는 장성철도 구김당 이탈표가 30명쯤, 정치 9단이라고 자타 공인하는 박지원도 그만큼 보았다는데 그것도 헛짚은 거였잖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며느리 업어 강 건넌 시아버지 격

   지금은 이월하의 두 번째 역사소성인 '옹정황제'를 읽고 있습니다. 바로 앞의 한자들도 이 소설 1권에 나온 것들입니다. 강희는 '대제'인 반면에 옹정은 그냥 '황제'입니다. 강희는 오래도 살았지만 여덟 살 때부터 아마 60년 넘게 통치하며 태어날 때 이미 태자로 삼았던 2황자를 폐위 뒤 다시 세우기도 했다가 결국 다시 폐하고 스무 명도 넘는 경쟁자들이 엄청난 암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넷째가 결국 타자로 황제가 죽기 직전에 봉해져 대를 잇게 되어 엄청난 피바람이 불었답니다. 강희대제의 맨 마지막의 내용이 옹정황제의 등극까지이고 옹정황제 1권은 아직 별 권력 갖지 못하고 주목도 받지 못한 4황자일 뿐인 상태입니다. 

  여튼 제목의 이야기. 며느리 업어 강 건넌 시아버지 격. 이 말을 여러번 곱씹었는데 한참만에 뜻을 알았습니다. 쉽게 풀면 '기운만 빼고 좋은 소린 못 듣고' 입니다. 4황자가 흠차(황제의 명을 받들어 지방에 나가는 것으로 황제의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서 돌아 오는 길에 당시 망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8황자의 계략으로 그의 지시를 받은 예부 시랑이 법에 명시한 정도를 넘어 엄청난 환영잔치를 벌여 놓자 4황자가 그 의도를 날고 숟가락도 들지 않고 자리를 뜨자 그 예부 시랑에게 한 표현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끝내 주는 표현을 하는지.

한자 공부

   이월하씨의 소설을 읽으면서 은근히 한자 공부를 하게 됩니다. 하나씩 써서 집에 와 붙여 놓고 외워질 때까지 두었다가 버렸는데 오늘 갑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부터는 블로그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이번 주의 것입니다.


- 투서기기. 던질 투, 쥐 서, 피할 기, 그릇 기. 이 사람의 글은 김용의 것과 달리 비장하지 않으면서 아주 친근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말꾼이고 배우고 싶습니다. 이 말은 화병 속에 쥐가 들어 있는데 이를 잡고 싶어도 병을 깨면 병이 아까워 깨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쥐어 패고 싶은 놈이 있어도 그로 인해 내가 입는 피해가 더 크다면 이 악물고 참는다는 것이지요.

- 정승은 2인자입니다. 여러 명칭들이 있는데 춘추전국시대 같으면 그 많은 나라들이 다 다를 명칭을 썼는데 왕의 일을 나누고 보좌역을 하는 사람입니다. 조선시대의 의정부(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과는 조금 다릅니다. 조선시대의 의정부는 왕이 6부(행정부)에 직접 명을 내리고 6부에서 올라오는 것을 직접 처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간에 끼어 들어 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신권강화의 차원에서 애초에 도입했던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원은 완전히 무시하여 폐지나 다름없는 상태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여튼 이와 달리 국정을 총괄하고 왕의 최종결정만 받으면 되는 자리.

- 弼. 百자는 원래 㐁(핥을 첨)이었는데 변한 것입니다. 뒤틀린 활을 바로 잡는 도구. 보필한다에서 쓰입니다. 배필과는 다릅니다. 配匹. 여기 '필'의 뜻은 '짝'입니다. 원래 쓰임은 '베를 헤아리는 단위'였는데 혼수 때문에 배필에까지 쓰이게 되었습니다.

- 맨 앞의 摘은 뜻이 '따다'인데 ;장기를 적출하다', '적발하다' 등과 같이 씁니다.

- 嫡은 '정실'을 뜻합니다. 이 '적출'은 '정실'에게서 낳은 아들을 뜻합니다. 유교의 입장에서 '예禮'는 생명인데 그 '예'가 바로 질서를 말하고 질서의 핵심은 신분의 질서입니다. '적자'에 상대하는 말을 '서얼'로 통칭하는데 '다음사전'처럼 정실 아닌 것으로 설명하지만 '서얼'은 '서자'와 얼자'를 합친 말입니다. 서자는 양반과 양민(평민) 사이에서 난 사람이고 얼자는 양반과 노비 사이에서 난 사람입니다. 강희대제의 아들이 스물 넷인데 태자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후계자 경쟁에 뛰어든 사람이 일찍 경쟁에서 탈락한 첫재, 잠룡이었던 셋째, 사람 모으는 것을 하지 않고 원리원칙만 따져 '冷面선생'이라 불려 태자에 관심 없는 것처럼 보였던 넷째, 실력 있고 인품이 뛰어나 많은 실력자들이 모여 들었던 여덟째, 그 여덟째에 붙어 있지만 언제든 독립할 수 있다고 보는 열째 까지 여러 세력이 있어서 그 때 나온 말이 있습니다. 태자란 자고로 立嫡 아니면 立長, 그도 아니면 立賢. 둘째의 어머니가 황비였으니 그가 적자이고 적자가 폐위되면 장자인 첫째가 되는 건데 태자를 흑마술로 해하려 해서 그가 대상에서 배제 되었으니 이젠 남아 있는 사람 중 능력있고 현명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敵의 뜻은 '원수'입니다. 적개심, 적대 등으로 쓰이는데 재미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適도 '언수'의 뜻이 있지만 이 글자는 적당, 적용, 적절 등으로 쓰입니다. 

2024년 12월 11일 수요일

붕당朋黨

   조선시대 하면 붕당의 역사라고 그 시대를 냉랭하게 보는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특히 일본에서. 근거없이 공격하는 것이라고 한국의 사학자들은 이야기 하지만 붕당과 사화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조선시대 자체가 X맨의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붕당이란 것은 한 몸이 아닙니다. 둘 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朋은 道를 같이 공부하고 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黨은 이해利害(그러니까 이익)을 같이 하는 집단을 말합니다.

  강희대제를 읽다가 군자위붕君子爲朋, 소인위당小人爲黨 이라는 말이 나와서 정말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웹서핑을 해 보았는데 구양수의 말에 비슷한 것이 보이네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자파가 군자이고 반대파는 소인이라고 몰아붙였던 시기의 정치인, 개판이었던 북송 시대의 정치인, 문인이었으니 내 개인적으로는 사람 자체는 무시하지만 정말 멋진 말입니다.

  분노를 떨치고.

  朋은 갑골문에서 조개들을 두 줄로 꿴, 그러니까 조개 화폐의 단위였던 것이 떼를 지어 다니는 무리를 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뒤에 참된 공부를 함께 하고 실천에 옮기는 무리를 뜻했다는 것입니다.

  黨을 보고 놀랐습니다. 전에는 무심결에 보아 넘겼던 것인데 글자를 살펴 보니 尙+黑입니다. 黑은 과거 묵형을 받은 사람의 얼굴을 의미했다고 하는데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석하면 되고 그래서 黨은 나쁜 것(黑)을 숭상하는(尙)무리를 뜻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당'에 '黨'이 있는데 중국의 공산당이 머리가 아팠겠지요? 갸들은 간화자로 만들 때 黑 대신 儿(어진 사람 인)을 써서 党을 만들어 쓴답니다.

과학에 대해 한 번 더

   과학이라는 것은 관찰과 측정을 통하여 실증된 것만을 진리라고 믿는 인간의 사유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감각을 통하여 확인하였다는 것이고 그 감각은 그 인간의 것이며 크로스체크한 사람들의 것까지 확장됩니다. 그것을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배우고, 믿고 있는 당신은 직접 자신의 감각으로 확인하였나요? 단지 그것을 확인하였다는 사람(과학자)들의 말만 믿고 따르는 것에 불과할 뿐이지 않나요?

  또한 관찰과 측정을 하였다는 것은 과거의 지식을 기반으로 확인한 것이므로 과거의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현재의 그 '과학적 사실'도 '과학적인 사실'이 아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구요? 소립자(양자)의 등장을 보세요. 지금까지의 과학적 지식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 일부는 부정했고 증명할 수 없는 부분(아주 중요한 것이지만)은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이름으로 빠져 나가잖아요. 요 아주 유명한 '원리', 그러니까 그 거창한 원리, Principal. 수학에서는 제일 위에 있는 개념. 그건 이렇습니다.

  시작은 전자였습니다. 전자가 핵 주위를 도는데 안쪽 궤도로 이동하거나 바깥쪽 궤도로 이동을 하는데 사라졌다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에너지보존의 법칙에 의하면 이동하는 것이 관측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러면서 소립자(양자)의 측정에 대한 고민이 나타납니다. 이 개념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더 이상 깨질 수 없는 단위가 원자인데 핵이 깨진다는 것입니다. 이걸 처음에는 소립자라고 했고 지금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양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양자는 너무너무 작은 겁니다. 그래서 측정을 하려면 빛을 쏘아서 눈에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 너무 작으니 빛을 맞으면 위치가 이동하는 것입니다. 해결 방법은 아주 천천히 쏘아야 하는 것이고 그러면 뒤돌아 왔을 때 보이는 것이 현재도 거기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플랑크 상수라는 게 등장하는데 이게 통계치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6.626 070 15 × 10−34 . 그런데 이렇게 아주 작은 값을 가지고 있답니다.

  여튼 필요한 말만 하자면 정확한 측정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불확정성의 원리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하이젠베르크는 이것으로 노벨상을 받은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최첨단 과학의 민낯을 보시고,

놀고들 있네

   123친위쿠데타 시도 후 다음 날 윤통 탄핵을 기다리는데 윤통이 담화를 발표하는데 '무슨 개소리지?'하며 생각해 보니 한동훈이가 자신에게 권력을 이임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그는 그렇게 해석했고 돈밖에 모르는 총리와 협잡을 했습니다. 얘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지식 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는데 그들 뿐 아니라 모든 정치인들, 그리고 언론에서 떠드는 사람들 모두 한심스러웠습니다. 엊그제부터 언론인 몇만 쬐금 이야기 하는데 구체적인 지적이나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사실은 간단합니다. 대통령을 국민이 뽑았고 그 대통령에겐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물론 의무도 있구요. 그러니까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이양, 위임할 수 있냐는 것인데 그게 말이 되는 거에요? 이렇게 기본적인 능력만 있어도 알아야 할 사실을 가지고 아직까지도 붙들고 있으니. 

  일단. 그 자가 탄핵 찬성하지 않는다는 건 맞추었고 모레 두 번째는 어쩔 것인가인데 자신은 한 표 행사 권리도 없잖아요.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 하나씩 찬성하겠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로 봐서 그들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자가 자파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지시할 리도 없고 지시한다고 따를 리도 없어요. 갸들 생각은 오로지 탄핵되면 이재명이 다음 대를 잇는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사고'처리하고 직무대행체제로 가려고 할 것입니다. 여튼 그 자는 끝까지 탄핵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홍 늙은이도 그럴 것입니다.

2024년 12월 6일 금요일

유가의 민낯

   먼저 유가儒家와 유교儒敎를 정의합니다. 보통은 유교를 유학과 동일시 하고 유교를 믿고 공부하는 이들의 집단을 유가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공부한 사람들은 유학과 유교를 구분합니다. 유학은 학문 그 자체를 말하고 유교는 유학에서 형식을 중요시하여 종교화한 것으로 구분합니다. 그러면 유학자와 유가가 구분이 됩니다.

  유儒의 뜻은 '선비'이지만 원래 갑골문에서는 기우제를 지내는 사람의 형상이었고 곧 제사장의 의미했습니다. 그걸 가져다 쓴 것이고 유학의 시조인 공자를 보면 어려서부터 제사상 차리는 것을 또래들이 골목에서 올 때 혼자서 항상 했답니다. 그가 가장 높이 생각했던 것이 "예기"인데 그 책을 참고 읽느라 결국은 입 밖으로 까지 여러 번 욕이 새어 나온 뒤 절반 조금 더 읽고 아예 책을 버려버렸습니다.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는 벼슬이 어떤 사람은 어떤 차림으로 어떻게 서고 행동해야 하며 어떤 행사는 누구는 뭘 하고 행사장은 어떻게 꾸미고. 이런 것들이 아주 꼼꼼하게 씌어 있는 책입니다.

  공자의 나라 노나라는 주나라 서백창(주문왕)을 도와 주나라를 세웠고 3대 성왕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자 대리청정을 하다 성인이 되어 물려주어 대대로 중국, 유학자들에게 칭송을 받는 인물로 보통 노나라에 봉해졌다고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주공의 큰아들을 봉한 것으로 압니다. 노나라는 작기도 하고 뭐 농산물도 특산물도 별로 생산하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공, 혹은 그의 아들이 봉해진 나라라서 주나라의 예법(주례)가 주나라가 망한 뒤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탓에 다른 나라들에서 노나라에 와서 주례를 배워갔답니다.

  바로 이것이 유학의 기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치국의 도리라며 자신을 써달라며 나라들을 돌아다녔으니(노나라를 먹을 게 없으니) 누가 그를 중용하려 했겠습니까. 멋있기는 하지만 잘 살게 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을 것 아닙니까.

    그게 더 망가진 게 성리학 입니다. 송나라 때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사마광 기억 날까요? 이른바 복의濮議은 끝내주는 일이었습니다. 4대 황제 인종이 후대가 없어 사촌형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게 한 게 영종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건 영종의 친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지 큰아버지라 불러야 하는지로 두 당파로 나누어 상대를 '소인'이라 욕하며 아주 심하게 싸웠습니다. 그것이 당파를 가르고 집권을 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게 조선 후기 예송논쟁에서 판박이로 벌어집니다. 여튼 그런 성리학을 아주 더 사람들의 사는 것에서 동떨어지게 성리학을 완성한 사람이 유학자들이 중시조로 떠받드는 사람이 '주희(높여 부르길 주자'입니다.

  저게 전통이라고 따르자는 사람들은 사람일까요?

2024년 12월 5일 목요일

명나라와 청나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조선이라는 나라로 이 땅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주 큰 두가지만 해도 일본을 무시하다 당했고 저물어가는 명나라에 기대다 또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명나라는 조선보다 살짝 먼저 앞선 나라였는데 무능하고 나쁜 주씨들 때문에 개국 초부터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렸지만 조선은 명이 바라지도 않은 속국을 자처했습니다. 

  더 나쁜 것이 있는데 명나라와 청나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지금의 나에게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딱 하나만 보겠습니다. 백양중국사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청나라 궁녀에서 자녕궁을 제외한 것은 황후와 황태후 등이 거주하는 곳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장미

   덕양역에서 이 초겨울에 발견한 건데 아주아주 예뻤습니다.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

   이걸 사자성어로 하면 뭘까요? 욕속부달입니다. 예전에 공부했던 말인데 잊고 있다가 다시 찾은 좋은 말입니다. 이도 강희대제에서 읽었습니다. 한자로 欲速不達. 직역하면 '빨리 하려 하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입니다.

시간에 따른 가치의 변화

   나는 썩어 문드러진 유가의 후손들의 가르침으로 청나라는 야만족이 만든 나라라고 알고 있었길래 이월화의 '강희대제'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읽을 때마다 느낍니다. 백양중국사를 명나라까지만 읽은 걸 반성하고 있으며 이어서 읽을 것입니다. 나중에 독서감상문을 쓸 것이고 이따금 단어별, 사건별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 ~ 현신賢臣(어진 신하)과 능신能臣(유능한 신하)이 되길 바라는 건 좋은 일이지만 충신忠臣, 열신烈臣이 되길 바라진 말게. 현신이 있으면 명군明君이 있고, 능신이 있으면 치세治世가 있기 마련이오. 하지만 충신이 나온다는 것은 군주가 우매하고 나라가 난리를 겪고 있다는 증명이오. ~"

  강희가 신하들에게 한 말입니다. 어질고 유능한 신하는 항상 필요하지만 충신과 열신(열사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이 있다는 것은 군주가 정치를 잘하지 못하고 폭군일 때 생긴다는 말이겠습니다.

  지은이가 한 말인지 사서에서 가져온 말인지 모르겠으나 명언 중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뒤통수를 때리는 깨우침의 말입니다.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단풍

   오후에 가는 도서관 길의 단풍입니다. 올해는 곱게 물들었습니다.



동백길

   아침에 걷는 산길에 동백길이 있습니다. 보통은 사진이 실제보다 멋있지만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라 빨리 찍으려다 보니 위치, 빛, 구도, 초점 등 그 어느 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사진이지만 찍은 나는 실제의 모습이 머릿속에 있으니 그걸 생각하면 됩니다.



지적인 수준

   간밤 대한민국 난리가 났습니다. 국방장관 임명으로 계엄령 선포의 인맥이 완성이 되었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구김당은 물론 모든 언론에서 비아냥거렸지만 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긴 했지만 저렇게 아이들 동네 골목에서 하는 전쟁놀이처럼 어설플 줄은 몰랐습니다. 체포조는 목표로 한 양당 대표, 국회의장, 김어준 등 4명 누구 하나도 잡지 못했고, 군대 동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언론도 그냥 놔두었고, 국회의 의결도 막지 못했습니다. 모 국회의원은 '전쟁 놀이로 생각했나 보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멍청하다고 생각을 굳히고 있었는데 저토록 한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탄핵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무덤을 팠으니 변수가 생겼고 가능성도 조금 생겼습니다.

  감히 엊그제 이어 또 하나 예언하건데 탄핵은 어려울 것입니다. 다들 요건이 갖추어 졌다고 생각하지만 언론과 여당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언론은 그냥 이미 망가진 것이고, 여당 지도부가 이른 아침에 모여 대통령은 당에서 나가야 한다고 했고 내각 총사퇴, 국방장관 해임 등 강력한 요구안을 내어 놓았지만 탄핵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유? 아주 간단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탄핵이 되고 보궐선거가 이루어진다면 현재는 대통령에 당선될 사람이 누가 봐도 단 한 사람입니다. 아주 빤한 상황! 그래서 그들은 그 상황까지 가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오판에 대한 사과와 영부인특검의 수용 정도로 막으려 할 것입니다. 채상병도 가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저렇게 멍청할 수 있나 의심하겠지만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으로 많이 떨어집니다. 여천동사무소, 요즘엔 행정복지센터라고 하나요? 


  이게 진즉부터 붙어 있는데 내내 그대로입니다. 직원들이나 드나드는 그 누구도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니 걸어 오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가 보는 위치입니다. 나처럼 무관심이라구요? 한국사람들이 잘난 체하는 것을 참는다구요?

  잘못된 표현 찾았나요? 도난은 당하는 것입니다. 절도가 맞지요. 우리말로 '가져가지 마시오'가 가장 무난하고 한자 표현을 쓰고 싶으면 '절도 금지'여야 합니다. '도둑맞는 거 금지함'이란 말, 얼마나 우습습니까. 다들 무식한 현실입니다.추신 ; 


추신 : 오늘의 추가 이어진 소식. 이어 이어진 8시 의원총회 세 가지 지도부 결정 중 대통령 탈당 건은 의견들이 달라 빠짐. 저녁 시간. 구김당 비공개 모임에서 정권재창출을 위해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

2024년 12월 2일 월요일

세계관, 최소한 소신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익을 보며 흘러가는 삶을 산디고 해도 최소한의 소신이나 자신만의 가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 남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내 생각에는~'이라거나 '내 기준으로는~', 혹은 '순전히 그냥 내 기준으로~'라는 표현을 할 수 잇을 것입니다. 세계관이 없는 사람은 옳고 그름을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그게 없이 어떻게 선악을 판단하고 정의를 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혼자의 생각이야 당연히 하는 건 상관 없지만.

  세계관이라는 게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잖아요.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라는 게 꼭 개인의 업보에 대한 좁은 해석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은 모두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또한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인들도 이제사 쬐끔씩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영화에 반영하기도 하는데 많이 어설프기는 합니다. 메트릭스를 보면 스스로 이게 뭔 말인지 만든 사람은 알고 있나가 의심스러운 게 아니고 어디서 멋있는 말 주워 듣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영화의 핵심으로 쓰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여행을 하는 영화들도 스스로 혼란스러운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면 연관된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철학적으로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다시 세계관을 보면 궁극은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냐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 하는 것을 세인들에 의해서 그것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들로 호명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그런 용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 건 세상을 보는 시각에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 다 공자의 문파입니다. 유가의 사단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잘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뒤의 송과 명, 그리고 조선에서는 텍스트로서만 또한 불변의 진리로서만 유교를 받아들여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는데 말하자면 기독교가 성경을 오류가 없는,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이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냥 종교에 머무른 것과 같은 수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을 살리는 정치판에 기어들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시 세계관입니다. 그러면 말하고자 하는 세계관은 이것입니다. 그의 4단 중 '인仁'에 집중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서는 국가라는 것이 성립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두 번째인 '의義', '수오지심羞惡之心'과 네 번째인 '지智',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세계관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옳지 않은 것을 미워한다는 것은 그 행위의 주체인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성문화된 기준에 의해 벌을 주어야 하고,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가려내어 바른 방향으로 모든 것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세계관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생각이고 바른 방향으로 나와 내 세상이 흘러가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문 막고 막을 수 없을 때는 분노해야 하는 것이지요. 옳지 않은 나쁜 것을 보고 나의 일이 아니라고 눈감고 지나갈 때 그것은 반드시 내게 더 큰 해로움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실은 이건 그냥 바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 블로그의 대문에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글을 쓰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안선생과 술을 마시면서 한 일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가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만나냐고 묻길래 난 두 가지 기준이 있다고 했습니다. 나쁜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또 하나는 내게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한참을 눈을 끔벅거리더니 재차 물었고 같은 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그렇게 하면 주위에 남은 사람이 거의 없겠는데 어떻게 하냐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어서 수시로 나를 힘들게 해도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나 삼당선생들, 의사들의 이야기 대로 나이들면서 사람들이 많아야 하고 만나는 사람이 마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불행한데 유명한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니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입니다. 내게 삼성과 쿠팡은 나쁜 기업이고 나는 그런 기업과 거래하지 않고 그러면서 그런 기업의 제품을 사는 사람이 내 옆에 있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내가 세상을 사는 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024년 11월 28일 목요일

복, 그리고 5복

     꽤 오래 전에 알았던 것인데 삼경 중 하나인 '서경'에 나와 있는 말이라네요. 소설에서는 주나라 문왕이라는데 그랬다면 주역에 나왔어야지요.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입니다. '수'는 오래 사는 것을 말하고 '부'는 돈이 많은 것을 말합니다.

  '강녕'은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을 말하는데 떠도는 가장 힘이 있는 해석은 '건강을 말하고 이빨이 튼튼한 것'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니까 먹은 것을 최대한 흡수해야 하고 그러려면 소화가 잘 되어야 하니 잘 씹는 능력이 건강으로 연결된다고 한 것이지요. 지금은 소화가 잘 되지 않은 것이 건강식이니 그렇게 되면 이 해석은 힘을 잃게 되네요.

  '유호덕'은 '덕'을 좋아하는 것으로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법률신문에는 '도덕 지키기를 좋아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철학적 고민이 없는 해석이고 '주위에 많이 베풀어 신망을 얻는 것'이라고 나는 해석합니다. 도덕을 지키는 게 무슨 '복'이랍니까. 말 아귀도 맞지 않는.

  '고종명'도 해석들이 다를 수 있습니다. 考는 '생각하다', '살피다'가 사전적 의미인데 다음사전에서는 서경에 있는 그 말 그대로 가져 와서 그 뜻을 '이루다'로 번역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명'에 따르는 건데 죽을 때, 죽을 장소에서 죽는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가장 순리대로. 제주일보에서는 '강종호'의 글로 '고통없이 평안하게 죽는 것'이라고 하고 법률신문도 비슷한 해석이고 경남도민신문 등 보편적인 해석이지만 '다음사전'의 것이 더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관우의 죽음도 사육신의 죽음도 '명命'에 따르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참,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임종을 지켜 보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데 보통 사람들의 귀에는 제일 그럴 듯하게 들릴 것 같습니다. 관우와 사육신 등이 슬프겠지만.

예언 또는 예측

   정치평론가들이나 기자들이 모르는 건지 두려워서 사리는 건지 예측이 빗나가면 창피하니 그러는 건지 아니면 내게만 보이는 건지. 한동훈이라는 사람이 나오면서부터 외모와 두뇌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지만 난 딱 잘라 말했습니다. 안경 벗기고 볼 것이며, 번드르르한 말만 보지 말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한 것인지 보라고. 그리고 그의 정치적인 판단을 3개쯤 한 뒤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이제 그의 전모가 다 보이는데 그는 구김당에 붙어 사는 기생체로서 당이 깨지면 자신도 죽기 때문에 당을 등지지 않는다. 현재 대통령이 당에 대한 장악력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도 등을 지지 않는다. 그건 홍준표와 같은 처지로서 행동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가 당을 쪼개 나간다거나 김건희특검법에 찬성한다거나 그럴 가능성에 대해 입이 있는 정치 관련자들은 모두 가능하다고 보는데(지금 특검을 검색해 보면 나오는 모든 기사와 방송) 난 글머리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고 여기에 내 생각을 기록해 놓고 결과를 보겠습니다. 내 예언이 틀리면 앞으로 정치관련 이야기 끊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탈당이나 분당은 하지 않습니다. 특검법 찬성도 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는 한 몸입니다. 그에게는 하다 못해 찬성을 하기 위한 한 표도 없습니다. 국회의원이 아니니까요. 친한파 의원들? 동네 개들 봐 보세요. 우두머리 개가 짖으면 뒤에서 다들 따라 짖지만 우두머리 개가 행동을 시작할 때는 따라 오는 개는 거의 없고 상황이 좋아질 때만 함께 덤빕니다. 개들도 그런데 사람이라면 당연하고 더구나 정치하는사람들이라면 더욱 당연합니다. 협박의 수단으로서만 의미가 있고 상대가 알고 있다면 협박 수단도 되지 못합니다. 생각을 해 볼 수 있다고 정보를 흘린 걸 모두가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공포탄을 쏜 건데 공포탄 뒤에 실탄이 나온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애초에 실탄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결과는 재의결한다는 12월 초중순이 오기 전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024년 11월 26일 화요일

송구영신

   送舊迎新 아주 흔한 말입니다. 연말이면 하는 말이잖아요. 실은 이 말의 뜻은 옛 것은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한다는 뜻이잖아요. 보통은 올해를 보내고 다음 해를 맞이한다고 쓰이지만. 보수와 진보를 가름하는 것은 모든 것에 같이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호적이란 것은 일제 잔재여서 버리고 가족을 돌보지 않은 사람에게 상속을 해주지 않는 것도 예전의 것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라는 것이 성립한 이상 어떤 이유로도 타인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바꾸어서는 안됩니다. 

  입장에 따라 다른 것도 있습니다. 아주 쉬운 예로 지금 논란인 금융투자소득세 줄여서 금투세. 5천만원이 넘는 금융소득에 세금을 물리자는 것인데 법이 통과되고 2년 유예 했는데 시행 해보지도 않고 폐지하겠다고 합니다. 정치권, 그러니까 여당 의원들과 정부 뿐만 아니라 거대 야당의 주요 세력의 의견도 그러자고 합니다. 도둑놈의 새끼들입니다. 금융소득이 5천만원이 되려면 원금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이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너무나도 명확한데 말입니다. 조국혁신당의 분석을 빌자면 주식투자자가 1500만명 정도이고 10%의 소득을 올린다고 가정해서 원금이 5억정도라면 15만명 쯤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여튼 과거의 가치를 지켜 가느냐 새롭게 바꾸느냐는 일관적이거나 일방적이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혼자만 자신에게 적용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옳은지 그른지를 말하게 되는 다중의 사람들에게 적용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정우성 이야기처럼. 완전히 마녀 사냥입니다. 이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종교적인 배경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부드럽게 방향을 바꾸겠습니다. 


  1977년 발표한 '꽃 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노래와 1972년에 발표한 '개여울'이라는 노래입니다. 뒤의 것은 김소월의 시랍니다. 노래하는 가수가 여자여서 그런 건 아니고 이 노래들이 유행하던 시절에 노래의 주인은 여성이고 기다리는 대상은 남성이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시절 이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던 사람들은 나이를 낮추어 잡아도 60대 입니다.

  그 시기 뒤로 잡으면 이런 노래도 있습니다.


  김현식의 1989년 노래입니다. 이 노래 가사대로 하면 지금은 스토킹처벌법에 저촉됩니다. 앞의 노래들과 15년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이 때는 그다지 남녀 사이의 관계에 큰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안에서 꿈틀거리고만 있었지요. 식당은 물론이고 버스나 기차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지요. 이런 시기를 지내온, 그러니까 이런 감정을 당연히 받아들이던 그런 사람들이 어느 순간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달라진 기준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만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사이에 말입니다. 전제하지만 난 꼰대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운동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올바른 자세라며 요청하지 않아도 자신의 운동 자세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도 꼰대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남녀 사이의 관계나 질서는 당시에 그랬던 것을 폭력적이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런 게 자연스러웠던 것인데 말도 안 되게 거의 노예처럼 살아 왔다고 과거의 그런 모습을 단죄하려 하는 것이 현재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젊은이들에게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저런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현재의 피해자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레짐, 앙시앵 레짐. 없애야 할 구체제이지만 현대법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의 이유를 꼭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데 시간과 그 시간 동안의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현재는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을 연민으로 보고 있는 입장입니다.


꾸밈 없는 본래의 모습

  유퀴즈 보는 것을 좋아 합니다. 연예인은 지들 말대로 딴따라일 뿐이어서 개인적인 호감은 없는데 유재석의 상대의 말과 행동에 대한 집중과 그에 대한 이해의 정도와 깊이가 내가 보는 한 최고여서 재미있는데 덤으로 좋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뒤지다 걸리기만 하면 봅니다. 그러다 연예인들의 본모습을 보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앞의 이야기는 손석구입니다.

  잘 나갈 때 많이 찍으라고 하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고 하면서 '객관적으로 볼 때 자신이 지금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많이 찍고 있고 찍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스스로 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친구와 술마시면서 친구에게나 호기롭게 하는 말이지 어찌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있는지 이건 좋게 보면 자존감이 높은 것이고 사실대로 말한다면 '객관적'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바보의 말입니다.

  또 하나의 경우는 최근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정도의 추문이 두 가지나 도는 정우성의 말입니다. 그도 유퀴즈에 나와서 한 말인데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한 것은 가족이라고 한 것이 어찌나 귀에 거슬리는지(그의 성장 배경 때문에) '가족'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무위키에 나온 내용으로 유퀴즈에서 인터뷰 했는데 유난히 혼자 보면서 입을 삐쭉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족은 한자로 家族입니다. 家는 돼지가 최초의 가축이라고도 하고 중국에서도 인분을 먹여 키웠다고도 하니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집宀 안에 돼지豕가 잇는 것이 집을 뜻하는 家입니다. 중요한 것이 族입니다. 이 글자의 뜻이 '겨레'로 나와 있는데 집단을 의미하는 씨족, 부족의 그것이니 모여 사는 사람들의 묶음을 말하는데 주나라 시대에는 100집의 단위이기도 했습니다. 한자가 만들어지던 시기를 보겠습니다. 중국 학자들은 신석기시대부터 나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원전 2천년 보다 더 먼저인 것입니다. 기원전 2500년 쯤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갑골문은 이렇습니다.

  깃발 아래에 화살이 놓인 모습입니다. 㫃(깃발언, 우변이 위로 올라가서 붙은 것)+矢(화살시)로 거의 변형이 없습니다. 병장기의 기본이 칼이나 창인 것으로 아는데 실제로는 활입니다.  그래서 해석을 하자면 깃발은 그것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인 것이고 화살을 싸움을 의미하기 때문에 외적에 대해 싸움을 하는 기본 단위인 것입니다. 이것은 생사를 같이 하는 집단으로 혼자는 생존이 가능하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여기에 들지 않으면 배제 되어야 하는, 실제로는 적으로 판단하는 존재였습니다.
  앞에 家가 붙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족'이라는 게 외적의 침입에 대항하는 기본적인 집단이었고 주역에서도 깊이 있게 다룹니다. 지금은 시간이 짧아 주역의 점괘는 나중에 이어가겠습니다.
  여튼 그가 가족을 말할 때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해서 말을 보태 보았습니다.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세스쥔의 상성商聖을 읽고

   범려 이야기 입니다.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에서 몸을 감춘 뒤 바꾼 이름으로 장사로 성공을 하고 이름이 알려지면 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 이름을 바꾸어 성공을 하였고 나중에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사람.

  몸을 감춘 것까지는 역사에 나옵니다. 노예가 된 구천을 빼내고 오왕 부차의 눈을 흐리기 위해 투입했던 중국의 4대미인 중 하나로 꼽히는 서시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 월나라를 떠나는 것부터 소설입니다. 이 사람도 공부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일단 그 유명한 '장경오훼長頸烏喙

'가 나오지 않습니다. 목이 길고 입술이 검은 사람은 어려움을 같이 할 순 있어도 평화로운 시기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관상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범려 이야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말이지요. 그 엄청난 일을 성사시키고 나라를 나누어 주겠다는 구천을 뿌리치고 몸을 빼내어 숨으려면 그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의 절친 문종은 남아 있다가 죽임을 당하는데.

  김용의 소설에서도 느낀 건데 글을 쓰는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독자들을 맣이 깔본다는 것입니다. 가지를 만들고 구구절절하게 세세한 것까지 설명을 합니다. 물론 점프가 심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지만 유홍준처럼 자신이 다 알고 듣는 자신의 앞에 있는, 혹은 자신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일일이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글을 전부 읽기 힘들지요. 하도 칭송을 받기에 유씨의 책을 한 권 샀다가 다 읽지 못하고 내 책장이 꼽혀 있다는 게 부끄러워 버렸습니다. 이 책은 범려 이야기가 있어서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해서 점핑해 가며 읽었습니다.

  중국 역사를 깊이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탈화개면

   탈화개면脫靴蓋面. 뭘 쓸 건지는 여러 날 전에 생각해 두었지만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로 오랫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한 끝에 결정한 제목입니다. 나의 감정이 잘 들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길거리도 이따금 보이지만 산에 가면 제법 많습니다. 눈만 내어 놓고 모두 가립니다. 모자를 쓰고 얼굴만이 아니라 목과 귀까지 다 가립니다. 남자는 아예 없고 여성들의 삼 분의 이 이상이 그렇게 하고 산에 옵니다. ㅁ엇을 가리고 싶은 걸까요. 당췌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무서워 보이게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도 개운치 않습니다.

  그렇게 얼굴을 가린 사람들의 대부분(전부는 아닌)은 맨발입니다. 보통 맨발로 다니게 만든 길이 있지만 그냥의 산길은 잔돌도 있고 길이 고르지 않아서 걷기 상당히 힘들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맨질맨질 드러난 곳만 밟으려 하다 보니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길이 겹치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겅강을 위해 그러는 걸 건데 벌레, 지렁이들의 죽은 몸들이 비벼져 있고 입에서 뱉어져 나온 것들도 있을 건데 그걸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요?

  하나 더 생각되는 것이 있는데 과거에 여자들은 발이 성적인 의미가 있다고 해서 꽁꽁 싸매고 다녔는데 세상이 달라졌으니 개방하고 다니는 걸까요? 글쎄... 그래서 이 현상에 대해 일정한 감정이 생겨서 제목을 저렇게 한 것입니다.

2024년 11월 5일 화요일

시내암의 수호지를 또 읽고

   명나라 때의 무협지입니다. 실제의 난이 전설이 되어 구전되던 것을 소설로 쓴 것이라고 하지만 중국 역사 내내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서 어떤 걸 말하는지 억지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 모두가 108 영웅들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모두가 살인을 한 사람들입니다. 앞의 글에서 보았던 백양이 중국을 알려면 세 권의 소설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오승은의 서유기와 함께 이 책을 꼽았고 아마 중국 사람들도 그럴 것입니다.

  배경은 북송 말기입니다. 당나라의 멸망을 아는 조광윤은 군대를 무력화시킵니다. 있는데 최종 지휘관을 환관이나 문관이 감독하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송나라 대대로 이어졌고 거란이 세운 요나라에게 연운16주를 떼어 주는 등의 굴욕적인 화친을 맺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유교 중심의 말이 안 되는 정치를 하던 중 여진이 세운 금나라가 일어나 요나라를 치는 시기의 일입니다. 당시 송나라는 조길이라는 휘종황제가 다스리던 시기입니다. 그는 환관 채경과 놀아나 개판으로 만들었고 금나라에 쫓기며 황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과 흠종이 금나라에 잡혀가고 그 뒤를 어떻게 이은 고종이 남쪽으로 도망가 이은 나라가 남송으로 그 이전을 북송이라 불러 구분합니다. 이것은 소설의 배경이 되던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휘종을 덕이 많고 현명한 군주로 채경, 고구 등 4 간신이 황제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 기술하고 송강을 우두머리로 한 양산박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죄를 사해주기를 바라고 조정에 귀의해 신하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위기에 빠진 나라를 요나라를 깨뜨리고 큰 반란 둘을 진압하며 조정에서 벼슬을 받고 그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앞의 이야기처럼 나라가 착하게 사는 걸 허락하지 않은 제대로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가였다 하더라도 살인을 하고 온 사람들이고 양산박으로 모여 싸움을 계속하는 중에도 지속적인 살인이 일어나는데 그들을 나는 영웅이라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벼슬을 받은 뒤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 네 간신들의 모략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합니다. 간신의 모략에 의한 것이라 해도 결국 휘종이 죽인 것이지만 이 이야기 어디에도 황제를 원망하는 건 없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뒤 다른 사람들에 의해 프롤로그처럼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는데 살아남은 서른여섯명이 죽은 자들이 남긴 2세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규합해 섬라국이라는 섬으로 독립한다고 해피엔딩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끝에는 그 이름만 남은 남송 황제에게 우두머리인 이준이 왕으로 책봉되기를 원해 그렇게 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책은 한때 삼국지연의와 더불어 청소년 권장도서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금방 이야기한 대로 뭐 배울 것이라고는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 뿐이고 배워서는 안되는 것 투성이이며 삼국지는 배신과 협잡이 흔하게 이루어지고 유비의 멍청함과 여러 번 있는 배신, 세 주인공의 바르지 못한 판단으로 인한 몰락이 핵심일 뿐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글을 쓴 사람은 주인공들이 영웅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정신 차리고 읽어 보면 사실이 이런데 이건 시대적인 차이로 가치가 변한 것이고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의 관점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판단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백양의 백양중국사를 읽고

   본명은 곽의동이랍니다. 20세기 사마천으로도 불린답니다. 기존의 중국 역사서들의 기술에 민중의 관점을 대입하여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으며 중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책들을 본 뒤 반드시 마지막으로 이 책을 보길 권합니다. 이 책은 개인의 해석이 있기 때문에 미리 다른 역사서들을 보고 있었던 일이 무엇이고 역사서들을 어떻게 기술했는지를 본 뒤 이 사람의 관점과 비교하여야 의미가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역사서 시작의 '선양'에 대한 것입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성양입니다. 선양이라는 것은 부자로 이어지거나 불가피하면 선왕의 혈육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씨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기방훈 요임금의 사위인 요중화가 왕위를 물려받고 7년 뒤에 이기방훈이 죽는데 저간을 살피면 요중화가 왕을 감금하고 찬탈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순임금이 됩니다. 사마천이 사기를 쳤고 공자와 그의 추종자들이 아름답게 꾸민 것이랍니다.

  유학이 성했던 송나라와 명나라에 대한 기술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들이 나라(중국)을 말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지금 절판 되었으니 중고나 도서관에서 찾아야겠습니다. 다만 이 책도 문제가 있는데 아주 중국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중화사상에 쩔어 있다는 것입니다. 절어있는 게 아니고. 한반도에 대한 그의 기술은 읽는 한국사람 겁나게 기분 나쁘게 합니다.

  이 책은 다음 글에서 한 번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후안무치

   후안무치厚顔無恥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다.

  그런 사람과 그런 예는 아주 많지만 오늘 아침 어제 저녁의 뉴스하이킥 장장콤비를 듣고 난 뒤 정치인싸를 듣다가 화가 나서 이 말을 떠올렸습니다. 공론센터소장 장성철은 패널과 토론자의 구분도 못하는 사람인데 예전에 박근혜 탄핵 시정 김무성의 보좌관을 했던 이력으로 보수인사들과의 인맥으로 그쪽 소식일 많이 알고 있어 여기저기에서 보수쪽 편을 드는 사람으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화가 난 건 이 놈이 정치인싸에서 '두 달 전에 명씨가 터드리기 시작할 때 대책을 세우지 않아 대통령의 육성이 공개되고 탄핵이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며 대통령과 참모진, 여당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 놈은 두 달 전이 아니라 3주 전까지만 해도 장윤선 기자가 명씨 이야기를 하면 '자기 잘난 체하며 떠들고 다니는 사기꾼'의 말을 왜 사실처럼 하냐며 말을 막고 화를 내었던 사람입니다. 바로 어제 욕한 사람들과 자신이 똑같이 명씨를 판단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냈던 결과가 지금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자신은 판의 바깥으로 나와 자신과 같은 행동을 했던 사람들을 지금의 환난을 겪게 한 사람들로 욕하고 잇는 것이니 이게 후안무치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걸림돌

   한 노래는 백살까지 살겠다고 사신死神을 돌려 보내지만 중요한 건 노년을 어떻게 보내는가 입니다. 타인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하고 피해를 입혀서도 안 되고 흉한 꼴도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최소한. 우러름을 받을 수 없을지언정. 요즘 세상은 잘해도 나이먹었다는 이유 하나로 욕먹는 세상이기에.

  자신들은 능력이라고 스스로 믿고 주위 사람들의 입발린 칭찬으로 세뇌되어 있지만 늙어서까지 수십년 동안 라디오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행하는 사람들은 대표적인 걸림돌입니다. 노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위에 바른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 그렇습니다. 스스로 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면 주위에 쓴소리 하는 친구를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갈수록 총명함을 잃어가는 늙어가는 사람이 반드시 가져야 할 필수 덕목입니다. 자신이 한 언행을 수시로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떨어진 자신의 신체적인 능력을 고려해야 합니다. 뒤에서 추월하여 가려는 사람이 많아지니 당연히 항상 길의 가장자리로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사람이 비켜가는 길을 가운데로 걸으며 지나가겠다는 신호도 알아채지 못하며 은근한 길막을 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흉한 꼴도 많이 봅니다.


  저 사람은 항상 저 자세입니다. 저 소파들 있는 곳이 제일 인기 많은 자리인데 잠시 다른 사람이 없지만 저 무슨 꼴입니까.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 의자를 질질 끄는 사람, 하품과 재채기를 자기 집처럼 크게 하는 사람 등 노인 욕먹게 하는 사람 참 많습니다.

  추가로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가슴 운동하는데 옆에서 발 들어 올리기 하던 이가 손을 가슴까지 끌어당기라고 참견을 합니다. 다 알거든요. 근육의 힘을 키워가는 중이고 이제 거의 원하는 데까지 끌어내리고 있는 중이거든요. 여성 운동하는 데는 항상 끼어듭니다. 한두 사람 아닙니다.

  싸잡아 욕먹습니다.

2024년 10월 21일 월요일

문신을 어떻게 볼까

   文身. 한자로는 이렇게 씁니다. 타투도 검색하여 번역하면 그냥 '문신'이라고 나옵니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아침 등산을 하면서 마땅히 들을 방송이 없어서 김종배의 시선집중 토요판인 '토요일은 토닥토담'을 들었는데 2부에서 이 이야기를 하기에 생각되는 것이 있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이야기하였던 요즘 젊은 사람들의 '문해력'에 대해서도 의견이 있었는데 그건 이 다음에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 진행자는 처음에는 선명하게 방향을 잡고 진행을 하더니 올해 여름을 지나면서 잘난체하는 게 늘어나고 말과 주장은 흐릿해졌습니다. 홍 대구시장처럼 나빠도 선명한 사람은 나와 생각이 달라도 존경하는 면이 있습니다. 멋있는 나쁜 놈이니까요. 그래서 '제이비 타임스'만 듣는데 그것조차도 다시 김현정에게 돌아가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정을 떼고 있는 중이라는 거지요.

  전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종배씨 말고 세 명의 패널이 나오는데 그냥 진행자가 아니라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 정리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네 명의 간은 생각으로 정리했습니다. 목적은 상대에게 위협을 주려는 것, 사랑의 정표, 같은 생각을 하는 무리의 표시 등 여러 가지 있는데 경기대 이수정교수처럼 범죄자나 나쁜 일을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지 말고 달라진 현실을 인정해주자. 운동선수도 연예인도 많이 하고 길거리에도 흔하지 않느냐.

  그들이 역사적 사실로 이야기 하는 건 원시적인 상태에서 다른 부족과의 싸움을 하게 되는 전사들이 용맹하고 적에게는 두렵게 보이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고 그들은 이야기합니다. 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건데 동양(일본 제외한) 역사에서는 형벌입니다. 묵형, 경형, 자자형 등으로 불렸는데 당연히 목적은 이 사람은 범죄자로 벌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일반에 보여 주는 것입니다. 얼굴에 새겼으니까요. 나는 서양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주홍글씨'가 있으니까요. 문신을 하는 과정이 많이 아프기도 했겠지만 문신을 한 사람은 당연히 먹고 살기가 힘들었을테니까 그들의 삶은 '신산'했을 것입니다. 辛酸입니다. 맵고 시고. 앞의 글자는 익숙할 것입니다. 신라면에서 보이니까요. 이 글자는 문신을 하는 도구의 상형자입니다. 살기가 많이 힘들어서 사람들은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 문신 흔적을 뭉갰다고 합니다.

  가까운 역사는 내게 군대 갈 무렵에는 옷을 다 벗겨 문신이 있으면 보충역으로 빠졌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어마어마하게 흉악했던 삼청교육대는 문신있는 사람은 무조건 잡아 갔습니다. 지금은 보지 않는 내 친척 한 사람은 서울 가서 나이트 어깨할 때 새긴 화살 꽂힌 하트를 주위 사람들의 비난에도 꿋꿋이 보여 주었습니다. 실력이 없으니까 털을 세우는 것처럼 하는 거겠지요.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전에 그랬다고 지금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반드시 버려야 하는 태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교에서, 집에서 과거의 가치를 배우고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더 나은 직업을 갖기 위한 경로로 시험을 통해 실력을 검증 받습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니 불감훼상이 효지시야요'여서가 아니라 우리는 뱀에 물린 적 없지만 뱀을 보면 무조건 피하거나 굵은 막대기를 찾는 것처럼, 키 작고 오동통한 사람에게는 이유없이 호감을 갖는 것처럼, 긴 생머리의 날씬한 여성을 보면 '참 어느 놈 고생하겠다'처럼 선입견이라고 하지만 본능이란 게 있고 생존과 사회생활에 아주 적절하고 유용한 '짐작'과 '이유 있어 보이는 예측'이 있습니다.

  지우기 힘들다는 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일입니다. 지우는 데 많은 돈이 든다거나 많이 아프다거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낙인처럼 과거의 행적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두려움이나 혐오감을 주지 않는 '00♡OO'은 헤어진 뒤 다른 그림보다 더 고역이 아닐까요?

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농삿일

   용균이는 지금은 장학관도 했고 교장도 하고 있지만 무척이나 그러니까 나보다 더 가난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서면에 농사지을 땅을 산 것도 그런 부족했던 것에 대한 반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본업이 바쁘니 일 주일에 이틀 가는 것도 힘들어졌고 밭둑에 풀이 무성해진 것을 무심결에 방치했답니다. 주변 밭 주인들이 몇 번 베어 주더니 결국 풀 좀 베라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답니다. 내 꺼인데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는 내게 설명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수용해야 하는 셋이 있는데 벌레와 풀과 흙먼지입니다. 아무리 막아도 집안에 들어 오는 벌레를 막을 수 없고, 몸에 달라붙는 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방을 닦아도 흙먼지와 함께 잠을 자야 하고 금방 풀을 베었는데 돌아보면 무릎까지 풀이 올라 옵니다. 그래서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풀은 뿌리로도 자라고 씨로도 자랍니다. 내 밭과 붙은 옆 밭은 내가 해결하지 않은 풀의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고 옆 밭에 부린 농약은 내 밭으로도 떨어집니다. 농사 경험이 없었던 용균이는 그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뒷산 자락에서 자투리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뭘 하려고 그랬는지 지름 1미터쯤 되는 공간을 깨끗이 정리해 놓았더라구요.


  풀밭 속에. 그 사람도 풀의 위력을 모르는 농사 초짜인가 봅니다. 두 달도 되지 않은 모습입니다.



대왕참나무

   요즘엔 다른 나라에서 들어 온 식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꽃과 나무를 최대한 공부하려 하는데 다른 데서 들어 온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땅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벅차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상한 나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잎사귀가 단풍나무와 비슷한데 끝이 뾰족하여 다르고 수피도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다가 학생교육문화회관 앞 공원에 이름표가 달린 걸 보았는데 참나무랍니다. 대왕참나무.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그제 옛철길 걷다가 그 나무가 보여서 열매를 찾아 보았습니다.


  맞습니다. 참나무.

2024년 10월 7일 월요일

인간의 생각이 합리적이라는 생각

   인간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에게 실망하고 예측에 실패하고 장사에 망하고 사기를 당하는 근본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사람들이 경제적인 활동을 할 때 실제로 어떤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는지 연구하는 분야 '행동심리학'이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잘 뜯어 보면 그럴싸한 정답을 미리 정하고 실험을 하는 경우가 꽤 허다합니다. 

  얼마 전 성선설과 성악설을 확인한다며 1살 된 아이에게 세 유형의 아이의 행동(배려, 자기중심, 평균)의 동영상을 보여 준 뒤 아이의 행동을 살폈더니 배려한 아이를 선택하더라는. 이게 무슨 대학에서 돈 들여 하는 실험이라는 말입니까.

  몇 주 전 시사인에서 사주가 엉터리라는 기사를 쓴 걸 두고 편집장에게 항의 이메일을 보낸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그 기자가 다섯 곳을 들렀는데 다 다르더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근거인 것입니다. 답을 정해 놓고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요. 사주라는 게 그 사람의 성장환경부터 지금 처한 상황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해석을 해야 제대로 된 결과를 알 가능성이 높은데(엉터리들이 많거든요. 현종이처럼)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찾아갈 때 차림만 바꾸어도 결과가 아주 다르게 나오는 것이 당연하고. n=1, n=2, n=3, n=4, n=5일 때 그러니까 n=6일 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 대통령처럼 '과학적'인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멍청함을 낳는 것이지요. 

  서설이 길었습니다. 며칠 전 노란 변신 로봇이 뭐냐, 범블비. 그 영화를 보다가(두 번째) 문득 든 생각입니다. 외계에서 두 패거리가 싸우다 도망쳐 왔고, 그걸 해치고자 따라와서 지구에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외계에서 왔다면 지구보다 엄청나게 문명이 발달한 곳입니다. 지구의 과학적인 관점에서 다른 은하계는 고사하고 다른 행성계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한참의 미래에도 여전히 생명체들은 서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생명체가 상존으로 가는 길이 자신도 잘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의 방향일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유대인들처럼 자신만 옳고 다른 신을 모시면 없어져야 하는 상대로 생각한다면 인류의 어떤 판단도 정의로울 수 없습니다. 현재의 유엔이 자신이 즉 정의라고 생각하는 나토가 스스로 경찰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이 저렇게 힘없는 작은 나라들을 침략하여 부시고 죽이는 것을 방치하기도, 그 무기를 제공하기도, 그것도 부족해서 군대를 직접 파견하기도 하겠다는 저들이 앞으로도 세상을 휘두르고 총질을 해댈 것이 앞으로도 뻔하니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고 흉악한 존재일 뿐입니다. 성선, 성악은 의미없는 말장난에 불과한 성능좋은 청을 가진 놈이 정의인 세상은 쭉 이어질 것입니다. 기독교가 없어지지 않는 한.

거짓말 잘하는 직업군

   엊그제 펀드를 가입하면서 펀드매니저에게 했던 말은 그에게 충격이었나 봅니다. 내 말인 즉 합법적인 도둑놈 셋을 들자면 제일 큰 놈이 증권사이고, 다음으로 보험사, 그리고 은행이 막내라고 했습니다. 변호사는 그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그 말은 자금 운용을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길래 직접투자도 하고 있고 풍차돌리기를 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게 뭐냐고 물어서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최근에야 정기적금 이자가 정기예금 이자보다 더 높은 이유를 알았다.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아서 혼자 공부하다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눈을 꿈벅거리기는 했지만 그 이유를 설명해주면 '오바'라는 생각이 들어서 넘어가고 정기적금 효과를 내는 정기예금이 풍차돌리기다. 1년 단위로 정기예금을 들어서 만기에 재가입하든지 자동으로 연장을 하면 복리로 정기적금 효과를 볼 수 있는 거라고 이야기 한 뒤에 도둑놈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물론 믿을 수 잇는 매니저가 잇고 당신도 그 하나라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많이 놀라더라구요. 증권사 직원 면전에서 증권사가 합법적인 최고의 도둑놈이라고 했으니. 그런데 그런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이 문제이긴 합니다. 그 사람을 꽤 오래전부터 보아 왔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주위 사람이 없다는 게 한국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면전에서는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나쁜 한국 사회. 

  거짓말을 잘 하는 직업군도 있습니다. 최고가 경제학자, 다음이 심리학자, 기상청은 그래도 막내입니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인플루언서 심리학자 김경일의 말을 듣고 멍청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서 저런 허접한 거짓말로도 잘 먹고 잘 산다는 생각이 들어서 짧게 참견합니다. 김구라가 골프약속을 잡았는데 골프텔에서 잔 사람이 티업시간에 제일 늦던데 이건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약속 장소에 가까운 곳의 사람은 지금까지의 데이터 중 가장 짧게 걸린 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의 데이터에서 가장 많이 걸린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진실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한 게 딱 들어맞습니다.

  늦는 사람은 언제 어느 곳으로 약속을 정해도 항상 늦습니다. 물론 반대로 어떤 사람은 시간과 장소가 어찌 되건 항상 일정한 시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합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심성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일 뿐인 것입니다. 늦는 사람들은 거짓말까지 항상 하잖아요. 택도 없는 거짓말로 밥 먹고 사는 사람. 또 하나 이야기는.

  왜 밤이면 헤어진 옛 애인에게 전화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밤 시간은 몸이 피곤해진 시간이고 몸이 피곤하면 마음도 함께 약해져서 자제력이 떨어져 생기는 일이랍니다. 이것도 기막히게 그럴싸 하지요. 내 생각은 바쁘지 않고, 신경써야 할 일이 없고, 할 일 없이 한가해서 그러는 거라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아플 때 옛 애인에게 전화하나요?

2024년 9월 24일 화요일

아름다운 노년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159103.html

  며칠 전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글을 쓴 사람은 LG에서 인사와 교육을 책임지다 나온 가방끈이 짱짱하고 긴 이병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영피프티'였습니다. 50~60대가 젊은 사람들이 활발하게 하는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을 말한답니다. 이 사람은 마케팅이라고 하구요. 글을 다 읽고 딴지를 걸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곱씹어 보았습니다. 제일 큰 건 바로 캡쳐해 온 부분이 제일 못마땅했습니다. 

  2030들이 좋은 어른으로 꼽은 사람. 글쓴이가 자신의 머리로 합리적인 계산으로 만들어 낸 모습이라고 확신합니다. 내 주위를 보건 텔레비전을 보건 나이든 사람의 말을 먼저 구하거나 최소한 경청하려는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요. 혹시 자신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착각이거나 면전에서 보여 준 가면일 것입니다.

  난 이 영화가 아주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너무 아름답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구요. '인턴'입니다. 한 번은 전부를 보았는데 일부를 본 게 3번 더 있었습니다. 바로 전 주에도. 그런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늙으면 아름다울까 잖아요. 은퇴하고 어렵지 않은 일자리를 찾아 젊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노인. 그래서 영화에서 주어진 조건을 주워모아 보았습니다.

-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 외모가 멋있고

- 말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야 하고

-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통찰력을 가지고 본 뒤 해결책을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하고

- 동료들이 자신의 말을 존경심을 가지고 따라 주고

- 보스인 줄스는 최고의 품성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고

- 줄스의 잠깐 한눈을 판 남편은 넛지 정도의 조언에도 곧바로 제자리를 찾아 오고

.....

  그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그냥 답이 나오더라구요. 멋진 노년은 없다는 것을 은근히 말하는 영화이구나.

약수터

   맨발로 걷는 게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땅이 고른 것이 전제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바닥에 자갈이 아니더라도 굵은 모래가 있으면 발가락을 움켜쥐게 되는데 그런 자세로 걷는 것은 몸에 해로운 자세일 것 같아요. 땅바닥이 더러운 것도 문제이지만.

  약수터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아침에 가는 산자락에 있는 약수터입니다. 먹기에 꽤 많은 양의 물을 받아 가는 사람들이 꽤 됩니다. 이거 붙어 있어도 받아가는 사람들이 있네요. 물이 적을 때 저런다면 많을 때는 더 나쁘지 않을까요? 건강을 위한다고 하는 것들이 건강을 해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듯 합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 책은 유럽 뿐 아니라 미국의 여러 주 공공도서관에 비치가 금지된 책입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 사진으로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요. 이 책에서 말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누가 보아도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이고 여성의 끝없는 희생을 미화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입니다. 

  학교에, 여기를 다니는 사람 중 한 명도 그런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이 땅의 현실입니다. 나는 왜 말하지 않느냐구요? 덮어가며 살기로 애를 쓰고 있습니다. 바로 잡는 건 다수와의 반목이더라구요. 모든 게.

2024년 9월 19일 목요일

주나라 왕의 성 희姬

   성, 씨, 이름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명확한 것은 없습니다. 이름은 사림들이 모여 살면서 구분이 필요해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자 이름 명名은 갑골문의 형태가 그대로 살아 있는데 저녁 석夕+입 구口입니다. 아이들 납치가 일상이어서 저녁이 되면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들이는 것에서 생긴 한자라고 보고 있습니다.

  성과 씨는 나중에 나오겠지요? 성姓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女가 붙으면 좋은 뜻이 거의 없는데 이게 好자와 함께 좋은 뜻인 것 같습니다. 好의 여자는 엄마이고 엄마가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이니 여자가 아들을 낳아서 좋다는 뜻일 것입니다. 姓은 형성자입니다. 女는 초기 문명에서 모계중심이어서 엄마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氏는 부계로서 남자가 벼슬을 받은 '봉지' 당의 이름입니다. 지금은 '성씨'라고 구분하지 않고 쓰지만.

  그런 점에서 주나라 왕조의 성씨가 姬인 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앞의 계집녀변은 모계를 따를 것을 보여 주고 우변 臣는 '귀耳'의 상형입니다. 중국은 '여와, 복희, 신농'씨는 전설의 지도자이고 사마천이 그 뒤부터 '사기'에 기록하는데 그 시작이 황제씨입니다. 상나라를 세운 이는 '성탕'인데 그 시조는 '설'이고 황제씨의 증손자인 '제곡'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주나라는 억지로 이 족보에 끼워 넣는데 그럴싸하지도 않은 족보 끼워넣기입니다.

  이유는 '역성혁명' 때문입니다. 왕이라는 게 신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왕족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그들의 인식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반이 넘는 것 같지만. 여튼 주나라를 세운 서백이 왕족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그렇게 족보를 만들고 성씨도 만든 것입니다. 물론 그러고도 부족해 자신이 무너뜨린 나라의 왕이 나빠서(주지육림, 여자) 뒤집었다는 거짓 역사를 만들어 냈고 사마천은 역사서에 버젓이 집어 넣었구요.

  지금은 이 글자가 여성을 아름답게 부르는 것으로도 쓰이고 아내를 일컫기도 하고 왕의 여자의 벼슬이름에 들어가기(희빈)도 합니다. 이 글자가 여성 이름에 많이 들어가기도.

다양한 형태의 폭력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꽤 오랫동안은 글감을 찾느라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냥 들리고 보이는 겁니다. 현상을 보는 눈이 생긴 것입니다. 무언가 보편적이지 않은 것이 느껴지고 생각해 보면 어떤 것들이 그런 느낌을 갖게 했는지를 알게 되는 거지요.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을 진행자가 바른 시각으로 거침없이 이끌어 가서 신장식에 이어 잘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 특집으로 편성한 것 중에 영화에 이어 노래에 관한 것을 수요일에 하였습니다. 출연자가 셋인데 진행자까지 인생의 노래 다섯 곡을 추려 와서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외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진행자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임경빈 작가가 자신의 첫 번째 선택으로 1999년 나온 타락천사의 주제곡을 이야기 하면서 진행자가 1999년 자신이 사회부 기자를 할 때였는데 Y2K문제로 세상이 뒤집어 갈 듯 하더니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고 자신이 당한 두 가지 사기 중의 하나가 그것이었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 자신은 노래를 골라서 CD로 굽는 것조차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데 밀레니엄 버그의 문제가 사기였다는 것입니다. 사기라고 하려면 앞뒤 맥락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시 나는 여수교육청에 교사들 컴퓨터 연수를 시키러 다닐 실력이 되었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상부 단위에서 주는 정보로 교내 모든 컴터가 문제 없이 돌아가도록 조치하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사용하는 응용프로그램(휴대폰 용어로 앱)이 문제 없이 돌아가도록 매일 저녁까지 일을 하던 일이었습니다.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해 설명을 하자면. 컴터의 기본메모리(ROM)를 조금이라도 소모하지 않도록 날짜를 표시할 때 네 자리로 하지 않고 끝의 두 자리만 표시하도록 한 것입니다. 전자식 컴터는 2차대전 중에 나왔고 PC는 80년대에 나왔는데 만든 이들은 2000년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미리 계산을 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1999년 다음 해가 00으로 표시되면 일어날 일을요. 

  은행들이 비상이 걸렸고 관공서도 당연히 그랬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만일을 대비해서 중요한 데이터를 보조기억장치에 옮기는 것도 당연히 필요했습니다. 그런 난리를 쳐서 큰 사고를 막았는데(작은 사고들이 제법 있었음) 그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걸 곧 세상이 끝날 것처럼 사기를 쳤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입에서 욕 나오는 폭력으로 느꼈습니다.

  또 하나는 그것도 내가 좋아 하는 임경빈 작가(헬마우스)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가 두 번째로 꼽은 노래가 임재범의 '고해'였는데 그 노래 소개를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은 대한민국 남성이 없었다'고 한 것입니다. 졸지에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든 남자가 아니든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가장 폭력적인 말 중 하나가 '대한민국에서 이것 모르면(혹은 이것 아니면 등) 간첩이다'는 말입니다. 그걸로 난 참 많은 것에서 어이없는 존재가 되곤 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와 출연자에게 뒤통수를 맞았답니다.

2024년 9월 11일 수요일

상나라 마지막 왕 주왕紂王의 능력

   몇 가지 사전 해석이 필요합니다. '상나라'는 '은나라'의 본 이름으로 사마천과 그의 후예들이 상나라를 낮추어 부른 이름입니다. 주왕紂王은 주나라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紂는 다음사전에서는 말고삐라고 하지만 원 뜻은 '껑그리끈'이라는 뜻이고 수레 끄는 말의 뒤쪽에 거는 가죽끈이랍니다. 이름은 '제신帝辛'입니다.

  '사기 은본기'에 나오는 그의 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육체적인 능력 뿐 아니라 지적인 능력도 엄청 납니다. 그 능력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여 망했다고 하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 능력 중 재미있는 표현이 있어 옮깁니다. 

지족이거간 知足而距諫 지식이 간언을 듣지 않아도 되기에 충분했고(知足而居奸이라고 쓴 엉터리도 있습니다.)

언족이식비 言足而飾非 말은 잘못을 감추기에 충분했다(飾은 꾸민다는 뜻)

  사마천의 '사기'는 전에 이야기 했던 대로 진나라의 것만 참조했는데 진시황제가 자신의 치세 때 진나라의 것만 빼고 다른 나라들의 모든 역사서를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서북방에 치우쳐 중원의 사실과 역사에 가까이 하지 못했던 '진서'만 남아서 그의 역사서는 결정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죽서기년'이 발견되어 많은 사실이 '사기'의 기록과 다른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또한 갑골문의 발견으로 글자들의 시작과 어원이 새롭게 해석이 되었을 뿐 아니라 상나라의 역사들이 새롭게 조명이 됩니다. 물론 사마천이 '주왕'이라고 한 '제신'의 업적이 많이 뛰어났던 것도 드러났구요.

  일단 '주지육림'과 '여자(말희, 달기, 포사)들의 이야기도 하, 상, 주의 마지막 왕들에게 똑같이 적용한 것을 보면 상식적으로도 역성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같잖아요. 의자왕도 공민왕도 아주 잘했던 왕이었잖아요.

돼지를 일컫는 한자어

   돼지를 뜻하는 한자어는 저(猪)·시(豕)·돈(豚)·체(彘)·해(亥) 등으로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접하는 것일 수록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집'을 뜻하는 것도 궁, 전, 각, 재, 옥, 택, 사, ... 무지 많습니다. 그리고 보니 거대한 집 우, 주도 있네요. 일단 돼지를 보겠습니다.

시豕는 다 큰 돼지의 상형자입니다. 단독으로 는 잘 쓰이지 않고 주수로 쓰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가家입니다. 위층에 사람이 아래층에 돼지가 살던 가옥구조를 반영한 '회의자'입니다.

그에 비해 저猪은 새끼돼지를 말했습니다. 지금은 구분 없습니다. 이건 형성자인데 좌변은 견犬과 같은 부수 글자로 이게 붙으면 동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름은 개사슴록변입니다.

'저돌적이다'라고 할 때의 '저'이고 '제육볶음'의 '제'가 '저'가 변한 것입니다.

돈豚도 '저'와 마찬가지로 새끼 돼지를 말했습니다. 지금은 돼지의 한자어를 대표하고 있지만요. 좌변의 月은 달과는 아무 상관없고 이름은 부수로 쓰일 때 '육달월'이고 고기, 몸의 부분을 뜻할 때 씁니다.

체彘는 꼬챙이에 꿴 돼지의 상형으로 '살찐 돼지'라기 보다 '돼지 고기'를 뜻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한나라 고조의 정실이었던 여황후(여치)가 황제가 죽자 그가 아꼈던 척부인의 팔다리를 자르고 눈, 코, 귀를 없애고 독약으로 혀를 못쓰게 만들어 화장실에 두었는데 이를 '인체人彘'라고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해亥는 상형자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제사용으로 머리와 다리가 달린 돼지의 상형이라는 설이 유력하답니다. 이 글자는 간지자로 쓰이며 원래의 돼지의 뜻이 사라지고 열두 번째의 지지로만 쓰입니다.

2024년 9월 10일 화요일

아는 체

   장사진長蛇陣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많은 사람이 줄을 지어 길게 늘어선 모양을 이르는 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해 대부분 고대진법의 일종이라고 하는데 손자병법에 나오는 진법 중 하나입니다. '솔연'이라는 긴 뱀은 머리를 공격하면 꼬리가 돕고 꼬리를 공격하면 머리가 도와서 깨뜨릴 수 없는 진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 쓰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삼국지의 유비입니다. 관우가 오나라의 육손의 꾀에 죽자 원수를 갚는다고 대군을 이끌고 싸움을 벌입니다. 공명이 반대했음에도 아예 공명을 빼고 출전합니다. 그리고 펼친 전법이 강을 따라 길게 뱀처럼 진을 펼친 것입니다. 전해들은 공명은 막을 시간이 없었고 완전히 대군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결국 자신은 몰락(죽음)하게 만든 진법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진을 길게 펴면 두께가 얇아지니 공격에 취약해 지겠지요. 손자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사전의 뜻대로만 쓰면 문제 없겠네요.

이런 덜 떨어진...

  얼마 전부터 노란 승합차에 '어르신유치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닌 차가 있어서 참으로 모자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예능프로그램에서 같은 승합차를 보고 패널 한 사람이 '귀엽다'라고 표현을 해서 너무나 한심했습니다. 요새 노인들 주야간보호센터를 그렇게 표현하기로 한 모양입니다.

  일단 '귀엽다'라는 표현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 자신보다 윗사람에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이건 미친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아주 버릇없는 말입니다. 물론 요즘엔 텔레비전에서 그런 말을 쓰는 사람과 그걸 거르지 않고 내어 보내는 프로그램, 방송이 흔하긴 합니다.

  다음으로는 '유치원'이라는 말입니다. 유치원은 幼稚園 이며 '유치幼稚하다'의 한자와 동일합니다. 차라리 '노인학교'가 훨씬 더 나은 것이지요. 이런 무식하고 어찌 보면 노인을 폄훼하는 표현을 쓰는 무뢰배들이 있다는 말입니까. 참으로 한심합니다.

2024년 9월 7일 토요일

노동자와 기업인의 관계

   노동자와 기업의 관계가 아니라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기업의 이익이 기업의 주인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나 언론을 통해 기업의 이익이 증진이 되면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이익이 분배가 된다고 교육을 받습니다. 기업이 더 많이 벌면 그것이 노동자에게 돌아온다는 것이지요.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경영자에 대항해 보거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함께 잘 되고 한께 망하는 관계인지는 정말로 뒤통수를 맞아보지 않으면 거의 모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간단할 사실의 확인으로 꿈에서 깨길 바랍니다.

  노동자의 권익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에 잘 명시되어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목숨을 건 일 뒤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많이 개선이 되었습니다. 그것만 중심으로 살펴 봅니다. 그 중 일부입니다.

- 해고를 함부로 할 수 없게 제한을 합니다.


-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구제를 신청하는 절차입니다.


- 근로시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 근로시간을 넘어선 연장근로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 근로를 할 때 수당에 대한 규정입니다.


- 연차와 유급휴가에 대한 규정입니다.


  일부러 텍스트가 아닌 그림으로 가져온 이유는 오타나 왜곡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근로기준법을 검색하면 법전을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을 명시해 놓은 것이 근로기준법인데 위의 조항들은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아주 간결한 건데요 작은 기업일 수록 보수가 적은데 수당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도 적용받지 못하고 주당 근로시간 52시간 제한도 받지 못합니다. 일정한 날 이상 근무하면 받을 수 있는 연차나 유급휴가도 받지 못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최저임금 때도 기껏 1만원에 불과한데도 자신들 죽는다고 난리쳤던 그 작은 기업들은 바로 이렇게 노동자들의 근로시간과 건강과 급여를 제대로 주지 않고 그것을 자신들의 이익으로 만들어 온 것입니다. 심지어 중대재해법도 비켜 갑니다. 작은 기업일 수록 위험한 일들이 많은데도 그런 거죠. 기업가와 노동자가 상생하려면 기업가가 사람(좋은 사람)이어야만 가능하다는 것.

2024년 8월 19일 월요일

보수우파?

   최근 독립기념관장을 절대 그 자리에 앉혀서는 안 되는 말종을 대통령이 임명하면서 '뉴라이트'라는 용어가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써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그냥 친일파입니다. 간단합니다.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여 국권을 상실하였으니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고 일본국 국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입장입니다. 그 연장으로 나라를 갖게 된 것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이고 그 때부터 국민이 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광복절은 의미 없고 1948년 건국절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이병도의 제자들이 주장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주류 사학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형식논리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따라가면 옳은 소리처럼 들립니다. 나의 관점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침탈'이라는 용어를 썼고, 그들이 이 땅을 지배한 것은 합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주장이 아니고 사실이며 증거들이 넘칩니다. 뉴라이트라는 것들도 이 사실을 알면서 형식논리만 따지는 것이니 일본의 주장과 똑같은 주장입니다. 그러니 친일이지요.

  그 이야기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입에 올리면 리스테린으로 가글링해야 하고 그 말을 들으면 귀를 씻으면 되는 상종할 필요 없는 것이니까요.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종찬 광복회장. 어마어마한 인물입니다. 이회영의 자손입니다. 육사를 나와서 중앙정보부에 근무했는데 1980년 전두환의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을 정치의 시작으로 국회의원 4선을 지금의 구김당 전신인 민정당 의원을 했습니다. 뒤에 권력싸움에서 밀려 김대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국정원장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이번 대통령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단기를 들고 광복절 행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거죠. 현 대통령을 만든 공신이기도 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수주의자'라고 정치평론가들이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평론가들은 그러면서 보수우파 인물들을 독립기념관장, 한국학중앙위원장, 국사편찬위원장 등 세 자리 인물을 모두 보수우파, 뉴라이트 인물로 채웠다고 이야기를 해서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좌파와 우파는 기원이 어쨌냐와 상관없이 한국에서는 사회주의와 가깝냐 자본주의와 가깝냐로 구분을 합니다. 그러니까 누진세를 강화하고 부유세를 걷고 종합부동산세도 금융투자소득세도 걷자는 것이 좌파인 것이고 상속세도, 종부세도, 금투세도 없애고 기업의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이 우파인 것입니다. 간결합니다.

  보수와 진보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보수保守 주의로 쓰고 진보進步 주의로 씁니다. 영어로 할 일이 아닙니다. 검색을 해보면 알겠지만 모두가 다 자기 주장을 하고 있으며 괜히 어렵게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보수의 상징이 파란색이라고 하는데 대한민국 구김당은 새빨간 색이고 민주당이 파란색입니다. 한자공부를 하고 있으니 그 관점에서 살펴 보겠습니다. 

  보保는 사람人이 아이子를 업고 있는 모습으로 보호하다, 보육하다의 뜻입니다. 수守는 '지킨다'는 뜻이구요. 보통은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지키려고 하는 걸 보수주의라고 합니다. 사전적으로는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의 옹호와 현상 유지 또는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사고방식'입니다.

  보步는 '걸음'입니다. 그러니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보통은 현재의 질서와 가치를 깨뜨리고 다르게 나아가는 것을 진보주의라고 합니다. 사전적으로는 사회의 모순을 변화와 개혁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교육에 의해 '진보'라는 개념이 '선'인 것으로 무심결에 이해합니다.

  보수와 진보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소비에트 연방의 말기 옐친과 고르바초프는 그들 세상에서는 진보주의자인 것이고 영국의 대처수상은 진보인데 진보라고 하기에 이상하니까 '신자유주의'라고 피해 나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관점의 이야기이고 이해하기 쉽게 내 관점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보수주의자라고 항상 이야기했는데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한 사람도 진보는 없겠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런 상황이 되었을까요. 대한민국은 철학적인 교육이 없었고(물론 지금도 없고)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철학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치인이고 경제인이고 성인 그 어느 누구나 진정한 보수주의가 어떤 것인지 모르고 조금이라도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보수라는 게 부패한 사람들의 집단인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보수는 청렴과 명분이라는 귀한 가치를 보수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 스스로 보수주의자를 자청한 것입니다. 청렴이라는 것은 이익을 눈 앞에 두고 내가 아닌 전체의 이익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쉽게 이야기합니다. 명분이라는 것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분명한 근거가 있으며 그에 따라 말하고 행동을 하기 때문에 결과가 자신이 예측한 대로 나오지 않으면 그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진 사람이 진정한 보수주의자인 것입니다.

  하지만 앞에 이야기한 대로 사람들이 철학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타가 진보하고 혹은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 그가 속한 집단 전체를 부도덕한 것으로 보고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이지요. 학생운동, 노동운동, 사회운동 그 모든 곳에서 일어난 일들 모두 그렇습니다. 지금의 도교육감이나 이전 도교육감이 전교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그들이 진보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과 도지부 연수 때 함께 이야기 혹은 토론해 본 내가 본 그들은 아무 생각 없는 패거리에 붙어 있어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어이 없는 일들을 벌여 돈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있고 교사들의 고충에는 눈을 감고 있는 것입니다. 중앙정치야 말할 필요 없습니다.

2024년 8월 9일 금요일

배드민턴

   나는 이 영상을 찍기 전까지 내 자세가 예쁜 줄 알았습니다. 찍고 나서 부끄러워 한참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기록이니까 올립니다.



청솔모

   어제 아침 뒷산에서 청솔모를 만났습니다. 보통 경계심이 강한데 발을 멈추고 사진기들 들고 있어도 도망가지 않아 찍을 수 있었는데 뒤에 오던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서 도망갔어요. 나 같으면 뭘 찍고 있는지 지켜보았을 건데...



2024년 7월 25일 목요일

정의란

   세상의 내로라 하는 명사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고 얼마 전에는 마이클 샌델이 두툼한 책을 내서 세계적으로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철학이라고는 공부한 사람이 없는 한국에서도 많이 이야기 되었습니다. 여기에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서 나도 숟가락을 얹겠습니다.

  의義를 먼저 분석해 보겠습니다. 양 양(羊) + 나 아(我)로 되어 있습니다. 앞에 살짝 이야기한 대로 我자는 창 과戈 앞에 날이 셋이나 더 달린 모양이었습니다. 갑골문은 이렇습니다.  羊은 우두머리(추장)의 깃털 머리 장식입니다. 해석을 하면 종족 내부의 결속을 도모하고 배신자를 응징하는 것을 정의로움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면 종족을 보아야 하겠네요.

  종족, 같은 무리의 시작은 族입니다. 가족에서 많이 보아서 좁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 글자의 뜻은 '겨레'이고 가족만 아니라 '민족'에서도 쓰입니다. 族은 깃발 언㫃 + 화살 시矢로 되어 있습니다. 화살은 대표적인 전쟁 무기이므로 한께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같은 깃발 아래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요즘 대통령과 새로 선출된 여당 대표가 운명공동체라고들 하는데 이합집산이 잦은 깃발 아래로 뭉친 사람들이라 그 표현이 맞나 모르겠습니다. 문자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혼자로는 생존할 수 없는 시기가 된 것이었고 깃발은 생사를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의라는 것은 운명을 같이 하는 무리들의 이익을 위해서 안으로는 결속을 도모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세력과는 대항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나는 해석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나의 정의가 모두의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철학적 고민을 해보지 않은, 그냥 이기적인 사람인 것이지요.

  전쟁에서 항복해 온 항장降將은 어떻게 할까요? 과거의 전쟁을 보면 항복한 군사들은 흡수하거나 수가 많으면 따로 부대를 편성해서 함께 하는데 장수는 다릅니다. 받아들여 긴하게 쓰기도 하고 배신자는 또 배신한다고 바로 베어버리기도 합니다. 義를 사실적으로 어떻게 볼 건지의 실천적 예인 것입니다.

  또 하나. 가족은 정치적 신념을 같이 해야 할까요? 부부가 각각 구김당과 민주당 소속이면? 부모와 자식이 그렇다면? 종교는요? 유일신 모시는 기독교는 당연히 같아야 하는 것이니 그것들은 빼고 다른 종교는? 가족이 族의 가장 기본 단위이니 당연히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폭을 넓혀 볼까요? 전에 이야기했던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와 한 약속은 지키는 것이 옳을까요 악마와의 약속은 파기하는 것이 옳을까요. 석가나 예수나 자신을 나쁜 길로 유혹했던 악마들을 굴복시켰다고 했지 죽이거나 파괴하진 않았잖아요. 그건 왜 일까요? 다양성을 인정해 다른 생각을 허용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렇게 사는 건 나쁜 것이라고 해도 되나요?

  나 자신은 어떻냐구요? 다음에 차분할 때 중국에서 성했던 세 개의 종교, 혹은 철학적 흐름, 집단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물론 답을 미루진 않습니다. 노자의 길입니다.

2024년 7월 24일 수요일

무사武士

   춘추시대의 전투는 장수가 앞에 전차를 타고 나가 싸우는데 한쪽이 부상을 입으면 싸움을 그치는 방식으로 절제된 방식이었답니다. 춘추 후기부터 전투, 전쟁의 양상이 변하는데 보병이 등장하고 삼군의 전차, 기병, 보병에서 보병이 전투의 축이 되었답니다. 그 전의 싸움과 달리 처절하고 대규모의 희생자가 나오게 된 것이지요. 전투의 방식도 달라지고 무기도 달라지게 됩니다.

  원래 기존의 창은 모矛와 과戈였습니다. 익숙한 한자지요? '모순'에서의 '모'이고 '나 아我'자의 오른쪽에 있는 것이 '과'입니다.


  이런 모양입니다. 앞의 그림이 '모', 다음이 '과'인데 어디서나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는데 맨 오른쪽 모양으로 자루를 아래쪽에 매어 사용하였습니다. '모'는 단순히 찌르고 '과'는 당기면서 베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전쟁이 치열해지던 춘추시대 후반에서 전국시대로 오면서 보병 중심이 되니까 무기도 살벌해 집니다.


  '극戟'이라고 합니다. 위의 둘을 합해 놓은 것입니다. 살생을 극대화 하기 위한 것이고 그에 때라 전술이 복잡해졌다고 합니다. 손자병법이 나오게 된 것이지요. 이 시기에 맨 먼저 진晉나라에서 직업군인 제도를 시작했답니다. 당시의 신분이 '공경대부'의 귀족 혹은 관료 아래에 아직은 벼슬을 갖지 못한 '사士'  계급이 있는데 주로 이 계급에서 군인 즉 '무인武人'이 나오면서 '무사武士'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덧붙이자면 여기까지의 범위가 '국인國人'이고 그보다 성에서 더 먼 거리에 포로나 유민들이 거주하면서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여기를 '야野'라고 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을 '야인野人'으로 불렀답니다. 전쟁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결국 이들도 전쟁에 무사로 참전하게 되었구요.
  추가로 '我'자는 원래 갑골문에서 '과'의 왼쪽에 쇠스랑 모양의 삼지창이 달려 있는 것의 상형자였는데 뜻이 '나'를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데 누구도 어떻게 그렇게 변화가 되었는지 그럴싸한 설명이 없습니다.


  하나 더 추가로 '무武'자는 창(戈)과 발(止)이 합해진 글자로 창을 들고 걸어 가는 모습입니다. 인터넷 검색해 보면 止가 뜻이 '그치다'니 진정한 武는 전쟁을 그치게 한다는 둥(그 위대한 설문해자에) 똑똑한 체하는 글들이 있는데 '武'자에 보이지 않는 '삐침'획이 '戈'의 왼쪽 위에 작은 가로획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면 될 듯 합니다.

부합하다

   흔히 쓰이는 이 말의 어원을 오늘 공부했습니다.

  고대 제국에서, 통일제국 진나라 때부터 왕의 권한을 대신 주는 수단으로 부절符節 이란 걸 썼습니다. 주로 군사용으로 썼는데 '파경'의 거꾸로 버전 비슷한데 연인들이 많이 쓰는 어떤 징표를 두 쪽으로 나누고 합하면 완성된 물건이 되는 것처럼 왕권을 상징하는 것을 물건으로 만들어 두 쪽으로 나누었다가 필요할 때 합쳐 보아서 맞으면 왕의 명령으로 받아 수행하면 되는 것으로 이것이 '부합하다'의 어원이라고 합니다. 옥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대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符자의 머리에 대나무가 있습니다. 


  진나라 때 동으로 만든 호랑이상의 부절입니다. 어디에 사용하고 얼마 만큼의 힘이 있는지 등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이 반쪽을 변경을 방어하기 위해 파견한 군대의 장수에게 주고 반쪽은 황제가 가지고 있다가 변경이 침략을 당해 해당 부대로 감당할 수 없을 때 황제가 그 전쟁을 전체 통괄하는 장수를 임명하여 보낼 때 이 반쪽의 부절을 쥐어 보냅니다. 현장의 각 군대 장수들은 자신의 것과 맞추어 보아 부합하면 그의 명령을 황제의 명령으로 보아 따르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2024년 7월 23일 화요일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읽고

   읽은 지 꽤 여러 날 만에 글을 씁니다. 학생 시절에 읽고 다시 읽는 거라 옆에 역사서를 두고 사실과 비교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은 뒤에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10권까지 있는 것이었는데 9권 읽다가 끝냈습니다.

  큰 것부터 이야기 합니다. 일단 중국의 역사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역사서가 여러 가지인데 사실에 대한 서술이 다 다릅니다. 진수의 삼국지가 가장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촉나라 사람으로 위나라의 사람이 되었다가 멸망한 뒤 진나라 황제의 명을 받아 공식적으로 역사를 기록하였으니까. 하지만 지들 불리한 건 거의 빼먹다시피 사실에 대한 기술도 내용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쓴 게 꽤 여러 군데입니다. 양념 친 것도 많구요. 그런 게 어찌 정사로서 정당성을 가지겠습니까.

  아, 요거는 짚어놓고 가지요. 한반도의 역사 기록은 고려 말기에 기록이 됩니다. 그것도 정사인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현지 답사는 전혀 하지 않고 기존 기록물, 주로 중국에서 나온 것들을 기반으로 짜집기 했는데 많이 쓰인 것이 삼국지위지동이전이라는 것입니다. 역사 공부한 사람들에게 익숙한 책일 것입니다. 이게 바로 진수가 쓴 삼국지의 일부입니다. 삼국지는 위나라 역사인 위지, 촉나라 역사인 촉지, 오나라 역사인 오지로 크게 나뉩니다. 그 중 위지가 중국의 북부에 위치하고 수도가 동쪽에 있어서 요동지역과 그 동쪽에 대한 기술을 따로 하였는데 위지의 일부로 '동이전'이 있고 거기에 한반도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진나라, 그러니까 서진이 265년 성립해서 316년 망하니까 한반도의 삼국시대의 한 중심에 있는 거지요.

  나관중은 중국인의 중요한 유교적인 가치를 중심에 두고 소설을 썼다고 모두가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중국인, 중원 사람, 한족의 가치는 어떤 것인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가 최고의 영웅으로 쓴 관우, 실제로 중국에서(한국도) 신격화 할 정도로 뛰어난 무장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영웅화한 그의 죽은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니)에서 싸움을 제일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남 잘하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나라 젊은 장수의 계략에 말려 죽습니다. 죽는 과정도 장렬하지도 않게. 게다가 목은 몸과 분리되어 위나라에 갔다가 나무 몸통을 달고 본국에 귀향합니다. 그가 영웅시 된 건 한 장사치가 그의 초상화를 집에 붙여 두었는데 겁나게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퍼져 상인들마다 집에 붙여 두고 제사 지낸 것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랍니다.

  유비. 가진 것이 하나 없어서 상갓집 개처럼 영웅도 아닌 한낫 군벌들에게 빌붙어 삽니다. 군사 빌려주면 싸움 붙었다가 다 까먹고 다른 군벌에게 의지합니다. 공명을 만나기 전까지 한 번도 이겨 보지 못했습니다. 군벌들 옮겨 다니다 보니 자신이 의탁했던 은인들과도 싸우는 의리 꽝인 사람입니다. 장판교가 나오는 장면도 사실은 얼척 없습니다. 자신의 땅도 없고 성을 하나 차지했는데 조조가 대군으로 몰려 오니까 미리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도망가는 놈이 백성들에게 따라가려면 함께 따라가도 된다고 합니다. 주위에서 그러면 금방 따라잡힌다고 말리지만 자신의 뜻대로 합니다. 항상 조언을 듣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로지 법정의 말만 듣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끌고 온 백성들은 위군에 도륙을 당하고 군대도 박살이 납니다. 자신의 본처와 장자(유선)만 조자룡의 혼신으로 살려 냅니다. 왜 백성들을 달고 갔을까요. 지금도 사람이 중요 자산이지만 당시는 더욱 그랬습니다. 포로가 필요해 전쟁을 벌이던 시절이었으니까. 백성을 사랑하고 또 백성들은 믿고 따르는 지도자로 포장하지만 제정신으로 판단해 보면 이 해석이 맞습니다. 말년 보세요. 관우 복수한다고 대군을 몰아 가는데 주위에서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습니다. 공명이 반대한다고 공명도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패하고 죽음의 길로 들어선 것 아닙니까. 자기 잘난 줄 알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니 지도자는 커녕 자신의 몸도 성공시킬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장비는 글도 잘 쓰고 공부도 많이 한 문장이라네요. 딸을 황제와 결혼시키기도 하고. 관우가 글 모르는 무장에 불과하구요.

  이런 사람을 영웅으로 본 것이 바로 중국인들의 가치관입니다. 손익 따지지 않고 목수를 해야 한다는 것과 부패했어도 한나라를 계승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장사를 잘하게 해준 것이 영웅이라.

글쓰기에도 사람의 품성이.

 살짝 실없는 소리.

영어 알파벳 한 자씩인 감탄사인데 문장은 완전히 다른 뜻.

- 에이(A)의 뒤에는 부정적인 내용이 따라 옵니다. 에이, 그러면 안 돼지. 에이, 그럴 줄 알았어. 에이, 무슨 남자가 그래. 에이, 이번 시험은 망쳤다. 따위.

- 그런데 같은 모음인 아이(I)의 뒤에는 사랑이 따라 옵니다. 아이, 내가 한다고 그냥 두랬잖아. 왜 힘들게 자기가 그걸 해. 아이, 보고 싶어 눈이 바지는 줄 알았어. 아이, 그건 내가 살게. 따위.

  글의 머리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사람의 이마가 머리에 가려지지 않는 것과 같이 직설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글의 첫 문장에 보통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주장하는 근거들이 뒤에 제시가 되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자신의 주장을 압축하여 씁니다.

  그러나 비평가나 평론가의 글은 좋게 이야기하면 사람을 지치게 하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짜증나게 합니다. 글의 중반까지도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게 합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그렇게 하는 건데 이유는 어이가 없습니다. 잘난 체하기 위해서 입니다. 자신의 글이 어렵게 인식이 되도록 잘 쓰지 않는 어려운 단어를 쓰고, 한 문장을 세 개 이상의 문장의 결합으로 하고, 주장이 모호하게 합니다. 그게 이해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결과물에 대해 지적질을 하는 직업이니까 그보다 더 똑똑해야 하는 거잖아요. 절박함과 조급함이 있는 거죠. 자신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아닙니다. 자신이 언제든 부정한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고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올바를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은 섣부르고 생각이 짧은 사람이냐. 그런 사람도 있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솔직하게 명료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숙고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각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치하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은 어떻게 다음에 그 사람을 다시 어떤 자리에서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말이 명료하지 않은 것이고 그들 중에서도 자신에게 자신이 있는 사람은 박지원 의원처럼 주장과 비판 대상이 거리낌 없는 것이지요.

2024년 7월 22일 월요일

내 편이 될 수 있는 사람

   누가 내 편이 될 수 있을까요? 구김당 요새 난리였습니다. 내 편인지 동지 인지로 정치인이라고 볼 수 없게 나중에 길에서 마주쳐도 고개를 돌리게 싸웠습니다. 물론 그래봤자 나쁜 놈들이니 보고 즐기면 되는 일입니다. 상호방위조약이라는 것은 그 핵심이 조약 당사자가 침략을 당하면 자동으로 그 전쟁에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무력으로. 그러니까 나와 다른 나라가 싸우게 되면 내 나라에 조약을 맺은 나라의 군대가 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간도 쓸개도 내어 줄 수 있는 나라와 맺어야 하는 조약입니다. 타국의 군대가 도와 준다고 들어 와서 그 나라를 삼켜버린 역사는 숱하게 많습니다. 지금 이야기 하려는 일본도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전쟁 때 대한제국이 도와 달라고 불렀고 그걸 계기로 결국 대한제국을 삼킨 거잖아요. 그 놈들과 한미일 3국 상호방위조약을 맺자는 놈들 당이고 그게 정신 나간 소리라고 비난하는 김병주 의원에게 막말 사과하라고 한 놈들 아닙니까. 일본군 군대를 이 땅에 들인다고 확언하는 놈들. 역사를 모르는 바보 아닐 것이니 나쁜 놈들인거죠.

  삼국지 공부하다가 칠종칠금의 맹획 때문에 베트남 역사 공부하고 있는데 19세기 말에 왕조들 간의 싸움이 있었고 힘에서 밀린 왕조가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하여 프랑스의 군대가 베트남에 들어 온 것이 결국 프랑스의 백 년 넘은 식민지배로 이어졌답니다. 그걸 끝내기 위해 많은 피를 흘렸고 걸출한 지도자 호치민(전에 공부할 땐 호지명)이 등장해서 디엔비엔푸 전투를 끝으로 프랑스를 몰아낸 판인데 제네바 협정에서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소련은 나토를 자극하지 않으려 프랑스와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중국은 자신의 남쪽에서 너무 세력이 세면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베트남의 남북으로의 양분에 합의했답니다.

  베트남 역사 두 권을 보았으니 개인의 의견을 아닐 건데 이 독립 전쟁에서 우군을 찾는 기준으로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나옵니다. 나라를 빼앗겼고 무력으로 싸우려면 무기와 싸움 기술의 전수가 필요하고 이것 못지 않게 자신들의 정당성과 프랑스의 부당성을 주장해서 국제적인 지지를 얻는 정치적인 목적까지 얻기 위해 같은 편이 되어 줄 나라를 찾는 기준이 그것이었답니다. 그래서 처음 손을 내민 미국은 짧은 기간 도움을 준 뒤 제네바 협정의 기본 내용을 제시했고, 다음으로 손을 내민 중국은 디엔비엔푸 전투까지만 지원을 해 준 뒤 협정에서 뒤통수 때렸고, 내내 국제적으로 사회주의라는 형제애로 뒷배가 되어 주었던 소련도 협정에서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악당이 되었습니다.

  이야기 한 적 있습니다. '적의 친구는 분명한 적'이지만 '적의 적이 친구'가 될 수 없는 법이라고.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그 조건이라고 친구가 되는 건 아니라고. 그러면 생활에서의 친구는 어떤 사람일까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도가 밖에서 나를 지 친구라고 팔아먹고 다닐 때 대면하고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대학교 동창이지만 친구는 아니라고. 당연히 만나지 않고 있지요. 며칠 전 도서관에서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고개 들어 보니 ㅈㅅ이 입니다. '응, 너냐?'로 인사는 끝났습니다. 30년 전쯤 ㅇㄱ이랑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ㅇㄱ이가 ㅈㅅ이가 보자는데 함께 해도 되냐고 물어 그러자고 했습니다. 다 같은 동창이니까. 그런데 밥을 빨리도 먹더니 ㅈㅅ이가 ㅇㄱ이 보고 2차 가잡니다. 너는 오지 말고. 가고 싶어 아쉬운 자리 아니니 그러라고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빴습니다. 어차피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아니니 많이 기분 나븐 건 아니고. 그리고 그에게는 사업적인 목적이 있는 것 알고.

  경력이 얼마 안 된 시점에 억지로 여수고로 발령 받더니 1년 만에 퇴직하고 학원을 차렸습니다. 경력이 필요했던 거지요. 학원 간판 걸고 음으로 고액 개인과외(1주 2시간 두 번 250만원). 그래서 커리어가 필요. ㅇㄱ이는 여천고 근무하니 손님 물어다 달라고. 영리한 ㅇㄱ이가 그걸 모를 리 없는데 그 술자리 따라간 건 거래가 성립되었을 것이라 추측해도 결과는 맞을 것. 그런 ㅇㄱ이와 저녁 먹은 건 지 부친상 때 자신이 없는데 자리(자신은 돈 벌려고 수능 출제)를 내내 지켜 주어서 고맙다고.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닌데 이따금 부르면 만나는 사이였는데 그 상갓집에 사람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지켰을 뿐이었고.

  집에서의 친구는 어떨까요? 그래도 괜찮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생활은 '칭찬하는 사람은 달라도 욕하는 사람들은 같다'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아주 잘 지적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가치로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칭찬하는 것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강한 감정이 실리진 않습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것에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심하게 훼손하는 사람에 대한 강한 분노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나쁜 감정에 동조해 주지 않는 사람은 내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명확한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지요. 그 사람을 왜 나쁘게 말하냐고 내 생각에 동조해주지 않는 말을 준비하고 뱉어낸 과정이 이미 그가 내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배우자이건 친구이건 항상 같은 방향을 바라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침을 뱉은 사람을 보듬어 주는 것은 나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같은 편이 될 생각이 없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적의 친구는 적입니다.

2024년 7월 18일 목요일

지식의 한계성

   지식이란 건 당연히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인쉬타인 같이 천재 과학자라고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도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잖아요.

  며칠 전 산길에서 넘어진 아내의 발목에 부목을 대고 압박붕대로 감아주던 그 남자도 그 방법이 맞다고 확신한 것이지요. 넘어진 사람은 무른 흙보다 단단한 나무를 선택해 딛었는데 물 먹은 나무가 미끄럽다는 것을 몰랐고. 지금은 고인이 된 병우는 그 날 있을 친목 배구 바로 전에 몸을 풀려고 축구를 하고 있는 태권도부 아이들과 어울렸습니다. 몸싸움이 기본인 아이들이라서 공을 몰고 가던 병우에게 심한 태클이 들어 왔고 아이가 다치는 것을 피하려고(자신이 거구였거든요) 덤블링을 했는데 몸을 제대로 말지 못하고 어깨가 몸을 떠받치며 사달이 났습니다. 다치는 것이 일상인 운동이라 코치가 자신있게 탈골이라고 맞춘다고 뽑아 비틀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보니 덕분에 쇄골이 산산조각이 나서 금만 간 처음 상태였으면 한 달 걸릴 걸 석 달 넘게 고생을 했습니다. 입원 기간이.

  자신의 지식을 완전하다고 생각하면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등산을 많이 한 사람은 젖은 산길을 갈 때 물이 흐르는 골을 타면 땅이 단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물 빠진 바다의 물 흐르는 골을 밟는다면 운이 좋으면 힘들게 기어 빠져 나올 것이고 운이 나쁘면 온 몸이 뻘에 빠져 묻힐 것입니다. 바다의 물이 흐르는 골은 아주 무르고 깊습니다.

노인

   집에 다녀 오늘 길에 버스를 기다리는데 허리가 굽은 남자 노인이 승강장에 들어왔습니다. 여수의 거의 모든 버스승강장에는 앞으로 지나갈 버스의 정보가 뜨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몇 번 버스가 현재 어디쯤 지나고 있고 승강장 몇 개 전이고 도착 예정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가 표시가 되는데 30분 이내의 것인 것으로 짐작 됩니다. 그런데 그 승강장은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그 기계가 없었습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부스였고 긴 의자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일행이면 네 사람이 않을 수 있고 아니면 세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한 크기. 잠시 후 팔십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노인이 '좀 쉬었다 가자'는 혼잣말을 하며 의자에 앉으려는데 먼저 앉아 있는 사람은 의자의 한 가운데에 쩍벌하고 있었습니다. 가장자리에 앉을 수 있긴 하는데 젊잖으신지 앉지 않고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하지만 80 후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와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남자의 태도에 변화가 없자 우산을 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그 남자 노인도 버스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쉬려고 들어 온 것이었습니다. 거기는 환승하는 버스가 여럿 있고 지나는 시간을 정확하게 아는 건(카카오맵을 쓰면 다르지만) 배차 시간이 긴 31번 뿐인데 금방 지나갔거든요. 그리고 앉아 있으면 버스들이 그냥 지나가버리니 그는 쉬러 들어 온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또 잠시 후 80번이 서더니 60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노인이 내리고 바로 이어 내리려고 멈칫거리는 5세쯤 되는 손녀로 보이는 아이를 한 팔로 번쩍 들어 내렸습니다. 아이 우산을 펴서 먼저 씌워주고 다음에 자신의 우산을 편 다음 6차선 도로를 함께 건너갔습니다.

  행복한 노후를 가질 수 있는 첫번째 조건이 '이동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 참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3명의 서로 다른 노인을 보았습니다. 않아 있던 노인은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를 내어 깜짝 놀라 보았는데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것이 가래가 목에 걸리기나 했나 봅니다.

2024년 7월 15일 월요일

식사 예절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도 질색 하셨지만 밥그릇을 들고 먹는 건 아예 '뙤놈'하는 짓이라고 나무라셨습니다. 설명이 없으셨지만 예의 바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랐습니다.

  한참 커서 알게 되었습니다. 젓가락을 스는 민족이 한, 중, 일 삼국이지만 한국만 젓가락이 다르다는 것. 중국과 일본의 것은 길고 둥급니다. 그릇을 혹은 접시를 들고 젓가락으로 긁어먹는 것이 방법이고 우리는 쌀이 그들과 달리 찰지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숫가락으로 떠먹게 된 것입니다. 물론 밥알이 날아가지 않으니 그릇을 들고 먹을 필요 없구요.

  '뙤놈'은 왜놈보다 더 변형이 된 것입니다. '대국놈'이 '대놈'이 되었다가 '뙤놈'으로 더 강하게 욕으로 바뀐 것이지요. 처음에는 절에 잇는 중들이 그릇을 들고 긁어 먹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바로 그 웬수 놈들의 식사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술이나 밥 모두 예절을 많이 따집니다. 딱 예절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 확연히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밥 먹을 때 모자 쓴 것하고 먹는 소리 내는 것입니다. 머리가 떡이 져서라는 것은 하등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해야 한다면 모자를 벗어야 하고 머리가 떡이 져서 모자를 쓰고 밥을 먹는다면 그는 자신의 헤어스타일이 배우지 못한 집의 자손이라는 것보다 크다는 말에 불과합니다. 먹방이라고 먹는 소리 내고 심지어 면을 면치기한다고 '후루룩'소리를 내며 먹는 것도 그냥 배우지 못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런 사람기리 만나고 그런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거지요.

현명함은 어떤 것일까?

  얼마 전부터 비가 와도 산에 가기로 해서 오늘도 우산을 들고 산에 갔습니다. 절반쯤 돌았는데 길에 나이 든 여자가 앉아 있는 겁니다. 머리를 빨리 돌렸는데 거기를 방금 지나온 여자도 보았기에 그냥 가려다 비오는 날이니 오지랖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어디 불편하냐'고 물었습니다. 넘어져서 일어나기 힘들답니다. 119 불러 줄꺼냐고 물으니 남편이 올라오고 있을 거랍니다. 오셔도 업고 내려가기 힘들거니 부르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불러 달랍니다.

  전화기는 자신도 있으니 스스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설명을 하고 바로 옆에 있는 국가지점번호를 불러 주겠다고 했습니다. 막상 그 기관 써보니 엉터리였습니다. 굳이 위치를 이야기해 달랍니다. 산길을 이야기해 보니 그 산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 번호는 뭐하러 만들어 놓았을까요. 내 전화 GPS잡아서 오겠답니다. 그러고 조금 있다가 남자가 헐레벌떡 올라왔습니다. 달려 올 수 있는 지형이 아니니 쌩쑈일 겁니다. 다 와서 달린 거겠지요. 이 글 읽는 사람은 이따 내 말이 맞는지 판단해 보세요.

  손에 순두부 포장한 것 모양과 크기가 같은 것을 다친 발목에 대더니 또 가져온 압박붕대로 감는 것입니다. 심하게 발목을 접질렸으니(길을 가로질러 물길을 내어 놓고 둥근 매끈한 통나무로 물길 가드를 쳤는데 그걸 밟은 것)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119 불렀으니까 그냥 기다리자고. 심하게 삔 건 뼈가 상했든지 인대가 늘어났든지 얼음찜질 말고는 기다려야 합니다. 구조대가 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없이 부목 대고 업고 가야 하지만 부목 대면서 문제가 생길 것이고 업고 내려 가면서 흔들리면서 또 심하게 움직일 것이니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듣지를 않대요. 날 흘겨 보더니 결국 다 감았습니다. 부목으로 쓴 것이 이야기 했듯이 둥근 방망이 모양이었거든요. 아프다고 해도 결국 다 감더라구요. 나는 얼마 전부터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말을 걸지 않고 있습니다. 먼저 내려간다고 인사하고 그 멍청이 구조대를 약속한 길로 내려가 맞으려다 한참 갔는데 다른 길로 온다고 해서 되돌아가 결국 만나서 길을 가르쳐 주고 내려왔습니다.

  사람이 어찌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현명한 사람이란 자신이 모르는 영역을 더 잘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입니다. 알아 먹게 설명을 했는데도... 부목을 발목 틀어진 상태로 묶어 놓으면 바로 잡을 때 힘들고 엄청 아플 건데, 딱 꼴이 운동 많이 한 것도 아니어서... 하기야 꼭 다쳐 봐야 어떻게 하는지 알간?

궁즉통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이 꽤 있습니다. 대기만성처럼. 그릇 큰 건 만들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어떻게 갖다 붙이면 억지를 슬 수 있지만 궁즉통은 다릅니다. 이걸 사람들은 '궁하면 통한다'로 써서 '아주 방법이 없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