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舊迎新 아주 흔한 말입니다. 연말이면 하는 말이잖아요. 실은 이 말의 뜻은 옛 것은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한다는 뜻이잖아요. 보통은 올해를 보내고 다음 해를 맞이한다고 쓰이지만. 보수와 진보를 가름하는 것은 모든 것에 같이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호적이란 것은 일제 잔재여서 버리고 가족을 돌보지 않은 사람에게 상속을 해주지 않는 것도 예전의 것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라는 것이 성립한 이상 어떤 이유로도 타인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바꾸어서는 안됩니다.
입장에 따라 다른 것도 있습니다. 아주 쉬운 예로 지금 논란인 금융투자소득세 줄여서 금투세. 5천만원이 넘는 금융소득에 세금을 물리자는 것인데 법이 통과되고 2년 유예 했는데 시행 해보지도 않고 폐지하겠다고 합니다. 정치권, 그러니까 여당 의원들과 정부 뿐만 아니라 거대 야당의 주요 세력의 의견도 그러자고 합니다. 도둑놈의 새끼들입니다. 금융소득이 5천만원이 되려면 원금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이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너무나도 명확한데 말입니다. 조국혁신당의 분석을 빌자면 주식투자자가 1500만명 정도이고 10%의 소득을 올린다고 가정해서 원금이 5억정도라면 15만명 쯤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여튼 과거의 가치를 지켜 가느냐 새롭게 바꾸느냐는 일관적이거나 일방적이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혼자만 자신에게 적용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옳은지 그른지를 말하게 되는 다중의 사람들에게 적용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정우성 이야기처럼. 완전히 마녀 사냥입니다. 이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종교적인 배경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부드럽게 방향을 바꾸겠습니다.
1977년 발표한 '꽃 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노래와 1972년에 발표한 '개여울'이라는 노래입니다. 뒤의 것은 김소월의 시랍니다. 노래하는 가수가 여자여서 그런 건 아니고 이 노래들이 유행하던 시절에 노래의 주인은 여성이고 기다리는 대상은 남성이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시절 이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던 사람들은 나이를 낮추어 잡아도 60대 입니다.
그 시기 뒤로 잡으면 이런 노래도 있습니다.
김현식의 1989년 노래입니다. 이 노래 가사대로 하면 지금은 스토킹처벌법에 저촉됩니다. 앞의 노래들과 15년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이 때는 그다지 남녀 사이의 관계에 큰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안에서 꿈틀거리고만 있었지요. 식당은 물론이고 버스나 기차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지요. 이런 시기를 지내온, 그러니까 이런 감정을 당연히 받아들이던 그런 사람들이 어느 순간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달라진 기준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만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사이에 말입니다. 전제하지만 난 꼰대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운동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올바른 자세라며 요청하지 않아도 자신의 운동 자세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도 꼰대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남녀 사이의 관계나 질서는 당시에 그랬던 것을 폭력적이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런 게 자연스러웠던 것인데 말도 안 되게 거의 노예처럼 살아 왔다고 과거의 그런 모습을 단죄하려 하는 것이 현재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젊은이들에게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저런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현재의 피해자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레짐, 앙시앵 레짐. 없애야 할 구체제이지만 현대법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의 이유를 꼭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데 시간과 그 시간 동안의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현재는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을 연민으로 보고 있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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