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2

진보와 보수의 교과서적이며 명확한 정리

   어제는 사마천이 사람을 보는 시각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사기열전에서 상앙으로 이름이 알려진 공손앙에 대한 걸 찾아 보았습니다. 그는 위(衛)나라 사람인데 전국시대 일곱나라 중 하나였던 위魏도 아니고 조조의 나라 위魏도 아닌 전국시대 초기의 사람으로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의 변법을 받아들이지 않아 진나라로 건너가 진효공에게 세 번의 시험을 거쳐(세 가지 버전의 왕의 치도를 제시) 법가 사람을 기반으로 한 변법을 시행하여 중국 서북방의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했던 작은 나라를 강력한 국가로 키워 훗날 진시황이 통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사람입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건 짐작할 수 있듯이 백성들이 마음놓고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빼앗을 걸 빼앗지 못한 귀족들과 고위 관료들이 효공이 죽자 역적으로 몰아 거열형으로 죽입니다. 잡으려는 걸 알고 도망가려다 성문 앞에서 통행증을 제시하지 못해 결국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잡혔다는 비아냥을 유교쟁이들에게 들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성은 희姬이고 씨가 공손公孫이며 이름은 앙鞅인데 그가 상나라의 봉지를 받아 상앙商鞅이라고도 합니다. 다음은 효공의 앞에서 변법을 시행하기 위해 다른 신하들과 주장을 하는 장면입니다. 

  먼저 법에 대한 그의 생각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사람은 법의 제재를 받으며, 현명한 사람은 법을 고치고 못난 사람은 예법에 얽매입니다.

  법가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매우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두지와 겨루는 장면입니다.

두지가 말했다. "백 가지의 이로움이 없으면 법을 바꾸지 않으며, 열 가지의 공이 없으면 그릇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옛 것을 본받으면 허물이 없고 예법을 따르면 잘못이 없습니다." 

  두지의 말이 곧 유교주의자들의 입장이며 당시에는 모든 판단과 결정의 근거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보수주의의 핵심입니다. 선례가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인 것입니다. 다음은 그에 대한 공손앙의 반론입니다.

공손앙이 말했다.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나라에 이롭다면 옛 법만을 법으로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옛 법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임금이 되었으며,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예전의 예를 바꾸지 않고도 멸망했습니다. 옛 법과 다르다고 해서 반대할 것도 아니고 예전의 법을 따른다고 해서 칭찬할 것도 못됩니다."

  한 가지의 형식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예만 추려서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탕왕과 무왕은 '옛 법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임금이 되었다'도 한 것은 신하가 임금을 해치고 은나라와 주나라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는 말이고 '예전의 예를 바꾸지 않고'라는 말은 걸왕과 주왕은 각각 예전의 법을 그대로 따랐지만 망국의 왕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옛법이 무조건 진리인 것이 아니고 바꾸는 것이 옳은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진보주의자의 생각입니다. 

무선산의 생태 - 뱀 사진이 있습니다.

   낮은 산이고 넓지도 않은데 고라니도 살지만 뱀도 삽니다. 그제 지팡이 길이 정도의 뱀을 보았는데 오늘은 섬뜩할 정도로 큰 뱀을 보았습니다. 1미터가 넘을 정도로 크지만 머리가 작고 뭉툭한 편이어서 누룩뱀인 줄 알았는데 무늬가 다릅니다.


  검색해 보니 누룩뱀은 표범처럼 손톱 모양의 무늬가 모자이크처럼 펼쳐져 있어서 아니고 일본 네줄무늬뱀은 줄무늬가 선명하게 보이는데 아니어서 살모사를 확인해 보니 딱입니다.


  바로 앞 길을 가로질러 가더니 내 발소리가 크니까 딱 엎드려 움직이지 않더라구요. 바닥을 긁었더니 그때사 움직였는데 정체를 알고 나니 소름이 돋습니다. 

2026-09-01

추억

   과거에 대한 기억은 경험상(내가 지금까지 들은 바) 모조리 왜곡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와 관련된 것을 이야기 하는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은 것은 내가 그걸 잊었다기 보다 그걸 다르게 기억했기 때문에 다른 사실이라고 생각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것은 증거를 들이밀기 전까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자신을 아름답게 기억하기 마련입니다. 인지상정이지 뭡니까.

  모처럼, 진짜로 처음으로 96.7Mhz 들어 보았는데 오늘은 '추억'에 대한 사연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잘 나가던 시절을 이야기 하는데 대부분 자신의 뛰어난 외모와 그걸 바탕으로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걸 말하더라구요. 그런 외모였는데 지금 고냥고냥 살고 있다면 그 빼어난 외모를 자산으로 직장과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머리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동시에 내포한다는 걸 모르시는 분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뜻인데요 무엇에 대한 뜻일까요? 기억이 아니고 추억입니다. 追憶인데 '추'는 '따라가다'의 뜻이고 '억'은 '생각하다'입니다. 마음심이 두 글자나 들어간 글자가 있었네요. 그러니까 추억은 좋은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고 과거의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추억이 아름다운 것만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의 친일파 뿌리를 가지지 않은 사람의 대부분은 6, 70년대의 기억이 좋은 것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있다면 각색한 것일 거라는 겁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건 배고프지 않아야 예의와 도덕도 차리고 아름다움도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2026-08-31

개념의 형성

 같은 행위에 대한 서로 다른 느낌

- 런닝은 입는 것이고 러닝은 달리는 것이다.

- 바께스는 물을 담고 버스킷에는 공을 담는다.

- 오토바이에는 짐을 싣고 바이크에는 여행가방을 싣는다.

- 목욕은 때를 벗기는 것이고 샤워는 땀을 씻는 것이다.

- 등산은 등정을 위한 것이고 산행은 평정을 위한 것이다(그래서 등산을 하면 머리는 비워지는데 근육에는 젓산이 쌓이며 산행을 하면 머리속이 정리가 되고 몸은 가벼워 진다).


사족

= 토론회에서는 상대방의 의견에 '백주 대낮'에 대상이 분명하고 치열한 다툼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연찬회에서는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더라도 입발림으로 상대를 추켜 올리는 것이 마땅하며 자신만 마이크를 가지고 있으며 상대를 거명하여 공격하는 것은 맨주먹인 상대를 칼로 공격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깡패도 하지 않는, 양아치들이 하는 짓이다.

2026-08-28

힘의 비대칭이 대화에 미치는 영향

   나는 매스컴에서 경상도 남자들의 무뚝뚝함에 대해 진실처럼 길가 널려진 개똥들처럼 이야기할 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아침 책소개의 글을 보며 그 속의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식당이나 산에서 만났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성들은 한결같이 큰소리였고 또한 쉬지 않고 재잘되는 것이었는데 왜 저 사람들은 '울 아부지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고 말을 하는지.

  정희진씨의 새 책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라는 책의 소개글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공감과 소통을 원하지만, 상대적으로 간절한 사람은 약자다. 저자는 백인이나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들 같은 기득권은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많지 않을 것”이라며 “공적인 개념으로 채택되는 말은 언제나 힘센 쪽의 언어”라고 지적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소파로 자리를 옮겨 뉴스들을 찾아 보는데 이걸 읽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나고 위에 이야기한 그 동안의 그들의 인식과 내 경험의 괴리가 어떤 데서 온 것인지 촤라락 설명이 되었습니다.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딱히 경상도 남자들만이 아니고 전라도도 그런 경우가 제법 있는데 그게 이런 것이었습니다.

  힘의 비대칭성. 자신이 집에서 우위라는 판단을 했을 때 굳이 일일이 설명하고 말을 할 때 예쁜 말을 골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위이고 너는 아래이니 네가 알아서 잘 해석하고 알아 먹어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손해인 거니 알아서 해라.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천재소독비'에서도 용비야가 내내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다가 한운석과의 힘의 관계에서 균형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구나. 그런 소설을 쓰는 사람도 이런 말과 힘의 역학관계를 알고 있었는데 나는 참으로 생각이 짧은 사람이구나!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들

   8월26일치 오승훈의 이과학 저과학. 

진행자 : 카이스트 나와서 변호사 시험도 합격한 엠비시 아나운서

강의자 :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강의 주제 : 물리학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 '사회적 원자'

  사회적 원자라는 책이 말하는 것을 소개하고 설명해 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산에서는 숫자가 나오면 집중하기 힘들어서 2부 시작하며 말하는 내용이 사회적 원자라는 주제에 어긋나는 것 같아 내려 와 청소를 하면서 다시 들어 보았습니다. 2부 앞 부분 두 가지 예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하나는 '야구공과 야구 배트의 가격 합은 11만원인데 두 가지의 가격의 차이는 10만원일 때 각각 얼마인가'에 대한 질문에 명문이라고 알려진 학교의 대학생들도 1만원과 10만원이라고 한다는 것, 또 하나는 과일가게에서 2만원어치 사고 1만원 깎아 달라고 하면 욕 먹고 거부 당하지만 집 사면서 1만원 깎아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보지만 군소리 없이 깎아 주는데 똑같은 1만원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비합리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멍청해야 했기 때문에 기독교의 세계관과 교리에 어긋나는 어떤 학문적 연구도 할 수 없어서 수학도 헛발질 하는 것들만 나왔습니다. 그래서 유행한 것이 바보수학.  이런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이 없는 주장을 저런 화려한 지적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수학으로 보자면 중학교 2학년에 나오는 연립방정식의 문제이지만 이 정도는 꿰어 맞추는 것으로도 할 수 있는 것으로 합리적인 사고와는 다른 계산 오류일 뿐입니다. 차라리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4층까지 가야 하는데 2층까지 올라갔을 때 절반을 올라갔다고 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차라리 주제에 합당한 예일 것입니다.

  두 번째의 문제는 2만원에서 차지하는 1만원의 가치와 10억원에서 차지하는 1만원의 가치가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더 비합리적이고 계산적이지도 못한 것 아닙니까. 학교에서 외부 강사 불러 수업을 할 때 사전에 강의안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교장들에게 이야기 하면 '관 둬'라고 모든 교장들이 그랬는데, 공중파 라디오라면 사전에 강의 원고를 의무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뭐 저런 사람들이 저런 위치에서 저런 걸로 밥 벌어 먹고 산다는 것 참으로 운이 넘치도록 좋은 사람들입니다.

2026-08-27

고대 국가의 구조

   고대 국가는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궁성이 중심입니다. 그 안에 황족과 고위 관리,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군대들이 있었습니다. 고위 관리를 벗어난 관리들은 성 밖에서 출퇴근 했습니다. 이들이 사는 곳, 그러니까 성을 둘러싼 성과 가까운 곳을 교외郊外라고 하였습니다. 郊의 뜻이 '성 밖'입니다. 그러니까 딱 여기에만 쓰는 글자인 것입니다. 그런 글자가 또 있습니다. 경기도의 경기京畿에 쓰이는 畿인데 이 글자의 뜻이 '경기'이며 서울을 둘러싼 고을을 말합니다.

  교외를 농촌이 둘러 싸고 있습니다. 거의 유일한 산업이었잖아요.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부역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국가적인 사업, 성, 제방을 쌓거나 길을 낼 때 동원되기도 하고 전쟁이 나면 군대에 소집이 되었습니다. 이 농촌의 밖은 삼림이었습니다. 왕의 사냥터도 있고 호랑이와 늑대도 사는. 그래서 국가와 다른 국가의 왕래는 전쟁이 아니면 교류를 하기 힘든 구조였을 것입니다.



2026-08-26

짧은 지식, 그릇

   우리는 하루 세끼 그릇에 밥을 먹는데 그 그릇의 역사는 빗살무늬토기와 청자 백자만 압니다. 조금 더 안다면 빗살무늬토기의 모양이 아래가 뾰족하면 어떻게 기능을 하냐고 묻고 답이 물가에서 생활하던 시기이니 모래에 고정시키려고 그랬을 것이다 정도입니다.

  우가우가 시절 그릇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무에서 바로 따먹거나 고기는 그냥 뜯어 먹거나 불을 사용하면서 구워서 뜯어 먹거나. 그릇은 음식이란 것을 만들 수 있게 한 도구입니다. 끓여 먹을 수도 있고 양념을 넣어 섞는 도구로도 쓰인 것입니다. 물을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 운반할 수 있어 거주를 물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까지 할 수 있게 되기도 했겠지요?

탁고 託孤

   탁託(부탁하다), 고孤(외롭다)인데 탁고는 무슨 뜻일까요. '탁'은 그대로 해석하면 되구요 孤는 조금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전에 환과고독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있는데 간단히 한 번 더 이야기할게요. '환'은 여자 없이 혼자 사는 남자이고 '과'는 반대로 혼자 사는 여자이며 '고'는 부모가 없는 사람, '독'은 자식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국가가 보살펴 주어야 하는 불쌍한 사람을 말합니다. 실제로 재해가 닥쳐 백성들의 삶이 곤궁해지면 이들을 먼저 구제하는 것이 바른 군주가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중 '고'는 '고아'인데 성인이 되었더라도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면 '고아'가 되었다고 슬퍼하던 것이 과거였습니다.

  탁고를 검색하며 유비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발 역사를 가르친다고 하는 '것'들이 삼국지연의, 그러니까 소설의 내용을 가지고 유비를 영웅이니 사람을 아끼느니 하는 거짓을 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거리에서 이야기꾼들이 바가지에 푼돈을 받기 위해 하는 이야기에서만 나와야 하는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의 탁고도 유비가 감히 지 속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는(소설에서) 제갈량에게 자신의 무능하고 일개 백성이 되기에도 부족한 아들을 맡기면서 차라리 당신이 나라를 이어 받아 주라고 이야기 하는 대목은 역겹기 짝이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그리 말을 하면 제갈량이 머리가 깨지게 부정을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자리에서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일인데 싸우는 족족 지고 남의 밑에서 일개 부장을 하다가 배신을 밥 먹듯 하고 돌아다니던 그를 한 나라의 황제로 만들어 준 은인에게 그런 뻔한 사기를 치는 자는 죽으면서도 딱 그런 짓을 하고 죽은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에 눈과 입을 씻어 버리고. 이렇게 죽으면서 자식을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탁고'라고 합니다. 그럴 때는 부탁할 신하를 지정하는데 그것을 '고명대신'이라고 합니다. 고명대신顧命大臣은 '고'는 '유언'을 말하고 '고명'은 '유언으로 명령을 받은'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고명을 하면 황후가 황제가 죽으면 태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할 것 아닙니까. 그 때도 태비는 반드시 고명대신의 뜻을 물어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걸 무너뜨린 사람이 무측천(측천무후). 결국 후주後周(공자가 이상향의 나라로 떠받들었던 그 周나라를 이어 받는다고 지은 이름)를 세우고 황제까지 한 사람.

메타인지, 자기 객관화

   자신을 들여다 보는 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며칠 전 메타인지가 전공이라고 하는 우리말이 자연스럽지 않은 박사라는 사람의 말이 '생각이나 의견'을 사실(그의 표현을 팩트)이라고 사람들은 판단을 한다며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팩트를 만드는 것이 메타인지라는 말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정확히 옮긴 건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자신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인 지식이 아니니 끊임없이 공부해서 변화하는 사실로 보충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유시민의 말이 어떻다고 온갖 독한 말들을 쏟아내는데 '오만'이나 '독선'은 내가 이미 여름 들어설 무렵 민주당의 전당대회 이야기 나오기 전부터 이 블로그를 통해서 했던 말들입니다. 조승원 기자는 '오만과 편견'이 아니라 '오만과 독선'이라며 비아냥 댔지만 최근 이삼일 새에 대통령과 그를 둘러 싼 세력들이 어떤 성격의 사람들인지 거의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그건 다음 기회 되면 말하겠습니다. 

  국무회의를 하면 공개하고 전당대회 끝나고 대표 후보였던 사람들 셋 모아 육회 쑈도 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고 듣는 것처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국무회의 공개는 자신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과시하는 자리였고 세 사람 모인 자리는 정청래에게 '네가 아무리 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도 내가 밀면 그 사람이 당선이 되니 까불고 숙이고 있어라'는 자리일 뿐이었습니다. 어제 생각이 다르다고 삿대질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했지만 지금은 자신은 가만히 있어도 대신 열심히 짖어주는 치와와 박지원이라거나 느닷없이 등잔한 기획예산처 장관이라고나 이 놈, 저 놈 삿대질만이 아니라 대신 돌을 던져 주는 쫄따구들이 많이 있으니 자신이 굳이 손에 똥묻힐 일 없습니다. 그런 개들이 없었던 시기에는 삿대질만이 아니라 자신이 자기 형제와 그의 부인에게 더 험한 말도 했던 사람 아닙니까. 자기 스스로를 돌아 보는 것은 저렇게 똑똑하다고 모두에게 인정 받는 사람도 할 수 없는 힘든 일입니다. 자신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은 주위 개들이 처리해 주고 잘한다고 추켜 세우는 사람들만 주변에 남아 어떻게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겠습니까. 똑똑하다고 해도 '전철'이 무엇인지 자신이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자신이 자신을 잘 보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이 최근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을 후회하거나 부끄러워 한 적이 있는가 확인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내게 잘못을 지적한 사람이 있는지도 보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한 행동에 그런 것이 생각나지 않으면 나는 완벽한 좋은 사람입니다. 인간이 아닌 깨달음을 얻어 부처나 신선이 된 사람입니다. 아침 운동 나서며 만난 경비 아저씨와 인사할 때 모자를 벗지 않고 한 것도 산길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이 내가 걷는 오른쪽 길로 우겨 들어 올 때 비켜 주지 않은 것도 편의점에서 진공청소기 본점에서 준 것이냐고 쓸데없이 참견한 것도 소심하게 반성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내가 한 말과 행동이 그 상황에서 적절했는지 돌아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앞에서 '학습'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것은 지식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다음의 더 좋은 언행을 위해 앞의 언행을 되새기는 것도 해당합니다.

  주변의 사람에게 잘못을 지적 당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주변이 이미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사회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상대의 잘못을 이야기해 주는 것을 '지적질'이라고 나쁜 뜻을 가진 나쁜 일이라고 자리매김을 합니다. 아끼는 가까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지적'에 기분이 나빠지면 교제에 나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잘못을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 아직 완벽해서 신선이 되지 못한 '사람'인데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그 동안 지적당하면 인정하지 않거나 기분 나빠해서 이미 주변정리가 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억지주장입니까, 인정이 되십니까? 메타인지는 능력이 아니라 엄청난 '부끄러움을 참고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라서 그걸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교과서적이며 명확한 정리

   어제는 사마천이 사람을 보는 시각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사기열전에서 상앙으로 이름이 알려진 공손앙에 대한 걸 찾아 보았습니다. 그는 위(衛)나라 사람인데 전국시대 일곱나라 중 하나였던 위魏도 아니고 조조의 나라 위魏도 아닌 전국시대 초기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