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6

포장이 부끄럽지 않을까?

   문유석 작가는 한겨레신문에서 만났습니다. 미스함무라비 만나는 게 온통 일주일 기다려지는 시기었습니다. 실제 판사도 개념있게 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더욱 존경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69년생이란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어제 유퀴즈 재방송을 보았는데 그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해서 한 것이었을 건데 자신이 한 말이 어떤 뜻을 담고 있는 지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회의인지 간담회인지 법원의 현재 위기, 시민들에게 외면을 받고 욕을 먹는 현실에 대한 해결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자신이 자신있게 나서서 해결 방법이 쉽다고 했답니다. 뭐냐고 물으니 '법이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면 된다'고 했답니다. 모임을 주재했던 원로 판사가 표정 변화없이 담담하게 '그래? 그럼 강하다는 게 무엇이고 약하다는 게 무엇인지 설명을 해주겠는가?'라고 묻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후배의 언로를 막아버리는 말 아닙니까. 바로 그런 선배들이 작금의 시민들의 불신을 자초한 것 아닙니까. 그런 뜻에서 한 말인데 거기서 새까만 후배가 강한 게 무엇이고 약한 게 무엇이고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듣기 싫다는 말일 뿐입니다.

  그 말을 꺼낸 새까만 후배가 진정으로 할 말을 하는 판사였다면 최소한 '강함에 약한', '약함에 강함'을 대표하는 두 개의 판결만 이야기해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판결 외우는 게 최고 가는 사람들이니 재판 제목만 말을 해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개념있고 똑똑한 판사였다면 이렇게 이야기 했어야 합니다.

"강한 게 무엇이고 약한 게 무엇인지 정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하는 일인 정의와 부정의를 판단하는 것은 더더구나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겠네요."라고.

오만, 정치인이 가지면 필패인 개인에게는 조금은 필요한 자존감

   개인이라면 어느 정도의 자존감은 있어야 합니다. 유퀴즈에 심리학자가 나와서 이런저런 학설을 이야기한 뒤 진행자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자 '가르치는 교수가 옳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 것은 심리학이란 게 절대진리는 아니지만 내가 하는 말이 잘못일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가르치는 것은 안될 말이라는 자신없는 자신감 넘치는 자존감을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자존감 없이 세상을 사는 것은 항상 비참함을 느끼게 하기에 올바르고(객관적 판단 필요) 적당한 크기(남들에게 비웃음 당하지 않을 만큼)의 자존감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상인은 자신이 파는 상품과 재정적 신뢰에만 자존감을 보여야지 냉장고를 팔면서 전기 지식과 인공지능 지식을 뽐내는 식의 자랑은 자존감의 표현이 아니라 그냥 잘난 체이며 구입의욕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상인과 정치인 친구는 적더라도 적이 없어야 한다는 공통점 뿐 아니라 이익이나 득표수라는 것이 자신의 생존 이유인 딱 단 하나의 중요한 목표를 지닌 것도 공통점입니다. 그런데 정치인은 상인과 아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요새 광고를 보면 표가 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뭘 광고하는지 끝까지 보아야만 알 수 있으며 그걸 왜 저렇게 표현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 아이폰과 시몬스침대. 나는 새로운 광고로 바꾸어도 5초 정도면 자연스럽게 쌍욕을 참을 수 없으며 무엇 광고인 줄 아는 것입니다. 상인은 상품을 많이 팔아야 하고 단 15초에 몇천 만원의 광고료를 지불하고 광고를 내어 보내지만 내게는 팔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뉴스 검색을 하며 징글징글하게 광고 건드리게 하는 쿠팡부터 앞의 두 기업은 나한테 욕을 먹어도 나한테 팔지 않고도 다른 타깃으로 충분히 자신들의 판매목표 달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광고를 지속적으로 내어 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인은 다릅니다.

  바닥을 긁어 단 한 표라도 가야 와야 합니다. 말하자면 정치인은 상인의 뱃속보다 더 썩어 문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곳에서도 자기 자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만은 곧바로 자멸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선거인은 일개 시민인 뿐이라는 걸 곧바로 인식하지만 피선거인은 선거 전에는 그 시민의 종인 것으로 행세해야 합니다. 서설이 긴 이유는 그 피선거인 중 최고인 대통령의 이야기로 가려고 하는 거입니다. 

  반면교사란 남의 잘못을 보고 배운다는 것인데 비슷한 말로 타산지석이 있습니다. 노대통령은 객관적(그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으로 당선되기 어려웠는데 당선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당선된 뒤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반 년도 되지 않아 함부로 날뛰고 있던 검사들 잡겠다고 검사들과의 대화를 주위 반대에도 열었다가 그냥 참패가 아니라 심한 창피를 샀습니다. 그러고도 부끄러움을 몰랐고 검찰을 그 뒤로도 버릇 고치려다 더 강력한 집단으로 만들어 준 공신이 되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고 감찰의 힘도 모른 그냥 무모함이 아닌 오만이 부른 정권, 시작부터 시작된 레임덕, 그냥 힘없고 김빠진 정권이 되었습니다.

  엊그제 그 바쁘신 유럽순방 중 이대통령의 'X'에 글이 올랐습니다. 가관입니다.

<여당과 야당 그리고 정치적책임>

여당(與黨)의 사전적 의미는 더불어 함께 하는 무리입니다. 

  아예 제목부터 시작하는 문장부터 선생님이 제자 가르치는 그것도 기본 개념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국민을 향해서건 민주당 대표를 향해서건 목에서 걸쭉한 삼십년 묶은 가래 올라오게 하는 오만입니다. 그런데 틀린 말입니다. 與는 '주다', '더불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그는 그렇게 해석을 한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이어진 '여당'에 대한 추가 해석을 보면 해석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당은 여당과 정부에 대한 감시, 견제, 공격이 중요하지만, 여당은 주어진 권력으로 책임을 지는 능력과 실적, 포용과 통합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당이란 게 그러니까 與가 뭐냐면 정권을 창출한 당이어서 정부를 도와 함께 이끌어 간다는 뜻에서 '더불어'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야당과 함께도 국민과 함께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광의로 해석하면 야당과 국민의 뜻을 함께 더불어 고려하는 게 맞지만 이 사람의 글은 사전적인 의미로 시작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 그는 대통령일지언정 정당을 그의 지도받을 대상으로 다루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공격목표로 삼았던 민주당 당원도 아닙니다.

- 그가 안고 가라는 그 야당은 그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자신 스스로만 그들이 대통령이기도 한 줄 압니다. 지금도 부정선거를 외치는 자들이 당의 권력을 여전히 쥐고 있습니다. 자신은 그 당대표와의 대화에서 뭐 한가지라도 관점 일치나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나 뭐 건진 게 어떤 거라도 있었나요?

- 포용과 개방?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모시려 했던 사람 벌써 기억에서 사라졌나 보네요? 최근 국회의원 보선에서 바로 포용하라던 당에서 겉모습만 달리하고 그 당에 있으면서 했던 패악질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은 사람 데려와서 평택을 선거를 망친 책임을 지지 않겠다구요? 조국에게 잘못이라고 하려구요? 퇘!

= 맨 앞에서 이야기한 걸 결론으로 다시 말하자면 위의 세 관점의 잘못은 소소한 것입니다. 자신이 뭐라도 된 것처럼 현상, 그것도 아주 복잡하게 돌아가는 정치적인 현상을 위에서 내려다 보고 다 알고(자신만) 다른 이들은 모르니 개념부터 가르침을 받으라는 저 오만함은 그동안 그에게 지지를 보냈던 내가 부끄러워지게 합니다. 반성하고 노사모가 노통의 몰락을 부추긴 전철을 재명이네 사람이 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명심하지 못하면 이것도 그의 몰락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2026-06-12

대출 규제

   이준석보다 더 역겨워하는 이진우 기자. 아침 방송에서 대출 규제 정책이 조변석개한다고 말을 해서 욱하는 마음이 올라와 한마디를 해야겠습니다.

  먼저 신용카드입니다. 학교 다니며 하프사진기만 만지고 좋은 사진기 보며 침을 삼켰는데 발령 받아 돈을 벌게 되자 제일 먼저 지출이란 걸 사진기 구입으로 하였습니다. 다음 해 87년 용돈 3만원이었는데 삼성 미놀타300은 37만원. 평생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었고, 평생 처음으로 36개월 할부로 그 보물을 손에 넣었습니다. 근 삼년 엄청난 행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혼하며 버렸지만. 행복은 행복이고 이게 '빚'이란 걸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고 만기 채우기 전에 위약금조의 돈을 더 물고 중도상환을 했습니다.

  아직 혼이 덜 났습니다. 연애란 걸 하게 되었는데 은근히 지출이 늘었습니다. 순천에 갔던 날 시외버스가 끊기고 지갑이 비어서 신용카드로 신용대출을 받았습니다. 여수였다면 어디든 걸어 왔을 건데. 실은 순천이어도 걸어오려 시간을 한참 계산했는데 그 날 이미 많이 걸었고 술까지 마셔서 그랬습니다. 그리고서야 신용카드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신용카드는 좋은 말로 용어 포장을 해서 흉악한 본성을 감추고 힘들 때 도움이 되는 착한 얼굴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유통시킨 자들도, 유통을 허가한 정부도 많은 제한을 두어 감시했습니다. 그걸 호남 사람들이 떠받드는 디제이가 대폭 풀어버렸습니다. 외환위기로 돈을 꾸어 준 IMF가 개방을 요구했던 것 중 하나인 금융개방. 그래도 너무 개방. 그리고 난장판 신용불량자 양산, 그리고 규제(2002~2003), 현재는 그 동안 규제했던 미성년자(이젠 12세 가능)부터 거의 제한 조건 해제. 빚을 권하는 사회.

  대출 이야기를 하려 했잖아요, 신용카드보다 더 큰 거잖아요. 사람들은 대출이 생활과 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용카드 외에 마이너스통장이 있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대출 받아서 출발을 합니다. 받을 수 있는 최대치까지 받으려고 합니다. 빚이란 게 인생을 망치는 것이라는 건 버스 안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며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만 가계부채 늘어난다고 걱정합니다. 교활한 늑대. 

  주택담보대출이 건전한 욕심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지금 집을 살 능력이 부족하면 남의 집에서 살면 됩니다. 그러면 언제 집을 사냐구요? 선택의 문제잖아요. 20년 동안 가처분 소득 이삼십만원으로 살면서 기준금리 올린다고 하면 어떻게 그 구멍 메울지 전전긍긍하며 살 것인지 임대주택에 살거나 2년 만에 이사 다니며 슬림하게 살다가(이사를 다니면 살림이 적게 되니) 아이 학교 들어갈 때 쯤 24평 얹어 들어 갈 건지.

  주택이 재산이 된다는 욕심을 버리면 꽃처럼 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친구들 만나 밥 한 번 사지 못하는 가난한(집은 있지만) 루저로 사는 건 대출이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대가입니다.

헨리족

   미쿡에서 새로 유행하는 부류에 대한 용어랍니다. HENYT족인데요, High Earner Not Rich Yet를 줄인 말로 '많이 벌지만 아직은 부자는 아닌'으로 직역이 되는데 잘난 체하는 사람들의 해석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내가 싫어하는 기업이지만 검색해서 맨 앞에 나와서), 연합인포맥스 : 직역한 대로 '고소득자지만 아직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라고 

- 한국금융연수원(한국은행 산하) :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으로 그들의 성향에 시선을 줍니다.

- CNBC : 주택을 소유하고 고급 자동차를 타며 높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 저축해 놓은 재산은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많이 버는데 매달 지출하며 저축을 하지 않는 사람들

- 아주경제 : (중국)슈퍼리치와 구분하여 '개인주의를 통해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성향을 갖는 사람들'. 그러니까 대놓고 과시하는 게 아닌, 그러면서 명품으로 끼얹는.

  그래서 이들의 말을 모아서 정리해 보면 많이 버는데 자산이 없다는 것은 일치합니다. 다만 그 원인이 기초자산(그러니까 상속 등)이 없어서 부자가 되고 싶어도 아직 되지 못하는 건지 그냥 막 쓰고 저축할 생각이 없어서 인지로 크게  나누어 집니다. 그런데 원문을 보자면 후자가 아닌 전자로 해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부자 부모를 가졌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구분하는 지점, 그런 한탄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2026-06-11

신뢰가 깨지면

   인간 세상은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이 됩니다. 기독교는 신이 있기 때문에 믿음, 소망, 사랑 중 으뜸이 사랑이라고 했지만 인간들의 세상은 단연코 믿음이 최우선입니다. 그게 없으면 인간은 집단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육이란 건 과거의 지식을 전수 받을 뿐 아니라 세상을 사는 도리와 또래 인간관계의 형성을 배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사꾼 대통령이 들어서면서부터 교육의 현장에 수요와 공급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되었고 배워야 하는 세 가지 중 지식만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굳이 학교가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고 지금은 그래서 학교를 보내는 것은 제도 때문일 뿐이니 지식은 학원에서 질 높은 것으로 채우니 학교는 오바하지 말고 온전히 잘 데리고 있다가 집으로 보내 주기만 하면 된다고 대부분의 학부모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체험학습? 가족여행으로 이미 다녀 왔으니 굳이 갈 필요도 없고 일단 간다면 학교생활기록부에 잘 써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학생에게 들었던 게 충덕으로 기억하니 15년 쯤 되었겠지요. 여행과 체험학습을 동일시 한다는 걸 듣고 놀랐습니다. 곰곰히 생각하면 그것도 지식의 관점에서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출발은 학교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생각이 이미 달라졌고 단지 지식만 중요하다면 그건 학원에서 채웠으니 학교교육은 필요 없고, 교사의 질도 학원강사의 수준보다 낮다. 제도상 어쩔 수 없으니 보낸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입시위주의 대안학교나 홈스쿨, 검정고시로 대학 준비한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안다면 어떤 반대도 무릅쓰고 입시제도 바꾸어야 합니다. 전교조 출신의 교육부장관이 되었어도 정치운동만 했지 교사로서 얼마 재직하지 않아서인지 하는 짓마다 푼수짓만 하고 있습니다. 

  9년 전인가? 개도에 있을 때 수학여행은 처음으로 해보는 싱싱한 그리고 신나는체험학습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그고 싶은 곳을 추려 체험 계획을 세운 뒤 함께 모여 수정해 가며 함께 갈 사람도 묶고 지역도 일부 묶을 건 묶어 따로 또 같이도 하는 식으로 서울 세 묶음, 강원 한 묶음으로 갔습니다. 나는 한 아이와 서울 1, 강원 2(자전거), 서울 1로. 아무리 남자 아이여도 신뢰가 없으면 될 수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게다가 춘천 갈 때는 남이섬인가 자라섬인가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춘천까지 갔다 서울로 복귀했으니 그 아이 부모가 전폭적으로 교사를 믿지 않으면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교사와 학교를 믿지 않으면 체험학습을 가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일입니다. 밖을 나가면 당연히 위험 요소가 늘어나는 것이고 학생들 나이 때는 어리다고 덜하고 철들었다고 덜하고 없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은 초등학생은 뭘 몰라서, 고등학생은 술담배와 이성을 찾아서 밤새 지켜도 사고를 냅니다. 그런데 세상과 담을 쌓고 책만 보는 판사들이 내린 똥보다 못한 판결은 이런 학교 상황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입시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모든 수련활동과 체험학습은 가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

환과고독 鰥寡孤獨

   맹자가 말한 주문왕이 궁색한 삶을 사는 부류로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했다 했던 네 부류의 사람입니다.

鰥 홀아비 환. 늙어서 아내 없이 사는 남자.

寡 적을 과, 홀어미 과. 늙어 남편 없이 사는 여자. 임금이 자신을 칭할 때 '과인'이라고 할 때도 이 글자.

孤 외로울 고. 어린데 부모가 없는 사람.

獨 홀로 독.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

  환과고독을 일반명사로 쓰고 있네요. 우리나라 말고. 주나라 문왕이 삼천육백년 전의 사람이고 맹자가 다시 이야기 했다면 그 시대에도 적용이 되었다는 것이니 이천삼백년 전도 그랬다는 것이지만 지금은 최소한 한국에서는 제일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은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복지의 혜택을 이들은 받고 있고 그걸 받지 못하는 계층들.

배우는 즐거움

   배운다는 것은 생각이 바뀌거나 새로운 것이 머릿속으로 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이 오는 걸 두려워 합니다. 자신의 과거가 부정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예전에 사람들이 나이에 따라 의존하거나 신뢰하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스개가 있었습니다.어릴 땐 서로 싸울 때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로 시작하며 덤볐고 초등학교 때는 '우리 선생님이 그랬는데'로, 중학생이 되면 '우리 아빠가 그랬는데'로 바뀌다가 고등학생이 되면 '친구 아무개가 그랬는데'가 되더니 대학생이 되면서 '내가 생각해보니'로 바뀐다고 했습니다. 결론이 나오지 않은 것 같지요? 학교 나와서 취직을 하고 몇 년이 지나면 '누가 그러던데'로 바뀐답니다. 나는 없어지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가 나보다 더 똑똑하고 잘남 사람으로 보인다는 씁쓸한 이야기.

  난 그 대학 때도 다른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을 항상 들었습니다. 저녁에 남왕이나 경원이 자취방에 모여서 한잔 하며 말다툼이 벌어지면 나는 논리나 사실에 문제가 없는 쪽의 이야기에는 수긍을 항상 하였습니다. 술 마시고 배운것도 별루고 세상도 별로 알지 못하면서 혈기만 넘치는 대학생들이 주장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라고. 싸우는 놈들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내게 '줏대가 없는 놈'이라고 양쪽 다 욕을 했습니다. 새로운 싱싱한 표적.

  이집트의 피라밋 건축을 하면서 노예노동을 시킨 게 아니라 임금을 주면서 일을 시켰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술에 취한 세계사를 읽으면서 임금만 준 게 아니라 맥주도 주었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랐습니다. 햐! 노동주, 멋있다! 그런데 그 맥주가 물 대신 준 거였다는 것에 또 놀랐습니다. 아프리카, 유럽 모두 물이 깨끗하지 못해 물을 바로 마시지 못하고 맥주를 만들어 마셨다는 것입니다. 지금과 다른 걸쭉한 무른 죽의 형태였다고 합니다. 유럽 사람들이 맥주 한 병을 종일 마시는 게 그런 수분섭취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놀랐던 일.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젊은 시절에는 꽤 의미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소설을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냥 소설일 뿐이지만. 그 소설의 시작에서 유비가 가보로 내려오는 보검을 어머니가 차를 좋아한다고 차로 바꾸는 장면이 나오는데 감동이었고 차가 그렇게 비싼 가격이었으며 중국인들은 그래도 차를 사랑한다고 감동을 했습니다. 아마 중국은 몰라도 한국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할 걸요? 거의 유일한 생산국이었으면서도 차 가격이 비쌌다는 것과 중국인들의 생활에 항상 차가 있었다는 것에.

  그런데 어제 책을 읽다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이 항상 차를 마신 것도 그들의 물이 깨끗하지 않아서겠구나. 그들의 주된 세력지가 북쪽인데 황하가 그들의 생활을 주도하는 강이니 물이 어디에서나 깨끗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중국과 한반도 사이의 바다 이름이 우리는 '서해'지만 그들은 '황해'잖아. 항상 황하의 탁한 황톳물이 흘러들어 물이 들었으니 누런 바다, 황해. 그러니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차를 물 대신 항상 끓여 먹었다. 와, 이거다! 내 주장이지만 근사하다. 짜릿했습니다.

  * 곁가지일 수 있지만 차를 항상 그렇게 마신다는 게 건강에 해로울 건데 항상 마신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차는 서양인들 관점에서는 카페인이 문제이겠지만 우리는 차를 아주 찬 음식으로 분류합니다. 발효를 시키면 살짝 따뜻한 쪽으로 바뀌는. 그래서 위와 장이 찬 사람들은 녹차를 조금만 마셔도 바로 장과 손발이 반응을 합니다. 그걸 계속 마신다는 건 엄청난 열성 체질이 아니면 정신도 바르지 않고 설사가 계속 나오는 상태일 것입니다.

2026-06-08

기대어 의지하기

 나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동물에 대한 생각이 참으로 모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자유를 구속하고 둘째는 놀아주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으며 셋째는 자신의 감정, 주로 좋지 않은 감정받이로 써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배신해도 이 놈은 배신하지 않는다면서. 그리고 식구로 받아들여 자식이니 동생이니 가식까지.

  물론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지만 자유의지면에서만 그렇지 동물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튼 왜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기대야 할까요. 요즘엔 더 심란합니다.

  AI. 사람들이 그것의 위험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것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든 그것에 종속이 됩니다. 일을 시키는 게 그나마 제일 위험이 덜하는데 그것도 폐가 당연히 있습니다. 자료 정리작업을 시키게 되면 당연히 나의 엑셀 사용능력은 후퇴하게 되는 것이니. 그런데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아주 더 나아가 상담까지 친구처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 참으로 무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새 내가 보는 관점에서 전혀 필요하지 않은 기능들을 자동차에 넣어 비싸게 파는데 그 중 폰에 앱을 깔아 폰으로 자동차를 제어하는 기능이 아주 보편화 되었습니다. 이것은 앞의 것보다는 덜하지만 나의 이동 경로와 차에서 나눈 말까지 전부 서버에 전달되고 저장이 될 것입니다. 그게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지한 것입니다.

  AI는 특징이 사용자가 원하는 답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전문가들이 말하고 실제 사용하는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걸 컨트럴하는지 그것이 자신을 컨트럴하는지 사용하는 사람들은 고민해보지 않습니다. 사육사는 돌고래를 훈련시켜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게 하고 있다고 믿겠지만 돌고래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것입니다. 기분 내키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그러면 사육사가 자신의 기분을 살펴 주니까. 더 큰 문제는 이놈이 자신의 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어 보이지 않았던 숨겨야 할 내면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정보를 다른 사람이 접촉하여 보게 되어도 문제이지만 요새 엄청나게 진화하고 있는 이 괴물을 보면 이 놈이 만약 이 사람을 조종하게 된다면. 가능하지 않다구요? 이런!!!

합리적인 판단과 의지

   인간이기 때문에 하게 되는 푼수짓은 꽤 많습니다. 

  윗집에 좀비들이 사는지 새벽 한시 반에도, 세시 반에도, 다섯시 반에도 돌아다니고 소리를 냅니다. 경험상 아파트가 십년이 넘으면 밤에는 키 높이에서 볼펜 떨어뜨린 소리도 아래층에서 들립니다. 한두 번 나고 말면 잠을 계속 잘 수 있지만 여러 번 소리가 나면 깰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다시 잠이 들지 않고 시간이 걸리면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곱 시간 정도만 자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방해 요소만 없으면 열 시간도 맛있게 잘 수 있는데 도시라는 공간이 그럴 수 없지요. 일곱 시간에서 모자라면 몸을 편하게 할 때 졸립니다. 소파에 누워 책을 보아도 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집에서야 졸리면 자면 되지만 도서관에서 졸면 꼴불견이 됩니다. 아예 엎어져 자는 건 한심해 보이지만 졸려서 꾸벅거리는 것도 보기 좋은 건 아닙니다. 게다가 침까지 흘린다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를 했을 때는 잠을 줄여야 했습니다. 촌놈이 광주로 올라가 인문계(지금은 일반계라 하더군요) 고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수학과 영어실력이었습니다. 다른 건 단순히 외우는 것이라서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수학은 단계적이라서 충분한 중학교 기초가 필요했고 영어는 외우는 것이지만 알고 있는 단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단어 외우기는 이동하는 시간에 외우면 되는 것이어서 추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수학은 연습장에 풀어야 하니 책상에 앉아서 해야 했습니다.

  중학교 과정을 복습하면서 고등학교 과정도 함께 공부해야 했던 1학년 1학기의 시기는 잠을 극단적으로 줄여야 했습니다. 세시 반까지 하고 다섯시 반에 일어났습니다. 부족한 건 학교 쉬는 시간의 쪽잠. 항상 잠이 부족했고 정말로 잠을 참기 힘들어 했던 시간은 밤 열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칼로 찔러가며 참아보기도 했지만 타격이 커서 계속할 수 없고 찬물 세수는 효과가 없고 재미있는 만화는 계속 보게 되니 안되고 결국 시간 정해 나가서 산책하기가 제일 좋았습니다.

  요새 이따금 잠이 부족해서 도서관에서 졸았는데 어제는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졸리면 나가서 움직이며 깨고 들어 오면 될 건데 왜 몸을 일으키지 않는가라는 의문. 졸리니 몸을 움직이기 싫고 그러면 졸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걸 어제서야 지각했다는 겁니다. 항상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많이도 부끄러운 순간이었습니다.

2026-06-05

마삭줄꽃과 광나무꽃

 

마삭줄

광나무

  별 거 아닌 걸 무슨 지적재산인 것처럼 공유하지 않는 게 한심해서 내가 찍어 올리기로 했습니다.

포장이 부끄럽지 않을까?

   문유석 작가는 한겨레신문에서 만났습니다. 미스함무라비 만나는 게 온통 일주일 기다려지는 시기었습니다. 실제 판사도 개념있게 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더욱 존경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69년생이란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어제 유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