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6

짧은 지식, 그릇

   우리는 하루 세끼 그릇에 밥을 먹는데 그 그릇의 역사는 빗살무늬토기와 청자 백자만 압니다. 조금 더 안다면 빗살무늬토기의 모양이 아래가 뾰족하면 어떻게 기능을 하냐고 묻고 답이 물가에서 생활하던 시기이니 모래에 고정시키려고 그랬을 것이다 정도입니다.

  우가우가 시절 그릇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무에서 바로 따먹거나 고기는 그냥 뜯어 먹거나 불을 사용하면서 구워서 뜯어 먹거나. 그릇은 음식이란 것을 만들 수 있게 한 도구입니다. 끓여 먹을 수도 있고 양념을 넣어 섞는 도구로도 쓰인 것입니다. 물을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 운반할 수 있어 거주를 물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까지 할 수 있게 되기도 했겠지요?

탁고 託孤

   탁託(부탁하다), 고孤(외롭다)인데 탁고는 무슨 뜻일까요. '탁'은 그대로 해석하면 되구요 孤는 조금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전에 환과고독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있는데 간단히 한 번 더 이야기할게요. '환'은 여자 없이 혼자 사는 남자이고 '과'는 반대로 혼자 사는 여자이며 '고'는 부모가 없는 사람, '독'은 자식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국가가 보살펴 주어야 하는 불쌍한 사람을 말합니다. 실제로 재해가 닥쳐 백성들의 삶이 곤궁해지면 이들을 먼저 구제하는 것이 바른 군주가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중 '고'는 '고아'인데 성인이 되었더라도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면 '고아'가 되었다고 슬퍼하던 것이 과거였습니다.

  탁고를 검색하며 유비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발 역사를 가르친다고 하는 '것'들이 삼국지연의, 그러니까 소설의 내용을 가지고 유비를 영웅이니 사람을 아끼느니 하는 거짓을 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거리에서 이야기꾼들이 바가지에 푼돈을 받기 위해 하는 이야기에서만 나와야 하는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의 탁고도 유비가 감히 지 속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는(소설에서) 제갈량에게 자신의 무능하고 일개 백성이 되기에도 부족한 아들을 맡기면서 차라리 당신이 나라를 이어 받아 주라고 이야기 하는 대목은 역겹기 짝이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그리 말을 하면 제갈량이 머리가 깨지게 부정을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자리에서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일인데 싸우는 족족 지고 남의 밑에서 일개 부장을 하다가 배신을 밥 먹듯 하고 돌아다니던 그를 한 나라의 황제로 만들어 준 은인에게 그런 뻔한 사기를 치는 자는 죽으면서도 딱 그런 짓을 하고 죽은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에 눈과 입을 씻어 버리고. 이렇게 죽으면서 자식을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탁고'라고 합니다. 그럴 때는 부탁할 신하를 지정하는데 그것을 '고명대신'이라고 합니다. 고명대신顧命大臣은 '고'는 '유언'을 말하고 '고명'은 '유언으로 명령을 받은'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고명을 하면 황후가 황제가 죽으면 태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할 것 아닙니까. 그 때도 태비는 반드시 고명대신의 뜻을 물어 그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걸 무너뜨린 사람이 무측천(측천무후). 결국 후주後周(공자가 이상향의 나라로 떠받들었던 그 周나라를 이어 받는다고 지은 이름)를 세우고 황제까지 한 사람.

메타인지, 자기 객관화

   자신을 들여다 보는 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며칠 전 메타인지가 전공이라고 하는 우리말이 자연스럽지 않은 박사라는 사람의 말이 '생각이나 의견'을 사실(그의 표현을 팩트)이라고 사람들은 판단을 한다며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팩트를 만드는 것이 메타인지라는 말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정확히 옮긴 건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자신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인 지식이 아니니 끊임없이 공부해서 변화하는 사실로 보충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유시민의 말이 어떻다고 온갖 독한 말들을 쏟아내는데 '오만'이나 '독선'은 내가 이미 여름 들어설 무렵 민주당의 전당대회 이야기 나오기 전부터 이 블로그를 통해서 했던 말들입니다. 조승원 기자는 '오만과 편견'이 아니라 '오만과 독선'이라며 비아냥 댔지만 최근 이삼일 새에 대통령과 그를 둘러 싼 세력들이 어떤 성격의 사람들인지 거의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그건 다음 기회 되면 말하겠습니다. 

  국무회의를 하면 공개하고 전당대회 끝나고 대표 후보였던 사람들 셋 모아 육회 쑈도 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고 듣는 것처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국무회의 공개는 자신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과시하는 자리였고 세 사람 모인 자리는 정청래에게 '네가 아무리 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도 내가 밀면 그 사람이 당선이 되니 까불고 숙이고 있어라'는 자리일 뿐이었습니다. 어제 생각이 다르다고 삿대질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했지만 지금은 자신은 가만히 있어도 대신 열심히 짖어주는 치와와 박지원이라거나 느닷없이 등잔한 기획예산처 장관이라고나 이 놈, 저 놈 삿대질만이 아니라 대신 돌을 던져 주는 쫄따구들이 많이 있으니 자신이 굳이 손에 똥묻힐 일 없습니다. 그런 개들이 없었던 시기에는 삿대질만이 아니라 자신이 자기 형제와 그의 부인에게 더 험한 말도 했던 사람 아닙니까. 자기 스스로를 돌아 보는 것은 저렇게 똑똑하다고 모두에게 인정 받는 사람도 할 수 없는 힘든 일입니다. 자신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은 주위 개들이 처리해 주고 잘한다고 추켜 세우는 사람들만 주변에 남아 어떻게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겠습니까. 똑똑하다고 해도 '전철'이 무엇인지 자신이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자신이 자신을 잘 보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이 최근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을 후회하거나 부끄러워 한 적이 있는가 확인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내게 잘못을 지적한 사람이 있는지도 보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한 행동에 그런 것이 생각나지 않으면 나는 완벽한 좋은 사람입니다. 인간이 아닌 깨달음을 얻어 부처나 신선이 된 사람입니다. 아침 운동 나서며 만난 경비 아저씨와 인사할 때 모자를 벗지 않고 한 것도 산길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이 내가 걷는 오른쪽 길로 우겨 들어 올 때 비켜 주지 않은 것도 편의점에서 진공청소기 본점에서 준 것이냐고 쓸데없이 참견한 것도 소심하게 반성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내가 한 말과 행동이 그 상황에서 적절했는지 돌아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앞에서 '학습'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것은 지식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다음의 더 좋은 언행을 위해 앞의 언행을 되새기는 것도 해당합니다.

  주변의 사람에게 잘못을 지적 당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주변이 이미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사회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상대의 잘못을 이야기해 주는 것을 '지적질'이라고 나쁜 뜻을 가진 나쁜 일이라고 자리매김을 합니다. 아끼는 가까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지적'에 기분이 나빠지면 교제에 나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잘못을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 아직 완벽해서 신선이 되지 못한 '사람'인데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그 동안 지적당하면 인정하지 않거나 기분 나빠해서 이미 주변정리가 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억지주장입니까, 인정이 되십니까? 메타인지는 능력이 아니라 엄청난 '부끄러움을 참고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라서 그걸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2026-08-24

무고

   보통 흔히 쓰는 '무고'는 없는 죄를 일부러 만들어 다른 사람을 형사고발하는 것을 말하는 것(誣告)인데 여기서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고 무고巫蠱를 이야기 하려 합니다. 誣의 뜻은 '속이다', '거짓'이고 巫은 뜻이 '무당'입니다. 蠱는 벌레인데 벌레는 원래 虫이었다가 뜻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세 개가 뭉쳐진 蟲으로 쓰게 되었는데 이 글자의 아래에 그릇명皿이 붙은 것은 '벌레'뿐 아니라 '미혹하다'의 뜻도 가지고 있어 '고혹적이다'에서 쓰인다고 전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무고는 장희빈이 인현왕후에게 썼다는 것처럼 해코지하려는 사람이 사용한 천으로 만든 헝겊이나 짚으로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찔러 저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게 실제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당시에는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 것들은 '미망', 어리석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딱 기도가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단지 당하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많이 나쁘고 섬뜩하겠지만 그걸 모른 상태라면 아무 일 없이 지날 일일 것입니다.

  그건 마치 빈 총 맞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군에서 빈 총 맞으면 삼 년간 재수 없다고 장난으로 총을 들이대는 것은 철저한 금기사항이었고 그걸 어기면 큰 싸움이 나곤 했습니다. 들이대는 이는 미친놈 취급을 받아서 누구에게도 동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총의 위력을 알기에 게다가 사격 훈련 뒤에 간혹 약실에 탄알이 남아 있다가 사고가 나는 일이 있었기에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장난이었고 그래서 '삼년간 재수없다'는 미신을 만들었지 그걸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너무 섬뜩하니 싸운 것이지요. 하지만 개화되지 않은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은 '무고'도 '기도'도 실존한다고 믿는 것이지요.

2026-08-20

시종일관, 초지일관

   시간이 흘러도,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해 정신적인 지도자라고 떠받들어지는 사람들이 이야기 합니다. 가치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거나 악하다거나 어느 쪽을 주장하는 편이건 그건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한 뜻으로 모아 이끄는 단체는 어떨까요? 다음은 625의 노래입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지만 전에는 장엄하고 울분에 찬 분위기로 불렀습니다. 국민학생들도.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당시의 북한 공산주의자에 대한 태도는 단호라기보다는 악마에 대한 것보다 더한 혐오, 증오였습니다. 막걸리보안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사건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 중 하나. 재개발 철거반원에게 저항하던 사람이 한 말. 너흰 김일성보다 더 나쁜 놈들이야. 비록 무죄가 나왔지만 대법원까지 갔습니다. 이런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통일부 장관도 북한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대통령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주적이 북한이고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구요. 이 글은 노동운동의 방향에 국한시켜 보겠습니다.

  노동조합은 불온시하였습니다. 노동운동=좌파=빨갱이의 단순한 삼단논법으로 퇴치해야 할 나쁜 세력이었던 것이 박정희가 죽고 언론이 풀리면서 사람들이 자신이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조합 운동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행동으로 뭉치기 시작하면서 노동조합을 하나로 뭉치는 전국적인 조직이 만들어 졌는데 전노협입니다. 노선은 전노협진군가에서 간결히 볼 수 있습니다.


    목표는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노동해방이고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하는 대상은 1절에서는 자본가이고 2절에서는 조국을 갈라놓은 외세입니다. 방향이 간결한만큼 타협이 없었고 싸움이 치열했으며 대기업노조는 빠졌습니다. 설립 오년 만에 큰 위기에 빠졌고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민주노총입니다. 여기에는 대기업노조가 들어 왔습니다. 저것들은 내내 정권의 개인 한국노총 소속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노선이 선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민주노총가를 보겠습니다.


  노동해방과 함께 자유와 평등이 들어왔습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면 당연히 갖게 되는 두 가지의 개념이 동일한 등급의 가치로 들어왔습니다. 그 두 가지는 민주주의의 가치입니다. 말하자면 피티, 프롤레타리아독재가 물러났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통일이 등장합니다. 민족민주주의 계열, NL이 주도권을 잡았음도 보여 줍니다. 민주노총의 가장 큰 변화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입니다. 이것이 만들어 냈던 것이 민주노동당이었습니다. 정당득표율이 13%를, 국회의원 5명을 갖기도 했습니다. NL이 들어왔고 먹을 판이 생긴 것, 그것이 노동운동의 방향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 노동당 득표율은 0.09%, 대략 2만6천표 쯤. 아, 엔엘들은 진보당에 가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아야 조직을 번성시킬 수 있을까요? 최근 민주당에서 청년들 끌어들이기 위해 최고위원 등에서 당연직을 우선으로 줘야 한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청년들을 끌어 올까요? 지금 젊은 층들은 오로지 자기 개인의 이익, 재산증식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선공후사 정도가 아니라 멸사봉공까지 세뇌당해서 당연시했던 세대와 완전히 다릅니다. 조계종도 새로 들어 오는 후대가 없어 사라질 걱정은 하고 있는데 그런 대책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민주당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가진자들의 당이 이미 되었고 그렇다면 조국혁신당이 방향을 선명하게 하고 노동당은 거취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계모임이나 동호회처럼 뭉쳐 다니다가 선거 때면 이름을 올려 나 같은 분노에 찬 몇몇의 표나 얻어가지 말고 '당'을 하겠다면 정치를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며 청년들의 극우화에 맞서는 정책과 적극성을 가져야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초지일관 굳은 원칙을 수호하는 것도 가야 하는 길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2026-08-18

노자의 말씀 하나 더

 신언불미 미언불신(信言不美 美言不信)

선자불변 변자불선(善者不辯 辯者不善)

지자불박 박자부지(知者不博 博者不知)

  믿음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잘 꾸민 말은 믿을 수 없다. 이 말은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음의 두 문장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의 말씀은 善과 辯의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善은 뜻이 '착하다'로 보통 쓰이지만 원래는 '잘하다', 그러니까 순리대로 결과가 잘 나온 것을 뜻합니다. 손자병법의 '백전백승 비선지선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 百戰百勝 非善之善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이 최선인 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처럼 善은 '제일 좋은 결과' '최선'을 뜻합니다. 그래서 '선자'는 '올바른 사람', '우러름을 받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게 맞습니다. 辯은 뜻이 '말 잘하다'인데 이게 辡(송사할 변)+言(말씀 언)으로 되어 있어 다툼에 있어 말을 잘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의 문장은 

  좋은 사람은 다투지 아니하고 말싸움에서 이긴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문장에서는 博의 뜻만 제대로 알면 됩니다. '넓다'의 뜻을 가지고 있어 박사, 박물관 등에 쓰여서 문장 해석에 혼란을 줄 수 있지만 이런 뜻입니다.

  정말로 안다는 것은 넓게 아는 것이 아니며 두루 넓게 아는 사람은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학문의 겉핥기를 경계한 말입니다.

사진의 심도

   발령을 받고 규모있는 지출을 처음으로 한 것이 사진기였습니다. 삼성미놀타300. 그 때는 철없을 때여서 조선일보도 읽고 삼성 제품도 샀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거저 얻었던 고물 50cc 스쿠터 핸디50을 타고 시간만 나면 돌아다니며 찍었습니다. 1단계는 꽃과 경치. 2단계는 인물인데 기초단계까지 했을 때 운동이란 것에 빠지게 되어 그만 두었습니다.

  사진찍기의 가장 기본이 심도인데 필카에서는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조절해서 찍는데 폰으로 찍는 건 잘 찍으면 수월하게 찍을 수 있습니다.




말, 그것의 목적

   말이건 글이건 그것의 목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목적을 달성해야 그 말이 의미가 있어지는 것이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은 그 빈도가 높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자주 입습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전자는 드물고 후자가 대부분입니다. 말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을 죽이고 표현하기 전에 말할 내용을 떠올리며 말의 목적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광고는 더욱 많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저건 뭘 팔려는 거지?'라고 끝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던 광고가 '아이뻐' 뿐이었는데 최근에는 '갤럭시'도 동참을 했더군요. 이 기업도 나를 구매할 수 있는 대상에서 제외했구나하고 생각하니 감정이 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도 있습니다.



  저 차는 초보운전이니 이해해 달라는 것이 아니고 욕하고 덤비는 것이며 부동산 광고는 주인의 두뇌 상태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차주인은 깡패라고 생각되고 부동산이 문제인데. 위 두 줄은 총소리에 비명을 지르는 것이니 총에 맞은 것입니다. '땅'은 총소리와 부동산 두 의미를 의도한 것이겠지만 저 중개사에게 나는 의뢰를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2026-08-10

예술에 대하여

   요새 영화 '호프'에 대해 말들이 많더니 이젠 영화평론가 이동진에게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호오의 의견이 엇갈리는 와중에 그가 평점 4점으로 호평을 한 것이 그의 평소의 평론과 다른 평이라는 점으로 영화를 본 사람들의 비판이 쏟아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화평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술 작품에는 모두 다 평론이 따릅니다. 여기의 영화평론, 미술평론, 그리고 문학평론. 음악평론도 있는 것 같습니다. 평론이 왜 붙는 걸까요? 평론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요? 말은 평론이지만 실은 그 중심이 그 작품에 대한 설명입니다.

  영화평론. 나는 이걸 완전히 무시합니다. 더스틴호프만의 '졸업(The Graduate)'부터 였습니다. 성장기라고 극찬을 받았고 주연 배우가 이것을 통해 크기 시작한 것이기도 했구요. 왜 좋은 영화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세 번쯤은 본 것 같습니다. 몰라요, 육감적인 몸을 보기 위해서 보았을지도. 내가 본 영화는 분명 고등학생이 친구(동급생)의 엄마와 성적으로 놀아나는, 그러니까 단순히 성적으로 놀아나는, 게다가 책임지지도 않고 버리며(감히 싱싱한 고등학생을 가지고 논 유부녀는 더럽다는 관점으로) 지 또래의 짝을 데리고 떠나버리는 삼류 영화일 뿐이었기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라붐'도 두 번을 보았습니다. 그 때부터 영화평을 무시하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인 것은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였습니다. 유력지 기자라면 알 것 다 알 뿐 아니라 사기치는 기술마저 기본적으로 보유한 주인공이 시골의 순진한 유뷰녀를 꼬셔 출장 간 시간 동안 현지처 처럼 가지고 놀다가 출장 기간이 끝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리고 떠난 이야기. 그런데 남은 여자는 그걸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으로 간직한다는 영화. 이런 건 명작이라고 하는 거의 모든 영화에 다 해당합니다. 우리나라도 대표적으로 '복수 3부작'으로 꼽는 그 세 영화를 선두에 세울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극기 휘날리며'가 반공영화가 아니라는 그런 방향의 평론, '친구'가 명작의 반열에 들어간다는 것까지 영화 평론은 내게는 좋은 평을 받고 많은 사람이 몰리는 영화는 쓰레기라는 옳은 판단이 서게 되었습니다. 아, 정점은 찍은 건 건축학개론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열이 훅 끼쳐 오르네요.

  문학. 디어헌터를 읽고 영화를 본 뒤 한 번 더 읽었습니다. 그저 반공영화일 뿐인데 왜 명작이라고 하지? 그게 아마 시작이었던 같습니다. 문학평론을 읽지 않아야 하겠다고 생각한 결정타는 노인과 바다였습니다. 뭘 말한다고? 거기에 어린왕자를 함께 끼워 넣으면 그들, 서양인들의 사랑과 삶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들까지 함께 엮어서 그들의 생각을 살펴 보면 그들의 철학의 깊이를 알 수 있고 우리가 학교에서 소개 받았던 서양의 근대 소설들을 더하면 그게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평론까지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 없고 근본적으로 평론이 하는 일에 대해 판단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냥 스스로 하는 것이라면 뭐라 할 일이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건 그들이 대중을 상대로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진정으로 그렇게 묘사를 한 건 이런 뜻이 있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든 사람이 그것을 본 사람이 이해할 수 없게 표현한 것을 제3자가 설명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어떻게 이해했다고 말하면 상관이 없는데 작가가 말하려고 한 것이 '이것'이라고 설명(강의)을 하는 투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만들었을 때 그것을 보는 대상이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생각을 하고 만들었을 것인데 본 사람마다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다를 것인데 그것을 평론가가 하나로 정리해 준다는 것입니다. 대중을 가르치는, 교육시키는 그런. 애초 작가가 대중이 이해하기 어렵게, 자신만의 세계 속의 관념을 표현한 추상미술처럼 만든 것이라면 그것에 빠지는 대중은 레밍스이니 뭐라 언급할 필요 없습니다. 평론하는 자들이 없으면 그런 사기꾼들이 돈을 벌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작가와 평론가들이 합작한 사기일 뿐입니다.

2026-07-30

우리말 바로 쓰기

   우리나라 사람들 말도 겁나게 유행을 탑니다. 기수와 서수를 몰라 '하나도 모른다'를 '일도 모른다'로 바보처럼 사용한 검은머리 외국인(헨리)의 말이 지금은 공중파에서 진행자들도 쓰며 뉴스에서 돈을 꾸는 게 아니고 빌린다는 표현을 대부분 씁니다. 부끄러워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걸로 보아서 국어사전 또 대폭 개정하고 아예 영어 쓰자고 할지도 모릅니다.

  요새 신경 겁나게 거스르는 말이 '의구심'입니다. 분명히 '의심'이 맞는 것 같은 데 왜 거의 쓰이지 않던 말이 또 유행하는지 못마땅해서 뜻을 찾아 보았습니다.

의심疑心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
의구-심疑懼心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확실히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懼는 뜻이 '두려워하다'입니다. 의심+두려움으로 만들어 진 것이 의구심입니다.

짧은 지식, 그릇

   우리는 하루 세끼 그릇에 밥을 먹는데 그 그릇의 역사는 빗살무늬토기와 청자 백자만 압니다. 조금 더 안다면 빗살무늬토기의 모양이 아래가 뾰족하면 어떻게 기능을 하냐고 묻고 답이 물가에서 생활하던 시기이니 모래에 고정시키려고 그랬을 것이다 정도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