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9

일출

   용케 봉화산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잡았습니다. 



초승달

   초승달 예쁘게 찍기 어려운데 그나마 괜찮게 찍혔습니다.



2026-02-08

집家의 의미

   나의 세대는 '나의 집'에 대한 교육은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처음 받은 국어책은 1쪽 '나', 2쪽 '너', 3쪽 '우리', 4쪽 '우리나라 대한민국'으로 기억합니다. 음악 시간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를 배우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잉? 배 물리 먹은 일 없고 형제들끼리 작은 것을 두고도 항상 다투고 집안의 가장은 일은 하지 않고 나쁜 분위기만 만들고...

  家는 '집안'을 말하기도 하지만 '문벌'을 말하기도 합니다. 안동 김가, 전주 이가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전문가 집단을 말하기도 합니다. 예술가, 건축가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자는 宀(집 면)+豕(돼지 시)로 되어 있는데 갑골문에서도 그대로 집 아래에 돼지가 있는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항상 그렇듯 아는 체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진짜보다 더 그럴싸한 거짓으로 설명을 합니다. 옛날에 뱀 따위를 막기 위해 집을 땅에서 띄워 짓고 아래에 돼지를 키운 것에서 비롯한다고. 아닙니다. 당시 집을 짓는 건 아주 큰 일이었기 때문에 집을 짓기 전에 집을 지을 터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희생이 필요하겠지요? 돼지를 많이 썼기 때문에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니 주장만 옳냐고 하겠지요? 동생 부부랑 산책길에 매제가 이건 무슨 나무냐고 묻길래 '애기동백이에요'라고 했더니 '그걸 어떻게 알아요?'라고 하더라구요.

  이 글자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주역에도 있습니다. 37번째 괘가 '풍화가인風火家人 ䷤'이라는 괘입니다. 위의 괘가 손괘☴인데 '바람'을 뜻하고 큰 딸입니다. 아래의 괘는 태극기에도 있는 리괘☲인데 '불'을 뜻하고 둘째 딸입니다. 바람이 아래의 불을 만나는 것이니 집안으로부터 밖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괘사

風火家人 ䷤


家人, 利女貞.


​初九. 閑有家, 悔亡.

六二. 无攸遂, 在中饋, 貞吉.

九三. 家人嗃嗃, 悔厲, 吉, 婦子嘻嘻, 終吝.

六四. 富家, 大吉.

九五. 王假有家, 勿恤, 吉.

上九. 有孚, 威如, 終吉.

  자세한 것은 여기서 필요하지 않고 개략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웹사이트 뿐 아니라 책에서도 대부분이 엉터리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네가 잘못하는 것이지!'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석열이 따라 다니고 그가 아니면 동훈이, 아니면 종배나 얼마 전 그만 둔 현정이, 심하게는 어준이 따라 다니고 삼성과 쿠팡을 사는 것입니다.

  괘사는 家人, 利女貞.입니다. 가인이란 건 이 괘를 말합니다. '이 괘는'의 뜻입니다. 利女貞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데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로운게 어떻게 해야 이롭냐면 '여자가 貞해야 이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한자 자전의 뜻대로 '올바르고 정숙해야'로 그러니까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주역은 말 그대로 주나라의 역경입니다. 당시의 글자는 지금과 다른 뜻으로 쓰인 것이 많습니다. 이 글자 貞은 지금은 여자들의 이름에 많이 쓰이는 그런 뜻이 아니고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점을 치다'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貞人이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당시의 貞人은 '점을 치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면 여자가 어떻게 해야 이롭다는 것일까요. 점을 친다는 것을 하늘의 이치에 따른다는 것으로 정조를 지킨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주체적으로 바른 길을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위, 아래의 두 괘가 다 딸이잖아요.

  효사를 모두 해석을 하면 누가 내린 해석도 여섯 개를 이어서 보면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역사를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결론입니다. 당시의 家라는 것은 생존의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가인'은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고 자신들의 생존을 지키는 집단입니다. 따라서 家의 공통된 가치와 이익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해야 하고 이견이 있으면 가차없이 쫓아 냅니다. 안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어그러짐 없이 수행해야 하고 엄격하게 내부규칙에 따라야 합니다. 3효를 보면 규율이 너무 엄해도 고통스러워하고 너무 느슨해도 마침내는 후회하게 됩니다. 전체의 맥락을 보면 좁은 한 식구나 가족보다 집안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군산 여행

   군산을 다녀 왔습니다. 나와는 관련 없지만 아버지의 고향이어서 조금의 마음은 있는 곳입니다.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이런 걸 보았습니다.


  삼일운동 만세로 재판을 받은 2심 판결문입니다. 1, 2심 유죄 선고를 받고 대법원 상고를 했는데 기각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옥구 사람 학교 교원 이두열이라는 분과 동료로 보이는 두 분에 대한 판결서인데 판결에 대한 내용은 여기에 없고 다음 쪽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상장인데 그 악명 높았던 동양척식회사에서 열심히 수탈했다고(收納이라고 표현)준 상입니다. 박상현이라는 사람이 받았습니다. 저 사람의 자손이 자료 제공을 했을까요?


  창씨개명을 한 원본 사진입니다. 創氏改名으로 일본식으로 성을 만들고 이름을 고친 것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의 본래의 성은 모르겠고 고궁古宮으로 바꾸고 그 아래에 큰 글씨는 바꾼 이름(改名) 아래의 작은 글씨는 원래의 이름(旧名 舊의 일본 한자)입니다.
  선유도를 들어가는 신시도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폐교가 최근에 된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신안에서 학교 관사에 괴한이 침입한 후 학교 관사를 모두 신식으로 개조했는데 여기도 관사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체육관 사진이 두 장 있습니다. 돈이 이렇게 썩어 나갑니다. 운동장의 쇠기둥은 배구 폴대이고 지금은 동네에서 운동기구를 설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사진, 체육관을 멀리 찍은 사진을 찍은 곳에 있는 장면.

  250년 된 이팝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앞에 엎어져 있는 세면대를 치우고 보면 두 그루의 나무 중 어느 것이 이팝나무인지 나무를 모르는 사람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이팝나무는 이삼 년 전부터 많이 심어서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겁니다. 나도 이렇게 오래 사는 이팝나무는 처음 볼 뿐 아니라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왼쪽이 느티, 오른쪽이 이팝입니다.

  ※ 바지락과 낚시 체험이 있다고 하지만 여기 여행은 글쎄 입니다. 여수에서 갔기 때문일까요?

   어렸을 땐 눈을 질리도록 보았지만 여기에 직장을 잡으며 눈구경이 어려워졌습니다. 눈 내리는 것도 일 년에 다섯 번도 볼까 하는데 쌓이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만큼 내리는 것도 아주 이따금 있는 일입니다.



마음 다스리기

  마음을 평소에 평온하게 다스리는 건 지금까지 세상을 잘 살아 온 사람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일상이 아닌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 그간 정신 수양을 얼마나 했는지가 평정의 정도와 시간을 가름합니다. 치과에서 삼십 분을 넘게 목구멍에 걸리는 침을 힘들게 삼키며 입안을 고스란히 내어 주는 것은 평정심 유지의 중단계 정도 되지 않을까요?
  사람에게 열불나는 것이 상단계일 것입니다. 상단계 중 하단계는 내게 직접 영향은 없는데 열불나는 장면을 지켜 보는 것입니다. 요새 쿠팡 보는 것 같은. 한국에서 돈을 버는데 미국기업이고, 버는 족족 미국으로 건너 가고, 직원 혹사시켜 계속 죽이고 책임은 지지 않고, 그네 나라인 강도나라 하원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이 자국 기업의 이익을 침탈한다고 지랄하고, 거기에 정말로 참지 못하겠는 건 그런 상황에서도 쿠팡 사용자는 여전하다는 것은 남의 일이어도 참기가 어렵습니다.
  상단계의 중단계는 사들인 기업의 주식이 동전주식이 되어 정부에서 코스탁 퇴출하겠다고 절차를 밟는 것인데 그건 내 돈을 날리는 것이지만 내 선택이 가져 오는 결과이니 막대하지만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상단계의 상단계는 내가 정리한 일을 누군가가 들쑤셔 다시 지저분하게 만든 걸 뒤집어 쓰는 경우입니다. 앨범이란 건 내 삶의 역사 일부분의 백업 기록입니다. 그걸 완벽히 태워 없애고 과거의 사람을 정리하고 결혼생활과 직장을 정리했는데 당사자도 아닌 사람이 다시 끌어 내어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그 지랄 같은 상황이 머리에 가득 찬 순간 돌에 걸려 넘어졌고 무릎이 찢어 지고 머리를 깨지는 것을 막은 손은 엄청 부어 올랐습니다. 의사가 몇 바늘 꿰맸는지도 이야기 해 주지 않을 정도로 두 겹으로 가로로 끝에서 끝까지.
  나름 마음이 심란해지면 스스로 잘 관리해 오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처야 원래 교활한 사람이기에 온갖 수단을 쓸 수 있었겠지만, 동생은 나도 없앤 번호를 아직도 가지고 있고, 그 어이 없는 고민을 다 들어 주고, 그것을 내게 가감없이 옮기는 건 대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런 걸까요.
  오전 세 시간을 운동으로 건강 만들어 왔는데 이 일로 건강이 얼마나 타격을 받을 지 걱정이 들고, 아직도 이런 사람이 내게 남아 있다는 게 아직도 내가 부족한 사람인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6-02-07

복수

   한자로는 復讎로 씁니다. 讎는 뜻이 '원수'로 원수에만 쓰는 글자입니다. 復은 아시는 대로 '반복하다', '되돌리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니 '원수를 갚다'의 뜻으로 충분합니다. 영어로는 Avenge, Revenge(Vengeance)도 있지만 지금 이야기에는 상관없음)이 있는데 영어가 더 '복수'에 대한 가치 부여가 확실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족이나 그만큼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복수를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도리인 것으로, 그것이 '의리'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행동에 옮긴 것을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인간의 본성, 인지상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 표현이 더 잘 '복수'의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고 본 것은 '벤지'도 '리벤지'도 '복수'라는 것입니다. 복수는 꼬리에 고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뜻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수를 하면서 다시 복수가 자신에게 되돌아오지 않게 하려고 목격자 뿐 아니라 씨앗까지 말려 버리는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왼뺨 때리면 오른뺨도 내어 주라'고 이천 년 전에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뛰어난 통찰입니다. 단지 그의 후예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정반대로 행하면서 그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어이없는 거짓 주장을 하는 것, '웩!'입니다.

굴원의 어부사

   언제 철이 들면 적당한 걸까요? 공자의 나이에 대한 주장을 들어 봅시다. 지학(志學) (15세), 이립(而立) (30세), 불혹(不惑) (40세):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 지천명(知天命) (50세), 이순(耳順) (60세), 종심(從心) (70세). 지천명일까요 이순일까요. 하늘의 뜻이 무엇인 줄 알고 그에 순응할 줄 아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 먹을 수 있는 것까지 일까요. 알고 보니 공자는 하늘의 뜻을 아는 것보다 사람의 생각을 읽어 내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했네요. 아, 이건 저만의 해석입니다.

  당시 뿐 아니고 명청 대까지도 40이면 손주를 본 노인의 반열이고 50이 되면 늙은이로 자타 공인하였습니다. 이순은 살만큼 다 살았는데 추가의 삶을 사는 나이이고 그 나이가 되면 남이 하는 말을 들을 줄 알고 뜻이 달라도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살아 일흔이 넘으면 그 땐 어떤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하늘과 인간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된다는 거라고 해석합니다.

  오십 대 중반부터 삶을 보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린 건 오십 전후반이었고 사람과 하늘의 뜻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는 전에 읽었던 동양 철학의 뜻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오십 중반. 공자의 기준에 상당히 부합하네요. 불혹은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 변화를 가장 쉽고 간결하게 말씀해 주셨던 글이 바로 굴원의 어부사였습니다.

어부사(漁父辭)

굴원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樵悴, 形容枯槁.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 屈原曰: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漁父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 何不淈其泥而揚其波? 衆人皆醉, 何不飽其糟而歠其醨? 何故深思高擧, 自令放爲?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漁父莞爾而笑, 鼓枻而去 乃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 不復與言.


굴원은 이윽고 쫓겨나 강과 호수에 노닐면서, 시를 읊으며 물가를 거니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꼴은 바짝 야위었다. 어부가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시오? 무슨 까닭으로 여기에까지 이르셨소?” 라고 하니, 굴원이 말했다. “온 세상이 다 흐린데 나 홀로 맑고,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있으니, 이로써 쫓겨나게 되었소.”

어부가 말했다. “성인(聖人)은 사물에 엉켜서 막혀 있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변해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흐리다면, 어째서 진흙탕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다 취해 있다면, 어째서 술지게미로 배를 채우고 술찌꺼기를 마시지 않습니까? 무슨 까닭으로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스스로 쫓겨나게 만드시오?”

굴원이 말했다. “내 듣건대, 머리를 새로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고, 목욕을 새로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턴다고 하였으니, 어찌 깨끗한 몸으로써 더러운 물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湘流)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다 장례를 치르겠소. 어찌 하얗디 하얀 깨끗함으로써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단 말이오?”

어부가 빙그레 웃고는 노를 두드리며 떠나면서 노래를 불렀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구나, 내 갓끈을 씻을 수 있네. 창랑의 물이 흐리구나, 내 발을 씻을 수 있네.” 마침내 떠나가니, 다시는 더불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삼려대부'의 관직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들 계급이 공경대부이니 높은 계급은 아니나 다른 나라에서는 '태부'라고 부르는 왕족 자제들을 가르치는 관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초나라의 회왕은 어리석어 중국을 통일하려는 야심을 가진 진秦나라에 휘둘리고 있었고 그는 초나라를 위해 힘을 썼지만 모략에 걸려 쫓겨나 여기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이 강이 시에 나오는 '상강(湘流)이라면 이 강은 지금 명칭 '우한(무한)'까지 흐르고 중류는 한수(여기에서 한강의 이름을 따옴. 漢水)를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창랑'도 마찬가지의 강입니다.

- 내가 아끼는 말은 마지막 문단의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인데 이 어부사의 마지막 문단은 사마천의 사기에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후대에 덧붙인 것이라고 나무위키에서 그러네요. 맥락이 잘 맞긴 합니다. 마지막 문단에 대한 나무위키의 해석은 역겹도록 무식하지만. 

"시대가 청렴결백하면 똑같이 청렴결백으로 세상을 대하고, 시대가 부정부패를 일삼으면 똑같이 부정부패를 함께 하겠다는 어부의 노래이다."

윽!

야사에는 굴원이 그 뒤 멱라수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의 뜻을 기리고자 단오 풍습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시의 제목이 어부사인데 한자로 漁夫辭가 아니라 漁父辭입니다. 고기잡이 '어부'가 아닌 것입니다. 父를 쓴 것은 '어르신'을 말하는 것으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살고 있는 은둔자라는 것을 말하니 여기저기서 잘난 체하는 사람들이 '고기잡이 어부도 아는 세상살이 요령을 모르는, 그래서 가르침을 받는'이라는 해석은 택도 없는 잘못 된 것입니다.

2026-02-04

부끄러운 줄 모르는 야만의 문명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또 발견했습니다. 성명란이 고정엽과 결혼하면 '고부인'이라 불릴까요 아니면 '성부인'이라 불릴까요.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참으로 한반도는 그 점 하나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부인이라 부릅니다.

  먼저 잘난 체 하는 서양. 스칼렛 요한슨은 세 번 결혼했습니다. 라이언 레이놀즈, 로맹 도리악, 콜린 조스트. 자녀 둘. 로즈 도로시 도리악, 장남 코스모 조스트. 이 아이들은 당연히 아버지의 성을 따르니 저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인데 스칼렛 요한슨은 애초의 성 '요한슨' 다음에 스칼렛 레이놀즈가 되었다가 스칼렛 도리악이 되었다가 스칼렛 조스트라 불렷어야 하겠지요. 유명인이어서 계속 스칼렛 요한슨으로 불렸을 거지만.

  그래서 가까이 있는 일본을 확인해 보니 남성의 성을 따르는 것은 아닌데 부부가 동성이어야 한답니다. 대부분 남자의 성을 따른답니다. 그러니 재혼하면 법저인 이름이 바뀐다니까요. 왜 저런 어이없는 옛날 관습에 따른 법을 유지하고 있을까요?

의식주와 경자유전

   의식주는 인간생활의 기본요소이고 경자유전은 국가경제의 기본경영 정책입니다. 고대국가들 어떤 시기에서도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온 나라의 땅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광작화로 인한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살았고 그나마 나은 왕이 나오면 땅을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소유하게 하려고 했고 소작농의 경우 세금을 법에 규정한 10%이내로 적용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왕의 뜻이 관철되는 시기는 동서양 또한 마찬가지로 한 세대 유지도 하지 못했습니다. 의식이 족하면 예절을 안다고 관중이 말했지만 의식이 족한 놈들은 족하지 않은 자들의 먹는 것 뿐 아니라 피까지 빨아 먹었습니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은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말이 아주 보편적으로 나오지만 '의식주'의 '주住'는 어느 시절부터 축재의 중요한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내내 집이 '거주의 공간' 개념이어야 하며 '투자'나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드디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겠다고 하는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훌륭한 척 했던 그 어떤 놈도 폼만 잡고 자신을 둘러싼 부패한 신하들과 의원들의 힘에 의해 꽁지를 사렸습니다. 이 대통령은 아예 스스로 여러 번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유예는 연장하지 않겠다고 후퇴할 수 있는 다리를 끊었으니 기대해 봄 직합니다. 처음으로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정책 하나만으로도 끝까지 관철한다면 그는 천국에 갈 것이고 그에게 기회가 없다면 제 기회를 대신 주겠습니다. 

일출

   용케 봉화산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