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9

원앙등

   인동초 이야기를 하는데 책에서 읽은 다른 이름의 것과 같은 것 같아 찾아 보았습니다. 인동초라는 이름은 풀이라는 건데 이건 나무, 덩굴식물인데 그리 붙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니 인동초와 인동덩굴 두 단어의 설명이 똑같았습니다. 신기한 게 사전 편찬한 사람들은 식물에 아예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것 같은 게 두 이름에 대한 설명을 토씨 하나, 기호 하나도 다르지 않게 하면서 유사하다거나 같은 식물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생겼는데 소설(대막요)에 주인공이 엄청 좋아 하는데 중국에서는 '원앙등'이라고 한답니다. 원앙 두 마리가 함께 있는 모양으로 보아서 그리 부른답니다. 우리는 검색해도 나오지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아예 인동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구요.


  처음에는 꽃이 흰색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노란색이 되어 진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나무에 흰색과 노란색 두 가지의 색깔을 가진 꽃을 보기 때문에 금은화라고도 부른답니다. 

  추가로 인동이라는 건 '겨울을 이긴다'는 뜻인데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김대중 대통령의 별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덩굴식물의 이름에는 '계요등'처럼 '등'이 붙으니 원앙등이라 하는 인동등이라 하든 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범려

   중국에서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강력한 힘을 펼친 인물로는 진시황, 한무제, 당태종, 강희제 등을 꼽고 사상적으로 공자와 주희를 꼽지만 '위대한 인물'을 말한다면 내가 읽은 바에 의하면 '범려'를 많이 꼽습니다.

  범려는 '와신상담'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춘추시대 오왕 합려는 망강한 힘을 자랑하여 대국인 초나라도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인 월나라를 치려다 화살에 맞은 게 동티나서 죽으며 아들에게 복수를 유언으로 남깁니다.

  아들이 부차로 '와신臥薪(누울 와, 섶 신)하며 복수를 위해 힘을 키워 초나라의 수도를 점령했을 뿐 아니라 월나라도 완벽 제압합니다. 이 때의 월왕 구천은 운 좋게도 범려라는 책사와 문종이라는 행정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범려는 많은 제물로 부차의 재상을 꼬시고 '서시(중국 4대 미녀 중 하나)'를 부차에게 바쳐 구천의 죽음을 면하고 부차의 마굿간지기를 하게 합니다. 각고의 시간을 버티어 문종이 대신 다스리고 있던 월나라로 복귀한 구천을 상담嘗膽(맛볼 상, 쓸개 담)을 하며 국력을 키워 부차의 오나라를 아예 멸망시켜 버립니다. 춘추시대는 싸움에서 이겨도 그 나라를 멸망시키지는 않던 시대임에도.

  당연히 범려의 전략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범려는 친구 문종에게 말합니다. 그 유명한 말 '장경오훼長頸烏喙(긴 목과 까마귀 부리). 구천의 관상은 목이 길고 입이 까마귀 부리처럼 뾰족하고 길게 튀어나와 힘들 시기를 함께 할 수 있어도 평온한 시기는 한께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문종은 뜯지 않아 남고 구천은 소리소문 없이 가족들을 이끌고 야반도주 다른 나라로 떠납니다. 거의 모든 야사에는 서시를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이름을 숨기고 장사를 하여 실력을 보이자 국가의 부름을 받자 또 다른 나라로 도망가고 거기에서도 그런 요청을 받자 아예 산 속에 들어가서 나중에 신선이 되었다는 인물입니다.

  중국의 그 누구도 신선이 되었다는 예가 없습니다. 어제 소설을 읽다가 그의 이름을 보았는데 이름이 范蠡으로 세상에 벌레가 두 마리나 있어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성인 范은 뜻이 그냥 '풀이름'이고 살았던 동네일 것이니 별 의미 없고 蠡를 찾아 보니 뜻이 '좀 먹다'입니다. 더 찾아 보니 '좀' 뿐 아니라 '표주박', '소라', 꽃창포' 등의 뜻이 있는데 특별히 그의 삶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라면

   우리가 라면이 일본에서 넘어 온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라면의 이름만 알아 보았습니다. 라면이라는 음식은 중국에도 있었고 이름은 랍면拉麵인데 중국어로는 라몐이고 일본에서 라멘으로 불렀습니다. 이게 삼양식품에서 가져 오면서 '라면'으로 불렀구요. 그러니까 실은 '포크레인'처럼 상품명이 일반명사가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拉은 '꺾다'라는 뜻으로 중국에서 랍면은 '수타면'을 뜻한답니다. 拉은 우리는 '납치', '피랍' 등에서 씁니다. 한자가 쓰인 지가 오래 되다 보니(중국에서 쓰기 시작한 비슷한 시기부터 쓴 것으로 보임) 한중일 각국에서 많은 글자가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인 것들이 있습니다. 물론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도 많구요.

  麵은 뜻이 '밀가루'인데 글자의 구성은 麥(보리 맥)+面(얼굴 면)입니다. 밀의 한자어는 小麥이기 때문입니다. 밀이 갑골문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꽤 오래 전에 중국에 인도를 거쳐 들어 온 것으로 보이고 한반도에도 삼국시대 유적지에서 보이는 것으로 보아 우리도 오래 전에 들어 왔을 것으로 본답니다. 단지 추운 곳에서 자라고 번식이 잘 안되는 놈이라 극히 소량만 재배된 것으로 봅니다.

  '면'을 우리는 보통 국수로 생각하는데 칼국수로 생각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는 실은 보리를 빻아 가루로 만든 뒤 반죽을 넓게 펴서 가늘게 잘라 음식을 만들어 이걸 '면'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국수는 제면기에서 뽑은 둥근 모양이지만요.

2026-05-18

개천에서 용 난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그런 사회에서 어떤 소수는 이미 여의주를 품고 태어나고, 개천은 살 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를 기다리는 사회가 아니다. 누구도 용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끝없는 경쟁에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좋은 사회란 용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사회, 특권을 보장받는 용이 필요 없는 사회, 아예 개천이 없는 사회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57003.html 한겨레신문 2026년 5월3일자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이 분의 글은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는 명언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24년 한국은행이 서울대 진학률을 기반으로 학생의 잠재력 차이로 설명되는 몫은 8%에 불과하고, 92%는 거주 지역의 차이에서 비롯되니 지역별 학령인구의 비율에 따라 대학 신입생을 선발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이야기로 이어 갑니다. 그러게 해서 맨 앞의 결론으로 이어간 것입니다.

- 용도 없고 개천이 없는 사회는 곧 평등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고 사회주의적 사회입니다.

-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한 건 에디슨의 말입니다. 그는 잠을 자면서도 사람들에게는 '잠을 자는 건 사치이고 낭비'라고 말을 한 사람이고 그의 발명품 중 사기를 친 것들이 제법 있습니다.

- 한국은행의 분석과 제안을 이런 식으로 뭉개서는 안 됩니다. 한국은행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제안을 한 것인데 '용'도 '개천'도 없는 상상의 세계로 끌어가다니오.

  대학에 들어 가고 고향에 내려 갔을 때 지금은 전설처럼 이야기 되는 '국립 사대생'이 왔다고 사람들이 구경을 나오는 일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내 고향(이젠 가고 싶지 않은)은 지금도 버스가 지나지 않아 버스 타려면 걸어서 20분은 족히 가야 하는 곳입니다. 이런 경우가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경우인 거지요. 지역 인재를 뽑는 의도로 대학 수시에서 지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아예 비율을 정하자고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 훌륭한 제안을 방향을 홱 틀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서울대 이야기 입니다. 석열이의 내란 시도 사건으로 보인 서울대 출신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은 단지 성적이 좋았던 사람들일 뿐 똑똑하지도 않고 민주주의의 기초도 인식하지 않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역사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멍청하고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서울대를 꼽은 게 애초 잘못입니다.

어떤 삶?

 



  산자락에 조금씩 농사를 짓고 있던 곳을 시에서 정리하고 공원 조성을 했습니다. 지난 겨우내 기초 작업을 하고 데크는 이른 봄에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틈으로 풀이 하나 비집고 올라왔습니다. 쑥부쟁이로 보입니다. 어떻게 올라오게 되었을까요?

  저걸 보며 어제 산딸기 다며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건 내가 따서 내 입으로 들어 가지만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열린 딸기는 일부만 벌레들의 먹이가 될 것이고 대부분은 떨어져 기껏 거름으로 돌아갈 건데 어떤 삶이 산딸기에겐 더 행복할까라는 따분한 생각. 장자는 수백년을 산 고목을 두고 쓸모가 없게 못생긴 덕에 오래 산 것이라고 했는데 말이에요.

산딸기

   올해도 산딸기가 나왔습니다. 작년보다 일주일 정도 빠른 것 같습니다.



2026-05-14

고라니

   내가 평일이면 날마다 오르는 안심산은 높이가 해발고도 217m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산에 고라니가 삽니다. 멧돼지는 없습니다. 멧돼지는 땅을 파 헤짚는 특징이 있거든요.


  세 번째 보는데 딱 이 놈 한 마리 뿐인가 봅니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 한참을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지나가는 바람에 도망가 버렸습니다. 누군가 멈추어 사진을 찍고 있으면 함께 멈추어 함께 볼 만도 하고 찍을 수 있게 잠시 기다려 주는 배려도 할 만한데 그런 사람도 있네요. 얼마나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조금 전 내가 추월해 온 사람이었거든요. 조금 더 보고 싶은 거 방해 받아서 심술 부렸습니다.

새집

 


  산딸기를 따러 산에 갔다가 보았습니다. 아주 작은 새의 집으로 보입니다. 어렸을 땐 저런 새의 알도 모두 훔쳐 먹었는데.

좀씀바귀

 


  좀씀바귀입니다. 아파트 화단에 잔뜩 피었습니다. 주위에 비슷한 모양과 색깔의 민들레랑 어우러져 있는데 잘 보면 다릅니다. 잎사귀의 모양도 다르지만 꽃 모양이 쉽게 구분이 갑니다. 이건 홑겹이고 민들레는 여러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씀바귀와 같게 생겼는데 아주 작다고 해서 '좀'을 붙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

   사람들은 언제든 판단을 하며 사는데 그 판단의 기준은 이미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런데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그런 잠재적 위험이 있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판단하는 사람은 최소한 제 주변에서 극소수입니다. 시간 속에서 바뀐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고 아예 정보가 들어 올 때 그릇된 것일 가능성도 아주 큽니다.


  괭이밥입니다. 특별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클로버(토끼풀)로 많이 착각하는 풀입니다. 잎이 세 개이고 비슷하게 생긴 건 맞는데 괭이밥의 잎 모양이 뚜렷하게 하트 모양인 것이 하나의 특징이고 클로버는 잎에 잎줄기의 모양이 선명하게 보이는 게 또 하나의 구분법입니다.

  그런데 이 놈의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가 시빗거리입니다. 검색해 보면 거의가 괭이(고양이의 옛말)가 배가 아플 때 뜯어먹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합니다. 요게 잘못된 것입니다. 고양이가 배가 아플 때 풀을 뜯어 먹는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걸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개는 주위에 풀 먹느 동물과 함께 살며 재미로 뜯어 먹는 것을 종종 보았지만요.

  이 풀에는 약하긴 하지만 옥살산이라는 독성이 있답니다. 맛도 시금합니다.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는 이 풀의 이름은 고양이가 이 풀 주변에 똥을 싸고 보이지 않게 감추는 것을 보고 붙였을 것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잘난 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제 산에서 내려 오는데 초등학생들 데리고 숲 해설사가 저렇게 괭이밥을 설명하기에 잘못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또 늘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속상해서 내 글 보는 사람들이라도 잘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원앙등

   인동초 이야기를 하는데 책에서 읽은 다른 이름의 것과 같은 것 같아 찾아 보았습니다. 인동초라는 이름은 풀이라는 건데 이건 나무, 덩굴식물인데 그리 붙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니 인동초와 인동덩굴 두 단어의 설명이 똑같았습니다. 신기한 게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