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를 처음 접하고 그 때는 그에게 반한 줄 알았습니다. 노자와 불교를 공부하고서는 그가 참으로 어설픈 불교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동양 사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난 뒤에 그에 대해 든 생각은 서양, 더 구체적으로 유럽 사람들이 동양철학을 이해한 게 아니라 동양철학을 자기들의 철학체계 속에서 보면서 나름 이해했다고 오해한 것이었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들은 일가를 수립했다는 한 사람은 색즉시공공즉시색을 두고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며 조롱도 아닌 멸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막상 나는 인간의 마음에 성과 악이 서로 다른 몸(싱클레어와 데미안)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싱클레어에서 갑자기 데미안으로 변신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해마다 일기를 시도하고 실패하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 직전에야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시타르타와 수레바퀴밑에서를 지나 황야의 이리에서 푹 빠져 용돈이 말도 못하게 궁하던 시절 술값을 아껴 국내 출판 모든 책을 사서 읽었고 그 시절, 불꽃처럼 타오르던 그 시절을 그를 스승 삼아 화려하게 낭만을 즐겼습니다.
그의 시타르타에서 붓다는 자연스럽게 노인으로 늙고 불꽃이 사라지던 때 흐르는 강물을 보고 어재도 오늘도 변함없이 흐르고 내일도 흐르겠지만 그 강물은 지나가고 다른 강물이 온다는 서양과학적인 불교의 깨달음을 얻고 끝납니다. 십육 년을 넘게 서양의 지식을 쌓아 온 사람은 그것이 정말 멋있는 깨달음으로 보였습니다. 한참 공부를 하고 윤회를 기독교를 가진 서양인이 서양과학으로 설명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공부가 잠시 따분해져서 소설, 중국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한자공부 때문에 중국역사를 알아야 훨씬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엊그제 김용의 소설을 이야기 했는데 참으로 철학이 미천하고 역사는 자기 맘대로고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 쓴 것이었다는 것을 그의 3부작 분 아니라 그의 유명한 작품(?)들을 모두 읽고 나니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괜찮은 다른 사람들의 소설이 제법 금방 제시한 기준에 상당 수준 넘어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것은 해연海宴이 쓴 랑야방입니다.
중국 가상의 나라 대량이 그 배경입니다. 양나라는 위진남북조 시대 남조의 한 때 군림했던 나라인데 읽어 보면 그보다 당나라 장안성이라고 보면 시대가 장소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중국인들의 중화라고 생각하는 그 부근을 묘사하고 있거든요.
인품과 능력이 아주 뛰어난 대량의 장수가 이끄는 적염군은 음모에 휘말려 역적으로 몰려 군대 자체가 몰살당합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대장군의 아들 임수 또한 뛰어난 장군이었는데 누명도 벗고 원한을 복수로 해결하려고 목숨을 담보로 얼굴과 몸을 바꾸고 대량의 수도로 들어 옵니다. 십여 년 동안 그는 대량의 강호 최고의 무사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차기 황제를 다투는 싸움에 모사로 끼어듭니다.
시간이 중요합니다. 적염군 소장군이었던 임수와 차기 황제가 되기 위한 황자들의 싸움에서의 매장소는 정의와 원칙으로 똘똘 뭉친 장수에서 온갖 음험한 계략을 꾸미는 모사꾼으로 변합니다. 모두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사람에서 당시 똑같이 그를 사랑했지만 지금은 어떤 이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떤 이는 거리를 두려는 사악한 사람으로 보는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인생이 처음 만난 그 때와 같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적염군이 몰살당하던 때 그 자리를 떠나 있어 불행을 피했다가 지금은 성을 수비하는 군대의 우두머리 '통령'이 된 '몽지'는 대장군의 아들이었던 임수의 나이 더 많은 부하였는데 그는 아끼는 사람이 변한 것을 안타까워 하지만 그의 계획을 모든 것을 던져 돕기로 합니다. 그 때 임수가 몽지에게 한 말입니다.
사람은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스스로 변합니다. 젊었을 때는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을 해결하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했다면 나이가 들면 그 일을 수행할 때 부수적으로 벌어지는 일까지 모두 계산을 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계획이 실행으로 진행되는 일이 나이가 들면 거의 없어집니다. 단지 그 뿐일까요? 방귀 냄새마저도 향기로웠던 내 아이 또는 그이는 냄새나는 늘어진 양말도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됩니다. 의기롭고 호방했던 그 사람은 새로 지은 아파트가 더 재산가치가 있는지가 제일 중요한 관심사가 되기도 하고 공장에서 나온 식자재를 두고 어느 것이 더 좋은 지를 살피고 있고 외롭지 않으려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 가식적인 사람들과 등산도 가고 독서 모임도 합니다.
이 말은 예황군주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그는 임수와 혼인약속이 되어 있었고 이미 친밀한 사이였는데 적염군이 몰살 당했을 때 그가 함께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군주는 중국에서 황제나 왕의 딸 중 황제의 마음에 들면 책봉되는 직위입니다. 목왕부는 적염군의 대장군과 친밀했고 적염군은 망했지만 중국 남부, 운남을 중심으로 하는 목부의 장군은 전투 도중 죽고 딸인 예황군주가 꽃다운 나이에 장군을 임시로 이어 받아 적을 퇴치하고 남동생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잠시 장군의 지위를 받습니다. 매장소가 벌인 일들이 진행이 되면서 예황군주와 매장소의 접촉이 몇 차례 이어지면서 예황은 그가 그 사람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전 목부가 전투를 힘들게 치를 때 강호 최강의 방파 강호맹에서 한 사람의 인재를 파견하여 불리한 싸움을 승리로 반전시키는데 이 때 그와 예황 사이에 호감이 심하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지금 예황을 매장소가 임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음으로 열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매장소는 그 사람 섭탁을 보내 주겠다고 합니다. 지금 하려는 일이 마무리 되면.
하이옌은 여자 작가임에도 심하게 감정선이나 인간관계를 꼬지 않습니다. 김용의 소설이 '저 사람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나, 여자를 사귀어 보았나' 할 정도로 어지럽게 방향성 없이 달리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며 시간이 흐른다고 쉬이 변하는 사람은 천박한 사람입니다. 성품은 고와지고 지식은 깊어지며 혜안을 가져야 합니다. 건강에 집착하고 돈을 쥐어 잡으며 자식의 성장에 목을 매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 그러면서도 아무나 엉겨붙는 꿀바른 사람이 아니고 어려울 때 떠오르는, 어려워 보이지만 잠시라도 함께 있으면 흐릿했던 눈이 걷히고 맑은 하늘을 보이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