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사마천이 사람을 보는 시각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사기열전에서 상앙으로 이름이 알려진 공손앙에 대한 걸 찾아 보았습니다. 그는 위(衛)나라 사람인데 전국시대 일곱나라 중 하나였던 위魏도 아니고 조조의 나라 위魏도 아닌 전국시대 초기의 사람으로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의 변법을 받아들이지 않아 진나라로 건너가 진효공에게 세 번의 시험을 거쳐(세 가지 버전의 왕의 치도를 제시) 법가 사람을 기반으로 한 변법을 시행하여 중국 서북방의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했던 작은 나라를 강력한 국가로 키워 훗날 진시황이 통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사람입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건 짐작할 수 있듯이 백성들이 마음놓고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빼앗을 걸 빼앗지 못한 귀족들과 고위 관료들이 효공이 죽자 역적으로 몰아 거열형으로 죽입니다. 잡으려는 걸 알고 도망가려다 성문 앞에서 통행증을 제시하지 못해 결국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잡혔다는 비아냥을 유교쟁이들에게 들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성은 희姬이고 씨가 공손公孫이며 이름은 앙鞅인데 그가 상나라의 봉지를 받아 상앙商鞅이라고도 합니다. 다음은 효공의 앞에서 변법을 시행하기 위해 다른 신하들과 주장을 하는 장면입니다.
먼저 법에 대한 그의 생각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사람은 법의 제재를 받으며, 현명한 사람은 법을 고치고 못난 사람은 예법에 얽매입니다.
법가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매우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두지와 겨루는 장면입니다.
두지가 말했다. "백 가지의 이로움이 없으면 법을 바꾸지 않으며, 열 가지의 공이 없으면 그릇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옛 것을 본받으면 허물이 없고 예법을 따르면 잘못이 없습니다."
두지의 말이 곧 유교주의자들의 입장이며 당시에는 모든 판단과 결정의 근거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보수주의의 핵심입니다. 선례가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인 것입니다. 다음은 그에 대한 공손앙의 반론입니다.
공손앙이 말했다.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나라에 이롭다면 옛 법만을 법으로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옛 법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임금이 되었으며,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예전의 예를 바꾸지 않고도 멸망했습니다. 옛 법과 다르다고 해서 반대할 것도 아니고 예전의 법을 따른다고 해서 칭찬할 것도 못됩니다."
한 가지의 형식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예만 추려서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탕왕과 무왕은 '옛 법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임금이 되었다'도 한 것은 신하가 임금을 해치고 은나라와 주나라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는 말이고 '예전의 예를 바꾸지 않고'라는 말은 걸왕과 주왕은 각각 예전의 법을 그대로 따랐지만 망국의 왕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옛법이 무조건 진리인 것이 아니고 바꾸는 것이 옳은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진보주의자의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