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4

문턱의 의미

   문턱, 문지방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렸을 때 어른들이 상당히 심하게 지키라고 요구했던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제일 큰 어른이 숫가락 들기 전에 먼저 먹는 게 금기시 되었고 그건 예의 차원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과 그릇을 들고 먹는 것, 그릇에 입을 대고 마시거나 긁어 먹는 것 등은 뙤놈의 짓이라며 금지하였습니다. 이 두 번째의 금기는 문화의 차별성에 대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일본 사람들의 식사 습관을 우리가 따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들을 보면 그릇의 모양과 젓가락의 재질과 크기에 따라 그렇게 먹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국그릇은 '완'이라고 하는 펑퍼짐한 접시에 가까운 것이고 그들 젓가락은 두부나 팥알을 집어 올릴 수 없는 모양과 길이를 가졌습니다.

  딱 하나 젓가락으로 밥을 집어 먹는 것은 다른 두 가지가 지금까지 어느 정도 지켜 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거의 풀린 문화입니다. 곰팡이 나는 유교 집안 자손들만 숫가락으로 밥은 떠먹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쌀의 특성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던 쌀은 맵쌀로 찰기가 거의 없는 것이어서 적가락으로 먹는 게 거의 가능하지 않고 숫가락으로 떠먹었어야 하는데 근대를 거쳐 현대로 오는 시기에 일본의 찰기 많은 쌀이 우리의 밥시장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찰기 많은 밥을 숫가락으로 먹으면 숫가락에 밥풀이 엄청 달라붙어 함께 먹는 국이나 탕그릇에 그게 들어 오면 욕을 먹게 되는 상황이 와서 밥을 먹는 도구가 자연스럽게 젓가락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금기 사항의 또 하나는 누워있는 사람의 위를 지나가는 것도 있었는데 그건 안전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었는데 이해가지 않은 한 가지가 문지방, 문턱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베개 세우지 말라거나 숫가락을 엎어 놓아서는 안된다거나 신발을 엎어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 부여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문턱에 앉는 것이 안정적인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다고 그 때는 그랬지만 지금 여러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각해 보니 철학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턱이란 것은 방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장소입니다. 경계선인 것입니다. 경계인은 다른 말로 주변인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으로는 '이도 저도 아닌' 혹은 '이 의견도 저 의견도 수용한다'는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박쥐로 몰릴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게 언제부터 금기시 되었는지 아니면 우리 동네만 그랬는지 아니면 내 아버지만 그러셨는지 고민하다 검색해 보니 보편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 안전사고 예방과 건축물의 내구성 보존을 위해. 네이버 블로그(구글 AI 맨 위에 있는 글)

-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이동 통로이므로 길목을 막고 앉아 있으면 통행에 방해되니까. 매일춘추

- 닳아지기도 하고 나무로 된 이 문지방이 습기를 먹으면 틀어지는 경우가 많아 문지방을 자주 밟으면 집의 균형이 흔들릴 수도 있어서. 국립민속박물관

- 어른이 방안에 앉아 계시는데 어린 것이 방과 마루보다 높은 위치의 문지방에 걸터앉아 있는 것이 버릇 없어서. 매일신문

  참으로 그럴싸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문턱이 닳아지거나 흔들리는 것은 그냥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문의 문턱은 그럴 수 있습니다. 신발을 신고 들어 오고 나가는 것이어서 대부분의 문턱이 있는 대문의 경우 많이 닳아져 있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문의 경우는 발이 걸리면 발가락이 어후. 문틀 위는 머리로 자주 들이받지요. 집을 지을 때 천장의 높이는 건축 비용에서 아주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부잣집이 아니면 대부분 천장이 낮고 방문도 낮기 때문에.

  조선 시대는 유교에서도 많이 왜곡된 성리학을 성경처럼 믿던 시대이기 때문에 해석을 놓고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상복을 며칠 입어야 하는지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예송논쟁 말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입장인지 선비, 유학자라는 것들은 항상 요구 받았을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그것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금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해방 이후에 친일 부역자들이 자신들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서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을 대거 빨갱이로 몰아 죽이면서 지식인들은 입을 다물게 되었고 그들이 편을 들어 주는 것을 강요하려고 편을 들기를 강요한 것이 또한 이 금기를 강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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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삭줄꽃과 광나무꽃

  마삭줄 광나무   별 거 아닌 걸 무슨 지적재산인 것처럼 공유하지 않는 게 한심해서 내가 찍어 올리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