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이야기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후궁일 것입니다. 고려시대는 제도가 복잡해서 건너고 조선시대를 보겠습니다. 쿠데타(반란)를 일으킨 이유 중의 하나였던 대국, 명나라와 다른 후궁 제도를 가졌습니다. 계급은 중국과 같이 8품계였는데 숫자를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일정하지 않고 시기에 따라 달랐습니다. 우리가 들었음직한 익숙한 품계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나마 경국대전이 완성된 성종 이후는 이렇습니다. 명칭만 봅니다.
정1품 빈(嬪), 귀인(貴人)
정2품 소의(昭儀), 숙의(淑儀)
정3품 소용(昭容), 숙용(淑容)
정4품 소원(昭媛), 숙원(淑媛)
정5품 상궁(尙宮), 상의(尙儀)
정6품 사기(司記), 사빈(司賓)
정7품 전언(典言), 전찬(典贊)
그리고 끼어 있는 종5품으로 상식(尙食)이 있는데 다들 하는 일이 정해져 있어 '궁인'으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말거나 왕의 주위에서 일을 하다 그의 눈에 띄면 '승은'을 입게 되고 품계를 받게 되는 경우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받지 못하더라도 '승은후궁'으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국에서는 전한시대 14등급, 후한시대 4등급
당나라의 제도가 보이는데 황후 빼고
4부인 정1품 귀비(貴妃), 숙비(淑妃), 덕비(德妃), 현비(賢妃)
9빈 정2품 소의(昭儀), 소용(昭容), 소원(昭媛), 수의(修儀), 수용(修容), 수원(修媛), 충의(充儀), 충용(充容), 충원(充媛)
27세부 정3품 첩여(婕妤), 정4품 미인(美人), 정5품 재인(才人) 등 각 9명씩
81어처 정6품 보림(寶林), 정7품 어녀(御女), 정8품 채녀(采女) 등 각 27명씩
태자궁에도 4계급 총 58명을 두었습니다. 명나라 때는 품계가 없고 정궁(正宮) 황후(皇后) 아래로
정비(正妃) - 황귀비(皇貴妃), 귀비(貴妃), 비(妃), 빈(嬪)
서비(庶妃) - 첩여(婕妤), 소의(昭儀), 귀인(貴人), 미인(美人), 답응(答應)
를 두었는데 숫자는 상관이 없었나 봅니다. 전 글에 병청 궁인과 환관의 숫자를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당나라 제도를 보면 4와 9의 숫자를 볼 수 있는데 4는 방위의 숫자이며 오방색에서 중심을 뜻하는 황색을 빼면 4의 숫자가 나와 중요한 숫자이며 9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숫자여서 중요하게 취급하였습니다. 구중궁궐이라고 하는데 구중은 九重으로 9가 중복된다는 것이고 황제의 집인 궁은 모두 99채의 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부르는 별명입니다. 참고로 0은 귀신의 숫자로 생각하였습니다. 없는 숫자인데 표시를 해야 해서 동서양 막론하고 '0'은 골치였습니다. 당시의 사고 개념으로. '0'은 16세기 인도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 용어로 태자 혹은 세자가 머무는 집을 동궁이라고 했는데 궁궐의 동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부르는 이름이었습니다. 8괘에 따라 자손과 방위가 결정됩니다.
☴ 손(巽·바람) 남동(南東), ☲ 리(離·불) 남(南), ☱ 태(兌·못) 서(西方). 차례로 큰 딸, 둘째 달, 셋째 딸입니다.
☳ 진(震·우레) 동(東), ☵ 감(坎·물) 북(北), ☶ 간(艮·산) 북동(東北). 차례로 큰 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입니다.
큰아들이 태자나 세자가 되니 '진방'인 동쪽에 집을 둔 것입니다. 집에서도 동쪽의 방은 큰아들, 큰딸은 남동 방향의 방을 주면 건강하고 편하다고 합니다.
참고로 긴 하나의 효는 양효이니 남자, 둘로 쪼개어진 효는 음이니 여자인 것이고 세 효 중 다른 하나가 음양, 성별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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