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4

무사武士

   춘추시대의 전투는 장수가 앞에 전차를 타고 나가 싸우는데 한쪽이 부상을 입으면 싸움을 그치는 방식으로 절제된 방식이었답니다. 춘추 후기부터 전투, 전쟁의 양상이 변하는데 보병이 등장하고 삼군의 전차, 기병, 보병에서 보병이 전투의 축이 되었답니다. 그 전의 싸움과 달리 처절하고 대규모의 희생자가 나오게 된 것이지요. 전투의 방식도 달라지고 무기도 달라지게 됩니다.

  원래 기존의 창은 모矛와 과戈였습니다. 익숙한 한자지요? '모순'에서의 '모'이고 '나 아我'자의 오른쪽에 있는 것이 '과'입니다.


  이런 모양입니다. 앞의 그림이 '모', 다음이 '과'인데 어디서나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는데 맨 오른쪽 모양으로 자루를 아래쪽에 매어 사용하였습니다. '모'는 단순히 찌르고 '과'는 당기면서 베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전쟁이 치열해지던 춘추시대 후반에서 전국시대로 오면서 보병 중심이 되니까 무기도 살벌해 집니다.


  '극戟'이라고 합니다. 위의 둘을 합해 놓은 것입니다. 살생을 극대화 하기 위한 것이고 그에 때라 전술이 복잡해졌다고 합니다. 손자병법이 나오게 된 것이지요. 이 시기에 맨 먼저 진晉나라에서 직업군인 제도를 시작했답니다. 당시의 신분이 '공경대부'의 귀족 혹은 관료 아래에 아직은 벼슬을 갖지 못한 '사士'  계급이 있는데 주로 이 계급에서 군인 즉 '무인武人'이 나오면서 '무사武士'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덧붙이자면 여기까지의 범위가 '국인國人'이고 그보다 성에서 더 먼 거리에 포로나 유민들이 거주하면서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여기를 '야野'라고 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을 '야인野人'으로 불렀답니다. 전쟁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결국 이들도 전쟁에 무사로 참전하게 되었구요.
  추가로 '我'자는 원래 갑골문에서 '과'의 왼쪽에 쇠스랑 모양의 삼지창이 달려 있는 것의 상형자였는데 뜻이 '나'를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데 누구도 어떻게 그렇게 변화가 되었는지 그럴싸한 설명이 없습니다.


  하나 더 추가로 '무武'자는 창(戈)과 발(止)이 합해진 글자로 창을 들고 걸어 가는 모습입니다. 인터넷 검색해 보면 止가 뜻이 '그치다'니 진정한 武는 전쟁을 그치게 한다는 둥(그 위대한 설문해자에) 똑똑한 체하는 글들이 있는데 '武'자에 보이지 않는 '삐침'획이 '戈'의 왼쪽 위에 작은 가로획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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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匕는 도서관에서 본 책에는 뜻이 '눕다'였는데 사전들을 찾아 보니 '비수(길이가 짧고 작은 칼)'입니다. 갑골문에서는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선 사람'의 모양인데 그 뜻이 일정하지 않고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