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9

노인

   집에 다녀 오늘 길에 버스를 기다리는데 허리가 굽은 남자 노인이 승강장에 들어왔습니다. 여수의 거의 모든 버스승강장에는 앞으로 지나갈 버스의 정보가 뜨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몇 번 버스가 현재 어디쯤 지나고 있고 승강장 몇 개 전이고 도착 예정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가 표시가 되는데 30분 이내의 것인 것으로 짐작 됩니다. 그런데 그 승강장은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그 기계가 없었습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부스였고 긴 의자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일행이면 네 사람이 않을 수 있고 아니면 세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한 크기. 잠시 후 팔십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노인이 '좀 쉬었다 가자'는 혼잣말을 하며 의자에 앉으려는데 먼저 앉아 있는 사람은 의자의 한 가운데에 쩍벌하고 있었습니다. 가장자리에 앉을 수 있긴 하는데 젊잖으신지 앉지 않고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하지만 80 후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와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남자의 태도에 변화가 없자 우산을 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그 남자 노인도 버스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쉬려고 들어 온 것이었습니다. 거기는 환승하는 버스가 여럿 있고 지나는 시간을 정확하게 아는 건(카카오맵을 쓰면 다르지만) 배차 시간이 긴 31번 뿐인데 금방 지나갔거든요. 그리고 앉아 있으면 버스들이 그냥 지나가버리니 그는 쉬러 들어 온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또 잠시 후 80번이 서더니 60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노인이 내리고 바로 이어 내리려고 멈칫거리는 5세쯤 되는 손녀로 보이는 아이를 한 팔로 번쩍 들어 내렸습니다. 아이 우산을 펴서 먼저 씌워주고 다음에 자신의 우산을 편 다음 6차선 도로를 함께 건너갔습니다.

  행복한 노후를 가질 수 있는 첫번째 조건이 '이동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 참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3명의 서로 다른 노인을 보았습니다. 않아 있던 노인은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를 내어 깜짝 놀라 보았는데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것이 가래가 목에 걸리기나 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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