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2

상나라를 부정한 이유

   내가 공부한 바에 의하면 중국의 국가의 시작은 상나라인데(하나라는 아직 신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사마천도 그랬고 공자도 그랬는데 주나라의 예와 법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나라가 깨지면서 춘추전국시대가 왔고, 전국 일곱 나라를 진의 정이 통일하여 China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진나라를 세우고 기원전 221년에 세운 통일국가는 기원전 206년에 무너지고 이 해에 한나라 세우고 기원전 202년 초나라를 파하고 통일을 이룹니다. 공자는 춘추시대 말기의 사람이고 사마천은 기원전 100년 경에 활동한 사람입니다. 그 두 사람이 중국의 고대 역사와 철학을 확립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니 중국에서 상나라와 주나라에 대한 논쟁은 없습니다.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중국에 역사 내내 상명하복이 제일 중요한 가치입니다. 기존의 나라를 뒤엎고 새 나라를 건국하려면 확실한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상나라의 주왕이 달기와 놀아나고 주지육림에 충신들을 죽인 것으로 기록이 되었는데 그건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 이야기 입니다. 역사를 모르더라도 중국의 고대국가 하, 상, 주의 멸망에 모두 '주지육림'이 등장합니다.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쉽게 보이는 것이지요.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진나라가 통일하고 '진서'외에 다른 역사서들을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찾아 불태웠고 그래서 서쪽 변방에 찌그러져 있던 진나라 역사서만 남아 사마천이 참고한 것은 중원의 정보가 희박한 것들이었고 그의 편협한 생각으로 그런 소설을 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의 상나라 정벌을 목숨을 걸고 막은 것과 상나라 정복 후 상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파견했던 왕족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 등이 그런 의심에 합리성을 더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나온 책 '상나라 정벌'이라는 걸 보니 앞뒤 맥락이 연결이 되었습니다. 상나라 내내 순장은 약과였고 점을 치는 내내 엄청난 사람 제물을 썼다는 것입니다. 심지에 희생을 먹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먹은 것은 한참 뒤인 송나라 때의 소설에서도 보이지만 여튼 새로 들어선 주나라는 식인 뿐 아니라 희생을 사람으로 쓰는 것을 엄히 금했을 뿐 아니라 술도 금했답니다. 술이 점과 제사에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점을 치는 것을 금한 것은 아닙니다. 주역이라는 게 기존 점친 것을 정리한 것을 주나라의 '서백(문왕)'이 상나라 주왕에게 붙잡혀 감옥에 있을 때 공부하여 정리한 것이고 그래서 '주나라의 역서'라는 뜻으로 주역이 되었기 때문에 상나라의 점을 치고 그 결과를 해석하는 것은 이어 받았고 해석을 달리한 것입니다. 여튼 사람을 희생으로 쓴 것이 미개한 문명으로 인식이 되었던 것인 거죠.

사람 구별하기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이 정의롭게, 공평하게 사람을 대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업과 신분의 귀천貴賤 없이, 외모의 미추美醜 없이, 재산의 다소多少 없이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고. 그런데 정작 그런 사람 본 적 없습니다. 하다 못해 먼저 출근해서 나중에 출근하는 동료나 관리자를 맞이하는 인사의 태도에서 먼저 명확하게 사람들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몸에 밴 습관으로 가려진 본성의 태도는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해보면 드러납니다.

  그걸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것이 '유퀴즈'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큰 자기' 유느님과 '작은 자기' 죠셉이 손님의 왼쪽과 오른쪽에 스플릿 형태로 앉아 있어서 두 진행자를 손님은 함께 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둘 중의 하나를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손님은 두 진행자 중 한 사람을 보게 되는데 이 때 그 사람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손님은 유느님을 주로 보고 심한 사람은 아예 한쪽만을 보며 인터뷰에 응합니다. 당연히 죠셉 쪽은 아닙니다. 그걸 보면 그들의 가식을 아주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죠.

  요즘에는 내가 '머저리의 준말이라고 하는 'MZ세대'의 언어와 꾸밈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차별하고 영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을 올려다 보고, 건물 가진 사람을 친구로 삼고 싶어하는 걸 숨기지 않고 표시합니다. 인지상정이라구요? 맞습니다. 人之常情, 맞습니다. 사람이라면 늘상 가지고 있는 생각, 느낌, 선택, 情. 이 글자의 뜻은 '뜻'인데 쓰임은 초코파이 광고의 그 '정'입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룹니다. 유교 관점에서 봅니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칠정'이라고 합니다. 희(喜) · 노(怒) · 애(哀) · 구(懼) · 애(愛) · 오(惡) · 욕(欲). 다 아는 것 같은데 하나가 다릅니다. 네 번째 입니다. 이것은 두려움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樂 대신에 들어가 있습니다. 희노애락애오욕은 불가에서 말하는 칠정입니다. 유가의 칠정을 봅니다.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가지고 싶어하는 일곱가지 마음입니다. 이것은 인간이면 가지고 있는 감정이고 그에 반해 공부를 통하여 몸에 익혀야 하는 네 가지가 '사단'입니다. 맹자는 인간 본성이라고 했지만요.

  사단은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의 네 가지인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뜻이 다릅니다. 아름다운 기독교 교리를 해석하여 전달하는 자들이 비천하고 나쁘게 바꾸어 전달하여 더러운 종교가 되게 한 것과 이것도 같습니다. 仁이라는 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불교의 '자비'보다는 기독교의 '사랑'에 가깝습니다. 義는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나쁜 걸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한국인들이 유교를 잘못 알고 있는 핵심입니다. 나쁜 것을 부끄러워하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모른 척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라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믿고 행합니다. 다음은 禮는 사양지심辭讓之心으로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하는 마음입니다. 이익을 보면 뒤로 빠지는 걸 말하는데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이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智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인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지혜롭다는 것을 우리가 흔히 쓰는 뜻과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기 논쟁이니 주기, 주리파니 해석들이 많지만 이처럼 해석하면 됩니다. 칠정은 인간이 자연스레 가지고 있는 감정이고 사단은 애써 공부하여 지키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그러면 주나라의 법도인 '禮는 서인에 이르지 못하고 형은 대부에 이르지 못한다'는 계급정신에 입각해서 '나는 평민이니 굳이 사단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을 할 사람들이 앞의 그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좋은 사람', '올바르고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죠셉'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없겠지요. 볼 때마다 안쓰럽지만 또한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2024-05-13

아름다운 세상

   이 글을 쓰려고 하니 내 블로그의 대문에 있는 핵심 내용과 일치하지만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나의 아름다운 세상은 내남이 없으며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사는 곳을 말하고 지금 이야기 하려는 것은 그런 세상을 만들려는 것을 교묘하게 방해하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일만 있는 게 아니고 오히려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고 부정의한 일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름다운 것만 보려고 한다고 스스로의 입으로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요.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눈감겠다는 것입니다. 그걸 왜 그렇게 삐딱하게 보냐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좋은 면도 있는데 굳이 나쁜 점만 들추냐는 것이지요. 그들은 그들 속의 논리 속에서만 삽니다. 그 논리는 데카르트나 파스칼의 신의 존재에 대한 논리처럼 일반적이지 않고 정말 멍청하게 우스운 것입니다. 대부분의 일이 한 면의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인정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점만 보고 다독거리고 칭찬하고 가는 것이 앞으로 더 좋아질까요? 미진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고 고쳐서 나쁜 부분이 좋아 지도록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요. 공자의 말씀처럼 나쁜 것을 미워하는 것이 의義(옳음)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이 세상의 부조리와 부정의가 사라질 것은 너무 명확한 일이거늘 현상의 ㅜ족하거나 나쁜 면을 보는 사람을 비뚤어진 사람이라고 보는 시선을 그 자신이 매우 정의롭지 않은 사람이거나 세상의 부정의를 용인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지랖의 범위

   다른 사람의 불편이나 피해를 입을 것이 보이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고민입니다. 보통은 도와주고 욕먹는 것이 아닌지로 고민하지만 나는 그보다 자신의 기준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번 주 길을 걷다가 카드 한 장을 주웠는데 농협 체크카드이고 용돈이 든 것으로 짐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일어버린 줄도 모를 가능성이 크고 정지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어서 길에 그냥 둘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문제는 요즘엔 우체통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가까이 농협이 있어서 직원에게 주인을 찾아 줄 수 있냐고 물으니 받아 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길에서 뭔가를 찾는 아이가 있어서 길을 유심히 보며 걸었더니 노란 카드가 보여 아이를 불러 찾는 것이냐고 물어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문득 오지랖이라는 게 생각이 났습니다. 한복의 앞 옷섶이 길고 넓어 지나가며 상을 쓸고 다닌 것에서 유래했다는 오지랖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에 묻은(특히 이성) 이물질이나 셔츠 엇갈린 단추나 열린 바지 지퍼에 대해 알려 주는 것은 오지랖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이미 건너고 있는 보행자를 건너도록 뒤에 차가 있어도 기다려 주는 것이나 뒤에 오는 사람이 먼저 지나가도록 출입문을 잡아주는 것 따위는 오지랖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버스를 타고 나갔다 왔는데 버스를 앞에서 타려고 하던 40 안팎의 여자가 뒤에서 타려는 나를 먼저 타라고 하는 건 오지랖이고 버스 뒷문의 뒤쪽까지 들어와서 앉은 할머니의 버스비를 다신 받아서 앞의 돈통에 넣고 온 것은 오지랖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일을 한 사람이 한 것을 오늘 경험했습니다. 

  해당되는 것인지가 절대적일 수는 없을 것이고 상대방이 고마워 하는지가 그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최소한 이것은 있습니다. 오지라퍼는 이런 모두, 그러니까 자신이 볼 때 바로 잡으면 더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은 참견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과 동네 소식통, 홍반장, 영웅은 동일합니다.

2024-04-29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원 배분

   대한민국의 의회 선거는 소선구제입니다. 한 지역구에서 한 명을 뽑는 것입니다. 이게 승자독식만 문제인 게 아니라 거대 양당체제를 유지하고 그 외의 정당이 의원을 만들어 내는 게 거의 불가능한 현실을 만들어 내는 제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비례대표제 입니다. 의원을 뽑을 때 정당에도 투표를 하게 해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의원을 배분하는 거지요. 그래서 지역구 당선이 되지 못해도 단 3%(현 대한민국 제도상)만 되면 비례의원을 배정 받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이 제도를 도입한 나라에서는 비례 제도가 반영이 되는 것이 미미했고 연동형을 적용하려고 보니 기득권을 가진 양당이 비례의원을 가져 오는 몫이 적어지니까 준연동형으로 하여 비례 47석 중 30석만 연동형으로 하고 17석은 병립형으로 한 것이 21대 선거였습니다. 그래서 일부 의석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한 두 거대 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비례대표 선거제의 의미를 거의 의미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10석 이상을 바라 보았던 정의당이 6석(5석+지역구1)만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짐은 내분이 있기도 했지만 계산법들이 서로 달라서 선거법에 대한 논의를 하자는 민주당의 요구를 무시했고 결국 22대도 21대와 마찬가지의 준연동형으로 치루었습니다. 지도부는 반대가 그들의 입장이었는데 계산법이 복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쉬운데 왜 어렵다는 건지 수학식으로 만들어 보았더니 이랬습니다.


  말로 설명하면 아주 쉬운데 신기하게 수학식으로 만들어 놓으니 많이 복잡해 보입니다. 실제로는 쉽습니다. 하나 달라진 게 있는데 지역구 인구수 규정에 따라 줄어야 할 것을 줄이지 않으면서 비례에서 1석을 가져 가서 이번 선거는 비례가 47석이 아닌 46석이었습니다.

국민의 짐은 21대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36.67%로 18석을 가져 가고 민주당은 시만사회와 일부 3지대 조무래기들과 함께 연합 정당을 만들어 26.69%로 14석(시민2+기본소득용혜인, 사민당 한창민+진보당2+8)에서 시민 추천 2인은 나중에 민주당으로 갔습니다. 추가로 조국혁신당 24.25%로 12, 개혁신당3.61%로 2석을 가져 갔습니다.

산에 다녀 오기

   운동을 3일 정도만 하지 않아도 몸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니까 비 오는 날 산에 가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등산화 있겠다 우산 쓰고 가 보자 그래 보았는데 할 만 한 겁니다. 많이 오면 바지에서 흐른 물이 등산화에 들어 가기는 하지만 이젠 비가 와도 산에 갑니다. 



2024-04-26

속임

   기술의 발달이 사람들의 일을 빼앗아 가는지에 대한 입장은 종교에 대한 입장처럼 완전히 반대의 입장을 보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풍요롭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걸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고 여러 면에서 기득권자들입니다. 나는 그것이 빈자들을 양산하고 가진 자들과의 물질적 소유의 격차를 심화시킨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는 발전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임에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피해를 입는 사람들 대다수는 사기꾼들의 거짓말을 믿습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많이 빼앗을 것이고 인공지능이 어마어마하게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건데 사람들은 그것들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금방의 두 가지는 그나마 조금 가진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지만 산길까지 들어와 삽질을 하고 간 포클레인은 아무 기술도 없고 단지 삽질할 힘만 있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았습니다. 내가 아침에 다니는 길을 이틀간 보수 했는데 사람이 한다면 열 사람이 십일도 넘게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난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세상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벚꽃

   요새 차분히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오전 운동, 점심 먹고 오후는 도서관의 생활이 완전히 정착이 되다 보니 그렇게 되네요. 물론 저녁은 편하게 늘어져 텔레비전 보니까. 그래서 글감으로 찍어 두었던 걸 이제사 올립니다. 아침 등산을 시작하는 길의 모습입니다.



생각의 콘크리트화

   내가 사람들, 그러니까 동료교사와 학생들에 환멸을 느끼고 정년을 2년 앞두고 그만 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은퇴식을 만들어 주니 식사 자리를 만들어 주니 했을 때 내가 한 말이 있습니다. 정년도 마치지 못한 교사가 무슨 축하 받을 일이 있겠냐. 모든 걸 다 거부 하고 친목회에서 주는 규정상의 돈만 받았습니다. 그런데 뭔가를 쥐어 줘서 한참 뒤에 뜯어 보았더니(이혼과 분가가 함께 있어 정신없어서) 송공패였습니다. 참으로 낯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 교사로서 전공인 수학을 가르치는 거나 학생들에게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친 건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동료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주는 송공패는 역겨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기만 하면 주는 근정녹조훈장도 마다한 사람입니다. 이걸 어떻게 할까요.



2024-04-15

공정성과 객관성

   하나, 공정성과 객관성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지만 항상 붙어다니는 말입니다. 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항상 이 두 가지를 잘 유지하여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셋, 이 둘은 갖기 어렵기 때문에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또한 모든 사람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넷, 사람들은 다수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그 두 가지의 가치를 담보한다고 오해합니다. 다섯째, 이 두 가지의 가치는 '정의'라는 가치 만큼이나 이미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일 뿐 아니라 편파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시류성을 가진 사안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 짐이 선거 후에도 하는 거 보면 그 당을 움직이는 지도급이건 당선자건 탈락자건 그 당 후보를 찍은 사람이건 모두가 자신들에는 문제가 없었고 다른 당 후보를 찍은 것들이 최소한 머리가 빈 것이고 실제로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민주달도 똑 같은 경우입니다. 지난 대선이 끝나고 선거백서 작업을 하였는데 그 결과를 제대로 언론에 내어 놓지도 못했습니다. 살짝의 내용이 이틀 동안 흘러 나왔는데 완전히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작업을 했던 사람들도 입밖에 내어 놓지 못했습니다. 민주당 이야기 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겼으면 잘 한 것일까요? 두고 보아야 합니다. 대선에서 자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훼방 놓았던 세력들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당의 편? 절대 아닙니다. 대학 다닐 때 정치를 모르던 때 한 번 찍은 거 말고 한 번도 찍은 적 없습니다.

  방향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겸임이라고 해도 자신의 전공을 개론 수준으로만 알고 있긴 해도 사실만 참고하고 해설은 배제하면 되니까 손에 잡히는 경제 플러스를 거의 빠뜨리지 않고 듣습니다. 아침에 하는 이진우의 프로그램도 이진우의 해설만 배제하면 따끈따끈한 경제 소식들을 듣고자 그것도 듣습니다. 오늘은 전 번 주의 것 중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의 말로 들었습니다.

  이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것도 없습니다. AI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은 장차 인류에 좋은 방향으로 광범위하게 쓰일 것이고 직업을 잃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다른 대체 할 수 있는 직업을 찾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말이 말로서 성립하지 않는 궤변도 아닌 선명한 거짓말입니다. 로봇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군소리 없이 시키는 대로 하고 복지혜택 없고 휴게 시간도 없고 주 52시간도 지키지 않으려고 로봇을 쓰는 것 아닙니까. 위험한 일을 대신하게 한다구요? 이 교수는 소방관이 훌륭한 일을 하는 데 위험한 일에서 벗어나게 로봇이 대신하도록 한답니다. 경찰이나 군인두요. 세 직업은 다른 거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얻는 '근사해 보이는'직업인데 그거 관두면 뭘 해먹고 살까요? 거기에 가치의 문제를 하나 해 볼까요?

  자율주행차의 가장 큰 문제는 의외로 가치의 문제였습니다. 원래는 심리학과 사회학에서 고민하던 문제였습니다. 기관사가 기차를 몹니다. 가야 할 선로에 사람들을 가득 실은 버스가 멈춰 있습니다. 선로를 바꿀 수 있는데 그 선로에는 마침 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그 기관사는 선로를 바꾸는 것이 잘 한 일일까요? 보통 처음엔 사람들은 한 사람의 생명과 여러 사람의 생명을 두고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주면 선로를 바꾸지 않으면 그냥 사고지만 선로를 바꾸면 자신의 판단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바꾸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자율주행자동차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을까요? 앞에 돌발사태가 났는데 그대로 진행을 하면 다수가 죽거나 다치는데 그걸 비키면 주인이 심하게 다치는 상황일 때 어떻게 대처하도록 프로그램해야 하는 가에 대한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차를 만들어 파는 회사에서 주인을 보호할 것이 우선인지 사회적인 관점의 판단을 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이건 그 어떤 제작사에서도 명확한 대답을 내어 놓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을 우선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차를 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소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차가 돌아다니는 것은 대량의 살상을 할 수 있는 흉기가 돌아다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인공지능이나 로봇을 만드는 사람들은 일자리의 문제나 도덕적인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다고 근거 없이 주장하고 기계화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함께 믿고 있구요.

우리말 바로 쓰기

   우리나라 사람들 말도 겁나게 유행을 탑니다. 기수와 서수를 몰라 '하나도 모른다'를 '일도 모른다'로 바보처럼 사용한 검은머리 외국인(헨리)의 말이 지금은 공중파에서 진행자들도 쓰며 뉴스에서 돈을 꾸는 게 아니고 빌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