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2

상나라를 부정한 이유

   내가 공부한 바에 의하면 중국의 국가의 시작은 상나라인데(하나라는 아직 신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사마천도 그랬고 공자도 그랬는데 주나라의 예와 법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나라가 깨지면서 춘추전국시대가 왔고, 전국 일곱 나라를 진의 정이 통일하여 China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진나라를 세우고 기원전 221년에 세운 통일국가는 기원전 206년에 무너지고 이 해에 한나라 세우고 기원전 202년 초나라를 파하고 통일을 이룹니다. 공자는 춘추시대 말기의 사람이고 사마천은 기원전 100년 경에 활동한 사람입니다. 그 두 사람이 중국의 고대 역사와 철학을 확립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니 중국에서 상나라와 주나라에 대한 논쟁은 없습니다.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중국에 역사 내내 상명하복이 제일 중요한 가치입니다. 기존의 나라를 뒤엎고 새 나라를 건국하려면 확실한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상나라의 주왕이 달기와 놀아나고 주지육림에 충신들을 죽인 것으로 기록이 되었는데 그건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 이야기 입니다. 역사를 모르더라도 중국의 고대국가 하, 상, 주의 멸망에 모두 '주지육림'이 등장합니다.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쉽게 보이는 것이지요.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진나라가 통일하고 '진서'외에 다른 역사서들을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찾아 불태웠고 그래서 서쪽 변방에 찌그러져 있던 진나라 역사서만 남아 사마천이 참고한 것은 중원의 정보가 희박한 것들이었고 그의 편협한 생각으로 그런 소설을 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의 상나라 정벌을 목숨을 걸고 막은 것과 상나라 정복 후 상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파견했던 왕족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 등이 그런 의심에 합리성을 더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나온 책 '상나라 정벌'이라는 걸 보니 앞뒤 맥락이 연결이 되었습니다. 상나라 내내 순장은 약과였고 점을 치는 내내 엄청난 사람 제물을 썼다는 것입니다. 심지에 희생을 먹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먹은 것은 한참 뒤인 송나라 때의 소설에서도 보이지만 여튼 새로 들어선 주나라는 식인 뿐 아니라 희생을 사람으로 쓰는 것을 엄히 금했을 뿐 아니라 술도 금했답니다. 술이 점과 제사에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점을 치는 것을 금한 것은 아닙니다. 주역이라는 게 기존 점친 것을 정리한 것을 주나라의 '서백(문왕)'이 상나라 주왕에게 붙잡혀 감옥에 있을 때 공부하여 정리한 것이고 그래서 '주나라의 역서'라는 뜻으로 주역이 되었기 때문에 상나라의 점을 치고 그 결과를 해석하는 것은 이어 받았고 해석을 달리한 것입니다. 여튼 사람을 희생으로 쓴 것이 미개한 문명으로 인식이 되었던 것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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