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원없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전교조만 아니라 민노당 한참 날리던 시기 잘리는 거 걱정도 하지 않고 지구당 교육위원장가지 했습니다. 물론 내 수업은 항상 준비를 많이 했고 일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했습니다. 전교조 건으로 거의 매일 싸우면서도 교장선생님은 내게 보내는 애정은 끝을 모르게 있었습니다. 내게 은인입니다. 김학근 선생님. 교육청에 컴퓨터 강사 자리를 마련해 주셨고 교육부지정 연구학교를 가져 오셔서 너를 보고 가져왔으니 네가 주무 주임(부장의 과거 직위)를 맡아야 한다며 '자리 맡겨 입을 막으려 한다'고 거부하며 대드는 나를 결국 설득하셔서 2년 동안 교육부지정 인성교육 시범학교를 전국 돌며 자료 모아 열심히 했습니다.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것을. 일주일 출장을 다녀왔는데 내가 없는 줄도 동료들이 몰랐다는 것. 그 뒤부터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출장이고 연가고 가지 않았습니다. 내 존재가치는 항상 자리 지키고 있을 때 유효하기 때문에.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내가 공부하는 것과 아이들과 운동을 하는 것 모두 아이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정도로 깊이 해야 한다는 것도.
개도에 들어갔을 때 5명의 교사가 10개의 과목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자기 과목에 다른 과목을 추가해야 했습니다. 처음 왔다고 생각해서 도덕과목을 내게 주었습니다. 예전 경기도에서 교사들이 따로 교재를 만들었다는 기억에 그 책을 찾았는데 두 달 걸려 내 손에 들어왔고 모든 시간을 토론수업으로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시험이 있기 때문에(시험지는 대외적으로 공개) 어쩔 수 없이 시험 대비 예상문제를 주고(문제은행식으로) 수업과 별도로 시험 대비를 했습니다. 너무나 힘들었고 한 학기만 하고 지원 요청을 했는데 다른 선생님들은 꿀과목이어서 쉽게 해결 되었습니다. 그대신 다른 사람들이 극도로 기피하는 체육을 받았는데 최고였습니다.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게다가 옆 초등학생들까지.
얼마 전부터 일을 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생겼습니다. 다 임용시험이 아닌 임용고시를 보고 들어 오신 고시 패스하신 분들이 교직을 채우면서 부터입니다. 학교 오디오 시스템 관리 책임입니다. 기술과 아니면 과학과가 맡아 왔는데 모두 맡지 않겠다는 겁니다. 기껏해봐야 교사는 시종시간 입력만 책음을 지면 되는 것을. 그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닙니다. 교무행정사가 생기면서 해결 되었으니까요. 한문이 큰 문제였습니다. 국어과가 맡아 왔는데 거부하기 시작한 겁니다. 어차피 모두가 한자 공부를 한 적이 없는 세대가 된 것입니다. 그들 주장도 일리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다 같은 조건이면 문과의 우두머리 과목이 맡는 게 나을 건데 싸움이 계속 되니까 결국 거의 모든 학교에서 선택과목에서 한문을 빼고 아무 쓸데 없는, 가르칠 것도 없는 환경과목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자신을 써줄 때 행복한 건데. 참, 난 개도에서 한문도 가르쳤는데 아주 즐겁게. 돌산에서는 체육과가 체육관이 아니라 공식 명칭이 대강당이니 자신이 체육관 관리 책임이 없다고 열고 잠그는 것 하지 않은 놈도 있었습니다. 거기서 수업 다 하고 내가 방과후 시간 함께 쓰자고 하지 안된다고 했던 정씨 그 놈이 말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는 교사들이 이 땅의 미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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