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상은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이 됩니다. 기독교는 신이 있기 때문에 믿음, 소망, 사랑 중 으뜸이 사랑이라고 했지만 인간들의 세상은 단연코 믿음이 최우선입니다. 그게 없으면 인간은 집단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육이란 건 과거의 지식을 전수 받을 뿐 아니라 세상을 사는 도리와 또래 인간관계의 형성을 배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사꾼 대통령이 들어서면서부터 교육의 현장에 수요와 공급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되었고 배워야 하는 세 가지 중 지식만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굳이 학교가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고 지금은 그래서 학교를 보내는 것은 제도 때문일 뿐이니 지식은 학원에서 질 높은 것으로 채우니 학교는 오바하지 말고 온전히 잘 데리고 있다가 집으로 보내 주기만 하면 된다고 대부분의 학부모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체험학습? 가족여행으로 이미 다녀 왔으니 굳이 갈 필요도 없고 일단 간다면 학교생활기록부에 잘 써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학생에게 들었던 게 충덕으로 기억하니 15년 쯤 되었겠지요. 여행과 체험학습을 동일시 한다는 걸 듣고 놀랐습니다. 곰곰히 생각하면 그것도 지식의 관점에서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출발은 학교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생각이 이미 달라졌고 단지 지식만 중요하다면 그건 학원에서 채웠으니 학교교육은 필요 없고, 교사의 질도 학원강사의 수준보다 낮다. 제도상 어쩔 수 없으니 보낸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입시위주의 대안학교나 홈스쿨, 검정고시로 대학 준비한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안다면 어떤 반대도 무릅쓰고 입시제도 바꾸어야 합니다. 전교조 출신의 교육부장관이 되었어도 정치운동만 했지 교사로서 얼마 재직하지 않아서인지 하는 짓마다 푼수짓만 하고 있습니다.
9년 전인가? 개도에 있을 때 수학여행은 처음으로 해보는 싱싱한 그리고 신나는체험학습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그고 싶은 곳을 추려 체험 계획을 세운 뒤 함께 모여 수정해 가며 함께 갈 사람도 묶고 지역도 일부 묶을 건 묶어 따로 또 같이도 하는 식으로 서울 세 묶음, 강원 한 묶음으로 갔습니다. 나는 한 아이와 서울 1, 강원 2(자전거), 서울 1로. 아무리 남자 아이여도 신뢰가 없으면 될 수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게다가 춘천 갈 때는 남이섬인가 자라섬인가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춘천까지 갔다 서울로 복귀했으니 그 아이 부모가 전폭적으로 교사를 믿지 않으면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교사와 학교를 믿지 않으면 체험학습을 가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일입니다. 밖을 나가면 당연히 위험 요소가 늘어나는 것이고 학생들 나이 때는 어리다고 덜하고 철들었다고 덜하고 없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은 초등학생은 뭘 몰라서, 고등학생은 술담배와 이성을 찾아서 밤새 지켜도 사고를 냅니다. 그런데 세상과 담을 쌓고 책만 보는 판사들이 내린 똥보다 못한 판결은 이런 학교 상황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입시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모든 수련활동과 체험학습은 가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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