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7

만주 이야기

   사진과 글 잘하는 사람의 또렷한 특징은 세심함도 화려함도 아닙니다. 경험자만 동의할 수 있는 그들의 큰 능력은 소재를 찾아내는 것과 제목을 붙이는 것입니다. 무엇을 그리고 무엇에 대해 쓸 것 인지를 잡아내는 것이 가장 큰 능력이고 그것에 제목을 붙이는 것이 뒤따르는 능력입니다. 제목이 그 사진과 글의 성격을 거의 규정짓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과학저과학'이 고맙습니다. 초등학교, 그것도 저학년 수준에게 맞을만한 그런 강연을 하거든요. 이야기의 방향도 그렇고 깊이도 없는 이야기들이어서 바로 잡기도 하고 중심을 제대로 잡기도 하는 글을 몇 개 써보려는데 먼저 만주 이야기입니다. 6월12일 방송분입니다. 방송을 듣고 비교하면 더 재미있겠지만 내 글만 보더라도 만주에 대한 정보는 충분할 것입니다.

  나무위키의 지도에 지도 이해에 필요한 지명은 내가 추가로 한글로 덧붙였습니다. 중국의 지명은 학교 다닐 때는 우리 한자음으로 배웠는데 중국의 지명과 인명에 대한 원칙이 얼마 전에 정해져서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그 전의 이름은 한자로 그 후의 것은 현지음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명 같은 경우는 꽤 낯설어 한자음으로 병기한 것입니다. 지역은 동북삼성이라고 하는 허베이, 랴오닝, 지린성의 범위에 내몽골이 더해진 지역을 만주라고 합니다.

  먼저 만주라는 이름을 따져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사책 어디에도 없던 이름입니다. 검색해 보면 억지로 갖다 맞추려는 시도들이 있지만 동북공정처럼 억지입니다. 언제부터 등장한 지명이냐면 청나라 초기에 갑툭튀합니다. 방송은 어물쩍 처리합니다. 강연자가 모른다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접수한 건 다른 왕조의 성립보다 더 드라마틱합니다. 누르하치가 금나라를 세웠는데 그 전에 그 지역을 기반으로 거란족이 세웠던 나라도 금이었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하여 후금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아들 홍타이지가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이자성이 명나라를 거의 다 삼켰는데(1644년 북경 점령) 청나라가 끼어들어 접수해 버린 겁니다. 명나라의 저항이 심했고 1683년에 이르러서야 명나라가 완전히 망합니다. 그 과정에서 황족들을 포함해 한족들을 대거 잡아가 노비(위키백과 표현. 내 판단은 노예임)로 삼았으며 학족을 대거 학살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양주성(1645년) 10일 동안 80만 명, 광저우(1650년) 10만 명 이상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한족들은 청나라에 이를 갈았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기를 반청복명. 인조가 청나라를 끌어들여 국토를 유린하게 한 바로 그 정책. 거기에 그들은 오랑캐입니다. 바로 동이족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한 건데 그건 만주라는 이름 다음에 하겠습니다. 인구가 100분의 1정도에 불과한 청나라는 과거시험에도 참여하지 않은 한족을 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소설 강희대제에서 보면 드디어 만주라는 이름의 등장이 어떻게 된 것인지 나옵니다.

  한족들이 청나라를 건국한 여진족에 이를 갈았습니다. 여진족이 갑자기 튀어 나왔지요? 예, 바로 지도에 보이는 지역이 여진족의 근거지입니다. 그것도 이따. 청나라 정부에서는 한족들의 여진족에 대한 원한을 덮기 위해 북경을 점령한 것도 명나라를 망하게 한 것도 이자성이 한 것이고 자신들은 이자성을 때려 부신 것이라고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리고 여진족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만주족이라고 자신들을 부릅니다. 여기서 만주라는 이름이 갑자기 튀어 나온 것입니다. 전에 어떤 역사서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지역의 이름.

  이 지역은 요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문명입니다. 요하는 남북으로 뻗어있어 그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라고 합니다. 드디어 익숙한 지명이 나오지요? 명나라는 1368년 주원장이 세웠습니다. 이성계는 요동정벌을 하라고 보내니까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면 안된다며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1392년. 명나라는 아직 나라를 제대로 추스리지도 못한 상태였는데. 그래서 공민왕이 이때다 하고 요동수복을 명한 것이었는데. 그러니까 요동을 우리의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땅은 아니고 고려의 땅.

  우리가 학교에서 고구려라고 하는 이름은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성립하고 장수왕대에 고려라고 부릅니다. 그 땅의 영역이 요동 뿐 아니라 요서까지입니다. 내몽골 아래의 요하지역 대부분입니다. 부여에서 독립하여 나오면서 한 갈래가 서쪽의 요하지역, 다른 한 갈래가 남쪽 한반도로 내려 온 것이지요. 더 올라가면 고조선에 이릅니다. 그 이름도 원 이름은 조선입니다. 이성계가 세운 이름이 조선이어서 구분을 위해 후대에서 고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고조선의 영토가 또한 이 지역입니다.

  그래서 고려(고구려)가 한민족이고 그 뿌리가 고조선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여진족과도 다르지 않으며 말갈족과도 같이 섞여 살았고 요나라를 세운, 그 전에 금나라였던 거란족과도 영역이 겹친다는 것. 한반도에 사는 사람을 북방계와 남방계로 구분하듯 신체를 보면 제법 눈에 띄게 다른 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봐야 지금은 영남과 그 나머지로 구분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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