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방송에서 일요일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학벌, 학력에 대해 그것이 갖는 병폐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한진중공업 김진숙씨의 책에 나오는 '학번' 이야기를 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그걸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단 그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그는 노동운동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자신에게 '몇 학번'이냐고 물었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나중에 동료에게 물어서 알게 되었는데 그게 차별의 언어였다는 걸 알았지만 밖에 내어 놓고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있다가 수십 년이 지난 이제사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학번' 이야기를 모른다는 게 이해되지 않고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사회성에 심각한 폐쇄성이 있다고 보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인데 별로 중요한 것 아니니.
방송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학출'에 대해서 아주 간단히 넘어가는데 먼저 이 학출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학생운동출신'의 줄임말입니다. 80년대 대학생들이 '현장 속으로'라는 기치 아래 주로 학업 중 잠시 중단하고 노동현장에 잠입했던 걸 말합니다. 지금도 생산직은 거의 모든 곳에서 대졸자를 제외하고 초급대학까지만 입사를 허용하는데 학력이 낮은 사람들을 보호하려 한 게 아니고 바로 대학생들이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성을 교육하고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기업 정책입니다. 이번에 하이닉스가 모든 영역에서 학력 제한은 푼다는 게 뉴스로 나올 정도입니다.
이 학출들은 당시 계열에 따라 엔엘과 피디 계열로 대별 되는데 피디는 노동운동을 도구로 쓰지 않고 노동해방 자체가 목표였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엔엘 계열들은 통일이 목표이고 그러고 나서 노동관련 문제점을 개선하자는 것이어서 노동운동, 노동조합을 수단으로 보아서 말썽이 많았습니다. 일단 그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규정하지 않고 '학출', 그러니까 평등한 동지가 아닌 많이 배운 대학생이 지도해서 깨우치게 하는 위치로 자리매김을 한 것입니다. 전투이건 전쟁이건 목숨을 걸었을 때는 명분은 뒤로 실리를 앞에 세워야 하는데 후퇴하며 얻을 것을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무조건 투쟁을 외쳤습니다. 그걸로 감옥에 가는 것을 '별을 다는 것', 그러니까 영웅적인 행동으로 추앙을 그들 속에서 받았고 출소하면 바로 학교로 되돌아 가서 가슴 벅찬 영웅담을 가지게 되고 많은 이들이 그걸 바탕으로 정치권에 대거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그들을 멸칭하여 부른 게 학출이었는데 방송에서는 무식하게...
학출이 대학생 출신 노동자로 출신 구분이었다면 일반적으로 회사 입사를 할 때는 '대졸자'라는 출신이 사무직을 지원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출'자가 붙은 또 하나, '선출'이 있습니다. 배구 경기 나가면서 듣게 되었습니다. 전국대회 규모의 배구대회(아마추어)가 열리면 실력자들을 보게 됩니다. 선수출신. 그들을 줄여서 부른 말입니다. 경기에 따라 선출의 숫자를 제한하는데 보통 2명 정도로 합니다. 아마추어는 9인제이지만 2~3명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선출의 숫자는 아주 중요합니다. 현재 프로 리그 농구, 배구, 축구에서 외국인 용병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 보면 비슷합니다. 아시아쿼터로 제한하지 않은 용병 둘이 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해당 협회에 선수로 등록된 사람은 말하고 중학교까지는 여기서 말하는 선출이 아닙니다.
또 하나는 아주 심한 차별의 언어, 적출과 서출입니다. 적출은 적녀(정실)이 낳은 아들과 딸입니다. 그런다는 말은 조선시대 법률인 경국대전에 '일부일처제'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민 여자에게서 낳은 자식을 서자, 노비에게서 낳은 자식을 얼자라고 했습니다. 합해서 '서출'이라고 했구요. 거의 모두 알다시피 홍길동을 통해 차별을 받은 걸 배웠지만 그걸 지은 허균과 누이 허난설헌은 그보다 더한 차별로 인한 고통 속에 죽었다는 것은 따로 공부를 더한 사람들만 아는 일입니다.
'출'자가 붙지 않으면서 구별이나 차별을 하는 것들을 보면. 헌재에서 위헌 판결이 나기 전까지 꽤 큰 차별, 군필과 미필. 군대 다녀 오지 않으면 외국 여행에서도 제한을 받았고 거의 모든 직장에서는 남직원은 군필이 조건이었습니다. 군필에서도 보충역(이름하여 방위, 지금은 사회복무요원)은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낭도에 근무할 때 모두가 모인 저녁 술자리에서 박영식이 내게 '저 방우 나온 놈은 여그 낄 자격 없어. 쩌리 가'라는 말을 반복했다가 '방우 나온 새까만 후배'에게 '기껏 하사 출신'인 선배가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형님은 군대가 그렇게 좋은 곳이믄 아드님 꼭 군대 말뚝 박으라고 허시요'라는 말. 그런데 그 인간 그 말을 듣고서는 불끈 일어나 '이노무 섀끼가 어디 악담을 허냐'고 하더라구요. 참으로 사회선생이란 놈 머리가 그 모냥이어서 쥐어 패버리려다 참았습이다. '방우'는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한 모멸적 언어였습니다.
이런 제도적인 것 뿐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우주 심한 차별이 있습니다. 그냥 외모에서 나타나는 차별이 있는데 아주 막강합니다. 지독한 거지요. 유색인. 이름 자체도 올바르지 않은 나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인이 어디 있습니까. 전부 핑크색입니다. 백색으로 우아하게 변색했습니다. 미국 가면 흑인들이 아시아인 멸시하듯 한국에서는 꼴에 흑인들, 그 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그을린 피부색을 가진 아시아인들을 멸시합니다. 참으로 같은 피부색과 생김새를 가진 사람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차별적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면서 기분 나쁜 정도인 것도 있습니다. 종교인, 혹은 무교. 옛날에는 학년 초에 자기소개서에 '종교'란이 있었는데 생활기록부에 기재 칸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무교'란 게 있어서 무슨 뜻인지 한참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종교가 없다는 걸 인정할 수 있었던 교사가 적어 넣은 것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스스로 종교가 없음을 무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종교를 가진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데 그 반대로 인식하게 만든 건 서양 중심의 교육을 받은 무식한 교사들이 종교까지 서양종교를 가지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봅니다. 불교마저도 중국과 한반도에서는 서역종교라고 꽤 오랫동안 배척했던 것도 모르는 무식한 이들.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그걸 돌파하기 위해 민간에 뿌리 깊게 이미 자리하고 있던 도교의 많은 것을 도입하면서 비로소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거의 모든 절간에 '신선각'이 있고 하얀 머리와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가 호랑이 옆에 앉혀 놓은 게 가장 큰 증거입니다. 신선이 도교에서 온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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