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번 주 노시니어존 논란이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테이블 둘 놔둔 카페에 노인 둘이 들어와서 여주인을 성희롱하는 말들을 하여 그걸 붙였다고 합니다. 논란은 그 둘의 문제를 일반화하며 노인 전체를 들어 오지 못하게 하는 게 맞냐는 것입니다.
노키즈존처럼 주인의 선택권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간단히 생각했는데 논란이 있다 보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차별'과 '제한'이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즘 광고를 듣거나 보면 무엇을 팔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아이뻐' 광고입니다. 처음엔 상당히 나를 아예 무시한다는 생각에 불쾌했는데 더 생각해 보니 그 회사가 돈 잘 버는 이유가 있다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나 같은 사람들, 유행에 따라가지 않고 나이 든 사람들은 광고해 보았자 사지 않으니 살 만한 사람들에게 집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파는 사람 마음인데 만약 피부에 색깔 들어 있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고 붙이면 큰 문제가 되는 차별입니다. 그러면 요즘 유행하는 부킹 해주는 카페는 32살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주민등록증 확인한답니다. 이것은 수용할 수 있는 제한일까요 차별일까요. 제한의 이유가 합리적이면 차별이 아니라고 하는데 '합리성'이라는 것의 善意를 항상 확신한다면 '철학의 유아단계'에 불과한 서양철학조차도 공부가 덜 된 수준의 생각입니다. 이것이 서양철학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한계인 것입니다.
사유가 필요한 대상을 잘게 분석해서 가름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부딪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고자질'과 '신고정신'이 공공을 위한 것의 여부로 구분이 된다고 생각하는 수준과 똑같이 '제한'과 '차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 일들에 대한 내 생각은? 세상의 어떤 모임도 모임의 구성 목적과 대상을 회칙에 적시하듯 배제가 전제입니다. 정치적으로 뜻이 다른 사람들이 정당에 들어오니 정당의 색깔이 혼탁하고 쟁책이 잡탕이며 당 지도부를 적군과 같은 논리(되지도 않는)로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모두 인정하는 자세, 그것이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자고 하면서 자신을 중심으로 뭉치자고 하는 것이 전체주의, 딱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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