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유독히 동종간의 교류가 중요합니다. 좀 더 발달한 '언어'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단순한 몇 개, 혹은 더 나아가 몇 백 개의 단어로 의사소통을 한다면 그 사회에서는 소통이 잘 되지 않아 갈등이 생기는 일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더 함축적이고 비유적일 것이니 더 많은 소통의 오류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 정도의 언어로 소통하는 사회가 얼마나 단순하게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사는 사회인지를 빼놓고 생각하는 것일 겁니다. 정치는 이미 빼 놓았지만 아마 경제가 중심이고 사회는 아주 단순한 구조일 것입니다.
새로운 집단과의 교류가 생기고 여러 방면에서 충돌이 생기면서 집단의 규모는 점점 커져 국가가 되면 한 가지 현상에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는 집단들이 여럿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회는 이미 개인들의 관계도 많이 복잡해져 있을 것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언어의 환경.
며칠 전 MBC 캠페인 '잠깐만'에서 작가라는 사람이 자신이 소설을 읽을 때 빨리 읽고 싶으면 대화만 읽어도 충분히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해서 '어? 그게 가능'의 생각과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천재소독비'를 떠올렸습니다. 이 소설은 작가가 친절하다기보다 독자의 생각 능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는 생각이 들게 저간의 상황을 아주 상세히 설명을 해서 앞의 상황이 이해가 되어서 어떤 대화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이 되어 그게 맞으면 그 부분의 해설 장면은 지나가고 그 부분만 대화만 읽으며 지나갑니다. 그런데 일부만 그렇게 읽습니다.
사람들이 사람들 속에서 잘 살고 있는지를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로 판단을 합니다. 아는 체하는 많은 지식인들, 의사, 심리학자, 사회학자 뭐 이런 사람들이. 그런 걸 보면서 이 사람들이 사람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지점의 거의 큰 부분이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이 중요한 걸 알면서 무시하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학술적'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결론을 미리 내어 놓고 데이터를 맞추는 것이지요.
인터넷 뉴스에 유시민이 '친구가 적은 게 잘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기에 검색을 해보니 동영상 자료가 있었습니다. 올 초에 한 말이었는데 자신의 처지가 바뀌면서 그 동안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다 떨어져 나가고 그것을 극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사람은 늦게라도 그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59년생이니 60 후반에 알게 된 것이지요.
관상이 공부하려 하면 책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배운 것 중 입술은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윗입술이 자신에 대한 사람, 아랫 입술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난 나를 보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내내 이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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