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republic이라는 정치체제가 들어 왔을 때 어떻게 그것을 '공화정'으로 번역하였을까요. 이 단어는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이 단어가 발생한 시기는 주나라 말기이고 그것을 기록한 사람은 사마천입니다. 주나라 10대 여왕厲王때 이미 망국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폭정을 했고 그 유명한 말, 중구난방衆口難防이 나와 결국 쫓겨 납니다. 그리고 13년 동안 두 명의 公(주공, 소공)이 통치를 했는데 이것을 사마천이 '공화시대'라고 이름하였습니다. 그런데 위나라의 역사서인 '죽서기년'이 한나라 시기에 발견이 되었는데 당시에는 인정 받지 못하고 '위서' 대접을 받았지만 후대에 이르러 사마천의 '사기'보다 진실에 더 가까운 기록으로 인정 받습니다.
거기 기록은 공백화共伯和가 다스렸다고 나오니 여기서도 사마천의 잘못이 드러납니다. 앞의 글에서도 작위를 언급했는데 공백화는 '공백+화'로 공나라 백작, 그 이름이 화인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용케도 뜻이 어쩜 그렇게 들어 맞았는지 그걸 거기에 쓰게 된 것입니다. 共은 두 개의 손이 그릇을 위로 받치고 있는 모양으로 '함께'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和'는 당시 악기였던 여러 개의 피리를 묶은 모양으로 '조화롭게 어울리는'것을 뜻하였으니 딱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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