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4

주나라가 상나라를 정벌하고 나라를 세운 해를 1046년으로 특정한 근거

   역사란 게 기록이 있어야 하는 게 기본이고 기록이 있어도 신뢰할 만한 기록인지도 중요합니다. 기록이 있기 전의 시대를 선사시대라고 하며 유물을 근거로 추정을 합니다. 기록 이후는 서로 다른 기록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처럼 잔뜩 자신의 의견과 감정까지 들어간 기록일지라도.

  주무왕이 상나라를 정벌하고 새로운 나라 주나라를 세운 해를 사마천도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사기 주본기'에 해당日을 기록하였지만 해年를 특정하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갑자일로만 한 것입니다. 전에 이야기한 대로 과거에는 '해'를 시간으로 쓰지 않았고 날짜만 60갑자로 표현했으며 그가 '사기'를 쓰기 위해 참고한 것이 전국시대에 쓰여진 '상서 목서'(상서는 서경을 말함)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의 기록입니다.

  "무왕은 전차 300량, 군사 300명으로 주왕과 목야에서 싸웠다. (...) 때는 갑자일 새벽이었다. 무왕은 상나라 교외 목야에서 아침 일찍 이르러 맹세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1046년으로 특정할 수 있게 된 것은 1976년 '리궤利簋'가 발견 되면서 입니다. 궤는 의식용 청동기인데 리궤는 목야전투에 참가하였던 리利가 공훈을 세운 포상으로 왕이 하사한 동으로 제작한 궤로 4행 32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무왕은 상을 정벌하였다. 때는 갑자일, 새벽에 세歲와 정鼎의 의식을 거행하였다. 목성(원 글자는 夙星인데)이 중천에 뜬 것을 보고 전쟁의 승리의 계시라 믿어 출병하였다. (...) 왕은 리에게 포상으로 동을 하사하였고 이에 리는 청동기를 만들었다."

  여기의 기록 '갑자일'과 '목성이 중천에 뜬 날'이 겹치는 날을 찾아 1046년을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게 재미있는 건 몇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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