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6

정의란

   세상의 내로라 하는 명사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고 얼마 전에는 마이클 샌델이 두툼한 책을 내서 세계적으로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철학이라고는 공부한 사람이 없는 한국에서도 많이 이야기 되었습니다. 여기에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서 나도 숟가락을 얹겠습니다.

  의義를 먼저 분석해 보겠습니다. 양 양(羊) + 나 아(我)로 되어 있습니다. 앞에 살짝 이야기한 대로 我자는 창 과戈 앞에 날이 셋이나 더 달린 모양이었습니다. 갑골문은 이렇습니다.  羊은 우두머리(추장)의 깃털 머리 장식입니다. 해석을 하면 종족 내부의 결속을 도모하고 배신자를 응징하는 것을 정의로움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면 종족을 보아야 하겠네요.

  종족, 같은 무리의 시작은 族입니다. 가족에서 많이 보아서 좁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 글자의 뜻은 '겨레'이고 가족만 아니라 '민족'에서도 쓰입니다. 族은 깃발 언㫃 + 화살 시矢로 되어 있습니다. 화살은 대표적인 전쟁 무기이므로 한께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같은 깃발 아래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요즘 대통령과 새로 선출된 여당 대표가 운명공동체라고들 하는데 이합집산이 잦은 깃발 아래로 뭉친 사람들이라 그 표현이 맞나 모르겠습니다. 문자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혼자로는 생존할 수 없는 시기가 된 것이었고 깃발은 생사를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의라는 것은 운명을 같이 하는 무리들의 이익을 위해서 안으로는 결속을 도모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세력과는 대항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나는 해석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나의 정의가 모두의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철학적 고민을 해보지 않은, 그냥 이기적인 사람인 것이지요.

  전쟁에서 항복해 온 항장降將은 어떻게 할까요? 과거의 전쟁을 보면 항복한 군사들은 흡수하거나 수가 많으면 따로 부대를 편성해서 함께 하는데 장수는 다릅니다. 받아들여 긴하게 쓰기도 하고 배신자는 또 배신한다고 바로 베어버리기도 합니다. 義를 사실적으로 어떻게 볼 건지의 실천적 예인 것입니다.

  또 하나. 가족은 정치적 신념을 같이 해야 할까요? 부부가 각각 구김당과 민주당 소속이면? 부모와 자식이 그렇다면? 종교는요? 유일신 모시는 기독교는 당연히 같아야 하는 것이니 그것들은 빼고 다른 종교는? 가족이 族의 가장 기본 단위이니 당연히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폭을 넓혀 볼까요? 전에 이야기했던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와 한 약속은 지키는 것이 옳을까요 악마와의 약속은 파기하는 것이 옳을까요. 석가나 예수나 자신을 나쁜 길로 유혹했던 악마들을 굴복시켰다고 했지 죽이거나 파괴하진 않았잖아요. 그건 왜 일까요? 다양성을 인정해 다른 생각을 허용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렇게 사는 건 나쁜 것이라고 해도 되나요?

  나 자신은 어떻냐구요? 다음에 차분할 때 중국에서 성했던 세 개의 종교, 혹은 철학적 흐름, 집단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물론 답을 미루진 않습니다. 노자의 길입니다.

2024-07-24

무사武士

   춘추시대의 전투는 장수가 앞에 전차를 타고 나가 싸우는데 한쪽이 부상을 입으면 싸움을 그치는 방식으로 절제된 방식이었답니다. 춘추 후기부터 전투, 전쟁의 양상이 변하는데 보병이 등장하고 삼군의 전차, 기병, 보병에서 보병이 전투의 축이 되었답니다. 그 전의 싸움과 달리 처절하고 대규모의 희생자가 나오게 된 것이지요. 전투의 방식도 달라지고 무기도 달라지게 됩니다.

  원래 기존의 창은 모矛와 과戈였습니다. 익숙한 한자지요? '모순'에서의 '모'이고 '나 아我'자의 오른쪽에 있는 것이 '과'입니다.


  이런 모양입니다. 앞의 그림이 '모', 다음이 '과'인데 어디서나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는데 맨 오른쪽 모양으로 자루를 아래쪽에 매어 사용하였습니다. '모'는 단순히 찌르고 '과'는 당기면서 베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전쟁이 치열해지던 춘추시대 후반에서 전국시대로 오면서 보병 중심이 되니까 무기도 살벌해 집니다.


  '극戟'이라고 합니다. 위의 둘을 합해 놓은 것입니다. 살생을 극대화 하기 위한 것이고 그에 때라 전술이 복잡해졌다고 합니다. 손자병법이 나오게 된 것이지요. 이 시기에 맨 먼저 진晉나라에서 직업군인 제도를 시작했답니다. 당시의 신분이 '공경대부'의 귀족 혹은 관료 아래에 아직은 벼슬을 갖지 못한 '사士'  계급이 있는데 주로 이 계급에서 군인 즉 '무인武人'이 나오면서 '무사武士'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덧붙이자면 여기까지의 범위가 '국인國人'이고 그보다 성에서 더 먼 거리에 포로나 유민들이 거주하면서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여기를 '야野'라고 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을 '야인野人'으로 불렀답니다. 전쟁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결국 이들도 전쟁에 무사로 참전하게 되었구요.
  추가로 '我'자는 원래 갑골문에서 '과'의 왼쪽에 쇠스랑 모양의 삼지창이 달려 있는 것의 상형자였는데 뜻이 '나'를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데 누구도 어떻게 그렇게 변화가 되었는지 그럴싸한 설명이 없습니다.


  하나 더 추가로 '무武'자는 창(戈)과 발(止)이 합해진 글자로 창을 들고 걸어 가는 모습입니다. 인터넷 검색해 보면 止가 뜻이 '그치다'니 진정한 武는 전쟁을 그치게 한다는 둥(그 위대한 설문해자에) 똑똑한 체하는 글들이 있는데 '武'자에 보이지 않는 '삐침'획이 '戈'의 왼쪽 위에 작은 가로획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면 될 듯 합니다.

부합하다

   흔히 쓰이는 이 말의 어원을 오늘 공부했습니다.

  고대 제국에서, 통일제국 진나라 때부터 왕의 권한을 대신 주는 수단으로 부절符節 이란 걸 썼습니다. 주로 군사용으로 썼는데 '파경'의 거꾸로 버전 비슷한데 연인들이 많이 쓰는 어떤 징표를 두 쪽으로 나누고 합하면 완성된 물건이 되는 것처럼 왕권을 상징하는 것을 물건으로 만들어 두 쪽으로 나누었다가 필요할 때 합쳐 보아서 맞으면 왕의 명령으로 받아 수행하면 되는 것으로 이것이 '부합하다'의 어원이라고 합니다. 옥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대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符자의 머리에 대나무가 있습니다. 


  진나라 때 동으로 만든 호랑이상의 부절입니다. 어디에 사용하고 얼마 만큼의 힘이 있는지 등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이 반쪽을 변경을 방어하기 위해 파견한 군대의 장수에게 주고 반쪽은 황제가 가지고 있다가 변경이 침략을 당해 해당 부대로 감당할 수 없을 때 황제가 그 전쟁을 전체 통괄하는 장수를 임명하여 보낼 때 이 반쪽의 부절을 쥐어 보냅니다. 현장의 각 군대 장수들은 자신의 것과 맞추어 보아 부합하면 그의 명령을 황제의 명령으로 보아 따르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2024-07-23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읽고

   읽은 지 꽤 여러 날 만에 글을 씁니다. 학생 시절에 읽고 다시 읽는 거라 옆에 역사서를 두고 사실과 비교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은 뒤에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10권까지 있는 것이었는데 9권 읽다가 끝냈습니다.

  큰 것부터 이야기 합니다. 일단 중국의 역사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역사서가 여러 가지인데 사실에 대한 서술이 다 다릅니다. 진수의 삼국지가 가장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촉나라 사람으로 위나라의 사람이 되었다가 멸망한 뒤 진나라 황제의 명을 받아 공식적으로 역사를 기록하였으니까. 하지만 지들 불리한 건 거의 빼먹다시피 사실에 대한 기술도 내용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쓴 게 꽤 여러 군데입니다. 양념 친 것도 많구요. 그런 게 어찌 정사로서 정당성을 가지겠습니까.

  아, 요거는 짚어놓고 가지요. 한반도의 역사 기록은 고려 말기에 기록이 됩니다. 그것도 정사인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현지 답사는 전혀 하지 않고 기존 기록물, 주로 중국에서 나온 것들을 기반으로 짜집기 했는데 많이 쓰인 것이 삼국지위지동이전이라는 것입니다. 역사 공부한 사람들에게 익숙한 책일 것입니다. 이게 바로 진수가 쓴 삼국지의 일부입니다. 삼국지는 위나라 역사인 위지, 촉나라 역사인 촉지, 오나라 역사인 오지로 크게 나뉩니다. 그 중 위지가 중국의 북부에 위치하고 수도가 동쪽에 있어서 요동지역과 그 동쪽에 대한 기술을 따로 하였는데 위지의 일부로 '동이전'이 있고 거기에 한반도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진나라, 그러니까 서진이 265년 성립해서 316년 망하니까 한반도의 삼국시대의 한 중심에 있는 거지요.

  나관중은 중국인의 중요한 유교적인 가치를 중심에 두고 소설을 썼다고 모두가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중국인, 중원 사람, 한족의 가치는 어떤 것인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가 최고의 영웅으로 쓴 관우, 실제로 중국에서(한국도) 신격화 할 정도로 뛰어난 무장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영웅화한 그의 죽은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니)에서 싸움을 제일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남 잘하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나라 젊은 장수의 계략에 말려 죽습니다. 죽는 과정도 장렬하지도 않게. 게다가 목은 몸과 분리되어 위나라에 갔다가 나무 몸통을 달고 본국에 귀향합니다. 그가 영웅시 된 건 한 장사치가 그의 초상화를 집에 붙여 두었는데 겁나게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퍼져 상인들마다 집에 붙여 두고 제사 지낸 것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랍니다.

  유비. 가진 것이 하나 없어서 상갓집 개처럼 영웅도 아닌 한낫 군벌들에게 빌붙어 삽니다. 군사 빌려주면 싸움 붙었다가 다 까먹고 다른 군벌에게 의지합니다. 공명을 만나기 전까지 한 번도 이겨 보지 못했습니다. 군벌들 옮겨 다니다 보니 자신이 의탁했던 은인들과도 싸우는 의리 꽝인 사람입니다. 장판교가 나오는 장면도 사실은 얼척 없습니다. 자신의 땅도 없고 성을 하나 차지했는데 조조가 대군으로 몰려 오니까 미리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도망가는 놈이 백성들에게 따라가려면 함께 따라가도 된다고 합니다. 주위에서 그러면 금방 따라잡힌다고 말리지만 자신의 뜻대로 합니다. 항상 조언을 듣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로지 법정의 말만 듣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끌고 온 백성들은 위군에 도륙을 당하고 군대도 박살이 납니다. 자신의 본처와 장자(유선)만 조자룡의 혼신으로 살려 냅니다. 왜 백성들을 달고 갔을까요. 지금도 사람이 중요 자산이지만 당시는 더욱 그랬습니다. 포로가 필요해 전쟁을 벌이던 시절이었으니까. 백성을 사랑하고 또 백성들은 믿고 따르는 지도자로 포장하지만 제정신으로 판단해 보면 이 해석이 맞습니다. 말년 보세요. 관우 복수한다고 대군을 몰아 가는데 주위에서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습니다. 공명이 반대한다고 공명도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패하고 죽음의 길로 들어선 것 아닙니까. 자기 잘난 줄 알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니 지도자는 커녕 자신의 몸도 성공시킬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장비는 글도 잘 쓰고 공부도 많이 한 문장이라네요. 딸을 황제와 결혼시키기도 하고. 관우가 글 모르는 무장에 불과하구요.

  이런 사람을 영웅으로 본 것이 바로 중국인들의 가치관입니다. 손익 따지지 않고 목수를 해야 한다는 것과 부패했어도 한나라를 계승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장사를 잘하게 해준 것이 영웅이라.

글쓰기에도 사람의 품성이.

 살짝 실없는 소리.

영어 알파벳 한 자씩인 감탄사인데 문장은 완전히 다른 뜻.

- 에이(A)의 뒤에는 부정적인 내용이 따라 옵니다. 에이, 그러면 안 돼지. 에이, 그럴 줄 알았어. 에이, 무슨 남자가 그래. 에이, 이번 시험은 망쳤다. 따위.

- 그런데 같은 모음인 아이(I)의 뒤에는 사랑이 따라 옵니다. 아이, 내가 한다고 그냥 두랬잖아. 왜 힘들게 자기가 그걸 해. 아이, 보고 싶어 눈이 바지는 줄 알았어. 아이, 그건 내가 살게. 따위.

  글의 머리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사람의 이마가 머리에 가려지지 않는 것과 같이 직설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글의 첫 문장에 보통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주장하는 근거들이 뒤에 제시가 되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자신의 주장을 압축하여 씁니다.

  그러나 비평가나 평론가의 글은 좋게 이야기하면 사람을 지치게 하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짜증나게 합니다. 글의 중반까지도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게 합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그렇게 하는 건데 이유는 어이가 없습니다. 잘난 체하기 위해서 입니다. 자신의 글이 어렵게 인식이 되도록 잘 쓰지 않는 어려운 단어를 쓰고, 한 문장을 세 개 이상의 문장의 결합으로 하고, 주장이 모호하게 합니다. 그게 이해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결과물에 대해 지적질을 하는 직업이니까 그보다 더 똑똑해야 하는 거잖아요. 절박함과 조급함이 있는 거죠. 자신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아닙니다. 자신이 언제든 부정한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고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올바를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은 섣부르고 생각이 짧은 사람이냐. 그런 사람도 있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솔직하게 명료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숙고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각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치하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은 어떻게 다음에 그 사람을 다시 어떤 자리에서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말이 명료하지 않은 것이고 그들 중에서도 자신에게 자신이 있는 사람은 박지원 의원처럼 주장과 비판 대상이 거리낌 없는 것이지요.

2024-07-22

내 편이 될 수 있는 사람

   누가 내 편이 될 수 있을까요? 구김당 요새 난리였습니다. 내 편인지 동지 인지로 정치인이라고 볼 수 없게 나중에 길에서 마주쳐도 고개를 돌리게 싸웠습니다. 물론 그래봤자 나쁜 놈들이니 보고 즐기면 되는 일입니다. 상호방위조약이라는 것은 그 핵심이 조약 당사자가 침략을 당하면 자동으로 그 전쟁에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무력으로. 그러니까 나와 다른 나라가 싸우게 되면 내 나라에 조약을 맺은 나라의 군대가 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간도 쓸개도 내어 줄 수 있는 나라와 맺어야 하는 조약입니다. 타국의 군대가 도와 준다고 들어 와서 그 나라를 삼켜버린 역사는 숱하게 많습니다. 지금 이야기 하려는 일본도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전쟁 때 대한제국이 도와 달라고 불렀고 그걸 계기로 결국 대한제국을 삼킨 거잖아요. 그 놈들과 한미일 3국 상호방위조약을 맺자는 놈들 당이고 그게 정신 나간 소리라고 비난하는 김병주 의원에게 막말 사과하라고 한 놈들 아닙니까. 일본군 군대를 이 땅에 들인다고 확언하는 놈들. 역사를 모르는 바보 아닐 것이니 나쁜 놈들인거죠.

  삼국지 공부하다가 칠종칠금의 맹획 때문에 베트남 역사 공부하고 있는데 19세기 말에 왕조들 간의 싸움이 있었고 힘에서 밀린 왕조가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하여 프랑스의 군대가 베트남에 들어 온 것이 결국 프랑스의 백 년 넘은 식민지배로 이어졌답니다. 그걸 끝내기 위해 많은 피를 흘렸고 걸출한 지도자 호치민(전에 공부할 땐 호지명)이 등장해서 디엔비엔푸 전투를 끝으로 프랑스를 몰아낸 판인데 제네바 협정에서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소련은 나토를 자극하지 않으려 프랑스와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중국은 자신의 남쪽에서 너무 세력이 세면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베트남의 남북으로의 양분에 합의했답니다.

  베트남 역사 두 권을 보았으니 개인의 의견을 아닐 건데 이 독립 전쟁에서 우군을 찾는 기준으로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나옵니다. 나라를 빼앗겼고 무력으로 싸우려면 무기와 싸움 기술의 전수가 필요하고 이것 못지 않게 자신들의 정당성과 프랑스의 부당성을 주장해서 국제적인 지지를 얻는 정치적인 목적까지 얻기 위해 같은 편이 되어 줄 나라를 찾는 기준이 그것이었답니다. 그래서 처음 손을 내민 미국은 짧은 기간 도움을 준 뒤 제네바 협정의 기본 내용을 제시했고, 다음으로 손을 내민 중국은 디엔비엔푸 전투까지만 지원을 해 준 뒤 협정에서 뒤통수 때렸고, 내내 국제적으로 사회주의라는 형제애로 뒷배가 되어 주었던 소련도 협정에서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악당이 되었습니다.

  이야기 한 적 있습니다. '적의 친구는 분명한 적'이지만 '적의 적이 친구'가 될 수 없는 법이라고.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그 조건이라고 친구가 되는 건 아니라고. 그러면 생활에서의 친구는 어떤 사람일까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병도가 밖에서 나를 지 친구라고 팔아먹고 다닐 때 대면하고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대학교 동창이지만 친구는 아니라고. 당연히 만나지 않고 있지요. 며칠 전 도서관에서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고개 들어 보니 ㅈㅅ이 입니다. '응, 너냐?'로 인사는 끝났습니다. 30년 전쯤 ㅇㄱ이랑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ㅇㄱ이가 ㅈㅅ이가 보자는데 함께 해도 되냐고 물어 그러자고 했습니다. 다 같은 동창이니까. 그런데 밥을 빨리도 먹더니 ㅈㅅ이가 ㅇㄱ이 보고 2차 가잡니다. 너는 오지 말고. 가고 싶어 아쉬운 자리 아니니 그러라고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빴습니다. 어차피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아니니 많이 기분 나븐 건 아니고. 그리고 그에게는 사업적인 목적이 있는 것 알고.

  경력이 얼마 안 된 시점에 억지로 여수고로 발령 받더니 1년 만에 퇴직하고 학원을 차렸습니다. 경력이 필요했던 거지요. 학원 간판 걸고 음으로 고액 개인과외(1주 2시간 두 번 250만원). 그래서 커리어가 필요. ㅇㄱ이는 여천고 근무하니 손님 물어다 달라고. 영리한 ㅇㄱ이가 그걸 모를 리 없는데 그 술자리 따라간 건 거래가 성립되었을 것이라 추측해도 결과는 맞을 것. 그런 ㅇㄱ이와 저녁 먹은 건 지 부친상 때 자신이 없는데 자리(자신은 돈 벌려고 수능 출제)를 내내 지켜 주어서 고맙다고.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닌데 이따금 부르면 만나는 사이였는데 그 상갓집에 사람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지켰을 뿐이었고.

  집에서의 친구는 어떨까요? 그래도 괜찮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생활은 '칭찬하는 사람은 달라도 욕하는 사람들은 같다'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아주 잘 지적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가치로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칭찬하는 것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강한 감정이 실리진 않습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것에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심하게 훼손하는 사람에 대한 강한 분노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나쁜 감정에 동조해 주지 않는 사람은 내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명확한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지요. 그 사람을 왜 나쁘게 말하냐고 내 생각에 동조해주지 않는 말을 준비하고 뱉어낸 과정이 이미 그가 내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배우자이건 친구이건 항상 같은 방향을 바라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침을 뱉은 사람을 보듬어 주는 것은 나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같은 편이 될 생각이 없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적의 친구는 적입니다.

2024-07-19

지식의 한계성

   지식이란 건 당연히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인쉬타인 같이 천재 과학자라고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도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잖아요.

  며칠 전 산길에서 넘어진 아내의 발목에 부목을 대고 압박붕대로 감아주던 그 남자도 그 방법이 맞다고 확신한 것이지요. 넘어진 사람은 무른 흙보다 단단한 나무를 선택해 딛었는데 물 먹은 나무가 미끄럽다는 것을 몰랐고. 지금은 고인이 된 병우는 그 날 있을 친목 배구 바로 전에 몸을 풀려고 축구를 하고 있는 태권도부 아이들과 어울렸습니다. 몸싸움이 기본인 아이들이라서 공을 몰고 가던 병우에게 심한 태클이 들어 왔고 아이가 다치는 것을 피하려고(자신이 거구였거든요) 덤블링을 했는데 몸을 제대로 말지 못하고 어깨가 몸을 떠받치며 사달이 났습니다. 다치는 것이 일상인 운동이라 코치가 자신있게 탈골이라고 맞춘다고 뽑아 비틀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보니 덕분에 쇄골이 산산조각이 나서 금만 간 처음 상태였으면 한 달 걸릴 걸 석 달 넘게 고생을 했습니다. 입원 기간이.

  자신의 지식을 완전하다고 생각하면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등산을 많이 한 사람은 젖은 산길을 갈 때 물이 흐르는 골을 타면 땅이 단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물 빠진 바다의 물 흐르는 골을 밟는다면 운이 좋으면 힘들게 기어 빠져 나올 것이고 운이 나쁘면 온 몸이 뻘에 빠져 묻힐 것입니다. 바다의 물이 흐르는 골은 아주 무르고 깊습니다.

노인

   집에 다녀 오늘 길에 버스를 기다리는데 허리가 굽은 남자 노인이 승강장에 들어왔습니다. 여수의 거의 모든 버스승강장에는 앞으로 지나갈 버스의 정보가 뜨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몇 번 버스가 현재 어디쯤 지나고 있고 승강장 몇 개 전이고 도착 예정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가 표시가 되는데 30분 이내의 것인 것으로 짐작 됩니다. 그런데 그 승강장은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그 기계가 없었습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부스였고 긴 의자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일행이면 네 사람이 않을 수 있고 아니면 세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한 크기. 잠시 후 팔십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노인이 '좀 쉬었다 가자'는 혼잣말을 하며 의자에 앉으려는데 먼저 앉아 있는 사람은 의자의 한 가운데에 쩍벌하고 있었습니다. 가장자리에 앉을 수 있긴 하는데 젊잖으신지 앉지 않고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하지만 80 후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와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남자의 태도에 변화가 없자 우산을 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그 남자 노인도 버스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쉬려고 들어 온 것이었습니다. 거기는 환승하는 버스가 여럿 있고 지나는 시간을 정확하게 아는 건(카카오맵을 쓰면 다르지만) 배차 시간이 긴 31번 뿐인데 금방 지나갔거든요. 그리고 앉아 있으면 버스들이 그냥 지나가버리니 그는 쉬러 들어 온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또 잠시 후 80번이 서더니 60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노인이 내리고 바로 이어 내리려고 멈칫거리는 5세쯤 되는 손녀로 보이는 아이를 한 팔로 번쩍 들어 내렸습니다. 아이 우산을 펴서 먼저 씌워주고 다음에 자신의 우산을 편 다음 6차선 도로를 함께 건너갔습니다.

  행복한 노후를 가질 수 있는 첫번째 조건이 '이동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 참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3명의 서로 다른 노인을 보았습니다. 않아 있던 노인은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를 내어 깜짝 놀라 보았는데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것이 가래가 목에 걸리기나 했나 봅니다.

2024-07-16

식사 예절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도 질색 하셨지만 밥그릇을 들고 먹는 건 아예 '뙤놈'하는 짓이라고 나무라셨습니다. 설명이 없으셨지만 예의 바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랐습니다.

  한참 커서 알게 되었습니다. 젓가락을 스는 민족이 한, 중, 일 삼국이지만 한국만 젓가락이 다르다는 것. 중국과 일본의 것은 길고 둥급니다. 그릇을 혹은 접시를 들고 젓가락으로 긁어먹는 것이 방법이고 우리는 쌀이 그들과 달리 찰지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숫가락으로 떠먹게 된 것입니다. 물론 밥알이 날아가지 않으니 그릇을 들고 먹을 필요 없구요.

  '뙤놈'은 왜놈보다 더 변형이 된 것입니다. '대국놈'이 '대놈'이 되었다가 '뙤놈'으로 더 강하게 욕으로 바뀐 것이지요. 처음에는 절에 잇는 중들이 그릇을 들고 긁어 먹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바로 그 웬수 놈들의 식사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술이나 밥 모두 예절을 많이 따집니다. 딱 예절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 확연히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밥 먹을 때 모자 쓴 것하고 먹는 소리 내는 것입니다. 머리가 떡이 져서라는 것은 하등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해야 한다면 모자를 벗어야 하고 머리가 떡이 져서 모자를 쓰고 밥을 먹는다면 그는 자신의 헤어스타일이 배우지 못한 집의 자손이라는 것보다 크다는 말에 불과합니다. 먹방이라고 먹는 소리 내고 심지어 면을 면치기한다고 '후루룩'소리를 내며 먹는 것도 그냥 배우지 못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런 사람기리 만나고 그런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거지요.

현명함은 어떤 것일까?

  얼마 전부터 비가 와도 산에 가기로 해서 오늘도 우산을 들고 산에 갔습니다. 절반쯤 돌았는데 길에 나이 든 여자가 앉아 있는 겁니다. 머리를 빨리 돌렸는데 거기를 방금 지나온 여자도 보았기에 그냥 가려다 비오는 날이니 오지랖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어디 불편하냐'고 물었습니다. 넘어져서 일어나기 힘들답니다. 119 불러 줄꺼냐고 물으니 남편이 올라오고 있을 거랍니다. 오셔도 업고 내려가기 힘들거니 부르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불러 달랍니다.

  전화기는 자신도 있으니 스스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설명을 하고 바로 옆에 있는 국가지점번호를 불러 주겠다고 했습니다. 막상 그 기관 써보니 엉터리였습니다. 굳이 위치를 이야기해 달랍니다. 산길을 이야기해 보니 그 산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 번호는 뭐하러 만들어 놓았을까요. 내 전화 GPS잡아서 오겠답니다. 그러고 조금 있다가 남자가 헐레벌떡 올라왔습니다. 달려 올 수 있는 지형이 아니니 쌩쑈일 겁니다. 다 와서 달린 거겠지요. 이 글 읽는 사람은 이따 내 말이 맞는지 판단해 보세요.

  손에 순두부 포장한 것 모양과 크기가 같은 것을 다친 발목에 대더니 또 가져온 압박붕대로 감는 것입니다. 심하게 발목을 접질렸으니(길을 가로질러 물길을 내어 놓고 둥근 매끈한 통나무로 물길 가드를 쳤는데 그걸 밟은 것)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119 불렀으니까 그냥 기다리자고. 심하게 삔 건 뼈가 상했든지 인대가 늘어났든지 얼음찜질 말고는 기다려야 합니다. 구조대가 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없이 부목 대고 업고 가야 하지만 부목 대면서 문제가 생길 것이고 업고 내려 가면서 흔들리면서 또 심하게 움직일 것이니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듣지를 않대요. 날 흘겨 보더니 결국 다 감았습니다. 부목으로 쓴 것이 이야기 했듯이 둥근 방망이 모양이었거든요. 아프다고 해도 결국 다 감더라구요. 나는 얼마 전부터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말을 걸지 않고 있습니다. 먼저 내려간다고 인사하고 그 멍청이 구조대를 약속한 길로 내려가 맞으려다 한참 갔는데 다른 길로 온다고 해서 되돌아가 결국 만나서 길을 가르쳐 주고 내려왔습니다.

  사람이 어찌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현명한 사람이란 자신이 모르는 영역을 더 잘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입니다. 알아 먹게 설명을 했는데도... 부목을 발목 틀어진 상태로 묶어 놓으면 바로 잡을 때 힘들고 엄청 아플 건데, 딱 꼴이 운동 많이 한 것도 아니어서... 하기야 꼭 다쳐 봐야 어떻게 하는지 알간?

만두 이야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재미있고 의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번에 하겠습니다. 이문열의 평역으로 된 것을 읽었는데 9권에서 제갈공명의 칠종칠금의 맹획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국인들은 일찌기 중국中國이라는 말을 씁니다. '國'이 지금의 '나라'의 의미로 쓰인 것은 나중이지만 그래도 일정한 영역을 의미했습니다. 한나라는 세운 고조 유방劉邦의 이름을 피휘하면서 그 때까지 나라의 영역을 '邦' 이라고 하던 걸 '國'으로 바꾸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의 자(字 어릴 적 이름)는 '계(季 뜻이 '끝'인데 이름에서는 막내)'였고 '방'이라는 건 후한시대의 '한지'를 나중에 학자들이 주석을 달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니까요. 

  중국의 역사는 한반도와 달리 여러 나라들이 있어서 역사서가 여럿이고 내용이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기술이 되어 있어서 통일된 역사서를 만들기 힘듭니다. 사람들이 불멸의 역사서로 믿고 유럽에서도 인정한다고 하는 사마천의 '사기'도 중화사상을 중심으로 많이 왜곡한 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중국이라는 이름을 말한 것은 중화사상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서 자신들을 기준으로 밖의 이민족들은 모두 오랑캐라고 생각하고 칭했습니다. 동쪽의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으로 불렀는데 모두 오랑캐를 뜻합니다. 夷는 大자와 弓자가 합해진 글자로 큰 활을 쓰는 활 잘 쏘는 오랑캐, 蠻은 변할 변變, 사모할 연戀의 머리에 벌레 충䖝자를 쓴 건인데 䖝은 혐오스럽고 하찮은 경우에 쓰입니다. 쉽게 변하는 하찮고 싫은 놈이라고 해석하면 될 듯합니다. 戎도 오랑캐라는 뜻인데 실제 융족이 살았고, 狄은 원래 犬+大였는데 大가 火로 바뀌었으며 개를 키우는 북방 이민족을 뜻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는 이유는 蠻자 대문에 그렇습니다. 이야기로 이어 갑니다.

  공명에게 매번 깨진 맹획은 유교의 물을 먹지 않아 이치와 가치가 전혀 학습되지 않은 족속의 우두머리여서 사로잡아도 다시 사람들을 모아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죽이면 쉽겠지만 먼 곳이면서 기후와 풍토가 자신들이 견디기 어려운 곳이라 그들 중 똘똘한 놈에게 통치를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로 뽑힌 맹획을 완전히 굴복시키려고 공명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섯 번을 놔주고 일곱 번째 싸움은 맹획이 다른 지역의 지원군을 데려 왔는데 그들은 나무껍질로 만든 갑옷을 입었는데 기름을 먹이고 두들겨 말리고 다시 기름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하여 화살은 물론이고 창도 뚫을 수 없는 데다 물에 가라앉지 않아 수중전에서도 막강했습니다.

  공명은 두 번의 싸움을 지고 완전히 적을 파악하여 적의 3만 대군을 계곡으로 유인하고 입구를 막은 후 불을 질러 사람은 물론 말까지 모두 태우고 이어 맹획에게도 결국 항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에서 불어오는 독이 서린 기운에 군사들이 죽는 것이었고 지역인에게 물으니 죽은 원혼들이 강에 모여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머리 얼마와 소 몇 마리를 희생으로 하여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을 죽여서 마음이 좋지 않았던 공명은 사람 대신 쇠고기를 밀가루와 함께 다져서 사람 머리 모양으로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서야 그 강을 건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밀가루와 고기로 사람 머리 모양으로 만든 음식이 나왔고 그게 만두의 시초라고 하잖아요.

  말이 길었지만 그래서 '만'자가 같은 글자인지 공부한 것입니다. 아니었습니다. 만두는 로 쓰는데 좌변은 먹는 것이니까 '밥 식食'이고 우변은 '끌 만蔓'인데 갑골문에서  이렇게 되어 있어 눈이 감기는 것을 두 손으로 막는 모양인데 '길다'는 뜻이 되어 '긴 모양의 음식'으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와 한자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에게만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2024-07-12

당신은 어느 편입니까

   이왕 독하게 말한 김에 현행 법과 그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의 성향을 살펴 봅시다. 쉬운 거 하나 예로 이야기 합니다. 임대차보호법. 정식 명칭입니다. 요 사기꾼들은 이 법의 맨 앞에서부터 사기를 칩니다. 

  제1조 씨불시불~ "국민 주거생활의 안정을 보장함" 을 목적으로 한다. 국민의 주거안정이라면 법의 이름부터 '임차보호법'이어야 합니다. 이 법이 임대인의 권리도 보호하고 있는 건데 임대인의 권리는 주거의 안정이 아니라 자신의 영업 또는 사업 이익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기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이 사기의 실체를 보겠습니다. 지금 전세사기 이야기로 시끄러운데 '사기'가 되려면 조건이 까다롭다고 합니다. 설명을 들으면 수긍이 갑니다. 그것은 억울하지만 현행법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임대인은 전세비를 받고 전세를 들이는데 계약 기간이 끝나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하면 그 집에 들어가기 전에 돈을 완납했던 것처럼 나갈 때 그 돈을 손에 쥐어 주어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세입자는 다른 집에 들어갈 때 새 주인에게 돈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이 때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가 당신이 어떤 편에 서있고 현행법은 공정한지 보자는 것입니다. 집주인은 계약이 끝나 나가는 세입자에게 줄 돈을 새로 들어 오는 새로운 세입자에게 받아서 주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임대사업자가 그렇습니다. 전세가가 떨어져서 차액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입장이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건 세입자는 그 돈을 받아야만 나갈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미 정해진 그 시간에 그 새 집에 들어가기로 계약을 해든 상태입니다. 돈을 주지 못하니 더 살라고 해도 이 새로운 집을 계약한 세입자는 약속한 날짜에 최종 전액을 모두 입금하지 못하면 자동 계약해지가 되어 계약금을 날리게 됩니다.

  임대사업자의 사정과 상관없이 임차인을 약속한 날에 돈을 받아야 합니다. 주지 않은 사업자는 사기이냐는 건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줄 의사가 있었다고 법은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이 임대인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임대인의 사정만 봐주는 것이라구요. 임대사업자가 계약 끝나는 날에 계약금을 돌려 줄 의사가 있었다면 추가로 필요한 돈이든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생긴 전액이든 그 집을 담보로 해서라도 돈을 마련해 주어 보내야 돌려줄 의사가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임대자보호법인 거지요.

  그게 이 나라의 법이고 그 법을 만들고 고치지 않은 입법부 의원들입니다. 임대사업자? 약자 등골 빼먹는 최고의 악당 중 하나.

눈 가리고 아웅

   이왕 그 놈 이야기 나온 김에 최저임금에 대한 최근 논점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직군별 차등 적용. 손경제플러스에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는 김현철(서울대랬나?)교수는 정체가 조금 불분명했는데 엊그제 최저임금제에 대한 입장을 듣고 알았습니다.

  직군별 최저임금제란 것은 일의 경중과 난이도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업종에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니 직군별로 달리 하자는 것입니다. 그럴싸하니 음흉한 속셈을 미리 파해칩니다. 그래야 덜 열 받습니다.

  최저임금제란 것이 모든 업종 통털어 무슨 일을 하더라고 그만큼은 받아야 굶어죽지 않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계에서는 '생활임금제'로 바꾸어야 일주일에 한번쯤은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일년에 두세번은 옷도 사입고 책도 사보고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는데 씨알도 안먹힙니다. 오히려 '직군별 차등적용'을 들고 나올 정도니. 무슨 말이냐구요?

  직군별 차등을 주면 일이 어려운 직군의 최저임금을 올려 주겠습니까? 이번 최저임금 10원 올리자고 했던 놈들이요. 우리 상식적으로 최저임금이 물가상승률하고 맞아야 굶어 죽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내년의 최저임금을 10원 올리자는 놈들이 올려주겠나는 것이에요. 결국 쉬운 일자리의 최저임금을 깎겠다는 이야기일 수밖에 다른 말 아닌 건 명확합니다. 함부로 단정하지 않지만 이건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이들이 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내년 10원 올리자는 놈들이 확실하잖아요. 

  이진우가 얼마 전에 그랬답니다. 강원도 어디 시골에서 하루 몇 시간 편의점 알바를 쓰고 싶어 일이 없는 할머니 쓰고 싶은데 최저임금제 때문에 쓰지 못한다고. 김현철은 직군별 차등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걸 쓸데없이 편을 가른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저런 국회의원과 시장, 대통령을 뽑아 놓고 이런 한심한 나라를 함께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똑똑하고 돈 많은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나눈다든지 공평한 일을 꾸민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사용하는 언어의 성격

   글씨가 그 사람의 성격과 성품을 나타내어 주듯이 사용하는 말은 그 사람의 학문의 깊이와 가치관을 보여 줍니다. 

  먼저 우리 깊숙히 들어와 있는 왜색입니다.  우리 말인 '채소'를 두고 굳이 일본 한자인 '야채'를 쓰는 것입니다. '조리'를 두고 '요리'를 쓰구요. 한국방송을 보면 출연자가 '야채'라고 말한 것은 모두 '채소'로 자막을 달아서 고쳐 오고 있으니 몰라서 그랬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요리'도 자격증 이름이 '조리사'니 그도 모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동'이 일본 이름인 것을 모른다고 '가락국수'대신 쓰는 것은 자신이 무식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에 다름 없습니다.

  다음은 필요하지 않은 한자어의 사용입니다. '달걀'을 두고 '계란'을 쓰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집'을 두고 '건물'이라고 하거나 '길'이라 하지 않고 '도로'라고 하는 것들이 한자를 쓰면 더 유식하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문화 사대주의 입니다. 하우스나 빌딩, 스트리트, 터널 같은 것들은 사대의 대상이 잽싸게 바뀐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보편적이지 않은 표현으로 유식함을 보이려는 것들이 있습니다. 풍광이나 풍미 의구심 같은 것들입니다. 그냥 풍경, 맛, 의심으로 써도 하등 다를 것이 없는데 기어이 그것과는 다르다고 우깁니다. 글과 말이 들어 있는 지식의 깊이를 보여 주는 것은 듣는 대상이 알아먹을 언어를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할 때 생깁니다. 맛과 향이 강한 음식 재료는 없는 조리실력을 갖추기 위한 수단입니다. 

  실은 이걸 글로 쓰려고 생각한 건 시사경제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입니다. 리포터는 '출산률'이라는 표현을 '출생률'로 쓰자는 의견들이 있는데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숫자가 줄어드는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는 표현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합계출생률'이라는 표현으로 합니다. 실은 공식 명칭은 '합계출산률'입니다. 그런데 진행자인 이진우 기자는 끝까지 '출산률'이라고 합니다. 리포터는 끝까지 '출생률'이라고 하고. 이건 자신의 가치관의 우향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자신이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지요. 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잖아요. 이 사람은 기업인, 임대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내내 보여 주고 있잖아요. 사람들은 다 모르더라구요. 서울, 교육받은 남자들의 버터발린 유창한 말투에 속아서.

출생

2024-07-09

가치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가치관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너 그렇게 살면 안돼'라고 사람들이 많이 말합니다. 나도 두 번 들었는데 자신은 착하게 산다고 확신하는 영만이와 자신은 항상 정의롭게 산다고 생각하는 현종이한테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며 사는 사람들은 자신은 바르게 살고 있는 것이겠지요? 부디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며 생각한 건데 인생, 그리고 가치관은 라면을 끓이는 것과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면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자신의 조리법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들어 보면 자신의 조리법보다 나은 것은 없고 대부분의 방법은 그 방법으로 끓인 것은 먹을 생각이 없습니다. 설령 조리법이 같다고 해도 끓인 사람에 따라 다른 맛이 나는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불'의 연료가 도시가스인지 부탄가스인지 프로판 가스인지에 따라 다르고 같은 전기라 해도 인덕션인지 전기레인지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니. 그냥 자신은 그대로 잘 살고, 못마땅하게 사는 사람은 안 보며 살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감히 건방 떨지는 말아야 합니다.

역사

   사람들은 과학적이라고 하면 사실로 인정하는 바보들이라고 한 적 있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역사도 그렇습니다. 삼국지연의를 역사서 삼국지들과 대조하며 공부하듯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멍청이 박정호가 우즈베키스탄이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로 자신들의 역사관을 새로이 정립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북한의 삼국통일에 대한 역사 기술이 궁금했습니다.

  막 공부하고 싶을 정도로 궁금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짐작이 가니까요. 무슨 이야기냐구요? 북한은 고스란히 고려(고구려)의 땅이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신라의 삼국통일이라고 교과서에 기술이 되어 있지만 북한의 입장은 그 땅이 그 일 이후로 당나라에 속하게 되었으니 당의 식민지 시대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더 자세히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다 오늘 읽는 역사 삼국지에서 삼국지의 삼국의 세계관이 나오는 것입니다. 후반주로 가면 위의 조비가 후한의 황제에게 선양을 받아 황제가 되고 다음 해에 유비가 이어 황제가 되고, 손권도 황제가 됩니다. 황제는 천자인데 중국이라는 나라가 셋으로 쪼개어 지면서 천자가 셋이 되는 엉터리가 된 것입니다. 하늘이 셋이 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웃음이 나오는 일이 생깁니다. 그림을 보세요.

  촉나라가 보는 중국입니다. 촉나라는 회색 바탕의 땅에 불과하고 일점쇄선으로 국경선이 있는데 오나라의 저 아래 땅에 교주자사로 '이회'를 발령하고 위나라 동쪽의 '노국'에 노왕으로 '유영'을, '양국'에 양왕으로 자신의 아들 '유리'를, 소쪽의 량주목사로 '마초', 사예 땅 교위에 '장비'를 발령을 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대한민국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공부라면 누구보다 많이 하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이런 게 있었다는 게 어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있다는 것이 우스운데 그게 다 휴전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또한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많이 궁금한 건 아닌데 궁금합니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고 보수가 있을까요? 정부 부처별 모임에는 나갈까요? 어떤 사람들이 고기에 이름을 올렷을까요?

2024-07-05

라일락

   라일락 꽃은 빨리 집니다. 참으로 예쁜데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아요.


  이건 봄에 찍은 건데 어제 그 길을 걷다 보니 오징어알 같은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열매가 된 것이지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속 빈 강정

   차가 크면 세보입니다. 하지만 시내버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 다닐 때 자전거를 타고 다렸는데 버스 가까이 가면 기사들이 질색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기사 없는 주차 버스 옆면을 손으로 밀어 보았습니다. 손가락으로 밀어도 쉽게 들어갔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그제 버스를 탔는데 세상에 버스 안쪽 옆 면을 누군가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재료가 나무 부스러기 압착한 것이었습니다. 사고가 나지 않기만 바라야 합니다.




기후 변화

   지구의 기온이 올라서 위기가 온다고 난리입니다.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1.6℃가 높아졌는데 1.5℃보다 높아지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나왔습니다. 누구 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도 개인적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매년 한 시간씩 차를 타고 가서 산딸기를  땄는데 올해는 작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길어야 수확기가 2주 정도인데 날이 가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며칠 만에 원인을 찾았습니다.





  비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는데 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기온이 오르거나 내릴 때 그러니까 여름을 맞이하거나 겨울이 올 때 천천히 오르거나 내리면서 식물들이 적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뜨거워지면서 잎이 약한 식물들이 타버린 것이고 내 산딸기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더워지면 그 동안 추워서 농사를 짓지 못했던 곳들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니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연합 국가들에서 유난을 떨며 협약이니 수입품에 대한 제한조처니, 석탄과 석유 발전을 퇴출시킨다고 떠들더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연료값이 오르니까 살며시 화석연료 퇴출 이야기 들어가는 것 보세요. 지구온난화는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로 인한 위기가 온다는 말은 그 말을 하는 근원지를 보면 믿지 못하겠습니다. 내 딸기밭은 위쪽으로 위도를 1도만 올려서 찾으면 될 일입니다.


2024-07-01

신발 놓기

  자신의 집에서 신발을 현관에 어떻게 정리를 하는지는 집마다 다를 겁니다. 그런데 근무하던 한 학교에서 신발장 신발을 밖을 향하도록 하라는 교장의 지시가 있어서 참으로 폭력적인 모자란 리더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히 덮개가 없으니 보이는 신발장.

 신발을 정리해 놓는 곳은 보통 식당입니다. 입구에 벗어 놓으면 주인이 긴 손잡이 달린 집게로 가지런히 정리합니다. 물론 단가가 조금 되는 집. 다음으로는 안으로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큰 건물 입구의 갈아 신을 실내화 있는 곳. 이런 경우 신발이 안을 향해야 할까요, 밖을 향해야 할까요? 상관없다는 사람은 전에 이야기한 옷깃은 좌임으로 할 것인지 우임으로 할 것인지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이건 볼 필요 없습니다. 그 사람은 술을 왼손으로 따를 것이고 돌아가신 분께 절을 할 때도 오른 손을 먼저 짚겠지요.

  무엇이 맞는 것인지 과거의 자료를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신발이 집의 안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나가는 것보다 들어 오는 것이 좋으니까. 집이니까.

  그런데 최근 갑자기 기존 자료가 있었는데 살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손님, 특히 귀한 손님이 오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달려나갔다는 글이 여러 군데서 보이는 것입니다. 결정 끝!

타초경사打草驚蛇

 打칠 타, 草풀 초, 驚놀랄 경, 蛇뱀 사. 풀을 쳐서 뱀을 놀래키다. 풀을 치니 뱀이 놀라다.

  이 사자성어는 한 쪽을 혼내서 다른 쪽을 깨우친다고 대부분의 해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배웠던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맨 앞줄에 두 가지의 해석을 썼는데 두 글자만 다르지만 뜻이 다릅니다. 앞의 것은 검색하면 나오는 일반적인 해석이고 두 번째의 것이 내가 처음 접했던 해석입니다. 

  앞의 해석은 '갑'을 가르치기 위해 '을'을 혼낸다는 것입니다. '네가 알만한 놈이면 갑이 혼나는 걸 보고 미리 알아서 행동하라'는 거지요.

  뒤의 것은 이렇습니다. 농부가 풀을 벱니다. 그는 농사에 방해가 되는 풀을 제거할 뿐입니다. 그런데 풀 속에 있는 뱀은 농부의 의도와 아무 상관없지만 몸을 피하지 않으면 해를 입게 되니 알아서 미리 피하라는 것입니다.

  언뜻 결과가 같아 보이지만 앞의 것은 낫을 쥔 사람의 의도가 중심이고 뒤의 것은 그의 의도와 아무 상관없이 뱀이 현명해야 함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니 쓰임이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 다른 용도로 쓰이는 타초경사를 보았습니다. 주된 내용은 같지만 용도가 다른 것입니다. '갑'을 두들기면 '을'이 미리 놀라 몸을 사리게 되어 '을'을 다루기 힘들어지니 '갑'을 '을'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혼을 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이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이고 공부하는 사람들의 표현력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달리 입체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공부는 부족한데 똑똑한 체하려는 아무개 같은 사람들은 자다가 봉창을 뚫는 거구요. 하기야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 똑똑하다고 자신들의 구세주로 생각하니 그것도 내가 잘난 체하는 것일 수 있겠네요.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라면요.

언론,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

   얼마 전부터 생활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이 내가 차를 타고 다니는 걸 보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직접 내게 이야기들 했습니다. 그만큼 환경과 미래를 걱정한 사람이었거든요. 지금은 불편을 감수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미래를 걱정할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