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무선초등학교 담벼락의 문학작품 소개 그림 중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있는데 며칠 전 지나갈 때는 '플란더스의 개'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겁니다. 일본산 에니메이션으로 나온 걸 텔레비전에서 보기도 했었는데 할아버지와 네로와 파트라슈만 기억이 나고 내용이 우유배달만 기억이 나길래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오히려 팥빵 광고(팥들었슈)에나 구기운동에서 공을 빠뜨렸을 때 '빠뜨렸슈'로 희화화해서 쓴 것 뿐이어서 말입니다.
19세기 말. 15세? 16세? 고아 네로, 외할아버지, 학대받고 내버려진 개 파트라슈. 간략하게 줄거리를 말하자면 외할아버지가 죽고 생계 곤란에 집에서 쫓겨나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비정한 이웃들의 외면 속에서 성당에서 얼어 죽었다.
일단은 어린이들에게 동화로 소개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벨기에 배경인데 작가는 영국 사람이었습니다. 1차산업혁명이 영국에서 19세기 초반에 완성이 되었으니 단순작업 일자리가 널려 있던 시기입니다. 벨기에는 육지로는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와 접해 있고 바다로 영국과 접해 있으니 설령 그 나라가 빈곤했다 하더라도 나라간 이동이 쉬웠던 유럽에서 굶어 죽을 일이 자포자기가 아니면 없었을 것이라는 것. 가난해서 굶어야 하는 사람이 그림을 그려 돈을 버는 일을 선택한다는 것도 지독한, 편한 일을 찾는 것. 배경이 자신의 나라가 아닌 나라를 선택했고 죽는 곳을 성당으로 선택한 것. 인간 군상의 비정함으로 작품을 도배한 것은 동화가 아니라 잭런던의 '강철군화'나 빅토르위고의 '분노의 포도'처럼 사회 고발적, 자본주의의 폐해를 공격하는 그런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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