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9

소설과 현실

   픽션과 팩트를 이야기 하는데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소설을 쓰는 경우 가상을 말하더라도 사실을 비트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다시 읽는 것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난 내가 아는 소설 중 10권을 꼽으라면 그 중 하나로 꼽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너무 비틀어서 정사를 단단히 한 뒤에 읽지 않으면 거짓을 사실로 믿을 위험이 커서 주저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읽었던 레미제라블에서 고개를 기웃했던 것을 최근에 확실히 알게 되며 빅토릐 위고의 위대함에 또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꽤 최근까지도 이빨이 건강관리법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가 빠지게 되는데 그것도 젊은 나이에 그렇게 되면서 빠진 이 대신 동물 뼈같은 것을 갈아서 넣었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심한 염증을 일으켜 죽은 사람의 이를 무덤을 파서 비밀스럽게 유통을 했다고 합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워털루 이빨'이랍니다. 워털루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의 이를 사람들이 사람들 눈을 피해 뽑아서 팔이 돈을 벌었고 이 이빨들의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고 합니다.

  레미제라블에서도 마지막까지도 장발장을 괴롭힌 인물이 그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의 유품을 훔쳐서 그것을 기반으로 여관을 차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한 이 악당의 코제트가 아프다는 거짓에 속아 팡틴이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이빨을 뺀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로 알게 된 것입니다. 또 말하지만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 소설만 쓴 게 아니니.

책 읽기 소오강호(김용)

 소오강호는 김용 스스로 제일 자랑할 만한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뜻은 笑傲江湖 이니 웃을소+거만할오+강호로 강호를 비웃는다고 나는 해석을 합니다. 다들 자신이 의리와 정의를 지키는 협객이라 하지만 속은 다들 시커먼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정파 소속이지만 사파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강호를 평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인들은 오행에 집착합니다. 음양오행의 오행입니다. 그래서 역사에서도 굳이 묶기 애매한데도 상황오제의 오제를 역사의 시작으로 봅니다. 죽서기년에 의하면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의 오제 중 모두가 요순시절이라고 하면 모두가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절이라고 하지만 순임금이 요임금을 가두고 억지로 왕위를 빼앗았다고 죽서기년에는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사마천의 사기에는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양위한 과정을 아름답게 구구절절히 묘사하지만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서쪽 변방의 나라인 잔나라의 역사서를 보고 기록한 것이기에 위나라의 역사서보다 더 정확할 순 없다는 점에서 '오제'의 기록은 믿을 수 없습니다. 여튼 이 오제의 경우도 오방색을 입힙니다.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그 색들을 무슨 근거로 입혔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소설도 오악검파가 중심입니다. 소림과 무당과 개방파등 쟁쟁한 패거리가 있지만요. 태산, 화산, 숭산, 형산, 항산의 각 산을 근거로 한 패거리인 것입니다. 이것도 그러니 억지 오행인 것입니다.

  이들은 각자 무술을 뽐내고 있지만 생산활동을 하는 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먹고 꾸미고 칼도 사야 할 건데 그런 고민은 하나도 없습니다. 트집이 아니고 그들이 정의를 내세우니 하는 말입니다.

  또 하나 제일 큰 문제인데요. 이들의 정의관입니다. 선과 악에 대한 생각. 물론 소설 쓴 사람의 생각이겠지만요. 악인을 죽이면 善이고 선인을 죽이면 惡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심각한 생각인데요 칼 들고 사람들을 죽이는 깡패들의 생각이라면 그건 이해되고 당연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이 그런 생각을 하고 더구나 나라의 지도자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자신이 깡패도 되지 못하는 양아치이고 그런 지도자를 가진 나라는 이미 망한 나라일 것입니다. 내각 전체와 검찰, 사법부까지도.

키가 작은 한자

   어설프게 공부하는 사람들이 농담 따먹기로 하는 거 하나를 알았습니다. 한자들이 서로 자신이 더 키가 작다고 자랑하는 이야기 입니다.

  맨 먼저 형兄이 나섰습니다. "난 입 바로 아래에 발이 붙어 있잖아. 그러니 키가 얼마나 작아."

  그러자 견見이 제치고 나옵니다. "나는 눈 밑에 다리가 달렸어. 그러니 내가 더 작지."

  가만히 보고 있던 자가 있었습니다. 혈穴이 거드름을 피우며 나옵니다. '까불고 있어. 난 모자(갓)아래 발이 달려 있으니 내가 제일 작지."

가짜 역사 만들기

   삼천궁녀처럼 악의적인 역사의 왜곡도 있지만 소소한 이익을 위해 왜곡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백제와 신라가 여기를 통해 교류를 했다는 기록들이 많습니다. 나제통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라제통문이라고도 하구요. 무식의 발로겠지요. 그런데 상식적으로도 저기를 통해서만 드나들었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여기 노랑 주의 표지 옆에 이 표지판을 왜 세웠는지 자세히 적어 세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해당 지자체도 왜곡하고 있더라구요.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부채 만들기

   머리가 비어 가는데 날은 뜨겁고 모자는 쓰기 싫고 양산을 쓰고 다닐 순 없고. 그래서 접부채를 샀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싸고 예쁜 것이 있어서 샀는데 바탕이 비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경구 두 가지를 써 넣었습니다.



도심의 억새

 


  도심 산책을 하다 좁은 공터에 핀 억새를 보았습니다. 갑자기 감상적이 되었습니다.

정당한 권리?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거기에 고추를 너는 게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주차장이 얼마나 중금속으로 오염이 되어 있는지는 차후의 문제이구요. 어떻습니까? 주차장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주차할 차가 없으면 가능할까요? 한 칸을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주차하는 것은요?



2023-09-19

공부를 하는 이유, 공부가 필요한 이유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단 하나만 빼고. 금방 한 말, 모든 게 변한다는 말.

  요새 국민의 짐에서 '과학'이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쓰지만 그들은 과학이라는 게 얼마나 가변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사용법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과학이라는 게 측정과 관찰, 그리고 경험에 의거한 것이라는 것도 모르는 거지요. 오차가 반드시 동반하게 되고 백만번째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 말입니다.

  과학이 이럴 진데 인문에서는 두 말할 필요 없습니다. 도덕과 가치가 시대에 따라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을 당연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도 현재를 사는 우리는 눈으로 그걸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는 어떨까요.

  중국 한나라 초기에 금고문 논쟁이 있었습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법가사상을 기반으로 통치이념을 잡았는데 군현제 때문에 정치적 기반을 상실한 귀족과 과거 제후 무리들이 유생들을 움직여 과거의 예법과 유교를 앞세워 지속적으로 황제의 통치행위를 비판하고 상소를 올립니다. 이에 이사의 청을 받아들여 진서秦書와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책을 불사릅니다. 이것이 분서갱유 중 '분서焚書'입니다. 이것 때문에 춘추전국시대의 많은 책들 뿐 아니라 각 나라의 역사서도 사라지게 됩니다.

  한나라가 뒤에 개국하고 법가 사상을 버리고 유가사상을 통치이념을 삼으려 하는데 백성들을 가르칠 이념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무제가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복생'이라는 사람을 찾아 냅니다. 진나라 사람인데 분서 때 '상서'를 감추어 두었다가 그걸 공부하여(당시는 외운 것이겠지요) 한나라가 성립하자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유교 경전을. 불러 오라 했는데 90세가 넘어 올 수 없다 하여 관리를 파견해서 구술을 받아 적어 경서를 복원합니다. 그것이 금문상서今文尙書입니다. 그 책을 바탕으로 오경박사들이 유가사상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오래된 책 무더기를 발견하는데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의 벽에서 유교의 고문서들이 나옵니다. 고문상서古文尙書입니다. 금문은 지금의 문서라는 것이고 고문이라는 것은 그 때의 문서라는 뜻이겠지요. 당연히 둘 사이에 차이가 발생합니다. 금문은 한 사람의 기억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미 금문을 공부한 사람들은 그것으로 권력을 획득한 뒤라서 사실의 진위를 놓고 대논쟁이 벌어집니다. 승자? 짐작한 대로입니다.

  '공화共和'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못지 않게 기가 막힙니다. 중국의 역사는 사마천의 '사기'가 서양에서도 인정할 만큼 역사서의 기본입니다. 거기에는 주나라의 후반기 여왕이 폭정을 해서 신하들에게 쫓겨나고 제후들의 추천으로 '주정공'과 '소목공' 두 신하가 협의하여 정치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래서 이 시기를 '공화시대'라고 한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진晉나라 때 도굴에 의해 뜻하지 않은 발견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죽간이 발견이 되었는데 이게 위魏나라(전국시대) 역사서인 위서魏書였습니다. 편년체로 역사를 대나무에 편년체로 기록하였다고 해서 '죽서기년'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여기에는 내용이 다릅니다. 여왕이 쫓겨나고 제후들의 추천을 받은 '공백 화共伯和'라는 사람이 왕의 역할을 대신하였다는 것입니다. 짐작하자면 공나라의 대부 '화'라는 사람인 것입니다. 

* 여기서 논쟁거리가 있습니다. 위의 '공백화'에 대한 설명은 내 개인의 생각입니다. 한문은 띄어쓰기나 문장부호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서를 공부할 때 스승이 먼저 읽은 뒤 제자들이 따라 읽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띄어 읽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힘들고 띄어읽기가 달라지면 잘못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원문도 그냥 共伯和로 씌어 있어서 어떤 해석한 사람은 공 다음을 띄어서 공나라 사람 '백화'라고 한 것도 있습니다. 공나라까지는 맞고 그 다음의 '백伯'인데 원래의 뜻은 맞아들이고 역사의 기록을 보면 작위입니다. 예를 들면 주나라 문왕은 '서백'입니다. 백작인 건데 시대별로 다르기도 한데 주나라는 '왕'이고 그 다음으로 큰 나라의 제후는 '공'이라 했고, '공'이 '후'를 봉하고, '후'가 '백'을 봉합니다. 가장 작은 나라단위의 지배자인 거지요. 나는 그걸 '대부'급으로 본 것입니다. 전국시대 시작인 진나라가 조위한의 삼국으로 쪼개질 때도 '대부'들이 그렇게 한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내 해석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 해석이 들어간 것은 힘있는 학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서 정설이라고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기록이 맞겠습니까. 사마천은 분서로 역사서라고는 '진서'만 남아서 그를 바탕으로 당시 역사를 기록할 수밖에 없는데 당시의 진나라는 서북쪽 변방에 치우친 나라였기 때문에 중원의 일에 모를 수도 있고 자세히 알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부분의 기록이 비어 있는 것을 사마천이 개인의 추측으로 집어 넣은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게 더 타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역사학자들도 죽서기년은 위서僞書이고 '사기'가 정서라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공화기기의 청동기가 발견이 되었는데 거기에 '공백 화'라는 사람의 이름이 등장한 것입니다. 게임 끝? 그래야 맞겠지요? 기득권을 갖고 목을 세우던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 그것도 판단에.

2023-09-13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다들 백세까지 오래 오래 살겠다는 데 뭐라고 할 일 없습니다. 단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환영받지 못할 일입니다. 국가에 추가 짐을 지운다거나 가족에게 짐을 지운다거나 길이나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살아가는 건 내 입장에서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겁니다.

  미국 의회가 문제입니다. 의회는 국가의 입법기관입니다. 그 나라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상원에는 90세인 의원도 있고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80이 넘었으며 상원의원 평균 나이가 65세랍니다. 나이들면 못하는 게 있냐구요? 2018년에 쳥문회에 저커버그를 불러놓고 한 의원의 질문이 공짜냐고, 공짜면 수익은 어떻게 내냐고 물었답니다. 저커버그가 웃으며 '광고로 낸다'고 답했답니다.

  수시로,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밥으로 보호하고 규제해야 할 건데 공부도 하지 않고, 공부하려 해도 더딜 텐데 저러고들 있답니다. 그만 둘 생각 있냐니 없다고 했답니다. 근데 항상 이야기지만 그 사람들은 탐욕으로 그러지만 그런 사람을 뽑은 사람들이 뭐냐는 거지요. 지금 그들의 대통령 나이 보세요. 필요할 때 김정은도 과시했던 그 열쇠를 돌릴 수는 있을까요?

좌임과 우임

   한자 공부가 재미있는 이유가 역사공부의 심도를 깊이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제는 좌임과 우임이라는 처음 보는 용어가 나왔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여기저기를 뒤져 보았는데 시원한 게 나오지 않다가 드디어 하나 찾았습니다.

  옷섶 좌우를 연결할 때 가운데서 만나면 앞이 벌어지기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다른 쪽을 덮어야 합니다. 덮어서 옷고름을 왼쪽에 매면 좌임, 오른쪽에 매면 우임입니다. 뒤져 보면 복식 연구한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어느 쪽 옷섶이 위로 가는 지로 구분한다고 하는데 좌임은 오른쪽이 위로, 우임은 왼쪽이 위로 가니 헷갈리기도 하고 옷고름이 어디에 있는지로 만들어진 한자이므로 그것에도 맞지 않습니다. 광어의 눈이 왼쪽에 도다리 눈이 오른쪽에 있다고 하는데 꼬리쪽에서 보면 반대인 것과 비슷한 거지요.

  외국도 그런다고 하는데 요즘 남자 옷은 바지 포함하여 우임이고 여자 옷은 좌임입니다. 어렸을 땐 왼쪽에 위치한 남자가 여자의 옷을 쉽게 벗기기 위한 것이라고 선배들이 가르쳐 주었는데 유래를 모르다 보니 합당해 보이는 이유를 만들어 갖다 붙인 것이었겠지요.

  유래는 이렇습니다. 유목민, 기마민족은 말 위에서 활을 편하게 쏘기 위해 등자도 만들었지만 옷고름이 오른쪽에 있는 것이 불편해서 왼쪽에 매었습니다. 이해하는 데 한참이 걸렸는데 항상 진리는 쉽습니다.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이니 왼손으로 활을 잡고 앞을 향해 편 다음 오른손으로 활시위를 몸쪽으로 당깁니다. 그 때 옷고름과 오른손이 만날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은 왼쪽에 옷고름을 맨 좌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말을 타기 위해 바지를 입었는데 그 말은 남방인들은 남자도 치마를 입었다는 말입니다. 기원전 3백년 경에 전국시대 말기에 조나라에서 호복을 들여 와 입은 것이 한족이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중국인, 남방에 살던 사람들은 왜 우임을 하게 되었을까요. 어디에도 그 이유를 설명해 놓은 게 없습니다. 그들은 어느 쪽에 매어도 상관 없는데 오랑캐가 왼쪽에 매니 자신들은 오른쪽에 맨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죄임을 한다는 건 상대를 얕잡아 보는 욕이었다고 하니까요.


    당연히 북방에서 내려온 우리 민족은 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입니다. 그러다가 신라 덕분(?)에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우임으로 돌아갔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있습니다.

학문을 하는 자세, 노자의 진선미

   우리가 진선미라고 하면 미스코리아를 떠올리게 되게 때문에 인간 가치의 순위가 眞 善 美의 순위인 것으로 무심결에 생각해 왔는데 그게 정말로 '언젠가 왜 그 순위이지?'라고 잠시 의문을 가져 본 적 있을 뿐 부정을 혹은 고민을 해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