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그렇지만 사람도 자신의 후손을 남기는 것을 아주 중요시 했습니다. 하지만 자식 사랑이 엇나가는 경우가 성공한 경우보다 적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요? 많은 부모들이 자신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혹은 자신의 자식들이 같은 생각을 할까요? 흔히 이야기 하는 자신이 사후 혹은 지금이라도 남겨줄 수 있는 재산을 없다고 전제하고. 누구를 짚어서 생각할 필요가 없을 듯한데 최소한 자식들에게 대놓고 자신의 성과를 부정당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대놓고 부정당했습니다. 어느 날, 십 년 전쯤 일까요? 함께 한잔 하다가 '왜 저를 그렇게 가르치셨냐'고 하더라구요. 취한 건 절대 아닌 게 막 자리를 시작하면서 한 말이었습니다. 뭐라 답을 하지 못한 사이 바로 이어서 하는 말이.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항상 양보만 하고 항상 손해만 보고 살았다는 거에요. 얼마나 놀랐던 가슴이 안정을 찾았습니다. 아이는 한스러웠겠지만 나는 속으로 만족스러웠으니.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는 교육을 한 사례가 우리가 많이 접한 사실 속에서 있습니다. 촉의 유비의 아들 유선은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아주 무능한데다 겁도 많고 들을 줄도 몰라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아버지의 유산을 짧은 시간에 말아 먹었습니다. 또 하나는 그냥 생각해 볼만한 예인데 유비의 강적이었던 조조는 큰아들 조비에게 물려 주었는데 그가 왕으로서 별 잘못한 것은 없이 원만했는데 잘난 동생이 있어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셋째 조식이 모든 면에서 뛰어났고 시를 짓는데도 꽤나 이름을 날렸습니다. 우두머리는 자신보다 뛰어난 신하는 두려운 법이고 천하 일인자로서 두려움을 가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니 뛰어난 자는 제거해야지요. 연회 자리에서 '네가 그리 뛰어나니 일곱걸음 안에 형제에 관해 시를 짓되 형이라는 글자도 제라는 글자도 들어있어서는 안되며 실패하면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시가 칠보시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과 그 뒷 이야기는 스스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재미있습니다.
명작입니다. 이 원문 보다는 핵심만 줄인 다음의 시가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잘 줄이면 원래의 것보다 더 이렇게 뛰어 납니다. 조조는 저 세상에서 이승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일단은 사마의를 견제하면서도 버리지 못한 탓에 3대인 조예에 이르러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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