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영화 '호프'에 대해 말들이 많더니 이젠 영화평론가 이동진에게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호오의 의견이 엇갈리는 와중에 그가 평점 4점으로 호평을 한 것이 그의 평소의 평론과 다른 평이라는 점으로 영화를 본 사람들의 비판이 쏟아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화평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술 작품에는 모두 다 평론이 따릅니다. 여기의 영화평론, 미술평론, 그리고 문학평론. 음악평론도 있는 것 같습니다. 평론이 왜 붙는 걸까요? 평론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요? 말은 평론이지만 실은 그 중심이 그 작품에 대한 설명입니다.
영화평론. 나는 이걸 완전히 무시합니다. 더스틴호프만의 '졸업(The Graduate)'부터 였습니다. 성장기라고 극찬을 받았고 주연 배우가 이것을 통해 크기 시작한 것이기도 했구요. 왜 좋은 영화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세 번쯤은 본 것 같습니다. 몰라요, 육감적인 몸을 보기 위해서 보았을지도. 내가 본 영화는 분명 고등학생이 친구(동급생)의 엄마와 성적으로 놀아나는, 그러니까 단순히 성적으로 놀아나는, 게다가 책임지지도 않고 버리며(감히 싱싱한 고등학생을 가지고 논 유부녀는 더럽다는 관점으로) 지 또래의 짝을 데리고 떠나버리는 삼류 영화일 뿐이었기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라붐'도 두 번을 보았습니다. 그 때부터 영화평을 무시하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인 것은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였습니다. 유력지 기자라면 알 것 다 알 뿐 아니라 사기치는 기술마저 기본적으로 보유한 주인공이 시골의 순진한 유뷰녀를 꼬셔 출장 간 시간 동안 현지처 처럼 가지고 놀다가 출장 기간이 끝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리고 떠난 이야기. 그런데 남은 여자는 그걸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으로 간직한다는 영화. 이런 건 명작이라고 하는 거의 모든 영화에 다 해당합니다. 우리나라도 대표적으로 '복수 3부작'으로 꼽는 그 세 영화를 선두에 세울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극기 휘날리며'가 반공영화가 아니라는 그런 방향의 평론, '친구'가 명작의 반열에 들어간다는 것까지 영화 평론은 내게는 좋은 평을 받고 많은 사람이 몰리는 영화는 쓰레기라는 옳은 판단이 서게 되었습니다. 아, 정점은 찍은 건 건축학개론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열이 훅 끼쳐 오르네요.
문학. 디어헌터를 읽고 영화를 본 뒤 한 번 더 읽었습니다. 그저 반공영화일 뿐인데 왜 명작이라고 하지? 그게 아마 시작이었던 같습니다. 문학평론을 읽지 않아야 하겠다고 생각한 결정타는 노인과 바다였습니다. 뭘 말한다고? 거기에 어린왕자를 함께 끼워 넣으면 그들, 서양인들의 사랑과 삶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들까지 함께 엮어서 그들의 생각을 살펴 보면 그들의 철학의 깊이를 알 수 있고 우리가 학교에서 소개 받았던 서양의 근대 소설들을 더하면 그게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평론까지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 없고 근본적으로 평론이 하는 일에 대해 판단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냥 스스로 하는 것이라면 뭐라 할 일이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건 그들이 대중을 상대로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진정으로 그렇게 묘사를 한 건 이런 뜻이 있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든 사람이 그것을 본 사람이 이해할 수 없게 표현한 것을 제3자가 설명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어떻게 이해했다고 말하면 상관이 없는데 작가가 말하려고 한 것이 '이것'이라고 설명(강의)을 하는 투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만들었을 때 그것을 보는 대상이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생각을 하고 만들었을 것인데 본 사람마다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다를 것인데 그것을 평론가가 하나로 정리해 준다는 것입니다. 대중을 가르치는, 교육시키는 그런. 애초 작가가 대중이 이해하기 어렵게, 자신만의 세계 속의 관념을 표현한 추상미술처럼 만든 것이라면 그것에 빠지는 대중은 레밍스이니 뭐라 언급할 필요 없습니다. 평론하는 자들이 없으면 그런 사기꾼들이 돈을 벌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작가와 평론가들이 합작한 사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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