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정체성은 숙명처럼 주어진 것도 있을 순 있지만 그것은 '조금'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째진 눈의 황인종이고 흙수저인 남성이지만 그것이 나를 전부 대표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가장 큰 것은 '사용하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친한 친구는 내가 술을 마시면 말이 거칠어진다며 싫어하지만 전남(북도를 뺀)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문장 하나에 두 개 이상, 어쩌면 문장의 절반 정도가 욕이었고 그게 그냥 추임새처럼 써왔기 때문에 정신이 느슨해지면 풀려 나오는 것입니다. 그건 전남 수컷의 정체성입니다.
영어를 많이 섞어 쓰는 것은 친미주의자의 정체성입니다. 마누라 이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인사를 하지만 군대에 치를 떨었던 사람은 그 방향으로는 오줌도 사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본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미국말이나 일본말은 가려내어 쓰지 않으려 하고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버릇이 되어 이미 새어 나온 말도 기어이 정정을 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라고 한 건 주제를 가지고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한 것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한 사람, 다른 대학의 사람, 같은 학교에서도 이과 계열의 사람들 단어 뿐 아니라 문장의 완성도까지 아주 달랐습니다. 동 자치회장이라고 으스대는 종구는 헬스장에서 날 보고 '야, 열심히도 해. 삼십년을 더 살겠다'고 하네요. 꼴보기 싫으면 '나처럼 고상한 운동(골프)를 하는 게 어떠냐, 고생하지 말고'라고 말하면 좋을 건데. 명절 모두 모인 자리에서 트리클다운이 어떻고 FOMC의 이번 결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야기 하는 것은 과하게 과시하려는 것이니 자리에 맞는 이야기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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