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2

차이!

 하얀 비행기

엄마가 하늘 보고 한숨 쉬면 아빠는 멀리 가시곤 했네

나는야 뚝길 따라 풀잎 씹으며 날리는 하얀 비행기


아빠가 떠나신지 며칠 후로 엄마는 일만 하시네

나는야 담장 넘어 꿈을 꾸는 새빨간 고추 잠자리


오늘은 엄마 얼굴 활짝 개이고 장터로 심부름을 보낸다

나는야 입을 모아 불어보는 아주 작고 작은 휘파람


아빠가 돌아오신 그날 밤에 엄마가 우시는 소리

나는야 공부 더 열심히 해서 엄마 위해 드려야지


  모두 4절로 된 동요입니다. 검색해 보면 97년 안치환이 부른 것으로 소개되어 있고 어떤 곳은 1982년 와이 행사장에서 공연한 기록도 있습니다. 노래는 둘 다 별로입니다. 불러 달라는 댓글 달리면 추가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노래인데 내 이야기, 내 주변의 이야기여서 많이 좋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많은 노래와 놀이를 가르쳐 주었지만 이 노래는 부르다 보면 울컥해져서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지는 아니 했고 술 마시고 울적해지면 혼자 불렀던 노래입니다.

  난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을 이가 갈려서 내 아이들에게도 그 하나의 에피소드도 들려 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겪었던 그 어려움은 아무리 부드러운 표현으로 포장해도 되지 않을 추접하고 더럽고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이라는 곳은 여자는 국민학교, 남자는 중학교를 마치면 거의가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이 노래 가사처럼 내 아버지도 한 번 올라가셨는데 여비만 다 털어 드시고 빈 손으로 내려 오신 뒤로 엄마는 그를 그 뒤로는 등 떠밀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가난 속에 살아야 했던 큰 원인 중 하나가 지금은 잘 나가고 있는 혁신당의 서의원 집안 때문도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던 때 엄마의 소중한 마지막 돈으로 동네 가장 기름진 논 다섯 마지기를 산 것을 그 동네로 이사 오라고 꼬드겼던 이모네가 장진형 학교만 보내면 그가 벌어서 그 집 살 수 있으니 학교 보낼 수 있게 그 논을 5년만 빌려 달라고 했고 문서도 썼습니다. 그리고 돌려 주지 않았습니다. 모자란 순둥이 가장은 술마시고 몇 차례 덜려 달라고 떼를 썼지만 두들겨 맞고 쫓겨날 뿐이었습니다. 그가 돌아가시고 빚잔치 하면서 엄마한테 나도 컸고 문서도 있으니 법으로라도 돌려받겠다고 했더니 '흉악한 집안'이니 잊어버리자고 하셔서 잊었습니다. 문서는 남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내 후대에 물려 주지 않습니다. 내 부모의 유해도 내 가난의 흔적도 내 고향도 그 어느 것도 아이들에게 이어 줄 생각 없습니다. 그들이 살게 되는 세상이 갑자기 아름다운 세상이 될 리 없지만 최소한 나의 더럽고 고통스러웠던 것들을 물려 줄 생각 없습니다.

  단, 내가 그들에게 그런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물려 주었다고 오해 받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 가난을 이겨 내어 그들이 학교를 마칠 때까지(둘째는 7년을 다녔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도록 애썼고 이 땅의 불의를 최소한 약화 시키기라도 하려고 전교조를 넘어서 노동운동까지도 열심히 했습니다. 나는 현재도 아이들보다 더 왼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적 배경만으로도 지금의 세대와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의 말처럼 그런 집안과 그런 나라를 지금만큼이라도 바꾼 나는 배척 당하고 비난 받을 일이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칭송받을 생각도 없으니 비난을 받을 생각도 없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주역 점을 치는 방법

   점을 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산가지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요약합니다. 0. 통에 50개를 넣고 시작.  1. 모두를 손에 쥐고 1개를 통에 넣고 49개로 시작. 2. 두 손으로 둘로 나눈다. 3. 왼 손의 위에, 오른손의 것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