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사태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어제는 대통령이 헌법에도 있다며 정교분리라는 말을 했지만 세속에 존재하면서 세속권력과 독립하여 존재하기에 종교의 본질은 그리 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이들은 마음수양과 위로의 수단으로 삼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것이 꼭 보이지도 않는 존재 신神이어야 한다면 스스로 호로 설 수 없는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일 분입니다.
종교가 초월적이니 선험적이니 이야기를 하는데 차라리 마술사를 신으로 떠받들면 그나마 현명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술사도 존재하고 도구도 실존하니까요. 한자로는 宗敎이고 宗의 뜻은 '마루'이니 우두머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철학과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그 우두머리가 神인데 그 '신'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울 때 인류가 처음에는 특별한 모양이나 크기를 가진 동물이나 바위나 나무에 신령스러움이 있다고 기대었던 토템이 종교의 시작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만물에 '영靈'이 깃들어 있다는 에니미즘이 있구요. 그리고 종국에 보이지 않는 초월신이 등장하는데 이게 종교라고. 결국 기원하는 대상이 달라진 것 뿐입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기도하면 들어준다고 생각하고 그 대상을 정하는 것은 똑같은 것이고 종교는 그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 다릅니다. 그러면 동양은 어떨까요?
국가를 세우면서 등장하는 종교는 중국도 같습니다. 상나라 시절 왕(황제는 진나라 때부터)은 인간의 대표이자 신의 뜻의 전달자였습니다. 점을 쳐서 하려고 하는 일의 길흉을 묻고 그에 따르는데 점을 치는 사람이 왕이었고 갑골문에 새기고 해석하고 정리하는 사람이 정인貞人이었습니다. 지금은 여성 이름에 많이 쓰이는 貞이 '곧다'는 뜻이지만 당시는 점占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당연히 점을 친 결과와 실제의 일의 결과가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그래서 나중에는 길한지 흉한지의 두 가지만 나오게 점을 칩니다. 맞출 확률이 높아진 것입니다. 상나라를 정벌한 주나라 초기의 정책 입안자이자 권력자였던 주공이 이 국가 존립의 철학적 체계를 확 바꿉니다. 점을 칠 때 산 사람을 제물로 쓰는 비인간적 행태를 앞세워 神이라는 존재를 새로이 정의합니다. 인간과 상관없는 존재로.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하여 겨울을 거두어 가는 법이 없고, 땅은 사람이 먼 길을 싶어한다고 하여 그 넓이를 줄이는 법이 없다. 군자는 소인이 떠든다고 하여 할 일을 그만두는 법이 없다. 하늘에는 변함없는 법칙이 있으며, 땅에는 변함없는 규격이 있으며, 군자에게는 변함없는 ...
추위가 몰려오는 것은 하늘이 명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순환으로 그리 되었을 뿐 이다. 추운 날씨를 멈추어 달라고 하늘에게 비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자연은 스스로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며. 사람도 사는 세상의 변함없는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하자의 풍경'에 나오는 표현을 가지고 왔습니다. 주나라가 1046년에 세워졌고 이미 이런 인식을 하였는데 서양은 아직도 저렇고 한국의 종교인들도 저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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