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생활기록부(지금은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장래 희망(진로 희망)에 전에는 무조건 써야 한다는 지침에 의해 장래 걱정하지 않는 아이들은 보통 '회사원'을 써냈고 나중에 직업을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고 하면서 특이하게 바뀐 게 '희망 없음'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 시기 최소한 두 가지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직업을 '건물주'나 아예 정말 구체적으로 '삼성전자' 따위로 쓰는 아이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물론 '희망 없음'을 쓴 아이들도 한 학급에 다섯 명 정도는 나왔습니다.
'어떻게 살지?'는 항상 고민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다섯 살 아이도 멀리 보지는 않더라도 오늘 유치원에서, 태권도 학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건지의 계획이 있을 거니까요. 따라서 장래 희망(진로 희망)은 비워 두는 게 아니라 최소한 '인문계 고등학교'(중학생 입장에서) 정도라도 써야 합니다. 오후에 바뀌더라도.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어떻게 살건지'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지 말아야 하는지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결론을 내어 놓는 영역이 철학이고 그 이론을 만드는 사람이 철학자인 것입니다. 일반 사람도 고민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가 어려우니 철학자들이 지적인 역량이 떨어지는 다수의 대중에게 바른 삶의 지침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최근 대표적인 게 마이클샌델이고 정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철학자도 사람이니 그의 의견(이론)이 절대적일 수 없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무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그보다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니고 그와 나의 삶의 기본을 이루는 많은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철학이란 게 시간과 공간의 영향에 의지할 뿐 아니라 큰 물에서 노는 사람들은 쉽게 놓치는 진짜 중요한 요인,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내 호주머니 상황은 그가 뭐라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철학자는 자신의 기준으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일에 대해서는 방향 제시를 해주어야 합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지배했던 시기의 여운형, 해방 직후의 김구, 군사독재 시기의 이영희 등 목숨을 걸고 무식한 사람들에게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뉴스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기사의 제목은 '만 105세' 국내 최고령 철학자의 장수 비결 “남 욕하지 않는 것”. 이래서 비위가 뒤틀린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철학자? 이 자는 뭐를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 자가 전에 뭐라고 주절인 거지? 경향신문에 함께 실린 그의 말들입니다.
사람은 인격이 있어야 존경을 받는다.
젊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책을 냈는데 최고령 저자로 기네스북에 올랐답)
30대 전후에 ‘내가 육십, 칠십이 되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라는 자화상을 그려야 한다. 그런 생각이 없으면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기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이기주의자가 되지 말자.
백 년을 살아보니 나라다운 나라는 권력이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나라
나는 주어진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선택한 일보다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하는 게 내 원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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