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은 상나라를 낮잡고 주나라를 숭상합니다. 그러면서도 백이와 숙제를 칭송하는 걸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주나라에 대한 서술을 온 정성을 다 합니다. 무왕이 나라를 세웠고 그의 아버시 서백 창을 문왕으로 추존합니다. 그러면 왕위 계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문왕(서백 창)-무왕(발)-성왕(송)-강왕(교)-소왕(하)-목왕(만) ...
무왕이 무력으로 통일 왕국을 안정시키고 성왕과 강왕이 나라의 기틀을 잡습니다. 소왕 때 살짝 흔들리다가 목왕이 법을 통해 안정시키고 기틀을 잡습니다. 성왕에서 강왕 때는 천하가 안정이 되어 형벌을 사십년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왕 때 형벌(법)을 정리합니다. 다음의 다섯가지 형벌을 보형甫刑이라고 합니다.
형벌의 이름과 종류 가짓수 사면 조건
경형黥刑(묵형) 일천 가지 일백환
의령劓刑(코를 자름) 일천 가지 이백환
빈형臏刑(발꿈치를 베어 냄) 오백 가지 삼백환
궁형宮刑(거세) 삼백 가지 오백환
대벽大辟(사형) 이백 가지 일천환
모두 합하여 삼천 가지의 죄가 있다는 것이니 청동기 시대인데도 많이 무질서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면조건을 보면 사기에 그 돈의 가치를 써놓은 게 없으니 정도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주나라가 기원전 1046년에 개국하여 기원전 256년에 망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따져 본다면 통일국가 주나라는 기원전 771년 유왕이 죽은 때까지, 그러니까 서주라고 하는 때까지로 보는 게 맞습니다. 그 뒤로는 여러 제후국들 중 하나니까요.
뭘 생각해 보자는 거냐면요. 고조선(조선)의 8조금법에 대한 것입니다. 저쪽 먼 땅의 함무라비법전도 좋구요. 형벌의 정도를 보았을 때 도둑질을 한다는 건 들켰을 때 엄청난 피해를 입는데도 했다는 거니까 그 위험을 감수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빈곤한 자들이 많았다는 뜻이고, 남의 여자 건드리는 조항을 보면 결혼할 수 없는 자들도 많았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게다가 예기에 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라고 했으니 이 형벌들은 평민에 한하는 것이니 사면 조항이 있어도 그만한 돈을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공자도, 사마천도 '인仁을 실천한 나라라고 하지만 그 사진이 쓴 주나라의 어떤 부분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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