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김당 후보의 득표율은 얼마나 나올까요. 경향신문 한 기사에서는 39~40으로 보던데요. 저는 35~40인데 그 차이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미가 있는 것은 중도 혹은 부동층이라고 불리우는 선거인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들은 어느 편을 함부로 들지 않고 냉정하게 후보를 판단한다는 멋있는 포장을 쓰고 있는데 그냥 허울이라는 게 이번에 드러났습니다. 너무도 명확하게. 후보 본인은 계엄 사과 없고 탄핵은 반대이며 다만 계엄으로 사람들이 피해 입어 미안하다는 입장입니다. 거기에 반헌법 계엄의 당사자이자 부정선거론자가 편을 들었습니다. 또한 거기에 부정선거를 전면에 걸었던 후보가 자신이 사퇴하고 구김당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좌고우면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그 당 후보를 찍는다는 것은 반헌법 판정을 이미 받은 계엄을 지지하고 마찬가지로 수십, 수백건의 법원판결로 부정한 것이 없다고 확인된 부정선거 주장도 지지한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걸 함께 외치는 것이 솔직하기라도 한 건데 이들은 멋있는 척하고 있으니 더 더럽습니다.
다시 검찰과 법원과 언론에 대한 비판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제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시작은 350만년이라고 하지만 문명이 시작된 건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수메르 기원전 7천년이니 통틀어 1만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어찌 되었건 이 시간 동안 인류는 모여 살면 이견이 존재하게 되니 어떻게 서로 다른 생각을 모아 국가를 형성할 것인지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그 중 현재까지 제일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입니다.
만장일치면 좋겠지만 그것은 씨족사회처럼 작은 집단에서나 가능합니다. 집단이 커지면 이익을 더 많이 보는 자의 이익이 다른 구성원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작은 이익을 주게 되기 때문에 당연히 이견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힘센 집단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수월했고 그런 체제를 인류는 도입했습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요. 구성원 모두가 똑같은 권리를 갖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시작이었고 바스티유 감옥을 깨뜨린 것이 1789년이며 그러고도 수십 년 엄청나게 많은 피를 뿌리며 모두에게 참정권이 주어졌습니다. 지금 그런 주권이 주어지지 않는 나라는 제법 되지만 민주주의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참정권이 주어지니 서로 다른 의견이 나왔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끄럽다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숭상하는 이들은 '시끄러우니 제한하자는 거고 실은 두들겨 패고 감옥에 넣자'고 말하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의견이 다르고 서로 자신의 주장을 물리지 않으면 다수결로 하자는 것이 민주주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투표와 선거라는 제도입니다. 정리해서 짧게 말하면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투표와 선거가 생명인 것입니다. 그 말은 선거에 부정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부정이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여러 번 나왔는데도 그걸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유언비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 세 집단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을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죄목으로 왜 처벌하지 않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 어떤 언론도 이런 관점으로 단호함을 보이는 곳이 없습니다.
누가 당선이 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 후보가 이런 상황에서도 35%이상 나올 거라는 게 이 나라 민주주의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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