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을 읽다가 프랑스혁명을 확실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호수공원도서관에서는 서유기를 읽고 있고 학생교육문화회관도서관에는 레미제라블을 읽고 있고 쌍봉도서관에서는 뤼팽전집을 읽고 있네요. 여튼 프랑스혁명을 알아야 레미제라블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살짝 곁길로 빠졌습니다.
먼저 '혁명'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혁명(革命)「명사」 「1」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혁명의 뜻을 분명히 해두려고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위키백과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혁명(革命, 영어: revolution)은 권력이나 조직 구조의 갑작스런 변화를 의미한다.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법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다.
공부할 때의 개념을 적용하자면 표준국어대사전은 '협의'적 해석이고 위키백과는 '광의'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명확히 하려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만 그렇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위키백과에서도 세계3대시민혁명을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혁명, 미국독립혁명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예혁명은 왕을 바꾸었을 뿐이고 의회와 힘을 나누는 것이므로 나는 혁명의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독립혁명은 '전쟁'입니다.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국과 싸우는 것은 '독립전쟁'이라고 하지 '혁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서양, 그리고 자본주의 중심의 역사 기술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사실 중 현재에 소환하지 않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현재에 소환한 것은 기억에 의존합니다. 개인간의 일도 과거의 일에 대한 기억은 입장이 다 다른데 '역사'라는 것은 쓰는 사람의 입장이 훨씬 더 많이, 깊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혁명이라고 한다면 앞의 둘은 빠지고 러시아혁명과 프랑스혁명 둘이 확실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명예혁명은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어서 혁명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지 그게 뭡니까. 그 나라는 아직도 '군주'가 존재하는 나라 아닙니까. 신분이라는 것을 깨뜨리지 않은 것은 개혁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피와 내 몸에 흐르는 피가 차별적이라는 것을 까뜨리려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지가 바로 러시아혁명과 프랑스혁명에 있습니다. 전제하고 프링스혁명을 정리합니다. 뒤져보면 전체의 흐름을 보여주는 게 없습니다. 이유는 프랑스대혁명을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서 공포정치까지만을 의미하면서 그것의 앞과 뒤는 아주 간단히 다루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대혁명 정리
▶ 1688-명예혁명(영국)-입헌군주제-군주의 권력이 법으로 제한됨
▶ 구체제(앙시앵 레짐)-1789년 프랑스혁명 때 혁명가들이 처음 사용
왕권이 귀족을 강력히 통제. 무생물까지도 계층구조. 왕은 신의 대리자.
1신분-성직자. 전체 인구의 1% 미만
2신분-귀족. 군사적 지원 제공. 전체 인구의 1~2%
3신분- 평민. 농민이 85%. 토지 소유 농민은 40% 미만
귀금속 매장이 없는 프랑스는 제조업과 무역 발달. 중상주의. 부르주아지와 쁘띠부르주아지 급증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한 교회와 귀족은 세금 면제
이 시기는 국가간 분쟁이 있어도 상대를 굴복시키지는 않음. 세력균형 유지
▶ 루이14세-태양왕. 엄격하고 강력하면서도 우아한 왕정의 기준 확립. 베르사이유 궁전 건립.
▶ 계몽주의의 등장-이성의 시대. 지식이란 오직 경험과 실험, 관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 교회의 권위와 세계관에 도전. 삼권분립(몽테스키외), 사회계약(루소). 국부론(아담 스미스, 개인이 각자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결국 공공의 이익이 됨. 자유방임). 계몽왕정 의도. 피가로의 결혼(모짜르트 오페라. 원작은 피에르 드 보마르세. 세비야의 이발사도 씀. 신분적 특권과 상류사회 풍자. 미국독립전쟁 적극 후원)
▶ 삼부회-루이16세. 구조적 문제(18세기 사회경제적 변화, 계몽주의 사상, 왕정의 약화), 단기적 요소(부채, 재정 위기, 흉작) 등으로 소집. 1614년이 마지막. 1789년 5월 초. 신분 당 1표.
▶ 국민의회-1789년 6월 삼부회에서 3신분이 이탈 독자적으로 성립. 우리가 있는 곳이 국가다. 새로운 헌법 제정 요구. 군대 투입
▶ 바스티유 감옥 습격-1789. 7. 14. 소작농의 영주 저택 습격. 프랑스 국경일
▶ 제헌국민의회-봉건주의 잔재 공식적으로 폐기. 8월26일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루이16세 서명 거부. 왕을 베르사이유에서 파리로 호송. 사실상의 입헌군주제. 교회 재산 몰수. 성직자와 주교를 국민이 선출. 성직자는 국가에 대한 충성 서약.
▶ 1791년 6월 새로운 헌법 공포. 입법의회가 선거를 통해 구성. 왕은 보류권만. 루이16세 파리 탈출하다 국경에서 잡혀 옴. 새 헌법 발효.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침공. 왕이 외국 군주와 결탁했다는 소문으로 다시 폭동. 새로운 선거
▶ 국민공회-1792년 9월. 왕정 폐지, 공화정 선포. 보통선거제 복원(성인 남자의 선거권 부여. 1789년 도입했으나 1791년 재산 기준 선거권 부여). 급진파 자코뱅당(당통, 로베스피에르). 1793년 1월 루이16세 사형 선고, 집행. 한 달 뒤 영국, 네델란드 스페인 추가 참전. 급진 세력의 힘이 더 강해짐. 공포정치. 4만 명 사형. 1794년 당통과 로베스피에르 사형
▶ 총재정부-1795년 10월. 4년 지속. 5인의 총재가 행정권. 급진적 혁명노선과 반동적 왕당파 사이 타협점 시도. 전쟁으로 입지가 약해져 스스로 나폴레옹의 쿠데타(1799년)지지.
▶ 나폴레옹-1800년 2월 제1통령으로 선출. 1802년 종신통령으로 선출. 1804년 5월 황제 선포. 10년간 황제. 총재정부의 중도노선 유지. 혁명의 주요 성과 유지. 급진 또는 왕정 복귀 회피. 교회와 화해. 1812년 러시아 원정. 실패로 엘바섬 유배. 1815년 탈출 영국, 프러시아 연합군과 워털루 전투 패배.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 1821년 사망
▶ 부르봉 왕조 복원-1814년 4월 루이18세(루이16세 동생). 언론의 자유와 의회 인정.
▶ 7월혁명-1830년 샤를10세 폐위. 오를레앙 백작 루이 필리프 왕으로 등극
▶ 2월혁명-1848년. 프랑스 제2공화국. 왕정 종식.
▶ 프랑스 제2제국-1851년 루이 보나파르트 권력 찬탈. 1852년 나폴레옹3세로 스스로 추대.
▶ 프랑스 제3공화국-1870년~1940년.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 나폴레옹3세 생포, 패전. 새로운 공화정 선포. 1871년 독일 점령하에 치러진 선거에서 왕당파가 의회 장악. 독일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종전협약
▶ 파리코뮌-1871.3.18.~5.28. 굴욕적인 조건에 반발. 자코뱅파, 블랑키파, 무정부주의자, 제1인터내셔널, 푸르동파. 피의 일주일. 1만~5만 사망. 10만명 체포 4만명 기소
▶ 뒤레퓌스 사건.
▶ 제1차 세계대전-1914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대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 베르사이유 조약- 1차세계대전 결과 처리.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
▶ 제2차 세계대전-1939년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 일본과 연합국간 2차세계대전 결과 처리. 46개국. 한국은 없음
▶ 2+4조약-2차세계대전 결과 처리. 1990년. 모스크바.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대 동서 독일. 독일관련 최종해결에 관한 조약
▶ 프랑스국-1940년
▶ 프랑스 제4공화국-1946년
▶ 프랑스 제5공화국-알제리전쟁(1954년), 베트남전 패배(1957년). 1958년 수립 현재까지
프랑스의 혁명 과정을 주위 나라들에서는 아주 우려스러운 눈으로 지켜 봅니다. 왕권이 약화되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주변, 그러니까 자신들의 국가에도 전염될 것을 걱정한 것이지요. 그런데 왕을 처형하니까 그냥 보고 둘 수가 없어 주변국들이 침공을 한 것입니다.
전쟁의 과정에서 실력이 뛰어난 장군인 나폴레옹이 등장하고 공포정치의 막이 내리면서 등장한 총재정치가 갈팡질팡하며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키니까 아예 그에게 권력을 내주어버리게 되고 나폴레옹은 받아서 아예 자신이 스스로 황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략에 실패하고 몰락하자 다시 권력이 왕에게 넘어갑니다.
그러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왕이 사로잡히고 권력을 쥐고 있던 왕당파가 너무나도 심하게 프랑스에 불리하게 종전협정을 맺자 파리코뮌이 일어나며 왕정이 아예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파리코뮌은 좌파들이 총집합한 것으로 이를 잔혹하게 진압합니다. 거기까지가 프랑스혁명이라고 봅니다.
P.S.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날 지금도 프랑스 국경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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