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는 한겨레21은 뉴스(news)성을 빼고 보면 볼만 합니다. 시사인이 자꾸 보라고 귀찮게 하지만 동료교사가 보는 걸 이어받아 몇 주 보고는 수준차이를 느꼈습니다. 문장력, 깊이, 방향성 등. 문제는 올해 년초까지 보았던 한겨레21이 목요일, 그것도 오후에 배달된다는 것입니다. 금요일에 받아보는 시사주간지는 시사성이 없으니 그 돈을 주고 볼 일이 없어서 두 차례에 걸쳐 문제 해결을 요구했지만 우체국의 문제라 자신들은 방법이 없답니다. 웃기는 곳이지요. 언제부터인가 인쇄 신문이나 잡지의 몰락이 진행되고 있는데 가장 핵심인 배달체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못하는 게 아님) 방법이 없다니. 당연히 구독중단. 아쉽던 차에 다른 이의 것을 이어 받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컬러 바탕의 한 쪽 짜리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면 안 됩니다. 뒤로 가면 보물들이 숨어 있거든요. 최근 호에 새로 보는 꼭지의 흥미로운 글이 올라왔습니다. '일기 쓰는 남자'인데 그가 지금처럼 더웠던 1994년에 쓴 일기였습니다. 초등생 일기장인데 글씨체가 놀라워 나이를 한참 찾아 보았습니다. 아홉 살. 이런 데는 만나이를 쓰지 않는데 만나이라고 쳐도 초등학교 3학년.
언론에 자신이 공개한 건데 가져다 올려도 되겠지요? 안전하게 주소 올릴까요?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5761.html
역시 존경하는 한겨레의 기자가 될 그릇입니다. 대단한 글솜씨입니다. 그런데 빨간 펜이 신경이 쓰입니다. 큰 놈 고등학교 시절 에세이를 그의 모자란 국어선생이 평가한 것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두 가지 지적 사항 모두 시제에 대한 건데 그런 정도의 차이는 중학생도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 본 아이가 아니면 구분을 못할, 잘못이라고 보기에는 '미숙한' 표현(!)이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이 부러운 것이 이 지점입니다. 이 나이에 이런 완성도와 표현력을 가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과 이 글에 저런 지도를 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
첫 번째 지적은 타당합니다. 아직 놓아준 것이 아니니 '그리움'을 그렇게 표현하면 안되니 굳이 그 표현을 쓰려면 '그리울 것 같았다'라고 해야 하니 지적이 타당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끼어듦이 과합니다. 교사의 그낌대로 '아쉽기 때문'에 '보내주고 싶지 않지만 보내줄 수밖에 없는 심정'이 아이의 표현대로 쓰는 것이 맞습니다. 글을 간결하게 쓰라고 그랬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글쟁이의 길고 현란한 수사가 아닌 애틋한 아쉬움의 표현마저 금지한다면 그건 에세이도 아닌 보고서도 아닌 '논문급'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거슬리는 것은 일기에 별점을 매긴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평가일까요. 일기가 평가의 대상인가요? 사실성을 성실하게 나타냈다고 본 것이라면 교사는 아이의 과거를 볼 수 있는 '신의 눈'을 가진 것이고 글을 잘 썼다고 평가한 것이라면 '평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입니다. 수학 서술형 문제에서 '시제'나 '맞춤법'을 틀린 것은 감점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더워서 딴지 거는 게 아니고 정말 두 가지 감정 모두 깊게 느껴진 것이었습니다. 뛰어난 학생과 교사, 그리고 지나친 참견.
201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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