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0일 월요일

어려움일까, 어지러움일까

   누가 뽑았는지 모르지만 대통령이 의회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총으로 의회를 쳐들어간 것으로 내란죄에 처한 지금 말 깨나 한다는, 혹은 자신의 똑똑함을 삶의 기본으로 삼는 그런 사람들이 모두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즐겨 듣는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서 진행자가 이 두 개의 단어를 모두 사용하며 정리를 하지 않고 지나가네요. 그 사람도 공부가 더 필요 합니다. 

  어려움은 어려울 난難입니다. 아주 곤란한 지경인 것입니다. 癸酉靖難. 코흘리개가 정권을 이어받아 나라 사정이 힘드니 자신이 나서서 靖(편한하게)하였는데 계유년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조가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일을 일컫는 말입니다.

  어지러움은 어지러울 란亂입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두 가지 섞어 써도 되겠습니까? 잠시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하는 상태인가요 난리가 나서 난리의 원흉을 두들겨 잡고 적군을 물리쳐야 하는 건가요?

유교의 민낯

   도학과 도교는 차이가 있습니다. 노장에 따른 학문, 그리고 그 학문을 삶의 목표로 하는 것을 도학, 도학자라고 하고 점을 치고 도술을 부리는 쪽으로 간 사람들은 '도사'라고 하여 '도교' 쪽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유학과 유교는 분리할 수 없습니다. 전에 이야기 한대로 공자가 어렸을 때 다른 또래들이 밖에서 뛰어 놀 때 자신은 제삿상을 차리고 놀았다고. 그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기독교처럼 자신들의 본질을 버리고 백성을 안중에 없고 권력만 지키고 빼앗으려고 했기 때문에 유교도 기독교도 믿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그들을 아주 추하게 봅니다.

  유학의 창시자가 공자라면 주희는 유학의 신으로 모십니다. 오죽하면 주자학일까요. 유학을 집대성하고 오경의 참뜻을 밝히고 유학을 완성시켰다고 칭송 받는 인물입니다. 중국에서도 그렇고 조선에서도 그가 말한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다 '사문난적'으로 몰려 함께 공부한 무리들이 아주 참혹하게 죽은 일들이 있습니다. 사문난적斯文亂賊의 벌은 왕위 찬탈의 벌과 같은 무게였습니다.그런 주희가 한 말 하나 보겠습니다.

朱子曰

(婦人)餓死極小, 失節事極大.

주자 이르시기를

(부녀자가) 굶어 죽는 일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정조를 잃는 일은 매우 큰 일이다.


  명심보감의 婦行편에 있으니 괄호 안의 '부인'이 원본에는 없는데 이렇게 일부를 떼어 오면 주어로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이어서 추가한 것입니다. 명심보감에 있는 줄은 몰랐고 소설 옹정황제에 나와서 글로 쓰려고 찾아 보니 명심보감 마지막 편인 부행편에 나오는 것이네요. 어떻습니까. 유교니 유학이니 요 나부랑이들 무시하고 기피해야 맞는 것이지요?

2024년 12월 25일 수요일

이월하의 강희대제를 읽고

   이런 대단한 이야기꾼을 모르고 있었어요. 위대한 중국을 이야기한 김용이 정권의 보살핌으로 지나치게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이 이 소설가와의 만남입니다. 이월하는 필명이고 본명은 릉해방(凌解放)입니다. 이름이 '해방' 그대로 입니다. 황하를 사랑하여 2월의 황하라는 뜻으로 필명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의 주류세력인 한족들은 자신들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중화를 둘러싼 자신들이 오랑캐라고 하였던 그 세력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할 수 없었습니다. 동북공정이든 무엇이든 서북방 오랑캐였던 몽골에게 송나라가 넘어가서 중국 전체를 원나라가 지배했던 그 시절에 대한 평가, 마지막 왕조였던 동북방의 여진족(나중에 만주족으로 개명한)이 후금을 세우고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며 지배했던 그 시기를 어떻게 중원을 중심으로 한 한족의 중화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어물쩡 덮어가고 백성은 완전히 나 몰라라 하고 유학 아니 유교놀음으로 나라를 구렁텅이에 빠뜨렸던 송나라와 명나라를, 송나라는 힘센 원나라와 거란과 치열하게 싸운 것으로 명나라는 야만스런 여진족과 싸운 것으로 주류들은 역사를 서술합니다. 어진 황제의 눈을 간사하고 악독한 신하들이 가려 나라 꼴을 엉망으로 만든 것으로. 딱 그게 수호지와 김용 소설의 기본을 구성합니다. 재미있게 그의 소설들을 읽고 욕하게 된 건 그 소설들을 읽을 때 이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또 거론하지만 내게 '백양중국사'는 '해전사' 못지 않은 '개안'을 가져다 준 책입니다.

  강희대제는 중국 황제 통틀어 '大'자가 들어간 유일한 황제입니다. 한족이 아니기 때문에 원나라의 황제의 성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청나라의 황제의 성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짐작한 건데 누르하치와 그 자손들의 성은 한자로 애신각라愛新覺羅로 생각합니다. 태조, 태종, 순치제에 이어 청나라 4대 황제입니다. 그의 생각과 말, 모든 정치행위들이 황제 그 자신에 의해 기록으로 방대하게 남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후금이던 시절 명나라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한 지역을 완전히 몰살시켜 버린 것이 명나라(한족) 사람들에게 잔인한 부족으로 각인이 되어서 청나라는 강희 시대에 두 가지 홍보정책(프로파간다)을 대대적으로 펼칩니다. 하나는 여진 땅을 만주라는 이름으로 바꿉니다. 한족의 증오심을 무마하는 방법으로. 그래서 만주라는 지명이 갑자기 대두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들이 명나라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고 명나라를 무너뜨린 '이자성'을 무너뜨리고 죽인 것이 자신들이라고 널리 정책홍보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까지 한 것은 한족이 1억, 만주족이 1백만 정도이고 한족들이 만주족을 오랑캐로 보고 원수로 생각을 하면서 정책에 따르지 않고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족들은 신기한 놈들이고 유교도 징그러운데, 조선 인조의 위기 때 결사항전을 외쳤던 주전파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정의라고 배워왔으니 역사학자들이나 그걸 가르친 역사 선생들은 무지할 뿐 아니라 나는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몰라서 한 일이라고 빠져 나가기에는 역할이 선생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유학, 유교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길게 이야기할 필요 없이 앞에도 조금씩 했으니 한 가지 예로 가름합니다. 유교쟁이들은 도살장에서 죽어가며 소리지르고 몸부림치며 도축되는 짐승들이 안타깝고 불쌍하여 멀리 피하여 돌아가고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을 천하게 여겼는데, 막상 상에 올라온 고기가 반듯하게 썰어져 있지 않으면 먹지 않고 버렸다는 겁니다. 물고기 잡아 살려 주거나, 기르거나 도축할 때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죽을 때 고통없이 죽어가게 하자는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완전 채식을 하는 사람들의 행위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식물도 생명이라는 건 모르시나 봅니다.

  황제는 비밀경찰을 직속으로 운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디에도 그런 조직을 언급하지 않지만 황제가 많은 정보를 사적인 대화까지도 거의 실시간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서술합니다. 그렇지만 그걸 근거로 칼을 휘두르는 것은 많이 절제합니다. 자신들이 무력으로 제압하고 있지만 소수파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부릴 때 쓰면 여지없이 뱉는 것도 자주 보입니다. 같은 사람의 젖을 먹고 자랐고 충성심을 눈꼽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던 시위(호신)인 위동정이 황제의 남순때 안전을 고려하여 위동정의 집에서 오랫동안 머물 때 호부에서 꾸어다 쓴 돈이 엄청났는데 호부의 채권 정리를 할 때 위동정의 채무가 자신 때문인 줄 알면서도 끝내 대신 갚아주지 않아 가난 속에서 죽게 되었고 그 채무는 그의 아들에게 이어지고 기껏 내린 조치는 조금씩, 천천히, 다 갚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황제의 청렴을 이야기하려 한 것일 수 있지만 쓰고 나면 버린 행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대표적인 사례는 진황입니다. 중국은 황하를 다스리는 것이 청나라 때도 골치였습니다. 비가 내릴 때 많이 오는 것도 그랬지만 구불구불한 강이 항상 넘쳤기 때문입니다. 요순 임금 다음의 우임금도 황하의 물을 다스린 공로로 순임금의 뒤를 이어 하나라의 최초의 왕이 되었는데 문제의 해결은 청나라까지 이어졌고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낸 귀재가 진황입니다. 물난리와 끊어지는 운하의 문제까지 다 해결한 인물인데 그가 몽골의 한 부족의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데 서로의 사정으로 떨어져 있을 때 미행을 나선 황제의 눈에 공주가 들어와 후궁으로 들여집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 물을 다스린 공로로 궁에 불려 온 진황은 황제의 뒤에 있는 그 여자를 보게 되었고 눈치 빠른 황제가 그것을 알게 되어 진황은 감옥에 갇히고 오랜 시간 뒤에 감옥에서 죽습니다. 죽고 나서 한 신하의 간언으로 석방하라고 하지만 이미 죽은 뒤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예들이 있지만 황제, 그것도 그 너른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가 나 같은 인간과 같을 수 없고 일을 처리하는 판단도 사람을 대하는 기준도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강희61년이 나옵니다. 8세에 황제가 되었으니 오래 살기도 했습니다. 기름진 음식 많이 먹은 건 아닌가 봅니다. 황자들을 많이 두었고 그들이 자신이 50 안팎일 때부터 차기 권력에 대한 암투를 벌입니다. 그의 선택은 소설의 입장에서 보면 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황자가 되었더라면 이라는 가정은 의미 없으니까요. 태어나면서 태자였던 2황자는 한 번 폐위 뒤에 복권을 시켜 주지만 결국 폐위됩니다. 폐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의 실정을 많이 늘어 놓지만 자신의 후궁과 놀아난 것을 결국 용서하지 못한 것으로 나는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새로 알게 해 준 책입니다. 한자 공부도 많이 했구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여순사건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며 역사서 소개해 달라던 사람에게 '해전사'를 초기에 나온 것으로 3권까지 읽고 시간이 부족하면 2권은 반드시 읽으라고 한 다음 권한 책이 백양중국사였는데 이 책을 읽기 며칠 전이어서 지금 이야기 한다면 이것도 권하겠습니다. 역사는 단편만 알아서는 안 되고 역사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관 말입니다.

2024년 12월 19일 목요일

법法

 접착제 사용,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애인 떨구는 , 블랜더 날 오래 쓰는 , ㄱ러는 거 아니야 그러는 어디 있어? 헌. 여기의 모든 법은 다 다릅니다. 사람들은 '법'이라는 말을 많이도 씁니다.

   , 이놈의 정체를 말해 보겠습니다. 갑골문에서는 인데 금문에서 으로 문자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水+廌(해태 치)+去 인데 해태는 올바르지 않은 것을 만나면 뿔로 받아 죽여버린다는 전설상의 동물입니다. 금문은 갑골문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고 현재 쓰는 것은 廌가 고스란히 사라진 것입니다. 대부분의 해석은 '법이란 물 흐르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공정하고 일정해야 한다고 재차 해석을 하지요.

하지만 역사를 살펴 보면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관점의 가장 오래된 고조선의 8조금법을 보면 남아 있는 3개는 살인과 상해 그리고 절도에 대한 처벌 조항입니다. 내가 보려는 것은 먼저 법이 '무엇을 하라'는 게 아니고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행위 중 가장 낮은 단계의 것임을 뜻합니다. 함무라비법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하나는 대부분이 가진 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자가 있어 가진 자의 것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법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법이 만들어질 때 사회구조의 모순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손에잡히는경제에서 '통상임금'을 계산할 때 과거에 '고정적'인 개념이 통상임금의 요건에 들어가던 것을 대법원이 그건 빼기로 했다는 걸 전하는데 그 뺀질이 기자 진행자가 소급적용 하냐고 묻길래 '그것도 질문이야'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맨 마지막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게, 인간의 행위를 금지하고 어기면 벌을 주는 것이라는 것이 말하자고 하는 것인 즉슨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법이라는 것은 과거의 질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을 현재에 적용을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 기준을 바꾸어야 하는 불안정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급 적용을 하지 않는 것이 '누구에게나', 그리고 '항상'이라는 조건과 더불어 법의 세 번째의 정신인 것입니다.

  그럴진대 요 모자란 이 땅의 정치인들은 인간의 행위 중 제일 높은 단계의 행위인 '정치'라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면서도 툭하면 '법으로 해결하자'고 법에 기댑니다. 정치라는 것은 원리원칙에만 따르는 게 아니고 타협도 하지만 협잡도 하고 배신도 하는 곳이 아닙니까. 우리는 베신이니 협잡이니 하지만 정치인들은 정치적인 득실에 따라 속한 집단을 바꾸기도 하고 정치적인 신념을 바꾸기도 하니 얼마나 높은 단계의 행위입니까. 정치인이 한번 가진 소신이라며 그걸 바꾸지 않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자신과 뜻이 다르다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정치인은 기본 자질이 없습니다. 소급적용 되지 않느냐고 묻는 기자는 무식하구요.

  사족을 답니다. 소급적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 그 땐 그게 옳았고(혹은 범법이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게 '법'이라는 것. 법은 멀리하는 게 좋은 더러운 '똥'이라는 것.

2024년 12월 17일 화요일

그렇게까지 머리가 빈 줄은...

   대통령 탄핵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되어버렸습니다. 이건 변명이 아니라 설명이라고 강변합니다.

하나. 투표 직전에 원조 친윤이라고 하는 권성동이 원내대표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탄핵 반대' 당론을 재차 확인 했습니다. 구김당의 분위기가 확실하게 보입니다. 찬성을 한다는 것은 탈당과 물려 잇고 새 당을 만드는 것이 따라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찬성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몰락 뿐이었습니다.

둘째. 앞에 이야기 한 것처럼 '돌격'을 외치며 뛰쳐 가갈 때 나머지 개들은 짓다가 만다고 했는데 탄핵 후 열린 자신들의 의총에서 살벌한 질타, 아니 그 정도가 아니고 각자가 어떤 표를 행사했는지 한 사람씩 말하자는 상황까지 이어지니까 최고위원들이 사퇴했는데 친한계 두 사람도 함께 사퇴해 버렸습니다. 당규에 4명 이상 사퇴하면 '비상체제'로 간다고 했는데도 말입니다. 완전히 꽁지를 내린 건데 한대표와 어떤 사전 협의도 없었다는 것. 그러니까 혼자가 된 한동훈은 버티지 못하고 대표직을 내려 놓게 된 것이고.

셋째. 한동훈은 국회의원도 아니고 정치에 입문한 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아무리 좋게 봐도 몇 년 내에 정치판에 얼굴을 내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돈이 있다면 해외 유학을 거는 게 그의 다음 예정 행보입니다.

넷째. 구김당이 정신을 차리고 헌재의 탄핵절차를 따를 리 없습니다. 이 개판인 상황에서도 11%의 지지가 있으니까요. 지금은 창피하니까 잠시 고개 숙이고 있지만 윤상현 말대로 1년 뒤면 다시 뭉쳐 33%~35를 채울 자신들의 편이 있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반대가 95표라고 하지만 기권과 무효 11표는 반대와 같습니다.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라 찬성이 분의 2 이상이 나와야 하는 투표였습니다. 찬성이 아니면 당연히 반대인 것입니다. 85표는 뻔뻔한 나쁜 짓인데 11표는 뻔뻔하고 나쁘고 의연하지도 못한 창피한 표입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니 어제 저녁에사 신장식의원이 말하더라구요. 

  나름의 판단이 없으면 정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시사채널들 김현정, 김종배 등 누구도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말을 아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돌아가는 걸 보니 수준이 다들 그 모양인 것 같습니다. 여권 소식통이라고 보수쪽 패널로 항상 어디나 불려다니는 장성철도 구김당 이탈표가 30명쯤, 정치 9단이라고 자타 공인하는 박지원도 그만큼 보았다는데 그것도 헛짚은 거였잖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며느리 업어 강 건넌 시아버지 격

   지금은 이월하의 두 번째 역사소성인 '옹정황제'를 읽고 있습니다. 바로 앞의 한자들도 이 소설 1권에 나온 것들입니다. 강희는 '대제'인 반면에 옹정은 그냥 '황제'입니다. 강희는 오래도 살았지만 여덟 살 때부터 아마 60년 넘게 통치하며 태어날 때 이미 태자로 삼았던 2황자를 폐위 뒤 다시 세우기도 했다가 결국 다시 폐하고 스무 명도 넘는 경쟁자들이 엄청난 암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넷째가 결국 타자로 황제가 죽기 직전에 봉해져 대를 잇게 되어 엄청난 피바람이 불었답니다. 강희대제의 맨 마지막의 내용이 옹정황제의 등극까지이고 옹정황제 1권은 아직 별 권력 갖지 못하고 주목도 받지 못한 4황자일 뿐인 상태입니다. 

  여튼 제목의 이야기. 며느리 업어 강 건넌 시아버지 격. 이 말을 여러번 곱씹었는데 한참만에 뜻을 알았습니다. 쉽게 풀면 '기운만 빼고 좋은 소린 못 듣고' 입니다. 4황자가 흠차(황제의 명을 받들어 지방에 나가는 것으로 황제의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서 돌아 오는 길에 당시 망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8황자의 계략으로 그의 지시를 받은 예부 시랑이 법에 명시한 정도를 넘어 엄청난 환영잔치를 벌여 놓자 4황자가 그 의도를 날고 숟가락도 들지 않고 자리를 뜨자 그 예부 시랑에게 한 표현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끝내 주는 표현을 하는지.

한자 공부

   이월하씨의 소설을 읽으면서 은근히 한자 공부를 하게 됩니다. 하나씩 써서 집에 와 붙여 놓고 외워질 때까지 두었다가 버렸는데 오늘 갑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부터는 블로그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이번 주의 것입니다.


- 투서기기. 던질 투, 쥐 서, 피할 기, 그릇 기. 이 사람의 글은 김용의 것과 달리 비장하지 않으면서 아주 친근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말꾼이고 배우고 싶습니다. 이 말은 화병 속에 쥐가 들어 있는데 이를 잡고 싶어도 병을 깨면 병이 아까워 깨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쥐어 패고 싶은 놈이 있어도 그로 인해 내가 입는 피해가 더 크다면 이 악물고 참는다는 것이지요.

- 정승은 2인자입니다. 여러 명칭들이 있는데 춘추전국시대 같으면 그 많은 나라들이 다 다를 명칭을 썼는데 왕의 일을 나누고 보좌역을 하는 사람입니다. 조선시대의 의정부(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과는 조금 다릅니다. 조선시대의 의정부는 왕이 6부(행정부)에 직접 명을 내리고 6부에서 올라오는 것을 직접 처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간에 끼어 들어 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신권강화의 차원에서 애초에 도입했던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원은 완전히 무시하여 폐지나 다름없는 상태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여튼 이와 달리 국정을 총괄하고 왕의 최종결정만 받으면 되는 자리.

- 弼. 百자는 원래 㐁(핥을 첨)이었는데 변한 것입니다. 뒤틀린 활을 바로 잡는 도구. 보필한다에서 쓰입니다. 배필과는 다릅니다. 配匹. 여기 '필'의 뜻은 '짝'입니다. 원래 쓰임은 '베를 헤아리는 단위'였는데 혼수 때문에 배필에까지 쓰이게 되었습니다.

- 맨 앞의 摘은 뜻이 '따다'인데 ;장기를 적출하다', '적발하다' 등과 같이 씁니다.

- 嫡은 '정실'을 뜻합니다. 이 '적출'은 '정실'에게서 낳은 아들을 뜻합니다. 유교의 입장에서 '예禮'는 생명인데 그 '예'가 바로 질서를 말하고 질서의 핵심은 신분의 질서입니다. '적자'에 상대하는 말을 '서얼'로 통칭하는데 '다음사전'처럼 정실 아닌 것으로 설명하지만 '서얼'은 '서자'와 얼자'를 합친 말입니다. 서자는 양반과 양민(평민) 사이에서 난 사람이고 얼자는 양반과 노비 사이에서 난 사람입니다. 강희대제의 아들이 스물 넷인데 태자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후계자 경쟁에 뛰어든 사람이 일찍 경쟁에서 탈락한 첫재, 잠룡이었던 셋째, 사람 모으는 것을 하지 않고 원리원칙만 따져 '冷面선생'이라 불려 태자에 관심 없는 것처럼 보였던 넷째, 실력 있고 인품이 뛰어나 많은 실력자들이 모여 들었던 여덟째, 그 여덟째에 붙어 있지만 언제든 독립할 수 있다고 보는 열째 까지 여러 세력이 있어서 그 때 나온 말이 있습니다. 태자란 자고로 立嫡 아니면 立長, 그도 아니면 立賢. 둘째의 어머니가 황비였으니 그가 적자이고 적자가 폐위되면 장자인 첫째가 되는 건데 태자를 흑마술로 해하려 해서 그가 대상에서 배제 되었으니 이젠 남아 있는 사람 중 능력있고 현명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敵의 뜻은 '원수'입니다. 적개심, 적대 등으로 쓰이는데 재미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適도 '언수'의 뜻이 있지만 이 글자는 적당, 적용, 적절 등으로 쓰입니다. 

2024년 12월 11일 수요일

붕당朋黨

   조선시대 하면 붕당의 역사라고 그 시대를 냉랭하게 보는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특히 일본에서. 근거없이 공격하는 것이라고 한국의 사학자들은 이야기 하지만 붕당과 사화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조선시대 자체가 X맨의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붕당이란 것은 한 몸이 아닙니다. 둘 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朋은 道를 같이 공부하고 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黨은 이해利害(그러니까 이익)을 같이 하는 집단을 말합니다.

  강희대제를 읽다가 군자위붕君子爲朋, 소인위당小人爲黨 이라는 말이 나와서 정말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웹서핑을 해 보았는데 구양수의 말에 비슷한 것이 보이네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자파가 군자이고 반대파는 소인이라고 몰아붙였던 시기의 정치인, 개판이었던 북송 시대의 정치인, 문인이었으니 내 개인적으로는 사람 자체는 무시하지만 정말 멋진 말입니다.

  분노를 떨치고.

  朋은 갑골문에서 조개들을 두 줄로 꿴, 그러니까 조개 화폐의 단위였던 것이 떼를 지어 다니는 무리를 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뒤에 참된 공부를 함께 하고 실천에 옮기는 무리를 뜻했다는 것입니다.

  黨을 보고 놀랐습니다. 전에는 무심결에 보아 넘겼던 것인데 글자를 살펴 보니 尙+黑입니다. 黑은 과거 묵형을 받은 사람의 얼굴을 의미했다고 하는데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석하면 되고 그래서 黨은 나쁜 것(黑)을 숭상하는(尙)무리를 뜻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당'에 '黨'이 있는데 중국의 공산당이 머리가 아팠겠지요? 갸들은 간화자로 만들 때 黑 대신 儿(어진 사람 인)을 써서 党을 만들어 쓴답니다.

과학에 대해 한 번 더

   과학이라는 것은 관찰과 측정을 통하여 실증된 것만을 진리라고 믿는 인간의 사유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감각을 통하여 확인하였다는 것이고 그 감각은 그 인간의 것이며 크로스체크한 사람들의 것까지 확장됩니다. 그것을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배우고, 믿고 있는 당신은 직접 자신의 감각으로 확인하였나요? 단지 그것을 확인하였다는 사람(과학자)들의 말만 믿고 따르는 것에 불과할 뿐이지 않나요?

  또한 관찰과 측정을 하였다는 것은 과거의 지식을 기반으로 확인한 것이므로 과거의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현재의 그 '과학적 사실'도 '과학적인 사실'이 아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구요? 소립자(양자)의 등장을 보세요. 지금까지의 과학적 지식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 일부는 부정했고 증명할 수 없는 부분(아주 중요한 것이지만)은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이름으로 빠져 나가잖아요. 요 아주 유명한 '원리', 그러니까 그 거창한 원리, Principal. 수학에서는 제일 위에 있는 개념. 그건 이렇습니다.

  시작은 전자였습니다. 전자가 핵 주위를 도는데 안쪽 궤도로 이동하거나 바깥쪽 궤도로 이동을 하는데 사라졌다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에너지보존의 법칙에 의하면 이동하는 것이 관측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러면서 소립자(양자)의 측정에 대한 고민이 나타납니다. 이 개념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더 이상 깨질 수 없는 단위가 원자인데 핵이 깨진다는 것입니다. 이걸 처음에는 소립자라고 했고 지금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양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양자는 너무너무 작은 겁니다. 그래서 측정을 하려면 빛을 쏘아서 눈에 들어오게 해야 하는데 너무 작으니 빛을 맞으면 위치가 이동하는 것입니다. 해결 방법은 아주 천천히 쏘아야 하는 것이고 그러면 뒤돌아 왔을 때 보이는 것이 현재도 거기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플랑크 상수라는 게 등장하는데 이게 통계치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6.626 070 15 × 10−34 . 그런데 이렇게 아주 작은 값을 가지고 있답니다.

  여튼 필요한 말만 하자면 정확한 측정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불확정성의 원리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하이젠베르크는 이것으로 노벨상을 받은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최첨단 과학의 민낯을 보시고,

놀고들 있네

   123친위쿠데타 시도 후 다음 날 윤통 탄핵을 기다리는데 윤통이 담화를 발표하는데 '무슨 개소리지?'하며 생각해 보니 한동훈이가 자신에게 권력을 이임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그는 그렇게 해석했고 돈밖에 모르는 총리와 협잡을 했습니다. 얘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지식 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는데 그들 뿐 아니라 모든 정치인들, 그리고 언론에서 떠드는 사람들 모두 한심스러웠습니다. 엊그제부터 언론인 몇만 쬐금 이야기 하는데 구체적인 지적이나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사실은 간단합니다. 대통령을 국민이 뽑았고 그 대통령에겐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물론 의무도 있구요. 그러니까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이양, 위임할 수 있냐는 것인데 그게 말이 되는 거에요? 이렇게 기본적인 능력만 있어도 알아야 할 사실을 가지고 아직까지도 붙들고 있으니. 

  일단. 그 자가 탄핵 찬성하지 않는다는 건 맞추었고 모레 두 번째는 어쩔 것인가인데 자신은 한 표 행사 권리도 없잖아요.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 하나씩 찬성하겠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로 봐서 그들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자가 자파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지시할 리도 없고 지시한다고 따를 리도 없어요. 갸들 생각은 오로지 탄핵되면 이재명이 다음 대를 잇는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사고'처리하고 직무대행체제로 가려고 할 것입니다. 여튼 그 자는 끝까지 탄핵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홍 늙은이도 그럴 것입니다.

2024년 12월 6일 금요일

유가의 민낯

   먼저 유가儒家와 유교儒敎를 정의합니다. 보통은 유교를 유학과 동일시 하고 유교를 믿고 공부하는 이들의 집단을 유가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공부한 사람들은 유학과 유교를 구분합니다. 유학은 학문 그 자체를 말하고 유교는 유학에서 형식을 중요시하여 종교화한 것으로 구분합니다. 그러면 유학자와 유가가 구분이 됩니다.

  유儒의 뜻은 '선비'이지만 원래 갑골문에서는 기우제를 지내는 사람의 형상이었고 곧 제사장의 의미했습니다. 그걸 가져다 쓴 것이고 유학의 시조인 공자를 보면 어려서부터 제사상 차리는 것을 또래들이 골목에서 올 때 혼자서 항상 했답니다. 그가 가장 높이 생각했던 것이 "예기"인데 그 책을 참고 읽느라 결국은 입 밖으로 까지 여러 번 욕이 새어 나온 뒤 절반 조금 더 읽고 아예 책을 버려버렸습니다.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는 벼슬이 어떤 사람은 어떤 차림으로 어떻게 서고 행동해야 하며 어떤 행사는 누구는 뭘 하고 행사장은 어떻게 꾸미고. 이런 것들이 아주 꼼꼼하게 씌어 있는 책입니다.

  공자의 나라 노나라는 주나라 서백창(주문왕)을 도와 주나라를 세웠고 3대 성왕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자 대리청정을 하다 성인이 되어 물려주어 대대로 중국, 유학자들에게 칭송을 받는 인물로 보통 노나라에 봉해졌다고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주공의 큰아들을 봉한 것으로 압니다. 노나라는 작기도 하고 뭐 농산물도 특산물도 별로 생산하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공, 혹은 그의 아들이 봉해진 나라라서 주나라의 예법(주례)가 주나라가 망한 뒤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탓에 다른 나라들에서 노나라에 와서 주례를 배워갔답니다.

  바로 이것이 유학의 기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치국의 도리라며 자신을 써달라며 나라들을 돌아다녔으니(노나라를 먹을 게 없으니) 누가 그를 중용하려 했겠습니까. 멋있기는 하지만 잘 살게 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을 것 아닙니까.

    그게 더 망가진 게 성리학 입니다. 송나라 때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사마광 기억 날까요? 이른바 복의濮議은 끝내주는 일이었습니다. 4대 황제 인종이 후대가 없어 사촌형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게 한 게 영종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건 영종의 친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지 큰아버지라 불러야 하는지로 두 당파로 나누어 상대를 '소인'이라 욕하며 아주 심하게 싸웠습니다. 그것이 당파를 가르고 집권을 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게 조선 후기 예송논쟁에서 판박이로 벌어집니다. 여튼 그런 성리학을 아주 더 사람들의 사는 것에서 동떨어지게 성리학을 완성한 사람이 유학자들이 중시조로 떠받드는 사람이 '주희(높여 부르길 주자'입니다.

  저게 전통이라고 따르자는 사람들은 사람일까요?

2024년 12월 5일 목요일

명나라와 청나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조선이라는 나라로 이 땅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주 큰 두가지만 해도 일본을 무시하다 당했고 저물어가는 명나라에 기대다 또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명나라는 조선보다 살짝 먼저 앞선 나라였는데 무능하고 나쁜 주씨들 때문에 개국 초부터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렸지만 조선은 명이 바라지도 않은 속국을 자처했습니다. 

  더 나쁜 것이 있는데 명나라와 청나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지금의 나에게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딱 하나만 보겠습니다. 백양중국사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청나라 궁녀에서 자녕궁을 제외한 것은 황후와 황태후 등이 거주하는 곳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장미

   덕양역에서 이 초겨울에 발견한 건데 아주아주 예뻤습니다.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

   이걸 사자성어로 하면 뭘까요? 욕속부달입니다. 예전에 공부했던 말인데 잊고 있다가 다시 찾은 좋은 말입니다. 이도 강희대제에서 읽었습니다. 한자로 欲速不達. 직역하면 '빨리 하려 하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입니다.

시간에 따른 가치의 변화

   나는 썩어 문드러진 유가의 후손들의 가르침으로 청나라는 야만족이 만든 나라라고 알고 있었길래 이월화의 '강희대제'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읽을 때마다 느낍니다. 백양중국사를 명나라까지만 읽은 걸 반성하고 있으며 이어서 읽을 것입니다. 나중에 독서감상문을 쓸 것이고 이따금 단어별, 사건별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 ~ 현신賢臣(어진 신하)과 능신能臣(유능한 신하)이 되길 바라는 건 좋은 일이지만 충신忠臣, 열신烈臣이 되길 바라진 말게. 현신이 있으면 명군明君이 있고, 능신이 있으면 치세治世가 있기 마련이오. 하지만 충신이 나온다는 것은 군주가 우매하고 나라가 난리를 겪고 있다는 증명이오. ~"

  강희가 신하들에게 한 말입니다. 어질고 유능한 신하는 항상 필요하지만 충신과 열신(열사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이 있다는 것은 군주가 정치를 잘하지 못하고 폭군일 때 생긴다는 말이겠습니다.

  지은이가 한 말인지 사서에서 가져온 말인지 모르겠으나 명언 중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뒤통수를 때리는 깨우침의 말입니다.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단풍

   오후에 가는 도서관 길의 단풍입니다. 올해는 곱게 물들었습니다.



동백길

   아침에 걷는 산길에 동백길이 있습니다. 보통은 사진이 실제보다 멋있지만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라 빨리 찍으려다 보니 위치, 빛, 구도, 초점 등 그 어느 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사진이지만 찍은 나는 실제의 모습이 머릿속에 있으니 그걸 생각하면 됩니다.



지적인 수준

   간밤 대한민국 난리가 났습니다. 국방장관 임명으로 계엄령 선포의 인맥이 완성이 되었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구김당은 물론 모든 언론에서 비아냥거렸지만 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긴 했지만 저렇게 아이들 동네 골목에서 하는 전쟁놀이처럼 어설플 줄은 몰랐습니다. 체포조는 목표로 한 양당 대표, 국회의장, 김어준 등 4명 누구 하나도 잡지 못했고, 군대 동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언론도 그냥 놔두었고, 국회의 의결도 막지 못했습니다. 모 국회의원은 '전쟁 놀이로 생각했나 보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멍청하다고 생각을 굳히고 있었는데 저토록 한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탄핵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무덤을 팠으니 변수가 생겼고 가능성도 조금 생겼습니다.

  감히 엊그제 이어 또 하나 예언하건데 탄핵은 어려울 것입니다. 다들 요건이 갖추어 졌다고 생각하지만 언론과 여당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언론은 그냥 이미 망가진 것이고, 여당 지도부가 이른 아침에 모여 대통령은 당에서 나가야 한다고 했고 내각 총사퇴, 국방장관 해임 등 강력한 요구안을 내어 놓았지만 탄핵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유? 아주 간단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탄핵이 되고 보궐선거가 이루어진다면 현재는 대통령에 당선될 사람이 누가 봐도 단 한 사람입니다. 아주 빤한 상황! 그래서 그들은 그 상황까지 가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오판에 대한 사과와 영부인특검의 수용 정도로 막으려 할 것입니다. 채상병도 가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저렇게 멍청할 수 있나 의심하겠지만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으로 많이 떨어집니다. 여천동사무소, 요즘엔 행정복지센터라고 하나요? 


  이게 진즉부터 붙어 있는데 내내 그대로입니다. 직원들이나 드나드는 그 누구도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니 걸어 오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가 보는 위치입니다. 나처럼 무관심이라구요? 한국사람들이 잘난 체하는 것을 참는다구요?

  잘못된 표현 찾았나요? 도난은 당하는 것입니다. 절도가 맞지요. 우리말로 '가져가지 마시오'가 가장 무난하고 한자 표현을 쓰고 싶으면 '절도 금지'여야 합니다. '도둑맞는 거 금지함'이란 말, 얼마나 우습습니까. 다들 무식한 현실입니다.추신 ; 


추신 : 오늘의 추가 이어진 소식. 이어 이어진 8시 의원총회 세 가지 지도부 결정 중 대통령 탈당 건은 의견들이 달라 빠짐. 저녁 시간. 구김당 비공개 모임에서 정권재창출을 위해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

2024년 12월 2일 월요일

세계관, 최소한 소신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익을 보며 흘러가는 삶을 산디고 해도 최소한의 소신이나 자신만의 가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 남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내 생각에는~'이라거나 '내 기준으로는~', 혹은 '순전히 그냥 내 기준으로~'라는 표현을 할 수 잇을 것입니다. 세계관이 없는 사람은 옳고 그름을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그게 없이 어떻게 선악을 판단하고 정의를 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혼자의 생각이야 당연히 하는 건 상관 없지만.

  세계관이라는 게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잖아요.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라는 게 꼭 개인의 업보에 대한 좁은 해석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은 모두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또한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인들도 이제사 쬐끔씩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영화에 반영하기도 하는데 많이 어설프기는 합니다. 메트릭스를 보면 스스로 이게 뭔 말인지 만든 사람은 알고 있나가 의심스러운 게 아니고 어디서 멋있는 말 주워 듣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영화의 핵심으로 쓰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여행을 하는 영화들도 스스로 혼란스러운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면 연관된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철학적으로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다시 세계관을 보면 궁극은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냐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 하는 것을 세인들에 의해서 그것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들로 호명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그런 용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 건 세상을 보는 시각에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 다 공자의 문파입니다. 유가의 사단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잘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뒤의 송과 명, 그리고 조선에서는 텍스트로서만 또한 불변의 진리로서만 유교를 받아들여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는데 말하자면 기독교가 성경을 오류가 없는,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이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냥 종교에 머무른 것과 같은 수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을 살리는 정치판에 기어들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시 세계관입니다. 그러면 말하고자 하는 세계관은 이것입니다. 그의 4단 중 '인仁'에 집중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서는 국가라는 것이 성립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두 번째인 '의義', '수오지심羞惡之心'과 네 번째인 '지智',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세계관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옳지 않은 것을 미워한다는 것은 그 행위의 주체인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성문화된 기준에 의해 벌을 주어야 하고,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가려내어 바른 방향으로 모든 것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세계관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생각이고 바른 방향으로 나와 내 세상이 흘러가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문 막고 막을 수 없을 때는 분노해야 하는 것이지요. 옳지 않은 나쁜 것을 보고 나의 일이 아니라고 눈감고 지나갈 때 그것은 반드시 내게 더 큰 해로움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실은 이건 그냥 바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 블로그의 대문에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글을 쓰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안선생과 술을 마시면서 한 일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가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만나냐고 묻길래 난 두 가지 기준이 있다고 했습니다. 나쁜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또 하나는 내게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한참을 눈을 끔벅거리더니 재차 물었고 같은 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그렇게 하면 주위에 남은 사람이 거의 없겠는데 어떻게 하냐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어서 수시로 나를 힘들게 해도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나 삼당선생들, 의사들의 이야기 대로 나이들면서 사람들이 많아야 하고 만나는 사람이 마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불행한데 유명한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니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입니다. 내게 삼성과 쿠팡은 나쁜 기업이고 나는 그런 기업과 거래하지 않고 그러면서 그런 기업의 제품을 사는 사람이 내 옆에 있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내가 세상을 사는 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대부士大夫

   남자, 교육 받은 남자, 예의 바른 남자, 지조 있는 남자, 뿌리 있는 남자. 이 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대부 이겠지요?원래 중국에서 쓰던 의미와 조선에서 달라졌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고려, 조선 시대 문관 관료의 총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