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반지성주의'를 말하고 뒤이어 바로 전의 대통령이 자신의 집앞에서 확성기를 동원하여 연일 떠들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SNS에 '반지성주의'를 거론하였습니다. '반지성주의'란 그런 사람이 그렇게 쓰는 게 아니고 이럴 때 쓰는 거라고 누구도 인식하게 썼습니다.
내 생각은 전자도 자신의 틀 속에서 타자를 바라보고 있고, 후자도 마찬가지로 나는 옳은데 넌 그르다는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후자에 대한 호평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애초의 기대를 접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데 그는 자신을 평가하는 그 세력에서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 사람이기에 전자와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앞 글에서 말한 '다양한 타자를 품는(화이부동)'그릇이 되지 못한 사람들인 거죠.
인터넷을 중심으로 지식이 빠르고 많이 전파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서로 자신만 옳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되었는지에 대해 SNS 탓만 해왔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보는 사람 거의 없는 글 하나 쓰는데 참고할 자료를 일일이 힘들게 찾은 원데이터를 기반으로 여러 의견들을 다 고려한 후 쓰는데 자신의 말 한마디가 곧바로 대중에게 알려지는 공인들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걸 오늘 찾았습니다. 한겨레신문 '유레카'에 '반지성주의'를 말하는 글 뒷부분에 뉴욕대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더 이상 고민은 없습니다.
“사실이 우리 가치와 충돌할 경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고수할 수 있고, 반대 증거를 기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거의 모든 사람'이 방점인데 이게 고민을 없애준 것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에서 빠진 '쬐끔'의 사람들은 어쩔?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과의 대화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 이거 참 또 새로운 고민이네. 그들과 옳음이나 사실여부를 다투는 것은 루쉰의 '사칠은 이십칠'이어야 하나?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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