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의 해석은 통일된 한 가지가 아닙니다. 갑골이 나라가 정신이 없었던 청나라 말기부터 발견되었고 그 뒤로도 중국이 안정된 게 1949년이니 그간에 본격적인 연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거북의 배쪽 껍질이 아닌 등딱지로 설명한 글이 많고 소의 견갑골인지 사습의 견갑골인지에 대해서도 달리 쓴 글들도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둘 다 있습니다. 거북은 그림처럼 배껍질이 맞습니다. 점을 친 결과를 기록한 것이 거의 전부인데 쓰여진 내용은 이렇습니다.
점을 치는 것은 전문 집단이 전 과정을 관리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정인貞人이라고 했고 중국학위키백과에는 120명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2~300명으로 보는 곳도 잇습니다. 그리고 이 집단의 점을 치는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왕이었고 왕이 바뀌면 정인이 모두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인'의 '정'이 지금은 정숙하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점'을 의미한다고 전에 이야기했습니다. 이 갑골문은 한자의 기원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전설이라고 생각했던 상(은)나라의 실존을 밝혀준 자료이기도 했습니다. 상나라 시절 하루 평균 1건 이상의 점을 쳤고 모두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무엇을 점을 쳤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왕실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가 모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점에 대해 보겠습니다.
모두 네 가지 종류의 기록이 한 묶음입니다.
첫째는 서사입니다. 전사라고 하는 곳도 있습니다. 언제 누가 점을 쳤는지 입니다.
둘째는 명사입니다. 무엇을 묻는지 입니다. 물론 하늘에게.
셋째는 점사입니다. 점을 친 결과입니다.
마지막으로 험사입니다. 실제로 일어난 결과입니다.
보통 점을 친다면 포괄적으로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라거나 '올 겨울 흉노가 힘들게 할까나'같은 것을 물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장인이 점을 쳐서 결과를 맞힐 확률을 높이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신이 너무 힘들지 않게 O,X의 문제로 물어 봅니다. 위의 예문에서도 '오늘 저녁에 비가 올 것인지'라고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묻는 질문에 '예'는 왼쪽이, '아니오'는 오른쪽에 기록하도록 더 구분을 합니다.
이것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우주, 천지 운행의 이치를 밝힌 것으로 알았는데 이들은 이런 식으로 점을 친 것을 갑골에 나타난 그림과 그 괘를 해석하고 그 결과를 누적시킨 것을 바탕으로(수천년동안) 주나라에 와서 완성을 시킨 것이 비로소 주역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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