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오전은 운동하고 오후는 도서관에서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면 모두가 날마다 어떻게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지낼 수 있는지 의아해(못 믿어) 합니다. 항상 이야기 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알고 행동하는 범위 내에서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무엇을 향해 어떻게 살 건지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음의 한 예가 사람들과 나의 문제입니다.
"바라옵건데 만수무강하시고 부귀영화 누리시고 아드님도 많이 두옵소서."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아들이 많으면 걱정이 많고, 부귀하면 귀찮은 일이 많으며, 오래 살면 욕됨이 많은 법이다."
축원을 다린 건 사람들의 보편적인 원하는 삶입니다. 그에 대해 답을 한 사람은 전설 속의 사람인데 나의 삶의 태도와 같습니다. 감히 위인의 삶과 견주려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의 바라는 바가 웅대하다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니 내가 감히 간은 삶을 살겠다고 해도 '턱없이 까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요임금이 지방 순시를 나갔을 대 지방관리가 한 말에 대한 답을 그리 한 것입니다. 요임금은 제곡의 아들이고 제곡은 전욱의 아들이며 전욱은 황제의 아들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의 시작을 황제로 삼고 있습니다. 황제는 한자로 黃帝로 '누런 임금'입니다. 요임금은 성 밖으로 민정시찰을 자주 한 모양입니다. 다른 왕들의 교외 순행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요. 도 이상 바랄 바 없이 만족한 상태를 말하는 '함포고복'도 이런 순행 중에 나온 말입니다.
* 춘추전국시대까지도 읍성의 개념은 유지되는데 왕과 고급관리들은 성 안에 살았고 그것을 읍邑, 성에 인접한 바깥은 성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그것은 교郊(교외 할 때의 교입니다), , 그 바깥은 농사를 짓는 전田, 그 바깥은 야野, 그리고 그 밖으로 임林인데 도적이나 맹수가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