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30

숫자의 이름

   필요할 때마다 검색을 하느니 내 블로그에 아예 정리합니다. 

  서양과 동양(중국 문화권인 중국, 한국, 일본)은 숫자를 세는 단위가 다릅니다. 자릿수를 세 자리씩 띄고 이름도 그렇게 붙입니다. 12,345,678,912 이런 식으로 띄고 천, 백만, 십억 등이 이름이 있고 거기에 다른 숫자들은 살을 붙여 이름을 부릅니다. 동양은 네 자리 단위로 합니다. 만, 억, 조, 경, ... 뒤져 보아도 왜 세 자리씩 혹은 네 자리씩 단위를 맞추었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숫자 이름을 정리합니다. 많은 이름이 불교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장아함경을 보면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의 역사를 구체적인 숫자를 써가며 설명을 하는데 그런 데서 숫자의 이름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分, 釐, /毫, 絲, 忽, 微, 纖, 沙, 塵, 埃, 渺, 漠, 模糊, 逡巡, 須臾, 瞬息, 彈指, 刹那, 六德, 虛空, 淸淨

/拾, //陌, //阡, /万, 億, 兆, 京, 垓, 秭, /壤, 溝, 澗, 正, 載, 極, 恒河沙, 

阿僧祇, 那由他, 不可思議, 無量, 大數

2022-05-24

한자 공부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

  최근에서야 도덕道德, 덕장德將에서 보았던 덕德의 원 뜻이 '크다'였다는 것을 새삼 배운 적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성냥을 쓰던 시절 큰 성냥통에 '덕용'이라고 쓰였던 것이 이해 되었고, 고기 큰 것을 '덕자'라고 불렀던 것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季'자를 배웠는데 이게 원래의 뜻이 '끝'이잖아요. 우리가 이 글자를 만난 건 계절季節이나 계간지季刊誌에서만 보아서 원래의 뜻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거에요. 이런 게 있습니다.

季父 : 아버지의 막내 아우

季春 : 음력 3월, 봄의 끝 무렵

2022-05-20

대화에 습관적으로 붙이는 말 속에 숨은 뜻

 에~~~ -권위적이며 상대에게 상대가 모르니 설명해주겠다는 태도

예예예 -당신이 하는 말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만 하라는 말

네네네네 -잘 알아 들었다는 걸 굴종적으로 표현하는 말

내 생각은 -어차피 당신 생각인데 조심스러운 태도

내 개인적인 생각은 주로 공인들이 소속 조직과 불리한 의견임을 전제할 때 쓰는 말

그러니까 당신과의 대화를 잘 듣고 있다는 뜻

해서 당신과의 대화를 잘 듣고 있다는 뜻인데 권위적인 뉘앙스가 있음

정말로 이 말 다음엔 근거가 없거나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음

사실 이건 상대의 이야기에 관점이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하려는 태도

이건 정말인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 할 때

다들 그렇겠지만 다중에게 묻어가려는 건데 보통은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음

아니 억울함을 이야기하려는 데 조금 더 절박함

아니, 근데 상대의 의견에 대항하려는 말

실은 이면에 숨은 사실을 말하려 함

솔직히 이 말 뒤에 솔직한 내용을 말할 것으로 보이지 않음

있잖아 아무 필요 없는 단어. 의미도 없음

한자어원공부 5월 셋째주

 






2022-05-19

옛것들

   옛날의 물건은 사라지고 박물관에만 남습니다. 개인은 그림이라도 남겨 두고 싶습니다.

  초기의 전화기입니다. 줄 끝에 달린 것이 수화기로 귀에다 대고, 말은 기계의 몸통에 달린 송화기에 합니다. 이 때는 수화기를 들면 자동으로 교환원이 받아 요구하는 회선에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그 뒤에 나온 자석식 전화기입니다. 송수신 기능이 한 몸에 붙었습니다. 신호를 보내기 위한 전력을 얻기 위해 오른쪽에 달린 핸들을 서너 바퀴돌린 뒤 송수화기를 들면 교환국의 교환원이 받아 연결해 주었습니다. 어렸을 때 이모 집에 있었습니다. 동네에 한 대가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다 함께 썼고 전기가 들어오고 확성기가 들어 오면서 들에 나간 사람을 '기와집 양반 서울에서 전화왔응게 전화 받으쇼'라고 방송이 자주 나왔습니다.


  초기의 맥킨토시 컴터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귀한 피시였고 지금도 애플컴터는 보기 어렵습니다. IBM보다 낮게 나왔습니다.

  PC가 들어 온 게 80년대라고 하는데 내가 처음 대면한 건 91년 묘도에 갔을 때였습니다. 선부터 도입이 된 것이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죠. 프로그래밍 언어는 대학 때 베이직과 포트란 두 가지 배웠지만 개인용 컴터는 생소한 개념이어서 그걸 쓰는 걸 보고 무척 신기했고 빨리 배워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과학, 기술 두 사람이 썼는데 가르쳐 달라고 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나쁘게 기억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난 다른 사람들이 가르쳐 달라고 하면 내 일이 바빠도 도와주는 걸 먼저 했을 정도로 상처가 컸습니다.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을 넣는 소켓이 두 개 있습니다. 부팅디스켓을 넣고 운영체제를 돌린 뒤 응용프로그램이 있는 다른 디스켓을 넣고 실행하여 작업하고 그 데이터는 넣은 디스켓을 빼고 데이터디스켓을 넣어 저장했습니다.


  이건 조금 시간이 더 지난 뒤에 나온 이름하여 그 유명한(정치판에서) 486컴터입니다. 코기의 것이어서 5.25인치, 3.5인치 플로피디스크 소켓이 보이고 CD플레이어도 보입니다. 이전까지는 MS-DOS를 운영체제로 쓰다가 이게 등장하면서 GUI체제를 맥으로부터 컨닝한 Windos운영체제를 쓰기 시작한 거죠. 상용화된 건 Windows95부터였습니다.

돈나무

  돈나무꽃이 피었습니다. 꽃이 예쁩니다. 작은 꽃들이 유난히 예쁘다는 건 여기서도 통합니다. 


  그런데 냄새를 맡아 보았습니다. 향기가 아니고 냄새라는 표현을 한 것은 돈나무라는 이름이 저주 방언 '똥낭'에서 왔고 그 이유는 날이 추워질 때 노란 열매가 벌어질 때 끈끈하고 악취가 나는 액체가 분비가 되고 온갖 곤충은 물론 파리가 유독 많이 꼬여든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꽃은 참 향기롭습니다. 열매 냄새도 작년에 맡았는데 별 나쁜 냄새도 없었고 곤충들이 몰려드는 것도 본 기억이 없는데 누명을 쓴 것 같아 보입니다.

이제사

   내내 주변에 있었을 꽃들인데 이제사 보이네요. 이렇게 관심 없이 주변을 대하고 있었습니다.


  홍가시나무꽃입니다.

2022-05-18

당랑거철(螳螂拒轍)

  이 말은 자신의 능력만 믿고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게 더 깊은 뜻이 있었네요. 원문은 장자에서 찾았습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장자 내편 4 인간세
汝不知夫螳蜋乎(여부지부당랑호)
怒其臂以當車轍(노기비이당거철)不知其不勝任也(부지기불승임야)
是其才之美者也(시기재지미자야)
戒之 慎之(계지 신지) 積伐而美者以犯之(적벌이미자이범지)幾矣(기의)
그대는 사마귀(螳蜋)의 일을 알지 못하는가?
사마귀는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에 맞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음을 알지 못하니
이것은 자신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계하고 삼가라.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자는 그것으로 위태롭다.
 
汝不知夫養虎者乎(여부지부양호자호)
不敢以生物與之(불감이생물여지)為其殺之之怒也(위기살지지노야)
不敢以全物與之(불감이전물여지)為其決之之怒也(위기결지지노야)
時其飢飽(시기기포)達其怒心(달기노심)
虎之與人異類而媚養己者(호지여인이류이미양기자)順也(순야)
故其殺之者(고기살지자)逆也(역야)
그대는 또 범을 사육하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가?
감히 산 채로 음식을 주지 않는 것은 범이 그것을 죽이려는 성냄을 일으킬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 감히 (죽은 동물이라 하더라도) 한 마리를 통째로 주지 않는 것은 범이 그것을 찢어발기려는 성냄을 일으킬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범의 배고픔과 배부름에 꼭 맞추어 음식을 주어서 성내는 마음이 (다른 곳으로) 발산토록 하는 것이다.
범과 사람은 종류를 달리하지만 범이 자신을 사육하는 사람을 잘 따르는 것은 (사육하는 사람이) 범의 자연스런 본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간혹 범이 자신을 사육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사육하는 사람이) 범의 자연스런 본성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夫愛馬者(부애마자)以筐盛矢(이광성시)以蜄盛溺(이신성뇨)
適有蚉虻僕緣(적유문맹복연)而拊之不時(이부지불시)
則缺銜毀首碎胸(즉결함훼수쇄흉)
意有所至(의유소지)而愛有所亡(이애유소망)可不慎邪(가불신야)
말을 아끼는 사람이 네모난 대광주리에 말똥을 담고 커다란 조개껍질에 말의 오줌을 담(을 정도로 말을 극진히 보살피)다가
마침 모기나 등에가 말 등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잡기 위해) 갑자기 말등을 때리면
(말은 깜짝 놀라) 재갈을 물어뜯고 사육하는 사람의 머리를 들이받아 훼손하고 가슴을 걷어차 박살낼 것이다.
이처럼 뜻이 (모기를 쫓아 주어야겠다는) 한 가지 목적에만 사로잡히면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리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말은 왕에게 간하는(유세) 신하의 태도에 대해 하는 말입니다. 한비자의 역린과도 통하는 말이구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왕의 심기를 살피지 않고 유세를 하면 상나라의 비간(比干)이 주왕(紂王)에게 죽는 것처럼 된다고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역시 장자는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대로 입니다. 쓸모없는 나무가 오래 산다는 그의 우화와 상통하지 않습니까?

2022-05-17

한국전쟁 사망자수

  기억이 필요한 정보여서 간단하게 추렸습니다. 자료는 국가기록원에서 가져왔습니다. 실종이나 행불은 빼고 단순히 사망자만 기록합니다.

한국군 137,899(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4)
유엔군  37,902(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4)
북한군 508,797(한국전란 4년지), 520,000(군사정전위 편람), 522,000(미군 자료)
중공군 148,600(한국측 추정)

민간인 244,663, 학살 128,936(내무부 통계국 1955년)


1971년 유엔에서 대만의 자리를 빼앗아 오기 전까지 중국은 중공(중국공산당)으로 불려서 중공군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아하! ..... 응? 그래서?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반지성주의'를 말하고 뒤이어 바로 전의 대통령이 자신의 집앞에서 확성기를 동원하여 연일 떠들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SNS에 '반지성주의'를 거론하였습니다. '반지성주의'란 그런 사람이 그렇게 쓰는 게 아니고 이럴 때 쓰는 거라고 누구도 인식하게 썼습니다.

  내 생각은 전자도 자신의 틀 속에서 타자를 바라보고 있고, 후자도 마찬가지로 나는 옳은데 넌 그르다는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후자에 대한 호평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애초의 기대를 접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데 그는 자신을 평가하는 그 세력에서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 사람이기에 전자와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앞 글에서 말한 '다양한 타자를 품는(화이부동)'그릇이 되지 못한 사람들인 거죠.

  인터넷을 중심으로 지식이 빠르고 많이 전파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서로 자신만 옳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되었는지에 대해 SNS 탓만 해왔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보는 사람 거의 없는 글 하나 쓰는데 참고할 자료를 일일이 힘들게 찾은 원데이터를 기반으로 여러 의견들을 다 고려한 후 쓰는데 자신의 말 한마디가 곧바로 대중에게 알려지는 공인들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걸 오늘 찾았습니다. 한겨레신문 '유레카'에 '반지성주의'를 말하는 글 뒷부분에  뉴욕대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더 이상 고민은 없습니다.

사실이 우리 가치와 충돌할 경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고수할 수 있고, 반대 증거를 기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거의 모든 사람'이 방점인데 이게 고민을 없애준 것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에서 빠진 '쬐끔'의 사람들은 어쩔?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과의 대화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 이거 참 또 새로운 고민이네. 그들과 옳음이나 사실여부를 다투는 것은 루쉰의 '사칠은 이십칠'이어야 하나?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2022-05-16

和而不同, 同而不和

 논어 자로(子路)편에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서 나옵니다.

이 말을 보통은 함께 어울리되 동화되지 않으며, 함께 한 무리에 있으면서도 화합하지 못한다로 해석합니다. 가르치기 좋아하는 몇 사람들의 말을 먼저 보겠습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화합, 어울림을 추구하되 획일적인 같음을 요구하지 않지만, 소인은 획일적으로 자기와 같을 것만을 요구하지, 서로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와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률신문 변호사의 글

군자들의 사귐은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만 그렇다고 의리를 굽혀서까지 모든 견해에 같게 되기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 해석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신영복

군자는 덕()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 항상 마음으로 친밀하게 지내기에 세력으로 결탁하는 일이 없으나, 소인은 세력과 이익으로 사귀니 언제나 힘으로 어울려 당파를 만들지 마음과 의리로 친분을 굳게 하지 못한다. 정약용

문자의 뜻을 보겠습니다.

()는 자연의 섭리로 다양성의 통일이다. 다원적인 여러 요소들의 화해와 화합과 공존이다.

()은 다 함께 생활을 누리는 생존공동체라는 의미. 공자가 말하는 이상사회인 대동사회(大同社會).

부동(不同)은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즉 차별화를 인정하는 논리적 가치

불화(不和)는 조화와 공존, 바람직한 성장을 위한 통합의 원리를 거부하는 논리적 가치

화와 동이 같은 길을 가는 듯하더니 부정하는 말에서 두 글자는 다른 길을 갑니다.

 

글자의 어원을 찾아보았습니다. +인데 원래 다관(多管) 피리 ()로 줄어든 모습. 여러 개의 피리에서 나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형상화했답니다. 은 갑골문에서


 이런 모양인데 가마처럼 무거운 것을 구령에 맞추어 들어 올리는 모습이랍니다. 가마를 드는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추어 힘을 고르게 해야만 제대로 들 수 있다. 을 동아일보 한 칼럼에서는 동일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는 모습으로 해석한 것도 보이는데 더 그럴싸한 해석입니다.

이렇듯 은 다르지만, 화합이라는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不同不和에서 다름을 인정하다, 다양성을 품다不同으로, ‘공존과 화합을 부정하는 뜻으로 不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저리 주저리 말들이 많지만 원래 유교가 그렇고 철학 자체도 그렇지 않습니까. 군자는 서로 화합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소인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로 일치되기를 바란다고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항우를 통해 또 문제를 제기하는 사마천의 사기

   내 의견을 줄여 사실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항우는 어려서 삼촌인 항량에게 보내어져 길러집니다. 그 때의 기록입니다. 숙부 항량이 젊은 항우에게 처음에는 학문을 가르쳤으나 얼마 못 가 학문은 이름만 쓸 줄 알면 된다며 그만 뒀고, 무술을 가르쳤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