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와 야구판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예전의 폭력 사건이 현재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열 감독이야 애초에 제대로 처리했으면 될 것을 배구협회가 곪게 만든 것이었고 쌍둥이 선수 문제는 그것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엄청난 돈을 주고 사온 선수들이 구단에 막강한 타격을 입힌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유는 스스로도 모르겠는데 싫어하는 선수들입니다.
조두순 사건은 밖에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운데 그 이유는 완전히 사회에서 매장을 당할 수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법이란 게 맨 마지작에 쓰는 수단이고 그래서 아무리 잘 써도 후유증이 남게 마련입니다. 누구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가장 나쁜 협상이 제일 좋은 판결보다 낫다고.
법에 의해 벌을 받는 건 이마에 낙인을 찍는 게 아니라 주어진 벌을 받고 사회에 복귀하여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살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현재 교정의 기본 목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단 한번 교도소에 다녀와 사회에 복귀하지 못하면 반복적으로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조두순이 형이 끝나서 나오면 사회가 받아주어야 하는데 모두가 나서서 막았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법이 문제였거나 형을 적게 부여한 판사가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먹고 살 것이 없어 기초수급을 신청한 것에 대해서도 구청이 신청을 받아들이자 구청을 마구잡이로 공격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들은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말께나 한다는 그 누구도 이런 마녀사냥에 주의를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어디 찾으면 있을 고등학교 1학년 행군(소풍의 그 때 용어)을 가서 밥먹는 사진인데 다른 사람에 가려 코와 입 정도만 나온 사진입니다. 그 유명한 광주오비파의 조직원이어서 두 번을 잘리고 세번째 입학한 00는 반장이 되었습니다. 담임교사의 배려로. 모든 교사는 이 놈을 두려워 했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복장에서 등하교까지. 그리고 행사 때마다 돈을 벌었습니다, 학생들을 상대로. 당시 RICO사 카메라로 '하프'사진기란 게 있었습니다. 가난한 나라라 필름 한 장을 둘로 나누어 두 장으로 인화하는 것을 하프라고 했습니다. 그 시절 사진 중 세로로 긴 사진은 그 사진기로 찍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걸로 사진을 찍어서 장당 100원씩 받고 사진을 주고 돈을 번 것입니다. 닥치는 대로 찍고 다닌 것입니다. 나를 찍으려고 하자 찍지 말라고 했는데 막무가내로 들이댔고 카메라 각도를 보고 몸을 뒤로 뺐는데 얼굴이 살짝 걸린 겁니다. 딱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며칠 뒤 책상에 사진이 놓여 있었는데 처음에는 뭔지를 몰랐습니다. 얼마 뒤 수금하러 와서 '이게 뭐냐'니까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짚어주어 알게 되었습니다. 찍지 말라고 했는데 찍었다고 사진 받기 싫다고 하니까 어떤 표정의 변화도, 음정의 변화도 없이 '뒤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멋모르고 나간 나를 아무 말고 없이 의자를 한 손으로 들어 내리쳤습니다. 머리는 다행히 피했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아무 감정없이 "알았어, 사진 살게."
국민학교 때 주위 꼬드김으로 딱 한 번 싸운 것 외에 교사들에게만 맞아봤지 맞아본 적 없었는데 그 폭력은 미처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왔지만 그게 트라우마로 남진 않았습니다. 강력한 기억과 폭력의 속성에 대한 인식만 남았지. 지금도 사과받고 싶은 건 박원순 특보도 한 사촌동생 왕진이지 고등학교 그 놈은 아닙니다. 걘 그런 것만 배운 놈이고 왕진이는 전에 말한 것처럼 비열한 놈이었기 때문이고 거대 환경단체를 거쳐 특별시장특보까지 한 놈이니 그렇습니다.
그런다고 그걸 요즘 남들 공격하기 쉬운 SNS망을 통해 시비 걸 필요는 없습니다. 학창시절 폭력이 현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쉽지 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 아닌 그들 피해자들은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했습니다. 가해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영구제명이나 무제한 출장정지가 마땅한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 처분을 받아야 하는 이상열은 이번 시즌 잔여경기에 나오지 않겠다고 끝나고 다른 선수들은 그런 처분을 받고... 법에 공소시효라는 것도 있는데... 또 레밍스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