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7일 수요일

새 공부

  THE left. 책 이름에서 보듯이 유럽 죄파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지은이는 제프 일리인데 난 처음 보는 이름입니다. 도서실에 책이 들어 오던 날 담당 선생님이 책이 많이 두껍더라고 말했는데 그러려니 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는 좌우 다양한 책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가 주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쉽게 생각했던 책의 두께가 놀랍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두께입니다. CD 케이스의 한 장의 두께가 정확히 1cm인데 8장 하고도 조금 남습니다. 그래도 가격은 5만원입니다.

국가주의

  어제 아침 박재홍 시간에 변호사가 여러 뉴스를 소개해 주다가 맨 끝에 앵커의 질문에 2대1로 질 것 같다고 하니까 앵커가 '그럼 탈락인 거네요?'라고 하자 당황하며(아주 티가 많이 남) 2대0으로 이긴다고 말을 바꾸고 둘 다 웃으며 그 꼭지를 끝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위기 모면용으로 순간 꾸며낸 게 대단한 예언자가 되었지만. 누가 독일을 그렇게 이길 거라고 예상했겠습니까.
  얼마나 한심한 사회입니까. 이긴다고 예상을 해야 애국자이고 질 거라고 예상을 하면 매국노라니 이거 원 무서워서 어떻게 이 땅에서 살지요?

우연

 
국어선생님이 앞 시간에 쓰시고 닦고 간 뒤 생긴 기하학적 문양입니다. 누가 의도적으로 그린 것처럼 보입니다.

2018년 6월 26일 화요일

네 발달린 동물의 걸음걸이

  내내 궁금했지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굳이 찾지 않았던 것입니다. 네 발 달린 동물들은 어떻게 걸을까. 여러 가지가 있답니다.
  토끼는 앞 두발 함께, 뒷 두 발 함께
  기린은 왼쪽 두 발 함께, 오른 쪽 두 발 함께
  말은 대각선이 같은 위상으로 움직인답니다. 왼쪽 앞과 오른쪽 뒤가 함께, 다음은 반대로 오른쪽 앞과 왼쪽 뒤가 함께
  더 신기한 놈이 있는데 코끼리입니다. 네 발이 각각 90º의 위상차를 가지고 딛는 답니다.

한심한 교육과정

  기말고사 출제를 해놓고 현재까지 두 번 검토를 했습니다. 그러다 깜짝 놀랐습니다. 도수분포표에서 평균이 없어진 것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당연히 도수분포표와 도수분포다각형을 배우고 나면 표나 히스토그램, 다각형에서 평균을 구하는 것이어서 냈는데 생각해보니 교육과정에서 빠진 겁니다.
  전에도 7차교육과정이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2009개정은 그마저 걸레로 만들었고 2015개정은 아예 누더기로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자료로 분포표 만들고 계급, 도수, 계급의 크기, 히스토그램, 다각형 가르치고 끝나면 그 자료의 전체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평균은 나중에 배워야 하는 겁니다. 이유야 학생들이 힘들어 한다는 것이지요. 어려운 개념도 아닙니다. 계산이 귀찮을 뿐이지.
  상대누적 빼고 그 다음엔 누적 빼고, 이젠 도수분포표에서 평균을 빼고. 3학년에서는 분산과 표준편차 빠지고... 통계가 이게 뭐랍니까.

통일?

  사회선생님께 통일교육이 참 어렵겠다고 했습니다. 작년과 올해의 북한을 보는 시각 문제 때문에요. 그런데 아주 신속하고 확신에 찬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전혀 문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학생들이 통일을 반대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손해라고 생각하는 건데 지하자원등을 따져 보면 그게 아니라고 교육을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건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통일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것인데 그건 통일의 당위성 교육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통일을 하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에 통일을 한다는 논리가 성립이 되는 것이고 그 계산(지하자원 등로로 이익이라는)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은 것이니 결국 하지 말자는 쪽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지요. 여튼 통일의 당위성에 통일로 손해보는 게 아니라는 교육은 들어갈 것이 아니라는 내 의견을 그는 간단히 묵살하였습니다.
  그래도 예를 들어 주었습니다. 심하게 가난한 동생이 천만원 꿔달라고 하면 받을 생각없이 줄 것 아닌가. 설령  통일로 손해를 보더라도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되지 않겠냐. 묵살.
  하나 더. 탈북 출신 국방대학원 교수가 내려오기 전 대남방송요원이었는데 대북방송을 들으니 다 알아먹어서 내려와도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려와서 아홉시 뉴스를 들으니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결국 TV를 껐다. 그리고 왜 그러는지 생각을 해보았더니 대북방송을 북한 사람들이 알아먹을 수 있는 말로 바꾸어 한 것이었다. 그렇게 언어조차도 다르니 통일은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실천적으로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건 그가 통일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에, 현재의 그의 필요없는 통일교육이라고 하는 것을 바꿀 생각도 능력도 없는 걸 알고 있기에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 꺼낸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문제가 걸려 있으니 통일교육은 일단 같은 민족인지, 같은 민족이라면 왜 합쳐져야 하는지부터 해야 하는데 이건 상당히 복잡한 일이므로 통일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신중하게 교안을 짜야 한다고 말을 해야 했지만 차근차근 교류를 시작해서 늘려나가야 한다고 방향을 틀어 이야기 마무리했습니다.
  통일교육이 현재처럼 된다면 이 아이들이 사회에서 활동을 할 때도 최소한의 교류도 이루어질 지 난망 難望입니다.

2018년 6월 25일 월요일

무심코 놓쳤던 것-수학

  수학을 중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게 만 32년이 되어 가는데 충분히 알아야 했을 것을 잘못 가르쳐 온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를 읽다가 모래시계와 다른, 통에서 빠져나가는 물의 특성을 새삼 보게 된 것입니다. 내용인 즉슨 모래는 떨어질 때 밑에 쌓이는 부분이 일정한 각(정지각)을 이루면 그 부분까지는 고체처럼 고정이 되고 추가로 떨어지는 모래는 이미 쌓인 모래의 표면을 액체처럼 흐른답니다.
  하지만 물은 통에 구멍을 뚫어 물이 빠져 나갈 때 윗부분의 압력이 작용해서 물의 높이가 낮아질수록 압력이 떨어져 처음에 일정 시간동안 빠져 나오는 물의 양과 나중의 양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통에 물을 채우고 아랫부분에 구멍을 뚫어 높은 곳에 올려 두면 물이 떨어지는 물통으로부터의 거리는 점점 짧아지는 것이고 그것은 곧 빠져 나오는 물의 양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물의 압력이 중력의 법칙을 따를 것이니 최소한 그래프가 직선으로 표현되는 일차함수는 아닙니다. 비선형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인 자격루는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수조를 두 개(파수호, 수수호) 만들어서 아래쪽의 수수호의 물높이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으로 해결했답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교과서 어느 출판사의 것에도 물을 채우고 물이 빠져 나가는 것을 일차함수의 문제로 쓰고 있습니다.
 
. 높이가 100cm인 원기둥 모양의 물통에 물이 가득 차 있다. 이 물통에서 매분 일정한 양의 물을 계속 뺐더니 4분 만에 물통이 텅 비었다. 물을 x분 동안 뺐을 때의 물의 높이를 ycm라고 할 때, 두 변수 xy 사이의 관계를 그래프로 나타내시오.

나. 의 물이 들어 있는 물통에서 분마다 씩 물이 새고 있다. 물이 새기 시작하여 분 후에 남아 있는 물의 양을 라고 할 때, 다음 물음에 답하여라.
에 관한 식으로 나타내어라.
분이 지난 후에 남아 있는 물의 양은 몇 인지 구하여라.
남아 있는 물의 양이 라면 몇 분 동안 물이 샌 것인지 구하여라.

우리 학교에서 쓰고 있는 교과서를 찾아 보았습니다. 가 문제는 1학년 동아출판사의 것이고 나 문제는 2학년 지학사의 것입니다. 1학년은 정비례의 문제로, 2학년은 1차함수의 문제로 쓰고 있습니다. 참, 물을 채우는 것은 일차함수 문제인 것으로 문제 없습니다.

지식에 대해

  박형주 아주대 총장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4차산업혁명과 수학교육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곁가지 이야긴데 고등학생들이 여렷 왔습니다. 그들이 관심가질 주제도 아니고 알아먹을 만한 이야기도 아니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가 가관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11명은 이랬습니다. 한 명은 프리젠테이션 화면 사진 찍기, 한 명은 함께 온 엄마와 이야기하기, 4명은 자기, 4명은 폰으로 게임하기, 1명은 열심히 듣는 척하기. 인문계고등학교의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그 분의 말씀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지식의 양이 급속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최근 2년 동안 생산된 지식의 양이 그 동안 인류가 생산한 양의 90%'라는 것에 대해서였습니다. 하루 생산량은 챛 5조권 규모라네요.
  그러니 학교에서는 지식을 가르쳐줘봐야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지요. 학교에서는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많은 양의 새로운 지식이 등장하는데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을맡게 되든 빨리 제대로 배워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이지요.
  그래서 '지식의 시대가 가고 통찰의 시대가 왔다'고 합니다. 매일, 매시간 쏟아지는 엄청난 지식을 모두 가질 수 없으니 새로운 것이 생기면 얼릉 배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이 '통찰'이라는 것입니다. insight 통찰력은 다양한 영역의 공부에서 나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그 점쟁이.

2018년 6월 24일 일요일

지피지기

  젊은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친구들과 술내기도 많이 했구요. 뻥으로 들리겠지만 친구들도 그런 마음에서 내기에 응했지요. 내가 술값 낸 기억은 없습니다. 그러다 발령을 받고 그 능력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학생들의 고민을 빨리 알아채고 적절한 상담과 대책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지요. 선배들에게 그랬다가 속마음을 들킨 정아무개 선배한테 뒈지게 욕먹고 그 다음부터 발설을 금하게 되었습니다.
  점집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사주는 완전히 다른 영역입니다. 그리고 신 내린 사람들도 다른 영역입니다. 순전히 대화를 통해서만 손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능력이 있는 걸까요. 바로 세심한 관찰력을 가지고 제한된 조건에서 얻어진 정보들을 분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빅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능력과 그것을 분석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손님이 밖으로 나타내는 모든 신호를 잡아내고 자신이 제공한 키워드에 반응하는 모든 정보들을 얻어내는 것이 빅데이터의 수집입니다. 엄청난 훈련과 특별한 감각기관, 다양한 지식 등이 그 정보의 양과 질을 담보합니다. 그 다음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읽어내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도 다양한 지식과 많은 사람들과의 접촉경험이 필요하며, 짧은 시간에 해석하고 또 그것을 상대에게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높은 정신능력을 요구합니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답을 하네요. 난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걸 알기 때문에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한 동료들은 아예 접촉을 하지 않는다고 하구요.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명확히 잘 모르는데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게 가능할지의 나의 의문에 아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러면 난 당신을 어떻게 생각한다고 판단하냐'고 물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은 엄청난 능력입니다. 짜장인지 짬뽕인지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는데 고도의 정치적인 셈까지 섞여있는 好惡에 대한 것을 어떻게 읽어내겠습니까. 또한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단계의 성찰을 요구합니다. 사주관상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이나 자신과 가까은 사람들의 것을 봐주지 않습니다. 판단에 자신의 희망이 반영이 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 더구나 자신의 행동이 잘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최고 수준의 성찰인 것입니다.
  그래서 손자도 백전백승할 수 있는 조건으로 '知彼知己'를 내세운 것입니다. 싸우는 데 덩치도 봐야 하고 무기도 따져봐야 하고 식량도 셈해봐야 하는데 그것은 다 그 다음이라는 것입니다. '지피'가 우선 필요한 것이고 '지기'까지 되면 싸워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는 걸까요. 글쎄 그는 항상 내가 잘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을 잘하고 있다고 내게 그리 살면 안 된다고 충고 아닌 타박을 하는데...

2018년 6월 20일 수요일

사회적 웃음?

  앤서니 기든스와 로버트 프로빈의 연구에서 사람들의 웃음의 80%이상이 재미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사교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겨레신문 '웃음이 사회적 신호인 까닭은". 프로빈 교수는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것이라고까지 표현을 했네요. 일견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80% 이상이 그렇다고 하는 부분은 또다른 관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분명 차태현의 웃음은 그렇습니다. 항상 과장되어 있으며 의식적인 것입니다. 그는 평소에도 거의 얼굴에 웃음을 흘리고 있습니다. 상대의 어떤 말에도. 관리자를 그렇게 싫어하는 선생님들도 대화 중에 최소한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실은 차태현을 이야기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다고 인정을 합니다.
  하지만 그 사교적인 몸짓이 솔직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사교적'이란 것의 정의가 달라지지 않나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자신의 표현에 웃어주는 사람을 좋아하긴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되지도 않은 그 무엇에도 칭찬을 남발하는 사람의 칭찬처럼 가치없는 것이라는 걸 사람들이 모를까요? 칭찬에 인색하다가도 내가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을 때 칭찬을 해주는 그런 사람의 칭찬은 세상 얻은 것처럼 행복한데 말이지요.
  바로 이것 때문에 친구가 그리 많다가도 정말 필요할 때 아무도 없다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평소에 사람들 대할 때 느껴야 할 것입니다.


또 공자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교언영색 巧言令色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빛. 번역하자면 듣기 좋은 말과 상대의 분위기에 맞춘 얼굴이지요. 사람들 다 그렇게 사는 게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습니다. 공자는 성실하지 못한 것이라 했습니다.

2018년 6월 19일 화요일

후드티

  우리는 '후드'라고 말하지만 원래는 '후디'라네요. 그런데 엔진이 들어있는 앞부분은 '보닛'이라고 하고 엔진이 없는 건 '후드'라고 한다고 알고 있는데 후드가 '덮개'라는 뜻으로 함께 쓰는 줄 알았거든요. 콩글리시라는데 뭐 난 관심없는 일이고.
  유래를 검색해보니 중세 수도사의 옷에서 시작했다고들 하네요. 그런데 '로빈후드'에서도 후드가 나오는 것을 보면 후드는 '빈자'들의 옷이 아닐까 혼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팅엄에 있는 로빈후드상은 모자는 썼지만 후드티는 아니지만.
  여튼 가리는 용도입니다. 모자가 착탈식으로 달린 점퍼를 입어본 적 있는데 추운 겨울이었어도 목이 불편해서 벗어버린 개인적인 기억을 보면 편리함이 아닌 감추는 목적이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입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 하지 않고 입는다고 하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에 따라 입는 옷의 색깔처럼. 항상 검은 옷을 입는 모기소리는 ㅇㅖ외인가요? 그는 의식적으로 찾는데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타인을 위협하는 용으로 선택하는 거지요.
  모자의 아래에 있는 머리카락은 성격을 바로 나타내 줍니다. 이마를 얼마나 덮었느냐가 개방성과 폐쇄성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자신은 그 판단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속이고 사는 사람입니다.
  덤으로 가르마도 생각의 유연성과 경직성을 보여줍니다. 가르마가 가운데로 갈수록 생각이 유연하고 가운데서 멀어질수록 플라스틱합니다.

진정한 스승

  앞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공자 말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선생이라면 당연히 그런 제자를 만나고 싶어하지요. 만나면 행운인 것이고 교사는 1년에 한 명만 만나도 최고의 행운입니다. 어제는 3학년들에게 공자의 그 말씀을 소개하면서 농담으로 그랬습니다. 공자는 그랬지만 난 금방도 너희들이 며칠 전 배운 거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두말없이 다시 이야기해 줬으니 선생으로서는 내가 더 낫지 않니?
  고민하는 교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렇게 잘하는 놈(공자가 말한)은 선생이 뭐가 필요하겠냐. 그래서 저 놈 때문에 내가 계속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다수의 개념없는 교사들은 그렇게 잘하는 것이 자신이 가르쳐서라고 생각하고 자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학급간, 학생간 성적비교를 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그가 떠나고 남겨진 학생들이 그를 아쉬워하는 게 진정한 스승인가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는 아직도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잘 가르쳤다면 어떤 사람에게서도 잘 배울 수 있어야 하고 떠난 스승을 추억으로 생각하지 아쉬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난 아직 멀었습니다.

2018년 6월 11일 월요일

깡통

  영국에서 철제 깡통음식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 이름을 tin canister라고 했답니다. canister는 원래  metal container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지금은 사전 머리에서 아예 깡통이라고 나오지만요. 처음의 그 이름에서 일본이 '칸'이라고 불렀고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통해 들어오면서 '칸' + '통'이 되면서 깡통이 되었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의 글에서 발췌.
  그는 깡통의 용도를 여러가지 이야기했지만 내 기억에서 제일 뚜렷한 것은 불깡통입니다. 원래에 거기에는 주로 황도가 담긴 것이었지요. 1월, 2월은 내내 불놀이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빈 깡통의 옆과 아래에 못으로 구멍을 여러 군데 뚫어 바람이 통하도록 하고 철사 줄을 단 뒤 말린 풀잎을 바닥에 깔고 마른 소똥을 조금 넣은 뒤 굵은 나무가지를 부러뜨려 넣고 깡통 밑에 불을 붙인 뒤 소똥에 불이 붙으면 깡통을 돌려서 나무에 불을 붙입니다. 밤 늦게까지 깡통을 돌리며 놀았습니다. 불쏘시개 보충해가며. 그게 그렇게 재미있는 놀이였습니다.

2018년 6월 3일 일요일

싹수

  가르치는 일 20년이 넘어가면서 확신을 갖게 된 것이 있습니다. 배우려는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이 불문입니다. 어른들의 경우도 새로운 정보에 대해 신기해하고 더 이상의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이 아닌 경우는 절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습니다. 애쓰는 나의 스트레스일 뿐입니다. 연수를 하나 받고 있는데 공자의 말씀 중에 기똥찬 게 있습니다.


  子曰 不憤 不啓 不悱 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


공자님 말씀이 자신이 모른 것에 대해 분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일으켜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일깨워주지 않으며,
한 귀퉁이를 일러주어도 나머지 세 귀퉁이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다시 가르쳐주지 않는다.


悱 표현못하다. 우 隅 모퉁이


  가르쳐 보면 이 사람이 정말 배우고 싶어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경우 학생을 보면 배울 의지가 없는데 그의 부모가 생각하기를 열심히 하는데 주위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믿는 경우는 안쓰러운 면도 있습니다.
   과거 선생님들이 때려가며 가르쳤던 걸 생각하며 학습의지를 깨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방법은 불법이며 학생은 매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공부를 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공구의 효과는 없습니다.

형해화, 황당무계

   앞의 글과 이번 글에 때 아닌 단어의 뜻을 스는 이유는 지난 몇 달간 개판인 정치판에서 많이 나온 그러면서 제대로 쓰이지 않았던 말을 정리해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형해形骸 : 생명이 없는 육체를 말합니다. '형해화 한다'고 쓰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