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6

상인과 샌님

   상인은 장사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별 다른 듯이 없는데 샌님은 조금의 언급이 필요합니다. 조선 시대 때 생원을 부르던 말이 지금은 뜻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지금 샌님으로 쓰이고 있는 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두 번째로 말하는 '얌전하고 고루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입니다. 거의 멸칭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지요.

  상인의 덕목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금융이라는 게 산업의 일 부분이 된 것은 산업화 이후입니다. 그 전에는 돈을 꾸어 주고 이자를 받는 건 동서양 막론하고 비도덕적인, 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산업이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산업혁명에 의해 중심이 이동하면서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되었습니다. 미국을 기준으로 한다면 '산업의 중심지'는 '금융의 중심지'와 동일하며 그 곳은 뉴욕인 것입니다.

  또 한 예로 반도체를 들 수 있는데 미국에서 반도체의 기술이 꽃을 피면서 자신들의 기술을 일본에 이전시키고 자신들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하였습니다. 일본을 새로운 반도체라는 엄청난 금맥에 가까운 기술을 개발에 필요한 자본 투여 없이 미국으로부터 고스란히 이전을 받아 전자제품을 만들며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되었습니다. 워크맨 등으로 돈을 긁어 모으며 하늘 모르고 부와 자존심이 올라가던 때 소니 회장이 현재의 융성함이 미국 때문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쌓아 올린 업적이라는 의미의 기자회견을 한 뒤 미국은 일본에 더 이상의 기술을 지원하지 않고 한국으로 지원을 돌립니다. 이 시기가 트랜지스터에서 IC회로(집적회로)로 반도체의 혁신이 이루어 지던 시기였습니다. 한국은 새로운 기술을 통하여 전자제품과 휴대전화에서 기존의 방식을 완전히 벗어나는 새로운 전자제품의 시대를 열었고 일본은 소니를 중심으로 현재까지의 기술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시도를 했습니다. 일본과 일본 기업이 그런 변화에 적응하지 않고 기존을 고집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변화에 따라가려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 게 작년, 2025년부터 였습니다.

  상인의 덕목은 변화를 미리 읽어 내고 더 나아가 그것을 선도하는 데에 재화를 더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비록 개인적인 욕심으로 자동차 산업에 끼어 들었다가 망하고 대한민국 경제마저 외환위기로 몰아넣었던 이건희도 그것 빼고는 장사를 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위기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어'야 한다며 삼성을 새 방향으로 이끌었고 반도체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대한민국 코스피의 상승과 하강을 주도하는 위치를 가진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변화는 다시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덕목'입니다.

  샌님은 보수주의자가 가져야 하는 것과 같은 덕목을 가집니다. 과거의 가치를 붙들고 머리 위로 치켜 올려 받드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을 때 그 때 이렇게 해서 나빴고 이렇게 했을 때 좋았으니 지금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그 과거의 전범에 따라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 결정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고스란히 그 책임을 지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그런 보수주의자는 없지만요.

  상인이 돈을 벌면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돈이 제일 중요한 가치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면서 돈을 벌었다는 것은 지나가던 소도 웃을 거짓입니다. 딱 정의로운 이익을 붙여 팔고 세금을 제대로 내면서 자본주의 세상, 그것도 부패한 이 땅의 자본주의에서 성공했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과이지만 이 것은 가능성 0.00001%가 아니라 그냥 0입니다. 내가 돈을 버니 허리 숙여 가며 침대 팔아 번 돈보다 내 아이가 서울에서 집을 사면서 단기간에 집값 올라가 번 돈이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엄청난 이익을 가져온 것이 미치지 못하니 내 아이의 축재 능력이 뛰어난 것, 자랑스럽고 내가 잘 키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걸 '집이란 게 거주의 수단이어야 하고 축재의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친구의 말은 '돈도 쥐뿔도 없는 샌님이 배아파 악담하는' 재수없는 말이어서 상종하고 싶지 않게 된 것입니다. 불과 십 여년 전까지만 해도 올바른 가치에 이견이 없었지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건 다시 말하지만 당연한 변화입니다. 단지 자신이 아직도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멍청하거나 비열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르게 살면, 그러니까 어떤 세상에 그런 사람들만 산다면 더 잘 사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것에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는 단순한 산술도 못하며 올바를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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