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이라는 것의 본질을 고민해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론의 다른 이름이 군중심리이고 일정한 목적을 위해 작동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
음반 사재기로 차트 상위에 오르는 것부터 저 극단의 곳에 가자면 간동대학살에 이르기까지 여론이라는 것의 실체는 무섭고 추잡하기까지 합니다. 최근에는 밀양성폭행사건, 꽤 오래 전의 일이 사적인 처벌의 문제로 올라옵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어이없게 약한 것이었다고 신상털기로 사적인 응징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정의의 사자인 것으로 생각하고 처벌을 하는 것이지요.
공화정에 사는 사람들은 그 체제에 순응을 하는 것이 올바른 시민입니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면 법을 잘못 집행한 사람들이 법에 의해 온당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하는 것이고 법 자체가 솜방망이였다면 국회를 추동해 법을 고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학자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책으로 내어 놓고 마케팅을 할 때 그 책을 읽거나 강의의 일부분이라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정의'라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 그냥 조용히 살 일이지 정의를 수호한다고 나서면 그의 행동이 미치는 곳에서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당연히 나올 것입니다. 할리웃 영화인 배트맨에서조차 진정한 정의, 막강한 힘을 가진 영웅이라면 각각의 상황에서 정의는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데 그런 것 없이 '우! 하고' 몰려 다니며 공적인 규칙을 무력화 하는 사람은 공화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펴면 안되는 무서운 흉기일 뿐입니다.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영화 이야기를 하려니 앞의 이야기가 과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연관이 되어 있는 일입니다. 범죄도시가 천만 돌파했다고 여기저기 엄청나게 이야기가 나오고 배우이자 감독이자 제작자인 '마씨'의 능력에 대해 능력자로 떠받드는 것들이 지금의 여론입니다. 그의 영화 '시동'을 본 바로 여늬 한국 영화와 하나도 다름없는 만화 수준도 되지 않는 줄거리에, 맥락 없음에, 연기력 없음까지 였다고 확신을 가지고 평합니다. 그것들이 달라졌다고요? 한 가지만 봅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입을 열지 않는 범죄혐의자에게 '진실의 방'을 엽니다. 법으로 금지한 폭력입니다. 더구나 무력을 쓰는 사람이라면 창피해서 절대 쓰지 않는 서로 대등한 조건을 가지지 않은 온전히 자신에게만 유리한 상황에서의 명백한 폭력. 그것을 보러 간 사람들은 그것을 통쾌해 하니 천만이 넘는 '정의로운 관객'이 나오는 것이잖아요. 그는 아직 '피의자'인데 '의'는 의심 중이라는 것입니다.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 검찰에 기소하고 그 때 '피고'가 되는 것이고 지금은 믿을 수 없게 된 사법부의 유죄 판결이 나오면 '죄수'가 되는 것이잖아요. 물론 죄수가 되어도 패면 안 되구요. 그렇게 다수의 사람들은 정의구현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인공에 빙의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침을 뱉고 욕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공화정에 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여론을 형성한 언론과 평론가들은 최고의 악당인 것이구요. 더구나 이 영화가 상영된 동시간대에 상영관 85%가 그 영화를 상영했다고 한다면 모두가 그들의 정의구현이 아전인수 아닌가요? 딱 5공 때의 그 정의구현과 맞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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