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호란 : 1627년 3월 1일 3만명 침공. 1627년 4월 강화.
병자호란 : 1636년 12월 2일 12만명 침공. 12월 14일 남한산성 파천. 1637년 1월 30일 항복. 전사자 3만, 포로로 끌려간 노예 60만명
이미 기운 명나라를 섬긴다고 어마어마한 대국으로 성장한 금나라, 청나라와 맞짱을 떠서 엄청난 피해를 백성들에게 입힌 인조. 빨리 전쟁이 끝나서 피해가 이 정도였지 도 길어져서 충청, 전라까지 내려왔으면 나라가 끝나는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 계속 싸우자고 했던 김상헌은 충신이 되어 대대로 후손들이 그 이득을 얻었고, 백성들의 피해를 우려하여 강화하자고 했던 최명길은 포로 송환 등 전후 조선의 이익을 위해 애썼지만 인조의 삼두고배의 원흉으로 찍힙니다. 그의 후손들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숨어 지냈구요.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판을 잘못 읽어 전쟁을 끌어들였고, 미국과 서방의 부추김에 자신이 영웅인 것으로 착각하고 온 나라와 국민을 전쟁의 참화를 몇 달째 겪고 있습니다. 전쟁은 내 땅에서 벌어지면 이겨도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서방의 군사적 지원이 많아질 수록 러시아의 공격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여기서 아무 말 없이 러시아가 후퇴한다고 해도 그 땅은 이미 회복이 힘들 정도로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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