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교육 받은 남자, 예의 바른 남자, 지조 있는 남자, 뿌리 있는 남자. 이 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대부 이겠지요?원래 중국에서 쓰던 의미와 조선에서 달라졌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고려, 조선 시대 문관 관료의 총칭'입니다. 그러면 원래의 의미가 무엇이었을지 찾아 보겠습니다.
士大夫는 士+大夫입니다. 士를 찾아 보았습니다. 갑골문이 발견되지 않았던 시기에 쓰여진 한자의 불후의 사전인 설문해자에 나온 말입니다.
事와 같아서 '일을 맡아서 하다'의 뜻이다.숫자는 一에서 시작하여 十에서 끝난다. ... 공자는 ''열 가지의 많은 일을 유추해 하나로 귀납할 수 있는 사람이 士이다."라고 했다.
설문해자는 후한시대에 쓴 것으로 당연히 공자의 뒷 세대이고 유가의 영향력 아래에 이미 있던 시기입니다. 백양은 중국 어느 시기에도 정권은 항상 유가의 이념에 따른다고 했지만 거의 모든 시기에 도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튼 위정자들은 항상 유가의 가르침을 일이 있을 때마다 앞에 세웠습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공자가 노나라에서 처음으로 대사구의 벼슬로 한 일은 예를 가르친다면서 예법을 노래와 춤으로 보여 달라고 하고서 그것이 주나라의 예법에 맞지 않다며 연기자들 모두의 손과 발을 잘랐답니다. 그의 '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가 아니고 '예법', 그러니까 어떤 행사 때는 옷을 어떻게 입고 어떤 순서로 어느 방향에 선 다음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이딴 것이 그의 '예'이거늘 이게 우리에겐 아무 의미가 없지만 왕(혹은 황제)의 주변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어서 춘추시대에 주나라가 쭈그러 들어 주나라의 예법이 거의 사라진 마당에 그걸 계승했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가 공자이고 그가 주창하고 다닌 것이 고작 그것일 뿐인데 그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士가 공자 이후에 생긴 건지 찾아 보니 갑골문에 있습니다.
갑골문의 士는 갑골문과 같아 소개할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뜻이냐가 중요한데 도끼 모양이라고 하는 말이 많은데 지금은 쓰이지 않는 한자 牡(수컷 모)에서 원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소牛와 士의 결합인 회의자인데 士기 수컷의 생식기라고 합니다. 이것이 나중에 土로 바뀌었답니다. 그러면 士는 설문해자의 설명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남성을 지칭하다가 미칭으로 변하면서 지식인을 뜻하게 되었다는 거지요.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보자면 士는 공자가 사랑한 주나라에서 예법, 그러니까 계급 질서는 공, 경, 대부 그리고 그 다음이 士입니다. 公은 주나라 왕이 봉한 봉국의 우두머리이고 그 봉국의 으뜸 신하가 '卿'이며 중하급 관리가 '大夫'입니다. 벼슬이 없으면서 벼슬을 할 수 있는 자들이 士입니다. 그러니까 고려, 조선에서는 끝의 두 계급을 붙여서 다른 뜻으로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전 정권에서 대통령의 칭호에 '각하'라는 것을 붙이냐고 했던 멍청이들이 각료, 그러니까 장관급에 붙이는 각하라는 호칭을 박정희가 썼다고 붙이려는 것처럼 '우리 가문처럼 사대부가에서 그런...' 어쩌고 하는 것은 중국을 따라 하면서 중국의 역사를 모르고 하는,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이 보면 '기껏 사대부 주제에...'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일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