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령을 처음 받았을 때 교직원 내의 위계질서는 군대와 다름이 없었고 교사의 자율성은 전혀 없었고 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전체주의적인 것이 강했습니다.
518 이후로 교사들에게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Y교사협의회의 희생을 자양분 삼아 평교사협의회들이 학교에서 결성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하나로 묶은 게 전교헙(전국교사협의회)인데 그 수명은 매우 짧았습니다. 89년에 전교조가 생긴 것입니다. 교사가 노동조합을 한다며 전방위적인 압박과 탄압이 있었고 해직자들이 발생했습니다. 상당수 해직자들이 교단에 남은 조합원들을 흘겨 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수적인 활동 기반이 된다는 것을 알고 파삭파삭 갈라진 조직을 추려 나갔습니다.
탄압은 여전했고 5월의 창립대회와 10월의 노동자대회 참가는 수사기관까지 동원되어 참석 예상자가 감시당하고 집회장소는 미리 점령당하기도하고 집회 시작된지 10분 정도면 수천의 경찰병력이 둘러싸고 해산을 시켰습니다. 집회시간과 장소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 졌어도 어떤 때는 집회 장소가 미리 봉쇄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시작하고 급방 에워쌓이니 경찰력도 대단하지만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도 짐작이 가는 일이었으므로 참으로 씁쓸한 일이었습니다.
여튼 우여곡절 끝에 합법성을 인정받았는데 현장은 달라졌을까요? 전남만 예외인데(금지된 자체 균등분배는 전남만) 성과금을 기반으로 관리자의 교사지배는 여전하고 교무행정사가 있어도 줄어들긴 했지만 사무는 여전히 부담이며 관리자 뿐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에 대한 교권은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명예퇴직이 예산 수용치를 넘어서는 해가 오랫동안 반복이 되어도 당국은 대책마련이 없는데 그렇게 힘들게 지켜왔던 전교조는 정치노름이나 하고 있습니다. 작은 학교 없애는 악행에도 눈감고 있으니 조합비 내는 교사들은 무슨 생각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