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요일

타초경사打草驚蛇

 打칠 타, 草풀 초, 驚놀랄 경, 蛇뱀 사. 풀을 쳐서 뱀을 놀래키다. 풀을 치니 뱀이 놀라다.

  이 사자성어는 한 쪽을 혼내서 다른 쪽을 깨우친다고 대부분의 해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배웠던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맨 앞줄에 두 가지의 해석을 썼는데 두 글자만 다르지만 뜻이 다릅니다. 앞의 것은 검색하면 나오는 일반적인 해석이고 두 번째의 것이 내가 처음 접했던 해석입니다. 

  앞의 해석은 '갑'을 가르치기 위해 '을'을 혼낸다는 것입니다. '네가 알만한 놈이면 갑이 혼나는 걸 보고 미리 알아서 행동하라'는 거지요.

  뒤의 것은 이렇습니다. 농부가 풀을 벱니다. 그는 농사에 방해가 되는 풀을 제거할 뿐입니다. 그런데 풀 속에 있는 뱀은 농부의 의도와 아무 상관없지만 몸을 피하지 않으면 해를 입게 되니 알아서 미리 피하라는 것입니다.

  언뜻 결과가 같아 보이지만 앞의 것은 낫을 쥔 사람의 의도가 중심이고 뒤의 것은 그의 의도와 아무 상관없이 뱀이 현명해야 함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니 쓰임이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 다른 용도로 쓰이는 타초경사를 보았습니다. 주된 내용은 같지만 용도가 다른 것입니다. '갑'을 두들기면 '을'이 미리 놀라 몸을 사리게 되어 '을'을 다루기 힘들어지니 '갑'을 '을'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혼을 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이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이고 공부하는 사람들의 표현력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달리 입체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공부는 부족한데 똑똑한 체하려는 아무개 같은 사람들은 자다가 봉창을 뚫는 거구요. 하기야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 똑똑하다고 자신들의 구세주로 생각하니 그것도 내가 잘난 체하는 것일 수 있겠네요.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라면요.

2024년 6월 26일 수요일

숨겨진 나쁜 놈

   엠비씨의 손에잡히는 경제를 빠지지 않고 듣고 있습니다. 거의 매 회차 진행자 욕을 하면서도 듣는 이유는 사실을 듣고 해석은 판단하여 버리거나 받아들이거나 추가 공부하여 보완하여 새로운 뉴스를 알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 아침에 하는 이진우는 아주 말이 좋은 교활한 나쁜 놈입니다. 저녁에 하는 손경제 플러스의 박정호는 멍청하기 때문에 욕할 것은 아닙니다. 교수라는 직함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겸임교수로 있다는 명지대학교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이 안타가울 뿐.

  얼마 전 6월25일 손경제에 이진우의 말을 듣고 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명품(혹은 고가품) 가방회사에서 디올은 8만원에 받아다 380만원에 팔고 에르메스는 150만원에 받아다 천만원 넘게 판다는 건데 이 원가가 공개된 이유가 노동착취 고발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답니다. 이 때 이진우가 한 말입니다.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다른 곳보다 거기가 더 많이 주기 때문에 거기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임금을 더 주라고 하면 쫓겨 날 것 아니냐고 하였고 리포터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니까 임근을 올리면 납품가가 올라가고 그러면 디올은 그 하청사와 계약을 해지하게 되면 일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정정하지 않고 디올 걱정만 합니다. 그렇게 8만원짜리 가방을 380만원에 사람 사람들이 있으니 어쩌겠냐는 말로 그 이야기는 마무리합니다. 전에 전세 이야기 하면서도 열 받은 적 있는데 리포터들은 뛰어난데(1부만) 진행하는 요 뺀질이는 정말 나쁩니다.

사람은 모두가 만족 속에 산다

   내가 한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것은 거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기 위해 선택한 것들은 알아 보고 그 중 좋은 것으로 선택을 했다고 믿으며 삽니다. 

  자신이 지금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없다는 것은 궁금한 것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고 궁금한 것이 없다는 것은 호기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서 이야기해 본 사람들은 자신이 처음 듣는 이야기, 특히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반하는 이야기에 반발을 하고 해명을 추가로 요구하는 사람은 한둘에 불과합니다. 나를 오래 겪어 본 사람은 그냥 무시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고 내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괘변이라고 생각하고 '그건 네 생각일 뿐'이라고 몰아붙입니다. 날 아는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내 말재주가 뛰어나 결국 맞지 않은 것을 사실로 설명할 거라든지 아니면 아예 그런 건 알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두 경우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나름 따져 보는 사람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따져 보는 사람은 고구마 줄기에 고구마 따라 나오듯 한 가지 사실에 연관된 여러가지를 공부하여 알게 되는 것이고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일에 대한 해석을 해주는 사람의 그 의견을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끝내는 것이어서 궁금함이 없고 그래서 모르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잘난 체하는 자의 공연한 죽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는 '계륵'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망하고 위촉오의 삼국이 정립하여 서로를 거꾸러뜨리려던 시기 위나라의 벼슬아치 양수가 그입니다.

  이야기 하나. 조조가 화원을 꾸미게 하고 그 완성된 것을 보러 왔다가 아무 말 없이 문에 활活자 한 자만 써 놓고 가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양수는 "문門에 활活자가 더해졌으니 활闊(넓을 활)자가 되어 문이 넓어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하다."고 풀이하자 문을 헐고 다시 좁게 만들었습니다. 조조는 그제사 흡족하여 누가 자신의 뜻을 알아 챘는지 확인하고 그가 양수인 것을 알고 몹시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야기 둘. 조조가 자신의 수면을 평하게 하기 위해 "나는 꿈을 꾸다 사람을 죽이는 수가 있으니 내가 잠이 들거든 그대들은 절대로 가까이 오지 말라."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야기 하였습니다. 어느 날 낮잠을 자다 침상에서 굴러 떨어지자 시자侍者 하나가 부축해 올리려 했다. 그러자 조조는 벌떡 일어나 칼을 뽑아 그를 베어버리고 일이 없는 듯 이어 잤습니다. 얼마 뒤 잠자리에서 일어나 죽은 시자를 보고 누가 자신의 근시近侍를 베었냐고 물었고 사실을 이야기하나 울면서 후하게 장사를 지내 주었다고 합니다. 죽은 이의 장례식에서 양수 왈 "가엽구나. 승상(조조의 벼슬)이 꿈꾸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대가 꿈꾸고 있었던 것이네."라고 하였습니다. 조조는 이를 전해 듣고 이를 갈았다고 합니다.

이야기 셋. 타락죽 소酥 한 합이 상에 올라 오자 조조는 장난으로 그 합 위에 일합소一合酥라고 써서 책상에 둔 것을 양수가 보고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조조가 그걸 먹은 양수를 나무라자 양수가 "합 위에 한 사람이 한 입씩 먹는 타락죽에 일인일구一人一口이라 씌어 있어 먹었노라."고 하여 조조를 그게 싫었습니다.

  이야기 하나와 셋은 조조가 잘난 체하기 위해 한 것으로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여론이 만들어 졌을 때 자신이 설명해주며 마무리하려던 것을 양수가 김을 뺀 것이고 두 번째는 암살 위협 없이 편히 자려고 짠 계략을 사람들에게 알렸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해 자신의 시중 하나를 베어버린 것은 또한 자신의 잔인함이 드러난 것이니 양수가 아주 싫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그는 세자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모사꾼 노릇을 했습니다. 조조의 아들 들 중 첫째는 두루 잘하는 아이였고 셋째는 문학적으로 뛰어났습니다. 조조는 학문적으로도 상당한 공부를 하였고 문학적으로는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병법에도 두루 밝기도 했구요. 그런 조조는 학문적으로 문학적으로 뛰어난 셋째에 마음이 끌렸고 그에게 대를 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 상황에 조비와 조식 두 아들 뒤에 다음의 권력을 얻기 위한 줄서기가 있었고 양수는 둘 모두에게 조조의 마음을 사는 꾀를 내어 주었는데 조조가 알고 아주 괘씸하게 생각했습니다. 후사를 결정하는데 장난치는 것으로 보였으니까요. 자신만에게 주어진 유일한  권한인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꾀를 부렸으니까요. 단단히 미운 털이 박힌 것이었습니다.

  조조가 이전의 싸움에서 한중(롱서)을 차지하고 촉까지 취해야 한다는 책사 사마의의 말을 과한 욕심이라며(등롱막촉得隴望蜀. 원래 후한의 광무제의 말 旣平隴復望蜀, 이미 롱서를 평정했는데 다시 촉을 얻으려 한다고 한데서 유래) 촉을 두고 한중만 차지하고 군대를 물렸는데 결국 유비가 촉을 차지하고 한중을 노리자 군대를 일으켜 유비의 군대와 한중에서 맞섭니다.

  그런데 이 두 지역 한중과 파촉지역은 지금은 석탄부터 희토류 등의 귀한 광물까지 나오지만 농사가 유일한 상업이던 시기 아무 쓸모없고 군사적으로만 의미가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게다가 공명의 꾀에 조조군이 특별히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지 못하고 원정을 나온 조조는 하릴없이 대치만 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 때 모두가 아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저녁상에 닭죽이 나왔고 그 속의 갈비를 보면서 '참으로 계륵이네'라고 한탄하며 그걸 들고 먹을까 말까로 고민하고 있던 참에 당직이던 하후돈이 들어와 그날 밤의 암호를 무엇으로 정할 건지 묻자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있던 계륵을 보며 '계륵'으로 하라고 합니다.

  지금 군에서는 암구호가 묻고 답하는 한 쌍으로 이뤄져 있어서 '누구냐'고 물은 뒤 앞 암호를 말하면 움직인 보초 앞에 선 자는 뒷 암호를 말해야 합니다. 이건 앞뒤의 단어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정해야 상대가 유추할 수 없는 것이라 잘 정해야 합니다. 전에는 그냥 암호 하나가 있었지만 매일 새로운 암호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귀찮고 머리 쓰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야간 순찰조에 암호가 전달이 되었고 그걸 들은 양수는 머리를 돌립니다. 앞의 경우에서 보듯 양수는 큰 틀에서 영리한 것이 아니라 거의 말장난 수준, 잔머리 수준과 상대를 들여다 보는 교활함이 그의 능력인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조조가 이익도 없고 승산도 없는 싸움이라서 내일은 후퇴할 것이라 예단한 양수가 자신의 부대에 조용히 미리 짐을 싸라고 지시하였고 순찰을 돌던 하후돈이 그걸 보고 뭐하냐고 물어 자신의 생각을 말하니 하후돈도 맞다고 생각해 자신도 자신의 부대에 짐을 싸라고 지시합니다. 심사가 고단해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진채를 돌던 눈에 이것이 보였고 양수의 목은 떨어지게 됩니다. 혼을 내고 말아도 될 일이었지만 꾸역꾸역 쌓아온 잘난 체가 그의 목숨을 스스로 버린 셈이 된 것입니다. 

  진정으로 똑똑한 것이 아닌 것이지요.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니.

2024년 6월 24일 월요일

푼수들의 건강법

 산에 가면 소리지르는 놈도 있고 나무와 등판씨름하는 놈도 있고, 앞뒤로 손뼉치는 놈도 있고 괜히 쇠작대기 들고 다니는데 등 뒤로 가로로 팔꿈치로 기고 다니는 놈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다 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놈'입니다. 그런데 이건 '놈'은 아닙니다.


  최근 산길을 고친 데가 조금 있는데 이것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황토를 밟으려고 산을 깎는 걸 보아서인지 민원이 들어가서인지는 모르나 저걸 만들었습니다. 진즉 찍으려 했으니 항상 만원이어서 찍지 못했는데 오늘은 일찍 가서인지 사람이 없어 얼른 찍었습니다.

  여성 고객이 더 많은데 그렇게도 생각이 없는지 안타깝습니다. 이런말을 해주고 싶은데 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남성들의 대부분은 무좀이 있어요. 대부분 군대 가면 걸려 오거든요.

영리한 게 죄

 


  아침에 올라가는 산길의 일부 구간이 이런 곳이 있습니다. 길의 왼쪽만 빤질빤질 사람들이 많이 다녀 다져진 것이 보입니다. 이 길을 도는 사람들이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걸까요? 그것 발고 얼른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삼국지연의를 읽어 보면 어떤 일에든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작전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부족한 김상욱교수도 모든 현상을 물리학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경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각각의 현상을 모두 살펴 보았고 왜곡되지 않게 보았다면 사실에 가까운 판단을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일이란 게 '모두'를 다 살피기 어렵고 포착한 현상을 합리적으로 살피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 길을 직접 지나는 내가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왼쪽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은 오른쪽의 길보다 더 높습니다. 산의 정상이 왼쪽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 해석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양파꽃

   보기 드문 것입니다.


  양파꽃인데 게을러서 수확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년을 위해 씨양파로 남겨둔 것입니다. 보통 양파밭에서  일부를 남겨 두는 것이 아니라 따로 텃밭에서 기르기 때문에 참으로 보기 드문 것이어서 저게 양파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촌놈 뿐입니다. 아래쪽에 하얀 꽃들은 상추꽃인데 그건 그렇게 보기 드문 게 아니지요.

2024년 6월 19일 수요일

'士'짜 직업이 능력자라구요?

   법조인이 똑똑하나요?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검사가 제일 똑똑할까요? 검사는 뒤로 돈을 잘 벌지만 앞으로 잘 버는 의사가 똑똑할까요?

1. 겁나게 잘난 체하면서 기자들의 어렵지 않은 민생관련 답변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기자회견조차도 하지 못하는 검찰총장 출신 프레지던트와 남의 말이나 질문에 자신의 편에서는 촌철살인이라는 답변을 하지만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거나 남에게 공격한다는 말이 허공을 지르는 푼수인 법무부장관 출신이 그들의 최고 보스라면 검사는 참으로 무식한 자들의 집단이 아닌가요? 물론 이딴 상황에서 '그러면 안된다'고 옳은 말 하는 놈 하나 없는 부도덕까지 장착한 그런...

2. 의사 정원 문제로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제 밥그릇 지키려는 부도덕한 장사꾼 의사에 대한 건 내 입이 더러워지니 똑똑한지만 봅니다. 싸움이란 게 적에게 타격을 입혀야 하는 건 아주 식상한 표현으로 삼척동자도 압니다. 그런데 요 멍청한 놈들 보세요. 지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내는 정부가 적이 아닙니까. 국민은 지들을 뒤에서 지원해주는 지원군이고. 지들이 싸우는, 공격하는 수단으로 파업을 하면 바로 지원군이 되어야 할 일반 국민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런데 국민을 어렵게, 두렵게, 사랑으로 보는 정권이라면 내 주인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을 하겠지만 여론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수장이고 최근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민심을 모르는 집단이 국민이 아프다고 자신들의 입장을 물릴 리 만무하잖아요. 그런데 자신들의 편과 등을 돌리고 적에게는 아무 타격도 없는 공격을 하는 놈들은 대그빡에 뇌가 조금이라도 들어 있을까요?

* 두 집단 특성이 뭔 줄 아세요? 첫째 사람들의 생명을 두고 돈을 버는 놈들이란 것이고 둘째는 그 수단이 책에 있는 그대로 외워 그 기억력이 자신들의 밥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논다니 이건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주인主人이란

주인1(主人)「명사」 「1」 대상이나 물건 따위를 소유한 사람. 표준국어대사전 

  대한민국헌법 제1장 제1조 2항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슈를 중심으로

1. SK(주) : 최태원 회장 1297만5472주(17.73%)인데 자사 홈페이지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최대주주가 바로 최태원입니다. 특수관계인이란 건 최회장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거구요.



  요새 최회장의 이혼에서 재산분할로 시끄러운데 그 핵심이 이 회사이고 그런 이유가 에스케이㈜가 에스케이 지주회사로 에스케이텔레콤(30.57%), 에스케이이노베이션(36.22%), 에스케이스퀘어(30.55%)을 가지고 있어 이 회사의 그 지분으로 계열사 모두를 지배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에스케이(주)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최태원이 회장이잖아요. 실제로 그가 에스케이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경영의 중요한 결정을 모두 하고 있으니 그가 주인일까요?

2. 2018년 전기차업체 테슬라 이사회가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에게 지급한 560억달러(약 74조8천억원) 규모의 주식을 보상하는 안을 결정하고 실제로 주식을 지급했습니다. 우리 돈 75랍니다. 소액 주주가 이 보상 패키지가 주주의 이익을 반한다며 소송을 냈고 올해 1월 델라웨어 주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해당 보상 패키지가 잘못되었다고 판결하고 이를 뱉어 내라고 했답니다. 머스크가 보유하고 있는 테슬라의 주식은 올 5월1일 기준 12.91%랍니다.

=> 테슬라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머스크가 모슨 사업의 결정을 하는데 그가 주인일까요?

3. 글의 머리에 헌법 전문 중 한 개의 항을 보여 드렸는데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일까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김종배가 항상 믿는 형식논리로 보면 이렇습니다. 정부의 정책에 10 개 중 몇 개나 동의 하나요? 요즘 한창 띄워 올리는 동해 유전 개발에 동의하나요? 북한에 맞짱 뜨자는 정책에는? 사대강 보를 다시 막자는 것에는? 의사 증원하자는 것에는? 종부세 폐지는? 내 뜻과 맞는 것도 있을 것이고 반대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뜻과 달리 내가 낸 세금을 쓰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국민인 당신이 주인입니까? 왜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걸까요?

2024년 6월 10일 월요일

무정과 유정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역사를 공부하면서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일제시대의 악당들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분노를 혼자서만 삼켰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안창호입니다. 학교 다닐 때도 뭔지 모르는 거부감이 흥사단에 들었던 것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길게 이야기 할 것 없이 그의 중요한 주장을 들어보겠습니다. 

  시사인 868호에 '조형근의 역사의 뒤 페이지' 칼럼에 쓴 것을 그대로 옮깁니다.

  “무정한 조선의 사회를 유정하게 만들어 무정으로 거꾸러진 조선을 유정으로 다시 일으키자”라고 호소했다. “우리 사회를 개조하자면 먼저 다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선 적부터 무정한 피를 받았기 때문인지 아무래도 더운 정이 없습니다. (중략) 일언일동(一言一動)에 우리 사이의 정의(情誼)를 손상하는 자는 우리의 원수외다”(섬메(안창호의 호), ‘무정한 사회와 유정한 사회’, 〈동광〉 1926년 6월호).

  이 칼럼을 쓴 사람은 다른 목적으로 이 글을 썼는데 나는 이 글이 그렇게 읽혀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해 잡혀간 조선의 남자들이 미군의 공습에 식량조달이 어려워지자 일본군은 그 중 두 명을 죽여 그 살을 고래고기라고 속여 일하는 사람들에게 먹였답니다. 나중에 알고 항의하는 사람들을 수십명 죽였구요. 그런 상황에서 '情'으로 '우리'를 일깨우자는 주장에 동의하는 건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나쁜 일들을 모두 밝히고 용서를 빈다면 그 때 가서 받아 줄 것인지 생각할 일이지만 지금 같은 일본의 태도에 '우방'이라고 전의 일은 잊어 버리자고 하는 주장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민심은 천심

   여론이라는 것의 본질을 고민해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론의 다른 이름이 군중심리이고 일정한 목적을 위해 작동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

  음반 사재기로 차트 상위에 오르는 것부터 저 극단의 곳에 가자면 간동대학살에 이르기까지 여론이라는 것의 실체는 무섭고 추잡하기까지 합니다. 최근에는 밀양성폭행사건, 꽤 오래 전의 일이 사적인 처벌의 문제로 올라옵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어이없게 약한 것이었다고 신상털기로 사적인 응징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정의의 사자인 것으로 생각하고 처벌을 하는 것이지요.

  공화정에 사는 사람들은 그 체제에 순응을 하는 것이 올바른 시민입니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면 법을 잘못 집행한 사람들이 법에 의해 온당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하는 것이고 법 자체가 솜방망이였다면 국회를 추동해 법을 고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학자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책으로 내어 놓고 마케팅을 할 때 그 책을 읽거나 강의의 일부분이라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정의'라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 그냥 조용히 살 일이지 정의를 수호한다고 나서면 그의 행동이 미치는 곳에서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당연히 나올 것입니다. 할리웃 영화인 배트맨에서조차 진정한 정의, 막강한 힘을 가진 영웅이라면 각각의 상황에서 정의는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데 그런 것 없이 '우! 하고' 몰려 다니며 공적인 규칙을 무력화 하는 사람은 공화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펴면 안되는 무서운 흉기일 뿐입니다.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영화 이야기를 하려니 앞의 이야기가 과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연관이 되어 있는 일입니다. 범죄도시가 천만 돌파했다고 여기저기 엄청나게 이야기가 나오고 배우이자 감독이자 제작자인 '마씨'의 능력에 대해 능력자로 떠받드는 것들이 지금의 여론입니다. 그의 영화 '시동'을 본 바로 여늬 한국 영화와 하나도 다름없는 만화 수준도 되지 않는 줄거리에, 맥락 없음에, 연기력 없음까지 였다고 확신을 가지고 평합니다. 그것들이 달라졌다고요? 한 가지만 봅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입을 열지 않는 범죄혐의자에게 '진실의 방'을 엽니다. 법으로 금지한 폭력입니다. 더구나 무력을 쓰는 사람이라면 창피해서 절대 쓰지 않는 서로 대등한 조건을 가지지 않은 온전히 자신에게만 유리한 상황에서의 명백한 폭력.  그것을 보러 간 사람들은 그것을 통쾌해 하니 천만이 넘는 '정의로운 관객'이 나오는 것이잖아요. 그는 아직 '피의자'인데 '의'는 의심 중이라는 것입니다.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 검찰에 기소하고 그 때 '피고'가 되는 것이고 지금은 믿을 수 없게 된 사법부의 유죄 판결이 나오면 '죄수'가 되는 것이잖아요. 물론 죄수가 되어도 패면 안 되구요. 그렇게 다수의 사람들은 정의구현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인공에 빙의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침을 뱉고 욕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공화정에 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여론을 형성한 언론과 평론가들은 최고의 악당인 것이구요. 더구나 이 영화가 상영된 동시간대에 상영관 85%가 그 영화를 상영했다고 한다면 모두가 그들의 정의구현이 아전인수 아닌가요? 딱 5공 때의 그 정의구현과 맞지 않나요?

사대부士大夫

   남자, 교육 받은 남자, 예의 바른 남자, 지조 있는 남자, 뿌리 있는 남자. 이 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대부 이겠지요?원래 중국에서 쓰던 의미와 조선에서 달라졌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고려, 조선 시대 문관 관료의 총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