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0일 수요일

한자어원공부 7월 마지막주

 









  컴퓨터를 바뀌면서 스캐너가 잡히지 않아 전번 주 공부한 거 올리지 못하다가 어제 겨우 잡아서 한꺼번에 올렸습니다. 책을 학교에 두고 가게 되어서 개학 때까지 공부를 쉬게 되네요.




2022년 7월 12일 화요일

장자에 대한 오해

   장자의 이야기 중 쓸모없는 나무여서 오래 살 수 있었다는 우화를 읽고 쓸모도 없이 오래 사는 게 칭찬 받을 일이냐고 장자를 멀리하였습니다.

  그가 전국시대에 살았다는 건 알았지만 그가 처해 있던 상황을 몰랐습니다. 시기상으로는 전국시대 말기여서 시체가 흘러넘쳤고 죄수들이 또한 쟁여있다고 말할 정도였답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나 살았던 곳은 세 나라에 기어 있어서 지배국이 수시로 바뀌는 곳이어서 그 어떤 성향이나 주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살아남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는 겁니다.그가 우화로 자신의 주장을 말한 것도, 세상을 한 발 빼고 본 것도 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니 그의 말은 난세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 거죠. 완전히 이해 했습니다. 시간 내어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야관문

   야관문은 별명이고 제이름은 '비수리'입니다. 신장기능을 '보'해서 정력에 좋다고 많이 떠들고 있지만 동의보감에는 언급이 없다고 합니다. 비를 만들거나 가축 먹이로 썼다고 하고 껍질을 말려 노끈으로 썼다고 합니다.

2022년 7월 11일 월요일

내가 공자를 버리지 못한 이유

   공자의 이름이 와 '구丘'인지를 찾아다니다 김용옥의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를 못 미더워 하면서도 그를 계속 옆에 두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공자의 중심 사상은 '인'이라고 하지만 도올은 '호학好學'이라고 해서 원문을 찾아보았습니다.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자왈 십실지읍 필유충신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공자 이르시기를 열 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도 나()처럼 충실하고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 반드시 있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사상적으로는 충돌이 많이 나지만 통하는 데가 있었던 것입니다.

2022년 7월 6일 수요일

다른 시대의 다른 가치

   앞의 글과도 연계가 되고 그 전의 노인에 대한 글에서 언급한 연장, 아니 그보다는 '부언'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허진웅의 '중국고대사회'를 읽고 있는데 상나라 때의 이야기로 노인을 산에 버리고 내려오니 아버지와 함께 갔던 아이가 지게를 가지고 내려오려 해서 '필요 없는 걸 왜 무겁게 가지고오냐'고 아버지가 물으니 아이의 답이 '나중에 아버지를 지고 와야 하니 가져간다'는 말을 듣고 노인을 다시 데려 오고 그 뒤로 그런 풍습이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상나라 때의 것으로 내려 온답니다. 또한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었구요.

  이것도 현재의 가치로 당시, 그러니까 기원전 2천~3천년의 상황을 판단하는 것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한 부분이죠. 그것을 비윤리적인 일로 판단하고 사실관계를 왜곡하면 무자란데다 나쁜 거죠. '고려장'이란 건 왜놈들이 한반도를 지배할 때 만든 용어라고 합니다.

과거로 현재를 판단하다

   사람들에게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법'에 대해서 '준법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가 그 가름을 결정한다고 해오고 있는데 그에 동의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법이란 건 무조건 지켜야 질서가 유지된다고 세뇌가 되어 있는 거지요. 한번 들어온 지식을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니라 전부라는 생각을 합니다. 시골이기 때문에 더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에다 자신이 정의롭다는 무기까지 장착했으니 말해 더 무엇 합니까.

  프랑스혁명 공부를 하다가 느닷없는 새로운 것을 하나 주웠습니다. 횡재급입니다.


  쇠라의 '아니에르의 물놀이'라는 작품입니다. 저 건너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엄청 뿜어져 나오고 있고 강가에 사람들이 한가로이 물놀이 하는 장면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오염을 생각할 거고 강물에 비친 것을 더해 공기와 물까지 오염된 끔찍한 현실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 그림을 그리던 당시는 부와 풍요를 나타낸 것이랍니다. 산업화로 인해 굶주림에서 벗어나 여유있고 풍요로운 세상으로 가는 것을 상징한다는 거지요.

  당시에 오염에 대해서 그 위험성을 생각할 누적된 데이터가 없었고 공장들이 돌아가면서 새로운 산업에 의해 돈이 돌게 된 것이었으니. 이렇게 하나의 그림을 가지고도 완전히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하는 것인데 과거의 가치로 현재를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사람과의 논쟁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정치판이 저렇습니다.

2022년 7월 5일 화요일

종횡, 세로와 가로

   하, 이거 참 종은 뜻이 '세로'이고 횡橫은 ;가로'의 뜻입니다. 새삼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합종'과 '연횡' 때문입니다. 상현달과 하현달만큼 이해가 되지 않은 용어입니다. 위키백과의 사진인데

  이게 상현달입니다. 교과서를 찾아 보면 아예 '현'이 90도의 각도를 가진 것으로 나옵니다. 누구에게 물어도 그런 것도 모르냐며 오른손으로 움켜 쥐면 상현 왼손으로 움켜쥐면 하현이라고 잘라서 말할 뿐입니다. 이게 어떻게 상현입니까.

  합종연횡을 끄집어 낸 건 굴원 때문이었고 굴원이 나온 건 한자 공부 때문이었습니다. 汨은 뜻이 '빠지다'여서 汨沒로 쓰이기도 한데 또 다른 뜻과 소리가 있습니다. '내 이름 멱'. 찾아보았더니 굴원이 빠져 죽은 강 이름이 멱라수汨羅水랍니다. 그래서 굴원을 다시 뒤지다가 '장의'의 '연횡'을 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소진'의 '합종'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전국시대의 막바지에 이르면 서쪽의 강한 '진'과 고만고만한 동쪽의 여섯 나라(초, 한, 위, 조, 제 연)가 있었는데 진의 위협에 여섯나라가 연합하여 진에 맞서자는 게 소진의 '합종책'이 처음에 먹혔고, 진과 각자 화친을 맺어야 더 안전하다고 하는 '장의'의 '연횡책'이 대결을 하는데 '연횡책'이 나중에 통하게 되며 진나라는 여섯 나라를 하나씩 무너뜨립니다.

  굴원은 초나라의 사람으로 왕을 보좌하는 사람이었는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왕이 많이 부족하고 귀도 엷은 사람이었는데 그에게 충성을 다한 걸 보면 내 관점에서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모함을 받아 쫒겨나고 '이소離騷'라는 글을 남기지만 사람들에게는 '어부사'가 더 많이 기억됩니다. 돌을 안고 멱라수에 빠져 죽었답니다. 굴원이 사라지고 '연횡책'에 빠진 초나라는 제나라와 잡았던 손을 놓고 진나라에 붙으려 했지만 6국 중 제일 강했던 나라지만 제일 먼저 망합니다. 

궁즉통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이 꽤 있습니다. 대기만성처럼. 그릇 큰 건 만들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어떻게 갖다 붙이면 억지를 슬 수 있지만 궁즉통은 다릅니다. 이걸 사람들은 '궁하면 통한다'로 써서 '아주 방법이 없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