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2

종교의 한계, 편협성

   나는 한 사람의 정치적 이념성향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질문이 '준법정신'에 대해 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판단하는데, 유죄라고 판단하면 상당히 큰 제약이 따릅니다. 매울 신辛자가 죄인에게 문신을 새기는 도구의 상형자라고 하는데 새기는 과정이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걸 새기고 이후의 삶을 사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미 현행법으로 처벌을 다 받고 출소하는 자를 이후로도 사회와 완전히 격리해야 한다는 것까지 이르면 그들은 보수의 가치까지 훼손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법을 먼저 고칠 일이지 준법을 외치는 사람이 법을 넘어선 벌을 주자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에 이르면 더욱 선명합니다. 이것이 개인의 내부에 머무르면 정신수양의 수단으로 바람직하게 쓰이는 것이지만 그것이 밖으로 나와 집단화하고 다른 이에게 전파하고 주장하는 상황이 되면 이들도 보수라고 부를 수 없게 됩니다. 아침 뉴스에 그리스 정교회 신부가 살해되었다는 걸 보고 그들의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의 뿌리는 유대교인데 거기에서 기독교가 파생합니다. 로마의 주종교였던 유대교는 신생 기독교를 핍박했고 콘스탄티누스가 공인(국교가 아닌 다른 종교와 같은 자격 부여)한 뒤로 반대로 기독교가 유대인을 차별합니다. 내용은 아는 바와 같이 일반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여 모두가 기피하는 걸로 먹고 살게 되는 데 그것 중 대표적인 것이 대부업이고 현대 금융업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7세기 이슬람이 갈라져 나옵니다. 중세를 거치며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일어나며 가톨릭의 부패를 공격하며 신교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 종교의 특징은 어머니가 같음에도 자식들이 서로 원수 보듯 한다는 것입니다. 

  이슬람 그들의 창시자를 모욕적으로 풍자하는 만평을 실은 잡지사 공격부터 아침 뉴스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우러르는 대상을 모욕하는 일은 그냥 금기사항인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존재로 선포합니다. 물론 예수의 가르침은 아니었지만 로마에서 중세에 이르는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하느님'에서 파생된 그 종파들은 모두 이렇게 해왔습니다. 종교가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불교는 종파가 여럿이지만 싸우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 견제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종교로서의 불교가 타락하기는 했지만.

  선가에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단하소불'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마조선사로부터 '천연'이라는 법명을 받아 단하쳔연으로 불립니다. 어느 겨울 산행을 나섰다가 추워서 절에 들어가 목불은 마당으로 가져와 쪼개어 불을 피웁니다. 그 절을 지키는 노승이 내려와 호통을 치니 '사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며 천연덕스럽게 뒤지는 시늉을 합니다. 그러자 노승이 나무에 무슨 사리가 나오냐고 대갈을 합니다. 천연은 씨크하게 말합니다. "그러면 되었구려."

  나무로 있던 것을 깎아 모셔두고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따끔한 가르침인 것입니다. 자신의 숭배대상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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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울면~의 유래

   원문 먼저 보시겠습니다. 王曰, 古人有言曰,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今商王受惟婦言是用 昏棄厥肆祀弗答 昏棄厥遺王父母弟不迪 乃惟四方之多罪逋逃 是崇是長 是信是使 是以爲大夫卿士 俾暴虐于百姓 以奸宄于商邑.   이게 어디에 나오는 거냐 하면요 사서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