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 문을 여니 만리향 냄새가 복도에 가득해서 나가 보니 현관 양쪽에 있는 금목서 꽃이 가득 피었습니다. 꽤 나무가 큽니다. 그 밑으로는 꽃무릇이 활짝 피었습니다.
2019-09-30
2019-09-20
조선 3대 기근
지금 우리는 지구 역사상 생명체가 살기 좋은 잠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도중에도 100년 넘게 소빙하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13세기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기온이 16세기 말에 뚝 떨어져 17세기 말까지 2℃가량 낮아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세계적으로 기근이 들었고 생산자와 비생산자가 구분된 엄격한 신분제를 유지하던 시대의 피지배 계층은 막대한 사망자를 냈다고 합니다. 그 중 조선시대를 살펴 보았습니다.
한글프로그램에서 그려 보았습니다. 내가 항상 조선시대 엑스맨으로 꼽는 왕 중 둘이 여기 있습니다. 두 인간은 즉위기간도 기네요. 선조대인 1592년 임진왜란을 당하고 있던 중 계갑대기근을 당합니다. 현종 때 두 번째의 대기근이 왔고 24년 만에 숙종 때 대기근이 옵니다. 두 번째까지 버티던 조선은 세 번째의 기근을 버티지 못하고 청나라에 손을 내밀었답니다.
한글프로그램에서 그려 보았습니다. 내가 항상 조선시대 엑스맨으로 꼽는 왕 중 둘이 여기 있습니다. 두 인간은 즉위기간도 기네요. 선조대인 1592년 임진왜란을 당하고 있던 중 계갑대기근을 당합니다. 현종 때 두 번째의 대기근이 왔고 24년 만에 숙종 때 대기근이 옵니다. 두 번째까지 버티던 조선은 세 번째의 기근을 버티지 못하고 청나라에 손을 내밀었답니다.
2019-09-06
월평균 가계 수지
올해 1, 2사분기 가구별 월평균 가계 수지 자료입니다.
2사분기자료를 보면 근로자가구 소득은 줄고 비근로자 소득은 늘었습니다. 비근로자라는 게 무직자만 아니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사적인 금융활동(주식이라거나)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가구당 380만원이 잡힌 거겠지요.
아무리 평균값이라지만 근로자 가구 기준으로 가처분 소득이 400만원이라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사람들이 많겠네요.
학력에 따른 소득의 차이 비교해 보세요. 어떻해야 할까요?
2사분기자료를 보면 근로자가구 소득은 줄고 비근로자 소득은 늘었습니다. 비근로자라는 게 무직자만 아니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사적인 금융활동(주식이라거나)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가구당 380만원이 잡힌 거겠지요.
아무리 평균값이라지만 근로자 가구 기준으로 가처분 소득이 400만원이라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사람들이 많겠네요.
학력에 따른 소득의 차이 비교해 보세요. 어떻해야 할까요?
양반?
조선 후기 신분에 따른 숫자 이야기가 나와서 비율을 찾아 보았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나 통계청 자료에 나와 있긴 한데 대구와 울산의 자료를 바탕으로 추산을 하고 있고 그 폭이 50%를 넘으니 별 신뢰할 수 있는 게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다가 의미있는 자료를 찾았습니다. 문과 합격자수.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의 한경 기고문입니다. 초기에 뽑은 수가 적은 데 개국 초기는 공신들이 관직을 차지하고 있어서 적게 뽑은 걸로 추정이 됩니다. 식년시는 3년마다 실시하는 명나라 제도를 가져온 것이고 그 외에 여러 별시가 있었답니다. 가장 적게 뽑았던 태종과 세종 시기를 보면 태종 14명, 세종 13명으로 보입니다. 1400년에 태종이 등극했고 세종은 1418년 등극하고 1450년에 세종이 문종에게 물려 주었으니까 대략 두 왕의 시기에는 18*14+32*13=68명이 나오네요.
문종은 단명하여 2년동안이었지만 37명을 뽑은 것으로 보이고 7대 세조 때 떨어진 건 계유정난 공신을 대거 등용해서 적게 뽑은 것으로 봅니다. 시호에서 보듯 정권을 안정시킨 성종 때 적게 뽑은 것이 눈에 띄고 1년을 즉위했던 인종 때는 뽑지 않았습니다. 15대 광해군이 많이 뽑은 게 보이고 4년으로 단명했던 경종(20대) 때 많이 뽑은 게 눈에 또 뜨입니다.
양반을 관직을 받은 사람으로 본다면 이 문과 합격자 수로 보면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총 748회 14600여명에 불과하답니다. 이외에 소과(생원, 진사)는 벼슬 얻지 못한 것이고 무과와 잡과가 있습니다. 식년시의 문과정원이 33명, 무과 정원이 28명이었답니다. 무과도 벼슬을 가졌다면 그 비율 적용하면 될 것이고 잡과에 합격해서 벼슬을 얻었다고 해서 그들은 양반이 아니고 중인이었겠지요.
여튼 이것을 바탕으로 본다면 진짜 양반을 몇 안되네요. 도올이 그랬던가? 조선 후기 노비의 비율이 40%였다고 하지만 대구 인구자료로 보면 양반이 70.3%, 평민이 28.2%, 노비가 1.5%입니다. 1858년 자료입니다. 이 때는 철종 때인데 1801년 순조 때 공노비의 해방이 있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경국대전에 문무잡직 통틀어 5000~6000천 자리라네요. 6000자리, 한 사람이 10년, 조선왕조 500년으로 대충 계산하면 30만명이 되네요. 잡직까지 해서. 4인 가족이라면 120만명이 되지만 벼슬아치의 자손도 벼슬을 얻으니 절반으로 깎으면 60만명. 조선시대 통틀어.
숫자 놀음 재미있습니다.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의 한경 기고문입니다. 초기에 뽑은 수가 적은 데 개국 초기는 공신들이 관직을 차지하고 있어서 적게 뽑은 걸로 추정이 됩니다. 식년시는 3년마다 실시하는 명나라 제도를 가져온 것이고 그 외에 여러 별시가 있었답니다. 가장 적게 뽑았던 태종과 세종 시기를 보면 태종 14명, 세종 13명으로 보입니다. 1400년에 태종이 등극했고 세종은 1418년 등극하고 1450년에 세종이 문종에게 물려 주었으니까 대략 두 왕의 시기에는 18*14+32*13=68명이 나오네요.
문종은 단명하여 2년동안이었지만 37명을 뽑은 것으로 보이고 7대 세조 때 떨어진 건 계유정난 공신을 대거 등용해서 적게 뽑은 것으로 봅니다. 시호에서 보듯 정권을 안정시킨 성종 때 적게 뽑은 것이 눈에 띄고 1년을 즉위했던 인종 때는 뽑지 않았습니다. 15대 광해군이 많이 뽑은 게 보이고 4년으로 단명했던 경종(20대) 때 많이 뽑은 게 눈에 또 뜨입니다.
양반을 관직을 받은 사람으로 본다면 이 문과 합격자 수로 보면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총 748회 14600여명에 불과하답니다. 이외에 소과(생원, 진사)는 벼슬 얻지 못한 것이고 무과와 잡과가 있습니다. 식년시의 문과정원이 33명, 무과 정원이 28명이었답니다. 무과도 벼슬을 가졌다면 그 비율 적용하면 될 것이고 잡과에 합격해서 벼슬을 얻었다고 해서 그들은 양반이 아니고 중인이었겠지요.
여튼 이것을 바탕으로 본다면 진짜 양반을 몇 안되네요. 도올이 그랬던가? 조선 후기 노비의 비율이 40%였다고 하지만 대구 인구자료로 보면 양반이 70.3%, 평민이 28.2%, 노비가 1.5%입니다. 1858년 자료입니다. 이 때는 철종 때인데 1801년 순조 때 공노비의 해방이 있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경국대전에 문무잡직 통틀어 5000~6000천 자리라네요. 6000자리, 한 사람이 10년, 조선왕조 500년으로 대충 계산하면 30만명이 되네요. 잡직까지 해서. 4인 가족이라면 120만명이 되지만 벼슬아치의 자손도 벼슬을 얻으니 절반으로 깎으면 60만명. 조선시대 통틀어.
숫자 놀음 재미있습니다.
지피지기
사람들이 자신의 일이나 사회 현상에 대해 예측을 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지력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정확하게 지피지기의 부재 문제입니다.
승진을 하면서 사람 달라졌다는 말을 거의 듣습니다. 좋은 쪽으로 달라졌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욕을 먹는 길을 걸어갑니다. 욕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그건 자신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험담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고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자신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욕을 먹는 사람 말고 관찰자의 입장은 두 가지의 관점에서 볼 수있습니다. 하나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상대의 잘못을 집는 건 상대를 기분나쁘게 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상대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이 땅의 풍토 때문입니다. 여기에 역지사지를 들이댑니다. 지극히 성실하지 못한 삶입니다. 그가 없는 곳에서는 뒷담 까잖아요. 여럭 있는 자리에서는 그런 말을 삼가지만 절친들과 있을 때 하잖아요.
또 하나는 상태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자신이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종이신문이나 공중파 뉴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일상적인 토론이 가능합니다. 옳고 그름, 정의, 부정의, 선과 악, 깨끗함과 더러움... 하지만 포털사이트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기사 제목을 보고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단어와 뉴스의 방향을 선택하기 때문에 한 쪽의 왜곡된 방향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뉴스를 내어놓는 매체는 가지 수가 몇 되지도 않아 대형 매체늬 뉴스를 보고 자신들은 그것을 가공하는 류의 매체들입니다. 실제 취재를 하지 않는 다는 거지요. 방송을 보면 취재원의 입에 대는 마이크의 숫자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종이신문이나 공중파의 뉴스는 나무의 가지, 그러니까 양념을 뺀 팩트는 대부분 사실이고 기자의 의견은 매체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니 그것만 인식하면 조중동을 보는 사람과의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게 아니면 사실의 부분에서 엇갈리기 때문에 대화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일상에 대한 판단과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어떤 상태이고 상대는 어떤 입장인지를 명확하게 판단하ㄹ 수 있어야 하는데 자신은 객관적이며 공정하다고 전제를 해버리는 것입니다. 한겨레신문은 너무 힘들고 어두운 구석만 조명하기 때문에 읽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엃은 편이며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요. 난 그 신문을 보고 있지만 중도우파적인 쪽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현 대통령이나 유시민과 같은 위치라는 것입니다.정치적 경제적으로 그렇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그냥 중도? 중도좌파라고 하기는 조금 부족한.
그런 정도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편하게 가자는 주의입니다. '그 정도는 덮어두고 가는 것이 평화로'운데 긁어서 시끄럽게 갈등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직접 이야기를 해보면 내 말이 맞긴 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불편을 느끼지 못하니 내가 불편 유발자이고 자신의 기준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독불장군, 꼴통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짚을 건 두 가지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 상대의 말이 맞다는 전제는 버리고 평온함을 깨뜨리는 또라이만 남겨둔다는 것이지요. 이들이 대다수이고, 더구나 교사 대부분이 이런 사람들일 때 이 땅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더울 골병이 들어갈 것입니다.
승진을 하면서 사람 달라졌다는 말을 거의 듣습니다. 좋은 쪽으로 달라졌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욕을 먹는 길을 걸어갑니다. 욕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그건 자신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험담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고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자신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욕을 먹는 사람 말고 관찰자의 입장은 두 가지의 관점에서 볼 수있습니다. 하나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상대의 잘못을 집는 건 상대를 기분나쁘게 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상대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이 땅의 풍토 때문입니다. 여기에 역지사지를 들이댑니다. 지극히 성실하지 못한 삶입니다. 그가 없는 곳에서는 뒷담 까잖아요. 여럭 있는 자리에서는 그런 말을 삼가지만 절친들과 있을 때 하잖아요.
또 하나는 상태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자신이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종이신문이나 공중파 뉴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일상적인 토론이 가능합니다. 옳고 그름, 정의, 부정의, 선과 악, 깨끗함과 더러움... 하지만 포털사이트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기사 제목을 보고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단어와 뉴스의 방향을 선택하기 때문에 한 쪽의 왜곡된 방향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뉴스를 내어놓는 매체는 가지 수가 몇 되지도 않아 대형 매체늬 뉴스를 보고 자신들은 그것을 가공하는 류의 매체들입니다. 실제 취재를 하지 않는 다는 거지요. 방송을 보면 취재원의 입에 대는 마이크의 숫자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종이신문이나 공중파의 뉴스는 나무의 가지, 그러니까 양념을 뺀 팩트는 대부분 사실이고 기자의 의견은 매체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니 그것만 인식하면 조중동을 보는 사람과의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게 아니면 사실의 부분에서 엇갈리기 때문에 대화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일상에 대한 판단과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어떤 상태이고 상대는 어떤 입장인지를 명확하게 판단하ㄹ 수 있어야 하는데 자신은 객관적이며 공정하다고 전제를 해버리는 것입니다. 한겨레신문은 너무 힘들고 어두운 구석만 조명하기 때문에 읽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엃은 편이며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요. 난 그 신문을 보고 있지만 중도우파적인 쪽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현 대통령이나 유시민과 같은 위치라는 것입니다.정치적 경제적으로 그렇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그냥 중도? 중도좌파라고 하기는 조금 부족한.
그런 정도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편하게 가자는 주의입니다. '그 정도는 덮어두고 가는 것이 평화로'운데 긁어서 시끄럽게 갈등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직접 이야기를 해보면 내 말이 맞긴 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불편을 느끼지 못하니 내가 불편 유발자이고 자신의 기준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독불장군, 꼴통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짚을 건 두 가지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 상대의 말이 맞다는 전제는 버리고 평온함을 깨뜨리는 또라이만 남겨둔다는 것이지요. 이들이 대다수이고, 더구나 교사 대부분이 이런 사람들일 때 이 땅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더울 골병이 들어갈 것입니다.
2019-09-03
진보와 보수
톨스토이는 법法에 대해 앞서 나아가려는 자를 잡아 뒤로 끌어오고 뒷쳐진 자를 잡아 앞으로 끌어 오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옛 공책을 뒤지다 박범신이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던 것을 발췌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좋은 정의인 것 같습니다.
풍속의 변화를 좆아 제도를 ㅂㅏ꿔 나가자는 생각을 진보, 풀속이 제도와 멀어질 때 제도로서 풍속을 제어하자는 생각을 보수...
옛 공책을 뒤지다 박범신이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던 것을 발췌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좋은 정의인 것 같습니다.
풍속의 변화를 좆아 제도를 ㅂㅏ꿔 나가자는 생각을 진보, 풀속이 제도와 멀어질 때 제도로서 풍속을 제어하자는 생각을 보수...
입학지원서
내게도 오만한 시절이 있었나 봅니다. 오래된 공책을 꺼내어 봤더니 공대입학지원서를 쓰기 위해 작성했던 초고가 있었습니다. 필체도 오만하고 한자를 섞어 쓴 것도 그렇고 사용한 표현들도 거창합니다. 그런데 누가 봐도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 글의 약속대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많이 한 모양으로 고등학교 3학년 11월쯤 썼을 것으로 보이는 포부에는 구체적 내용이 없습니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진인사대천명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의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멋있는 척 하는 거 즐겨 하는 사람의 집에 가면 많이 걸려 있는 글귀입니다. 이 말의 어원은 여러 가지 입니다. 남송의 호인의 '독사관견'에 盡人事聽天命이 나오...
-
(정리) 소수는 무한히 많다 (증명) 소수의 개수가 유한하다고 가정하고, p 1 , p 2 , ⋯ , p r 가 모든 소수의 목록이라 하자. 자연수 N = p 1 p 2 ⋯ p r + 1 을 정의하자. N 은 각 소수 p i ...
-
'동이 트다'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사전에는 없는데 뜻풀이에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 날이 새면서 동쪽 하늘이 훤해지다'로 풀이 합니다. 그러면 제목에 쓴대로 동트기 전이 제일 어둡다고 말한 것이 맞는 말일까요?...
-
등사기는 빨리도 사라져갔습니다. 가리방이라고 했는데 어감상으로 일본어인 것 같습니다. 발령을 받았을 때 이걸로 문서를 인쇄하고 시험문제를 냈습니다.상당한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2번의 기름종이엥 1번의 쇠판 위에 올려 3번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