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그런 사회에서 어떤 소수는 이미 여의주를 품고 태어나고, 개천은 살 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를 기다리는 사회가 아니다. 누구도 용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끝없는 경쟁에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좋은 사회란 용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사회, 특권을 보장받는 용이 필요 없는 사회, 아예 개천이 없는 사회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57003.html 한겨레신문 2026년 5월3일자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이 분의 글은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는 명언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24년 한국은행이 서울대 진학률을 기반으로 학생의 잠재력 차이로 설명되는 몫은 8%에 불과하고, 92%는 거주 지역의 차이에서 비롯되니 지역별 학령인구의 비율에 따라 대학 신입생을 선발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이야기로 이어 갑니다. 그러게 해서 맨 앞의 결론으로 이어간 것입니다.
- 용도 없고 개천이 없는 사회는 곧 평등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고 사회주의적 사회입니다.
-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한 건 에디슨의 말입니다. 그는 잠을 자면서도 사람들에게는 '잠을 자는 건 사치이고 낭비'라고 말을 한 사람이고 그의 발명품 중 사기를 친 것들이 제법 있습니다.
- 한국은행의 분석과 제안을 이런 식으로 뭉개서는 안 됩니다. 한국은행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제안을 한 것인데 '용'도 '개천'도 없는 상상의 세계로 끌어가다니오.
대학에 들어 가고 고향에 내려 갔을 때 지금은 전설처럼 이야기 되는 '국립 사대생'이 왔다고 사람들이 구경을 나오는 일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내 고향(이젠 가고 싶지 않은)은 지금도 버스가 지나지 않아 버스 타려면 걸어서 20분은 족히 가야 하는 곳입니다. 이런 경우가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경우인 거지요. 지역 인재를 뽑는 의도로 대학 수시에서 지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아예 비율을 정하자고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 훌륭한 제안을 방향을 홱 틀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서울대 이야기 입니다. 석열이의 내란 시도 사건으로 보인 서울대 출신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은 단지 성적이 좋았던 사람들일 뿐 똑똑하지도 않고 민주주의의 기초도 인식하지 않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역사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멍청하고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서울대를 꼽은 게 애초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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