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이 정의롭게, 공평하게 사람을 대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업과 신분의 귀천貴賤 없이, 외모의 미추美醜 없이, 재산의 다소多少 없이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고. 그런데 정작 그런 사람 본 적 없습니다. 하다 못해 먼저 출근해서 나중에 출근하는 동료나 관리자를 맞이하는 인사의 태도에서 먼저 명확하게 사람들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몸에 밴 습관으로 가려진 본성의 태도는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해보면 드러납니다.
그걸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것이 '유퀴즈'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큰 자기' 유느님과 '작은 자기' 죠셉이 손님의 왼쪽과 오른쪽에 스플릿 형태로 앉아 있어서 두 진행자를 손님은 함께 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둘 중의 하나를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손님은 두 진행자 중 한 사람을 보게 되는데 이 때 그 사람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손님은 유느님을 주로 보고 심한 사람은 아예 한쪽만을 보며 인터뷰에 응합니다. 당연히 죠셉 쪽은 아닙니다. 그걸 보면 그들의 가식을 아주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죠.
요즘에는 내가 '머저리의 준말이라고 하는 'MZ세대'의 언어와 꾸밈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차별하고 영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을 올려다 보고, 건물 가진 사람을 친구로 삼고 싶어하는 걸 숨기지 않고 표시합니다. 인지상정이라구요? 맞습니다. 人之常情, 맞습니다. 사람이라면 늘상 가지고 있는 생각, 느낌, 선택, 情. 이 글자의 뜻은 '뜻'인데 쓰임은 초코파이 광고의 그 '정'입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룹니다. 유교 관점에서 봅니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칠정'이라고 합니다. 희(喜) · 노(怒) · 애(哀) · 구(懼) · 애(愛) · 오(惡) · 욕(欲). 다 아는 것 같은데 하나가 다릅니다. 네 번째 懼입니다. 이것은 두려움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樂 대신에 들어가 있습니다. 희노애락애오욕은 불가에서 말하는 칠정입니다. 유가의 칠정을 봅니다.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가지고 싶어하는 일곱가지 마음입니다. 이것은 인간이면 가지고 있는 감정이고 그에 반해 공부를 통하여 몸에 익혀야 하는 네 가지가 '사단'입니다. 맹자는 인간 본성이라고 했지만요.
사단은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의 네 가지인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뜻이 다릅니다. 아름다운 기독교 교리를 해석하여 전달하는 자들이 비천하고 나쁘게 바꾸어 전달하여 더러운 종교가 되게 한 것과 이것도 같습니다. 仁이라는 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불교의 '자비'보다는 기독교의 '사랑'에 가깝습니다. 義는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나쁜 걸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한국인들이 유교를 잘못 알고 있는 핵심입니다. 나쁜 것을 부끄러워하고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모른 척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라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믿고 행합니다. 다음은 禮는 사양지심辭讓之心으로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하는 마음입니다. 이익을 보면 뒤로 빠지는 걸 말하는데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이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智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인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지혜롭다는 것을 우리가 흔히 쓰는 뜻과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기 논쟁이니 주기, 주리파니 해석들이 많지만 이처럼 해석하면 됩니다. 칠정은 인간이 자연스레 가지고 있는 감정이고 사단은 애써 공부하여 지키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그러면 주나라의 법도인 '禮는 서인에 이르지 못하고 형은 대부에 이르지 못한다'는 계급정신에 입각해서 '나는 평민이니 굳이 사단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을 할 사람들이 앞의 그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좋은 사람', '올바르고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죠셉'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없겠지요. 볼 때마다 안쓰럽지만 또한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