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9

차별과 배제

  서민아파트나 빌라에 산다고 0거지라고 아이들이 낮잡아 부르는 게 일상적인가 봅니다. SNS가 참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 나쁜 것도 신속하고 넓게 퍼뜨리니지요. 그런데 이게 이 땅의 곳곳에 퍼져 있는 배제와 차별의 일부분이라는 건데 자신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 동네에 장애인학교도 안 되고 요양병원도 안 되고에서부터 외국인(실은 외국 유색인) , 타지역 문화, 다른 문화, 다른 종교, 음식(요새는 박쥐) 따위 까지 타인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휴머니즘을 갖고 있지 않는 휴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이없는 차별과 배제가 나이입니다. 아이들이 자신들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일 수록 좋아하는 것은 아이니까 인정을 하지만 학생들도 젊은 교사를 따지지 않고 좋아합니다. 과목에 대한 능력도 부족하고 행실이 바르지도 않으며 학생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요즘의 젊은이들은 나이든 사람들은 아예 대화의 대상으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면전에서는 한없이 굽실거리고 입발린 칭찬을 하지만 그것은 그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일 뿐입니다. 그들의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이 모든 걸 가르쳐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배들의 말은 전부 TMI이고 그런 말(판단하는 말 모두)을 하는 사람은 무조건 꼰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 보면 서너 살 차이만 나도 자신의 친구가 아니면 구분을 하더라니까요.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고 또한 적정선을 지키면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차별과 배제로 자신이 잘난 사람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도 모르는 한심한 이 들입니다.

2020-01-24

식민주의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이 대신 판단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대표적인 '노예근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문화를 타국의 문화보다 낮은 것으로 보는 것은 식민주의 근성이라고 보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상이 중국, 일본, 미국이면 확실한 거구요.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전파하려 애쓰는 사람들도 있고 '빨리빨리'와 '교통질서 무시'를 한국인의 고질병이라며 자기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같은 사람들입니다.
  난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아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이 어렵지만 과학성 인정을 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내 뜻을 전하는 데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으며 자음과 모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라틴 계열의 언어와는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수주의도 흉하지만 우리말을 지키려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공중파 방송에서는 애썼습니다. 혀 꼬부리며 노래부르는 가수들은 욕을 먹었구요. 하지만 지금은 하하의 '미춰버리겠네'는 하하만이 아니라 다른 장면에서도 자막으로까지 넣어주고 영어는 '지성'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D&E'는 고급스럽고 '동해물과 죽방멸치'는 싸구려 느낌이랍니다.

고장난명

  평일 저녁시간 KBS1을 보면 시골마을 탐방 프로그램을 합니다. 당연히 할머니, 할아버지 뿐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00떡', '00양반'(00은 동네 이름)으로 불리우지만 할머니가 부르는 할아버지의 이름은 '저웬수'입니다. 젊었을 때 바람피우며 속썩이다가 힘떨어지니가 이제 자신의 옆에서 밥이나 얻어먹고 있다고.
  그런데 그 나이든 남자가 젊었을 때 바람을 피웠다던 그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그 여성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였을까요, 남편을 잃고 변변한 벌이 없이 아이들 키우는 사람이었을까요.
  옳고그름을 따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지 제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새 '무물보' 즐겨보는데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안녕하세요'와 차별점은 일반 사람들의 의견으로 어느 한 쪽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니라 서장훈과 이수근, 실은 거의 서장훈의 판단으로 상황정리를 하고 향후 대책을 제시합니다. 거의 그의 상황인식과 이후 방향성에 감탄을 하고 있는데 최근 동의할 수 없는 에피소드가 하나 나왔습니다.
  일본 여자가 사귀던 남자에게 '차였다'고 하는데 남자에게 새로운 여자기 생겼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한국에 올 때마다 남자의 연락이 있었고 그러면 만나서 함께 여행을 다녔다고 합니다. 남자의 연락에 있었던 것은 여자의 SNS에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방문의 사실을 올린 것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서장훈은 스쳐가듯 그 남자의 새로운 여자의 관점에서 그건 바람피우는 것일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그에 대한 언급들은 더 이상 없고 이 '착한' 여자를 착취하는 '나쁜 놈'만 욕을 합니다. 이 여자는 왜 에스엔에스에 한국방문 사실을 미리 알렸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일

  남의 분쟁에 끼어드는 일이 잘하는 일일까 나쁜 일일까. 친구의 부부싸움, 자녀들의 다툼, 학생들의 갈등, 친구들 중 두 사람의 싸움 등에 끼어드는 게 현명할까의 문제는 각자 자신의 철학에 따른 결정이 나올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분쟁에 내가 끼어드는 행동의 근거는 두 사람의 갈등을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의 싸움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확실할 것입니다(나의 상황 판단이 너희보다 낫다는).
  자율의지가 있는 존재라면 개인의 활동이 아닌 다른 존재와 어울리는 공간이 되면 당연히 이익의 충돌이나 자율의지를 방해받는 일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열음이 서로의 시민의식의 정도에 따라 해소될 수도 있고, 잠복할 수도 있고 또한 그것이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혼자 사는 곳이 아니면 당연히 생길 것입니다. 그 때 끼어드는 행위.
  선한 의지를 가지고 선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갈등의 당사자들이 서로 수긍할 만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면 선한 간섭일 것입니다. 어쩌다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이 속해있는 이 국가라는 제도를 수긍하며 사는 사람들의 공간에서 개인끼리 혹은 집단끼리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은 선한 의지라고 볼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간의 일들은 당연히 순수함이 '0'이라고 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절대로 인간의 탈을 쓰고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용병'입니다. 싸우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건데 이들은 무력으로 대결을 할 때까지 많은 과정들이 있었고 더 이상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물리적인 해결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지경까지 이르러 총을 들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돈을 받고 어느 한 쪽을 부수고 목숨을 빼앗는다는 건 인두겁을 쓰고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2020-01-23

트라우마?

  예능 프로그램에서 높은 곳이나 물 등에 공포증이 있다고 트라우마라고 말하며 자신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본다든지 다이빙을 한다든지 귀신의 집에 들어간다든지 바다에 뒤어드는 건 누구나 두렵습니다.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두려운을 느끼지 않는 건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며 싸이코이거나 과시욕이 무엇보다 큰 사람일 것입니다.
  어렸을 때 동네 선배들이 수영을 가르쳐 준다고 수문 위로 끌고 올라가서 아래로 밀어버려 살려고 허우적대며 수영을 배웠습니다. 냇물을 막아 아랫쪽의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설치한 수문은 좁아진 강폭 때문에 베르누이 효과로 엄청나게 유속이 빠르고 그로 인해 바닥이 심하게 패여서 어른들이 거의 수심이 30미터에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던져진 나는 살려고 온 힘을 다해 물을 먹으며 얕은 곳이로 나오면 질질 짜는 나를 다시 수문 위로 끌고 올라갔습니다. 어렸을 때 물에 빠진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람에게 그 마음을 함게 하지 못합니다.

2020-01-02

우연



  며칠 전 출근길에서 기막힌 우연을 보았습니다. 번호가 같고 차종도 쏘나타와 아반떼입니다. 아반떼는 쏘나타 차대를 쓰고 있어서 그 부분만 가리면 완전 쌍둥이입니다. 운전자 자신들은 저걸 모르겠지요?

흑백사진의 묘미




  단지 그레이스케일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항우를 통해 또 문제를 제기하는 사마천의 사기

   내 의견을 줄여 사실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항우는 어려서 삼촌인 항량에게 보내어져 길러집니다. 그 때의 기록입니다. 숙부 항량이 젊은 항우에게 처음에는 학문을 가르쳤으나 얼마 못 가 학문은 이름만 쓸 줄 알면 된다며 그만 뒀고, 무술을 가르쳤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