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7일 일요일

좋은 교사는?

  어제 차에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미안마에서 로힝야족을 죽이고 쫓아내고 있는데 그럴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더라. 영국이 인도를 완전히 식민지화한 뒤에 로힝야족과 카렌족을 삼켰고 버마족을 침략했다. 당시엔 묶여있지 않은 각자 독립된 영역이었다. 두 부족은 무난했는데 버마족은 저항이 치열했고 먼저 식민지화한 로힝야족과 카렌족을 앞세워 버마를 굴복시켜 셋을 인도의 한 주로 편입시키려 했다. 뒤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고 영국이 셋을 하나로 묶어 놓아서 독립후에도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은 과거를 묻지 않고 셋이 평등한 국가를 구상했지만 암살 당하고 그 뒤를 이은 네윈이 군부집권의 정당성을 위해 로힝야와 카렌족을 탄압하게 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친일파를 보았다.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랬더니 다르다고 하네요. 다른 게 뭐냐고 물으니 머리 아파 생각하기 싫답니다. 그러더니 그러면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는 정권이 온당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정권은 부당한데 그 점은 놔두고 두 부족이 저지른 것에 대한 부분만 생각하자고 했는데도 생각하기 싫답니다.

  친일파의 청산을 하지 못한 남한은 친일을 기반으로 한 권력과 부를 현재까지 누리며 진정한 독립국가로서의 가는 길을 방해하기까지 하는데 그래도 되냐고 했지만 머리 아프답니다.

  비단 이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집단은 차치하고 교사만 한정해도 대부분은 그와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과, 부패와 부정의의 처단에 대한 지지와 실행의지가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학생들에게는 어떤 교육을 할까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올 뿐입니다.

2021년 6월 22일 화요일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더 구체적으로 남아 있는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패치 아담스'라는 영화에 주인공은 좋은 의사에 대해 고민하는 동료(의대 학생)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죽음을 지체시키기보다는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 거야.

  어제 보았던 신문 기사에, 아니 칼럼이었나?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것을 노화가 천천이 진행되었다거나 노화가 오는 시기가 늦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기대수명이 짧았을 때와 노화가 오는 시기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과학적으로 말하고 있답니다. 단지 오래 살고 있다는 건데 '노화'란 것의 뜻을 생각해보아야 겠습니다.

  노화1(老化)「명사」 「1」『생명』 질병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체 구조와 기능이 쇠퇴하는 현상. - 표준국어대사전 -

  그렇다면 신체의 구조와 기능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단지 그런 시간이 길어져 오래 살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전에는, 그러니까 '지식'이 대접을 받던 때는 경험이 많을수록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어 나이 든 사람이 대접받기도 했고, 물론 그런 게 없어도 종교나 관습에 의해 오래 사는 것이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래 산다는 것만으로도 '축내는', 더 나아가 '자신들이 가져야 할 것을 선점하고 내어 놓지 않는' 배제하고 싶은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은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이미 잃었으니 그 관점 말고 이게 발전일까요? 이니면 좋은 사회일까요? 그 질문은 말하려고 하는 것과 조금 방향이 다르구만요.

  일반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을 또 하나 더 알게 되어버렸습니다.

  자, 그러면 남은 삶을 어떤 것으로 만들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젠 자신감이 떨어져 내가 가진 것을 원하는 사람이나 곳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돈 가진 거 있으면 그거나 내어놓으라고 할 것 같습니다. 오바라구요? 요새 젊은 사람들 회식자리에 대한 공통의 생각인데도?

  푸념이 아닙니다. 몇 년 남지 않은 정년을 당겨 명예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커가는 아이들

   작년에 입학한 아이들은 유난히 시끄러웠습니다. 말이 먹히지 않는. 그래서 그 중 두 아이에게 '나댐 1호'와 '나댐 2호'의 별명을 부여했습니다. 그 중 올들어 2호는 처녀가 되어 가는데 1호는 여전하고 올해 새로 입학한 한 아이가 '나댐 3호'가 되었고 년초에 제주에서 전학온 2학년 아이가 '나댐 4호'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댐 4명 중 3명이 2학년이고 내가 담임인 것입니다. 그 중 1호와 4호가 물을 만났습니다. 어찌나 나대는지 오늘 아침은 추적을 하도 심하게 해서 서로 마주보고 서있는 벌을 주었습니다. 그 나이 아이들은 많이 부끄러워 하잖아요.

 잘하겠다고 해서  교무실 청소를 끝내고 풀어주었는데 얼마 뒤 1호가 빨간 벚나무잎을 가지고 와서 예쁘다며 손에 쥐어주는 겁니다. 참, 아이들은 여러 면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021년 6월 16일 수요일

사람의 품격

 정치인들도 많이 쓰는 말이 인간의 품격과 나라의 품격입니다. 그들이 쓰는 '품격'은 사전적인 의미와 다른 것 같고 나와는 확연히 다릅니다.표현도 그러하거니와 내용도 담보되어야 합니다.아침 저녁으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듣고 있는데 인터뷰하는 어떤 정치인들 말을 듣고 있으면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비위가 상합니다. 진행자의 능력도 한심하구요. 듣고 있는 사람을 무식하다고 무시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상생활에서의 사람의 품격을 엿볼 수 있는 소소한 예들이 있는데 출입문에서의 예절이나 공공장소에서 말소리의 크기 등은 그 사람의 품성과 인격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주정차입니다. 주차 공간이 없을 때 조금만 걸으면 주차가능한데 이미 주차된 다른 차의 통행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맞습니다.



2021년 6월 8일 화요일

가치의 상대성

   사람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선과 악, 진과 위를 판단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이 객관적이라고 믿습니다. 자신의 가치판단이 상대적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의 판단만이 들어볼 여지가 있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바로 불통인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불럿지만 요새 그 의미가 바뀌어 '불통'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통인 사람들이 자신이 불통이란 걸 모르는 이유가 주위 사람들이 같은 부류이기 때문입니다.

  오랫만에 예초기 돌아가네요. 두 달 전쯤 풀을 벨 때 앞 화단에 두 뼘 높이로 자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던 낮달맞이꽃을 모조리 베어버렸습니다. 그에게는 그저 잡초였던 것이지요. 너무나 놀라서 한마디도 못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화단을 며칠을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런데 모진 생명입니다. 자시 풀이 자라나더니 며칠 전부터 꽃을 피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보다 훨씬 무성하게.



사대부士大夫

   남자, 교육 받은 남자, 예의 바른 남자, 지조 있는 남자, 뿌리 있는 남자. 이 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대부 이겠지요?원래 중국에서 쓰던 의미와 조선에서 달라졌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고려, 조선 시대 문관 관료의 총칭...